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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9
청와대 소회의실에서 당·정·청 회의가 열리고 있다. 2008년 8월 초, 이명박 정권 6개월째가 되어가는 날이다. 당·정·청 회의라지만 소규모다. 핵심 실무 회의라고 해야 맞는 표현일 것이다. 원탁에는 이명박과 청와대 수석들, 그리고 정부 측은 국무총리 한승수와 법무부 장관 김경한, 행정안전부 장관 원세훈, 국방부 장관 이상희, 국정원장 김성호, 검찰총장 임채진과 경찰청장 어청수가 참석했다. 당에서는 세우리당 비상대책위원장 박근혜와 원내총무대행 김무성, 위원장 비서실장 진영이 앉아 있다. 인사말이 끝나자 이명박이 바로 본론을 꺼내었다.
“통보 드렸습니다만, 준비하고 예고하는 따위의 절차는 필요 없습니다.”
한 마디씩 자르듯 말한 이명박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 긴장한 채 시선을 준다.
“뭐, 모두 밥 먹듯이 이야기들을 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시행한 적이 없는 일.”
그러고는 이명박이 이사이로 말했다.
“법과 원칙을 지키고 그것을 시행하는 일 말입니다.”
심호흡을 하고 난 이명박이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지난 석 달 동안의 광우병 난동에 대한 주모자, 적극 가담자, 유언비어 유도자 등 범법 행위자를 처벌하지 않고는 국가 기강을 바로 세울 수 없습니다.”
이명박의 시선이 행정부 장관들을 훑고 지나갔다.
“그중에는 이적세력, 국가 전복 세력이 섞여 있었고 선량한 시민을 선동했습니다. 이것을 발본색원해야만 합니다. 법과 원칙을 제대로 시행해야 됩니다.”
그러고는 이명박이 결론을 내었다.
“내가 대통령으로 책임을 집니다. 틀림없이 공안정국이네, 독재네, 탄압이네 하면서 분위기를 띄우겠지만 헛소리입니다. 철저하게 가려내주기 바랍니다.”
# “너무 심하신 게 아니에요?”
하고 박근혜가 조심스럽게 묻자 방 안 분위기가 금방 굳어졌다. 그러나 방 안에는 대통령실장 류우익과 원내총무대행 김무성까지 넷이 있을 뿐이다. 회의를 마치고 대통령이 넷만의 자리를 따로 마련한 것이다. 박근혜의 시선을 받은 이명박이 빙그레 웃었다.
“지난 10여 년간 민주화 바람을 타고 혼탁해진 사회 질서를 바로잡을 겁니다.”
박근혜의 시선을 받은 이명박이 말을 잇는다.
“떼법이 법 위에 군림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내가 이걸 바로잡을 테니 박 위원장은 어머니 노릇을 해주시지요.”
“어머니 노릇이라니요?”
“난 법과 원칙을 지키는 엄한 대통령이 될 테니 박 위원장은 때로는 그런 나를 비판하면서 국민을 다독거리는 어머니 노릇을 해주시란 말입니다.”
“그럼 대통령께선 욕만 얻어드실 텐데요?”
하고 묻는 박근혜의 얼굴에 처음으로 웃음기가 번졌다. 이명박이 따라 웃지도 않고 머리를 끄덕였다.
“난 이제 대통령까지 되었습니다. 욕 얻어먹어도 됩니다.”
“아이고, 그래도.”
했다가 박근혜도 정색하고 이명박을 보았다. 쓴웃음을 지은 얼굴이다. 그때 이명박이 말했다.
“안희정, 이광재, 문재인, 유시민 씨가 세우리당에 입당하겠다고 노 고문을 통해서 연락이 왔습니다.”
순간 방 안 분위기가 굳어졌다. 노 고문은 노무현이다. 이명박의 시선을 받은 박근혜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민주당에서 반발이 심하겠군요.”
그러나 정동영의 대선 패배 후부터 민주당에서는 노무현과 노골적으로 거리를 두려는 행태를 보여왔던 것이다. 이제 와서 공작정치 운운하면 어불성설이다. 더욱이 노무현이 세우리당 고문이 되어 있는 상황이다. 어쨌든 민주당은 뒤통수를 맞았다. 박근혜가 말을 잇는다.
“검토해보겠습니다, 대통령님.”
박근혜와 헤어진 이명박이 옆방으로 들어선다. 옆방의 원탁에는 총리를 중심으로 국방·행정안전부 장관과 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이 앉아 있다가 대통령을 맞는다. 서둘러 자리에 앉은 이명박이 길게 숨을 뱉고 나서 말했다.
“대통령을 비하하는 것은 곧 국가, 국기(國基)의 비하나 같습니다. 이명박 개인이라면 얼마든지 참겠지만 난 대한민국 대통령입니다.”
그러고는 이명박이 눈을 치켜떴다.
“쥐박이, 가카새끼, 쥐새끼 등 인터넷과 트윗에서 난무하는 욕설 유포자를 발본색원해서 처벌해야 합니다.”
모두 굳어진 표정으로 이명박을 보았다. 이명박이 말을 잇는다.
“언론자유? 그놈들이 김정일 씨를 욕한 적이 있는지 캐보고 간첩죄나 반역죄를 물어도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법무부 장관 김경한이 먼저 대답했고 행정안전부 장관, 검찰·경찰 총수가 차례로 머리를 끄덕여 동의했다. 이명박의 시선이 경찰청장 어청수에게 옮겨졌다.
“곧 세우리당에서 법안을 통과시키면 경찰은 총기 발포권을 행사하게 될 겁니다. 전경들 고생시킬 것 없이 흉기를 들고 덤비는 난동자는 발포해서 제압해야 됩니다. 그럼 한 명의 경찰이 백 명의 시위대를 상대할 수 있어요, 아니.”
쓴웃음을 지은 이명박이 머리를 내저었다.
“아예 불법 폭력시위는 없어질 겁니다.”
# 2008년 8월 중순 오후 5시경, 세우리당 의원 강용석이 벨소리를 듣고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보았다. 그러나 모르는 번호다. 그냥 끊을까 하다가 혹시 마포구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예, 강용석입니다.”
“강 의원님이시죠?”
낮고 정중한 사내의 목소리가 울린다.
“예, 그렇습니다만.”
“여긴 청와댄데요. 대통령님 전화이십니다.”
문득 장난전화가 아닌가 했지만 잠시 후에 사내의 목소리가 울렸다.
“강 의원?”
순간 강용석의 머리끝이 곤두섰다. 이명박이가 맞는 것 같다. 요즘 거시기 세우리당이라고 험담하고 돌아다닌 것을 국정원이 보고했을까? 짧은 순간에 걱정이 스치고 지났지만 대답은 했다.
“예, 강용석입니다.”
“요즘 바쁘시지?”
지난 총선에 당선되고 나서 이명박의 축하 전화를 받은 이후 첫 전화다. 강용석이 어깨를 펴고 대답했다.
“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세우리당 당명이 어때요?”
그 순간 강용석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국정원 놈들이 보고를 했구나. 그러나 대답은 했다.
“예, 아주 좋습니다.”
“음, 그럼 됐고. 강 의원, 다름이 아니라.”
“예, 대통령님.”
숨을 죽인 강용석의 귀에 이명박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가만 생각하니까 강 의원이 적격일 것 같아서 말요.”
그 순간 강용석의 눈앞에 정부청사가 떠올랐다. 장관? 청와대도 스치고 지나간다. 수석급은 안 한다. 비서실장? 그때 이명박의 말이 이어졌다.
“국회에서 국가 정책의 시행에 대한 허위 선전, 방해 등으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가 경제에 손해를 끼친 자들을 입법 처리하는 조직이 있어야 됩니다. 여야가 모여도 좋고 세우리당만으로도 좋으니 강 의원이 주도해서 결성하세요.”
“예, 대통령님.”
강용석의 눈앞이 환해졌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인천공항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나 미국산 쇠고기 먹으면 즉사한다는 사람이 지금도 활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금방 알아듣는군.”
“천성산 도롱뇽이 죽는다고 몇천억 원 국가에 손해를 끼친 중이 지금도 떵떵거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돼요.”
“당장 고소하겠습니다.”
어깨를 부풀렸다 내린 강용석이 말을 잇는다.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 “이거 독재자 아녀?”
KBS 보도국 차장 박동민이 신문을 내던지면서 투덜거렸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보도국 안은 한산했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가던 보도국장 임명수가 그 말을 듣더니 멈췄다.
“얀마, 니 기준에 안 맞으면 독재자냐?”
보통 때는 표준말을 쓰다가 성질이 나면 임명수의 입에서 전라도 사투리가 나온다. 임명수는 전라도 광주 출신이다.
“아니, 그럼 이명박이가 독재자 아니란 말입니까?”
박동민이 지지 않겠다는 듯이 대들자 임명수가 헛웃음을 지었다.
“이명박이 법 안 지킨 것이 있으면 대봐. 솔직히 지금까지 떼법이 세상을 지배혔지. 안 그냐?”
“정말 국장님이 이렇게 변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제정신이 난 것이지.”
한 모금 커피를 삼킨 임명수가 발을 떼며 말을 잇는다.
“이명박이가 물명박인지 알었던 놈들이 인자 큰코다치게 된 거셔.”
“그건….”
하다가 입을 다문 박동민이 임명수의 등을 향해 찢어질 듯이 눈을 흘겼다. 이명박을 물명박, 쥐명박으로 선두에 서서 성토했던 자가 바로 임명수다. 그런 임명수가 이명박이 봉하마을에 내려간 순간부터 달라지더니 지금은 팬이 되어버렸다. 임명수야말로 제 기준으로 이명박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다. 임명수가 국장실로 사라지자 박동민이 한마디 했다.
“시발, 저러니까 전라도가 욕을 얻어먹는다니까.”
그러는 박동민은 전라도 순창 출신으로 정동영의 골수 후원자다.
# 세우리당 고문으로 위촉된 전(前) 대통령 넷은 지금까지 한 번도 모임을 갖지 않았다. 오직 이명박과 따로따로 만났을 뿐이다. 또한 박근혜하고도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원내 총무대행 김무성은 그들 넷의 대립에 무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8월 중순의 어느 날 오전 김무성은 김영삼의 전화를 받는다.
“난데.”
첫마디로 대번에 그러는 바람에 얼떨떨했던 김무성이 번쩍 정신을 차렸다. 그래도 4선 중진인 자신한테 이럴 위인은 영삼이인 것 같다.
“아이구, 안녕하십니까?”
상반신을 세운 김무성이 인사를 했더니 김영삼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고생많제?”
“아이구, 예, 저야 뭐.”
“이맹박 씨가 잘하는 것 같재?”
“아아, 예.”
정신을 수습한 김무성이 머리를 굴리기도 전에 김영삼의 말이 이어졌다. 여전히 선수 치기에 능한 김영삼이다.
“내가 세우리당 고문 서열로는 1번이 되어야긋제? 전두환이는 감옥에 댕겨 왔으니 점수가 깩일 것이고 김대중이는 내 후순위 아이가?”
“아, 예.”
“그걸 명심하길 바라고. 그, 현철이 말인데. 다음 보궐선거에 최우선으로 배려해주기 바라네.”
“아, 예.”
“바쁘니, 이만 끊네.”
그러고는 통화가 끊겼으므로 김무성은 심호흡을 했다. 정신이 없었지만 어쨌든 알아듣기는 쉽게 말하는 양반이다.
# 2008년 8월 하순의 오전 10시경, 국방부 청사로 대통령 전용차가 들어선다. 오늘 대통령이 전군 지휘관 회의를 주재하는 것이다. 잠시 후에 대회의장에서 기다리고 서 있던 100여 명의 장군은 들어서는 이명박을 보고는 대경실색을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명박의 뒤를 따라 들어서는 인물을 보고 기절초풍을 한 것이다. 전두환이 이명박의 뒤를 따라오고 있다. 전두환이 누구인가? 1931년생이니 2008년 당시의 나이로 78세, 이명박은 10세 연하로 68세가 된다. 이명박은 전두환과 나란히 앉았는데 국방부 장관 이상희는 세 번째 서열의 자리를 차지했다. 식순에 따라 의식이 끝나고 대통령의 말씀 차례가 돌아왔을 때다. 이명박이 장군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가 군사정권이라는 시기를 지나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또는 서민의 정부로까지 이어져 왔지요?”
이명박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회의장을 울렸다.
“주적을 삭제하네, 전작권을 반환하네, 햇볕정책으로 북한을 포용하네 하면서 국군은 혼란기를 겪었고 사기가 저하되었습니다.”
그러고는 이명박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군인이 민간인 시위대에게 맞고 도망가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명박의 시선이 옆에 앉은 전두환에게로 옮겨졌다.
“앞으로 전두환 고문께서 군을 재정립하고 강군으로 육성하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 바랍니다.”
그 순간 지휘관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다. 눈물이 글썽해진 장군이 있는가 하면 불안한 표정이 된 장군도 있다. 그때 전두환이 헛기침을 했으므로 회의장은 조용해졌다. 전두환이 회의장을 쓰윽 둘러보았다. 참모총장급과도 20년쯤 차이가 나는 터라 전두환이 12·12를 일으켰을 때 대부분이 위관급 장교였다. 그러나 그 명성을 누가 모르겠는가? 전두환이 입을 열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대통령께 목숨을 바쳐 충성을 하겠다는 맹세를 한다.”
전두환의 목소리가 회의장을 쩌렁쩌렁 울린 것은 모두 숨도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두환의 말이 이어졌다.
“내 나이 곧 80, 일국의 대통령을 지냈고 이제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국군의 재정립을 명 받았다. 너희는 다시 태어난다, 알았나?”
소리쳐 물은 순간이다. 별 넷짜리 참모총장, 군사령관까지 화들짝 놀라 우렁차게 대답했다.
“예에!”
회의장이 들썩거릴 정도다. 이명박은 심호흡을 했다. 이제 시위대한테 얻어맞는 군인은 없을 것이다. 군인이 약해서 맞았던 것이 아니다. 사기가 떨어져서 그랬다. 시위대가 덤벼 물고 늘어지면 귀찮다고 지휘관들이 기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사들이 기가 죽었다. 그때 전두환이 머리를 돌려 이명박을 보았다.
“대통령님, 말씀하시지요.”
이명박은 전두환의 눈빛에 담긴 충성심을 읽을 수 있었다.
작가 / 이원호
자료출처 : 주간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