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는 후한 환제(桓帝, 재위 146-168) 때인 155년(永壽 원년)에 태위(太尉)를 지낸 조숭(曺嵩)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숭은 4대의 황제를 섬겨 환제 때에 비정후(費亭侯)로 봉해진 환관 조등(曹騰)의 양자였다. 배송지(裴松之)는 진수의 ≼삼국지≽에 주석을 달며 양자가 되기 전 조숭의 본성은‘하후(夏侯)’였고, 따라서 조조와 하후돈(夏侯惇)이 종형제 관계라는 해석을 남기기도 했다. 후한(後漢) 헌제(獻帝) 때, 조조는 승상이 되어 권력을 전횡하였다. 그가 한 짓은 모두 군주를 위협하여 군주의 위세를 약화시키고 자기 권력을 강화하여 자신의 죽은 뒤 대를 이어 아들이 황제가 되도록 하기 위한 속셈이었다. 그러나 조조가 사망하자, 왕위를 이어 받은 조비는 시신을 염(殮)하기도 전에 조조의 빈첩(嬪妾:임급의 첩)을 자기 궁실 안으로 데려 가고 말았다.
그 이후에 조조는 죽어서 삼악도에 떨어졌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1,400여 년이 지난 청나라 건륭(乾隆) 때, 소주(蘇州)에 사는 어떤 사람이 돼지를 잡았는데, 간을 꺼내다가 표면에‘曹操(조조)’라는 두 글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웃에 살던 한 사람이 이를 보고나서 큰 공포심을 느끼고 곧장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법명이‘불안(佛安)’인데, 일심으로 염불하여 마침내 서방 정토에 왕생하였다는 사실이 정토성현록(淨土聖賢錄)에 실려 있다.
조조가 심혈을 기울여 온갖 계락을 펼친 것은 모두 자손이 번창함을 위함이었다. 비록 그가 그렇게 해서 황제가 되었지만, 고작 45년밖에 안 되어 나라가 멸망하고 말았다. 그것도 매일같이 서촉(西蜀) 및 동오(東吳)와 서로 치고 싸우느라 편안한 날이 없었다. 그 뒤로 진(晋)⋅동진(東晋)⋅송(宋)⋅제(齊)⋅양(梁)⋅진(陳)⋅수(隋)나라 및 오대(五代:梁⋅唐⋅晋⋅漢⋅周)나라는 모두 수명이 길지 못했다. 이 가운데 가장 길게 유지한 동진이 고작 103년이었다. 나머지는 2~3년, 8~9년 또는 10~20년이나 40~50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그나마 이들 국가들은 중국 역사상 정통으로 인정되는 나라이고 그밖에 잠시 권력을 훔쳐 할거하던 군소 국가들은 수없이 많았다. 하루 아침에 나라가 만들어 지고 멸망하였다는 이야기가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한 말이다. 이들 나라를 세운 자들의 처음에 어떤 마음을 먹었는지를 살펴 보면, 자손들에게 부귀 영화를 물려 주려고 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궁극적으로 자손들을 잘 되게 하려고 한 것이 도리어 자손들이 재앙과 살육을 당하고, 집안이 몰살당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선한 인연을 따르면, 쌓은 인연의 경⋅중에 따라 좋은 과보를 맺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삿된 미혹의 인연을 따르면, 쌓은 악의 경⋅중에 따라 악과를 맺거나 삼악도에 떨어짐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지은 죄와 복의 경⋅중에 따라,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는 것도 달라지는 것이다. 주역에서도 “積善之家(적선지가) 必有餘慶(필유여경), 積不善之家(적불선지가) 必有餘殃(필유여앙)”즉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고, 불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재앙이 따른다”는 것이다. 즉 선과 악의 결과는 그 자손까지 미친다는 의미이니, 그 결과가 금방 나에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함부로 행동해서는 더 큰 재앙이 따르게 될 것이다.
덕행과 선행의 결과는 당장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인연이 무르익으면 감이 빨갛게 익듯이 선과 악행 역시 인연이 무르익어 때가되면 반드시 그 결과가 미치게 마련이다. 다만 과보를 받는데는 기간이 정해지지 않았을 뿐이다.‘선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 역시 동일한 의미이다. 여경(餘慶)은 선한 일을 많이 행한 보답으로서 그의 자손들이 받는 경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음덕(蔭德:조상의 덕)과 유사한 의미로 볼 수 있다.
국민들의 정서를 안정적으로 인도 할 수 있고, 나라가 정의롭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길은 국민 모두가 인과응보의 도리를 철저히 깨달아 두려움이 들게 함으로써 감히 삿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함에 있다. 고위 공직자나 위정자들이 양심을 저버리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일삼고, 무책임한 행동과 내로남불을 일삼는 것 등은 어찌보면 인과응보의 도리를 믿지 않고, 국가의 안위와 장래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눈 앞에 이익에만 몰두하는 어리석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콩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 데 팥난다는 진리를 이치적으로는 모두 다 알면서도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매우 드문 것은 확고 부동한 실천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諸惡莫作 衆善奉行(제악막작 중선봉행)이란 말을 깊이 새겨야 한다. 이는 모든 악은 짓지 말고, 뭇 선을 받들어 행하라는 조과 선사의 말이다.
인과응보를 마음으로 되돌려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할려면 자신의 지은 죄업에 대해 반드시 참회를 먼저 해야한다. 참회를 했으면, 이 생명이 다할 때까지 두 번 다시 죄를 짓지 않아야 진정한 참회가 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반성하는 척 말을 하면서 뒤돌아서면 전혀 반성함이 없는 것은 남의 눈을 속이는 무책임한 어리석은 자의 행동이다.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 즉 선한 인연을 지으면 선한 결과를 맺는 것이고, 악한 인연을 지으면 악한 결과를 맺는 것이다. 이는 應報(인과응보)의 원리이고 더 나아가 우주의 진리이자 법칙이라 볼 수 있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내면의 모습을 돌이켜 비춰 볼 줄 알지만, 어리적은 자는 거울속에 비친 자신의 겉 모습만을 보고 스스로 불평을 늘어 놓는다.”는 말이 있다. 한 치 앞을 보지 못하고 눈 앞의 상황에 끌려다니는 어리석은 중생의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이들이나 선각자들은 모두 조상의 음덕으로 인하여 이루어 진 자들이 많다. 갑자기 이루어 진 것 같지만, 오래전부터 인의 씨앗이 움트고 결실을 맺기까지는 정도에 따라 큰 시간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조조와 같은 악행을 저지른 이를 다른 무엇인가를 통해 異跡(이적: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을 보이는 것은 선악의 과보는 반드시 응과응보의 원리가 적용되니 매우 조심하여 함부로 행동하지 말고, 악을 짓지 말라는 하늘이 내리는 무언의 경고이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중에 이런 이적을 보이는 경우를 어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일상 생활에서 자신의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지 말고 늘 스스로 되돌아보면서 반성하는 태도를 가질 때 좋은 인연을 맺고 선과를 맺게 되는 것은 明若觀火(명약관화:불을 보듯 분명하고 뻔함)한 일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인과 응보의 원리를 철저히 깨달아 모든 악은 짓지 말고, 뭇 선을 받들어 행할 때 나라는 좀 더 행복해지고 살기 좋은 나라로 거듭 발전해 나갈 것이라 확신한다.
註)삼악도(三惡道) 혹은 삼악취(三惡趣)라고 한다. 살아서 악행을 지은 죄과로 인하여 죽은 뒤에 태어난다는 지옥도(地獄道)ㆍ아귀도(餓鬼道)ㆍ축생도(畜生道)의 세계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