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歷史)를 바꾼 72시간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 간 '6.25 전쟁' 은 수많은 사상자
(死傷者)와 이산가족을 만든 아픈 역사 입니다.
그런데, 전쟁 초기 '북한 괴뢰군'이 서울을 점령한 이후 대책 없이
허물어져 가던 국군에 대한 추격을 멈추고 3일간 지체했는데,
어쩌면 우리나라의 역사와 운명을 뒤바꾼 시간이었습니다.
6월 25일 새벽,
암호명 '폭풍(爆風)'으로 북한의 남침(南侵)은 시작되었습니다.
최우수 부대로 선정된 최강부대를 배치한 북한 괴뢰군은 350대의
탱크를 몰고 전투적으로 밀고 들어왔습니다.
원래 서부전선의 북한 괴뢰군 1군단이 '서울'을 장악한 뒤,
2군단은 '춘천', '홍천'을 거쳐서 재빨리 남진하여 1군단과 연합하여
'수원'을 점령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바로 춘천을 지키는 국군 6사단의 반격(反擊)!!!!
당시 '비상 경계령'이 해제되면서 장병 대부분이 휴가를 가거나
모내기 지원을 나갔지만,
"국군 6사단 김종오 사단장"은 북한에서 귀순한 병사의 증언을
바탕으로 경계 태세를 강화하며 군의관까지도 포사격을 할 수
있었을 만큼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춘천 옥산포'로 들어섰던 북한 괴뢰군은 예상치 못한
국군 6사단의 기습 반격에 남침(南侵) 후 최초의 후퇴를 했습니다.
'춘천' 돌파에 실패한 북한 괴뢰군은 27일까지 그대로 춘천에 머문
뒤 '홍천'에서 전투 중인 북한 괴뢰군과 연합해 다시 돌격하기 시작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28일 '춘천'과 '홍천'이 점령됐지만 400여 명의 사상자가
있던 남한군에 비해 북한 괴뢰군은 2,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며
전선(戰線)에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국군 6사단은 이후 전선(戰線)의 단절을 우려하여 6월 29일 '충주'로
전략적 후퇴를 단행하였지만, 중동부 전선 일대의 북한 괴뢰군을
상대로 '춘천대첩'이라는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국군 6사단의 최전선에서 벌어 준 72시간은 대한민국 군대를 다시
정비할 수 있었고, 국민들이 피난할 수 있는 시간을 주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이 사건(事件)을 '3일의 기적' 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우연히 생긴 기적(奇蹟)이 아닌 죽음을 각오하고 감당해
만든 숭고한 희생(犧牲)입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는 듯한 자유와
평화는 수많은 영웅의 피와 땀과 노력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