경허(鏡虛, 1849~ 1912)는 한국 근현대 불교를 개창한 대선사이다. 9세 때 경기도 의왕시 청계산에 있는 청계사로 출가하였다. 또한 경허는 연암산 처장암의 작은 방에서 1년 반 동안 치열한 참선을 한 끝에 확철대오하게 되었다고 한다. 경허에게는 내로라하는 제자가 세 명이 있다. 이들은 수월 스님, 혜월 스님과 만공스님을 가리키는데 경허의 삼월(三月)이라 불리기도 한다.
여기서는 경허의 삼월(三月)중 한 명인 혜월 스님에 관한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헤월 스님은 11세에 출가하여 동자승처럼 생활하였다. 평생을 글을 배우지 않았으나 철저한 수행을 몸소 실천하였다. 혜월 스님이 발이 닫는 곳엔 사전(寺田:절이 소유하고 있는 밭) 개간이 이루어 진다. 평생 일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이 분이 실천하신 것은 바로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이었다. 즉 ‘하루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뜻이다. 그래서 혜월 스님은 많은 사찰을 개간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혜월 스님이 수덕사 정혜사에 있을 때였는데, 하루는 밤에 도둑이 들었던 것이다. 양식을 훔쳐 지게에 지고 가려던 도둑은 가마니가 무거워 홀로 지게를 지려 하였으나 힘에 부쳐 쩔쩔맸다. 이때 누군가 밤도둑의 지게의 짐을 들어올려 슬며시 밀어주었다. 놀란 도둑이 돌아보니 혜월 선사였던 것이다. 혜월 스님은 놀란 도둑에게 소리를 내지 말라고 입가에 손을 대고는 “쉬잇, 아무 소리도 하지 말고 조용히 내려가게, 양식이 떨어지면 또 찾아오시게나.”라고 했다. 혜월은 얼마나 도둑이 배가 고프면 이렇게 절이 있는 깊은 산중에 까지 들어와 부처님의 양식을 훔쳐 가겠는가?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혜월 스님의 혜안이 아니고서는 어찌 이런 헤아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비록 도둑이지만 상대의 어려움을 생각하고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 도둑에게 양식을 짊어질 수 있도록 힘을 보태 준 분, 바로 그 분이 혜월 스님이라는 것을 다시금 알아야 한다. 도둑에게는 일깨움을 주신 스승으로 영원히 기억되었을 것이다. 혜월 스님의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행위는 크게 보면 금강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나를 내세우지 않는 법, 通達無我法者 如來設名 眞是菩薩(통달무아법자 여래설명 진시보살), 즉 무아법에 통달한 자를 여래는 이를 참다운 보살이라 이름한다.라고 설파하고 있다. 이는 같은 맥락으로 일체상을 여읜 경지인 것이고 不二(불이)인 경지다.
중생교화는 자신의 처한 상황에서 걸림없이 적절하게 처신하는 應用無礙(응용무애)의 삶을 실천할 수 있을 때 아름다운 보살의 행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혜월 스님이야말로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고 善을 널리 알게한 진정한 보살이라 아니할 수 없다.
참고) 오심 스님, 백유경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