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기둥 세우기
세 가지 성물을 만나게 된다.
오른쪽에 떡 상
왼쪽에 등대 (금 촛대)
그리고 지성소로 들어가는 휘장 앞에 분향단이 있다.
이 성물을 통해 진리의 기둥과 중보기도의 기둥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진리의 기둥을 어떻게 세울 것이며
어떤 기둥이 잘못 세워진 것을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진리를 따라 살아갈 때 진리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서
자신은 죽고 그리스도가 살아나게 될 때에 진리의 기둥은
세워지는 것입니다.
성소 안은 모두 금으로 만들어져 있다.
진설병도 조각목으로 만든 것 위에 금으로 입혔으며
성소벽도 금으로 입혀져 있습니다.
밖에서 보는 성소는 그리 흠모할 만한 것이 없지만 실제로
성소에 들어가면 놀라운 광경이 벌어지게 됩니다.
예) 이사야의 예언된 예수님의 모습과
실제 예수님의 내면
우리들은 겉모습을 보고 모든 것을 결정하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귀한 진리를 땅에 묻어 두시고 그 귀중 성을 아는 자들에게만 보여 주십니다.
마치 진주를 사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진주를 파는 비유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이 성소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과정을 지나면 보인다. 그래서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면서
그런 액션을 한 것이다.)
믿음과 은혜, 성결을 거쳐서 들어간 성도들만이 비로써
그리스도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진리의 기둥을 세울 수 있을까?
진설병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그 원리를 발견해 보자
이 떡 상 위에는 언제나 12개의 떡이 준비 되어 있으며
제사장들이 서서 교제하며 이 떡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또 이 성소 안에는 다른 빛이라고는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단지 등대가 있어서 그 안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습니다.
이 등대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으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성도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등대나 진설병이나 모두 자신을 처리해야 만들어지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등대도 금 한 덩어리를 쳐서 아름다운
7개의 등대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진설병의 떡도 한 알의 밀이 부서질 때에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조화)
자신의 모습 그대로 가지고는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는
성물들입니다.
자신이 희생되고 나누어 질 때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른 이에게 생명과 빛 을 제공하는 성물이 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진리를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성소의 단계는 진리의 단계이다,
진리를 따라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얻는 단계인데
이러한 단계를 거치기 위하여 자신이 부정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의 연합적 죽음을 나타내는 단계가 바로 이 진리의
단계입니다.
말씀과 진리대로 살아갈 능력을 얻는 것이 바로 이 단계입니다.
진리를 따라 살아가기 위하여 겉 사람이 처리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될 때 쉽게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순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합적 죽음은 성물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조각목도 모습 그대로는 성물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조각목은 흔히 볼 수 있는 아카시아 나무이다. 이 나무는
구불구불하게 자라는 나무로서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나무이다.
이 나무가 떡 상이 되고 성막의 벽이 되기 위해서는 주님의
다루심을 받아야 한다.
우선 조각목은 뿌리가 깊다.
아카시아 나무가 있는 주위에는 다른 나무가 살아남지를 못한다.
그 뿌리가 억세게 주위에 확장되어 퍼져나가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세상으로 뻗어나가는 죄의 뿌리는 끊고
땅의 생활을 끊게 하시고 아카시아를 성물로 만들어 가십니다.
껍질을 벗겨야 하고
물기를 말려야 하며
대패질을 한 후에 작은 조각목으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은 조각목들이 여러 개 모여서 성소의 벽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조각목은 보잘 것 없는 나무에 불과하지만 그 위에 금을 씌어서
성소에 들여놓게 되면 훌륭한 성물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진리의 기둥을 세우기 위해 진리를 아는 것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따라 행할 때에 세워지는 것이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반석위에 집을 짓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진리를 따라 행하려고 자아가 처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속사람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타락한 자아는 처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처리된 자아가 진리를 따라 행하게 되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성소에 놓인 떡도 밀 자체로는 떡이 될 수 없습니다.
고운가루가 되어야 떡이 만들어지고 그 떡을 공급되는 곳에
진리를 따라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진설병은 자신은 죽고 생명을 공급하는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적 죽음을 가짐으로 자아가 죽고 생명을
공급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기둥을 세우는 것은 이렇게 주님 앞에서
다루심을 받아야만하며 이것을 우리는 겉 사람의 처리라고
합니다.
기도의 기둥 세우기
조각 목으로 만들어 졌다.
정금으로 싸서 만들었다.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의미한다.
분향단은 장 50cm 광이 50cm 고가 1m 로 되어 있다.
단 위 네 면에는 네 개의 뿔이 있고,
상단 4면은 금테를 둘렀다.
또 금고리 4개를 만들어 채를 꿰어 운반하기 쉽도록 만들었다.
그 위의 향로에서 향이 탔다. -이 향은 성도의 기도를 의미한다.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하시는 그리스도를 의미 한다.
두 개의 단을 만난다.
번제단 -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
분향단 - 부활하셔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그리스도
분향단의 향은 아침저녁으로 살라야 하는데 이는 연속기도를
상징한다.
성도의 하루 일과는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쳐야 한다.
분향단에서 사르는 향은 매우 귀중한 것으로
희생의 기도와 간절한 기도를 의미 한다.
그리고 향에는 소금을 치라고 했는데 성결함이 수반 되어야
하는 기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예) 야고보서의 장로의 의미
중보기도자의 사명 - 성결함 (흘러가기에)
변호사가 먼저 법 앞에 자유로워야 한다.
믿음의 집을 짓기 위해 중요한 단계가 바로 기도의 단계이다.
지성소와 가장 가까이 있다. 가장 높은 차원이다.
기도는 가장 높은 차원의 믿음 생활이다.
중보기도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올려 드리는
것이다.
진정한 중보기도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중보기도를 하는 자가 정말 흠 없고 점 없는 의인의
기도여야 한다.
예) 우리가 하는 중보기도
- 보고나 대신 기도
그러나 돕는 기도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
중보 기도의 위력
기도가 하나님과 동역하는 길이며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든든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를 계속해야 함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동역하시기 때문에 어떤 일에든지
누군가의 기도를 사용 하셔야만 한다. (보혜사의 원리)
그러므로 우리와 상관없는 사람의 기도라고 하여도 주님은
그 “기도”를 통해서 일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에 우리의 기도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기도는 우리가 하고 일은 주님이 하십니다.
기도는 하늘에 심고 땅에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기도를 드린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과
그리스도의 몸을 든든히 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지성소에 들어가기 직전에 있는 이 기도를 통해
우리는 지성소에 있는 주님과 대화를 나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분향단은 바로 지성소 앞에 있다.
휘장을 사이에 두고 하는 생명의 교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는 시공을 초월하여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대화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기도가 나아가는 것이다.
지성소 근처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기도하는 자들의 인격과
삶이 중요하다고 하기 때문이다.
단계를 거쳐 외적인 성화를 이룬 다음에 다시 성소에 들어가
내적 성화를 이룬 자들이 기도를 할 때 지성소와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진실의 단계에서 자기 자아를 처리하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회복된 자들이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는 존재를 나타내고
그 기도내용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가 되는 것이다.
존재가 준비되지 않아도 기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기도가 다분히 육적이고 실리적이어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기도가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기도가 되기
쉽고 다른 이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도 자기 의가 드러나는
기도가 되기 쉽다.
그렇기에 기도는 온전한 인격과 삶이 준비 될 때에 아름다운
향으로 주님 앞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든든한 기도의 기둥이 세워질 때 우리는 믿음의 집의 기초와
네 기둥을 다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도가 육적이고 종교적이고 실리적일 때 또 기도의
기둥은 뒤틀리게 세워 지게 될 것입니다.
기도는 나를 위한 기도라기보다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찬송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 아닌가?
찬송이 곡조 있는 기도라고 하지 않는가?)
드려지는 기도가 되지 못하고 나를 위한 육적인 기도
형식적인 기도가 될 때에 우리는 아름답게 반듯한 기도의
기둥을 세울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