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국의 한 >징기한 >징기스칸
칭기즈 칸이 고구려-발해인의 후예라는 건, 무슨 근거에서 하는 얘기인가?
《몽골비사》를 읽으면서 나는 칭기즈 칸의 선조인 부르테 치노(푸른 이리·蒼狼)와 코아이 마랄(흰 암사슴·慘白色鹿)이 과연 누구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다들 신화(神話)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이것이 실존인물이며, 고구려-말갈어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다가 티무르 왕조의 역사책인 《사국사》에서 칭기즈 칸의 10대모(代母)로 ‘모든 몽골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알란 코와(알란 고와)의 아버지 이름이 추마나 콘(주망 곤)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추마나 콘은 곧 주몽 칸(朱夢 可汗)이다.
추마나 콘의 형은 이름이 위마나 콘, 즉 위만 칸(衛滿 可汗)이다.
주몽과 위만을 조상으로 하는 민족이 우리 민족 말고 누가 있겠나?”
— 그것만으로 고주몽이 칭기즈 칸의 선조라는 건 약하지 않나?
《몽골비사》에 보면, 알란 코와의 아버지가 ‘코리투마드’ 부족의 부족장 코리라르다이 메르겐이라고 나온다.
‘코리’는 말갈어로 《요사(遼史)》 속의 ‘고리(稿離)’ 즉 ‘고려(高麗)’라는 말이고, ‘투마드’는 ‘투만-씨’, 곧 ‘도모(都牟)-씨’ ‘동명(東明)-씨’ ‘주몽-씨’라는 말과 같다.
결국 코리라르다이 메르겐과 추마나 콘은 같은 사람인 것이다.
칭기즈 칸의 선조는 누구일까?
1240년에 출간된 것으로 알려진 《몽골비사(蒙古秘史)》를 보면, 칭기즈 칸에서 위로 10대(代)를 올라가면 ‘모든 몽골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알룬 고와가 나온다.
그녀에서 다시 10대를 더 올라가면 부르테 치노가 나온다.
우리는 이 부르테 치노가 당연히 몽골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칭기즈 칸과 그의 조상 역사를 기록한 《몽골비사》는 책 이름을 단지 《몽골사》나 《칭기즈칸사》라고 하지 않고 왜인지 ‘비밀스러운’이라는 말을 붙여 《몽골비(秘)사》라고 한다.
그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바로 이러한 의문 때문에 필자는 이 글을 썼다.
그 결과 필자가 알게 된 결론은 바로 이 책이 칭기즈 칸 선조의 ‘비밀’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 비밀은 놀랍게도 칭기즈 칸의 직계 시조는 발표자의 저서 《고구려-발해인 칭기스 칸 1권-칭기스 칸 선조의 비밀스런 역사, 비봉출판사, 2015년》과 동서의 《2권》을 통해서 자세하게 밝힌 바와 같이, 발해(渤海) 고왕(高王) 대조영(大祚榮)의 아우인 대야발(大野勃)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칭기즈 칸은 그의 19대손(代孫)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의 비밀은 첫째 칭기즈 칸이 ‘칸(=왕=황제)’이 되기 전 어릴 적 이름 ‘테무진’이다.
이 이름을 두고 일반적으로 역사학자들은 몽골어나 투르크어의 “터무르-진”또는 “데미르-친”, 곧“철인(鐵人)”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이 이름은 <원사>의 “태조기”가 보여주듯이 대무신(大武神), 곧 고구려 3대 대무신왕(大武神王)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테무진의 가족과 자신이 칭기스 칸 자신이 고구려 대무신-왕의 후손임을 주장한 것이다.
둘째 이유는 ‘칭기즈 칸’이라는 칭호이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몽골어나 투르크에 그런 비슷한 낱말조차도 없는데, 이 칭기스 칸이라는 말의 뜻을 “왕중 왕” 또는 “가장 위대한, 강력한 왕”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 주류학계의 견해와는 전혀 달리 이 칭기스 칸이라는 왕호는 발해 고왕 대조영과 그 아버지 걸걸중상 등의 호칭이었던 ‘진국왕(震國王)’또는 ‘진국공(震國公)’의 옛 소리인 ‘텡기즈 콘(Тenggiz khon=팅기즈 칸=팅궤트 칸)’에서 나온 것이다.
칭기스 칸의 손자 원세조 쿠빌라이 때 원나라를 방문한 마르코 폴로(Marco Polo)는 자신의 <동방견문록>에서 25회나 칭기스 칸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그 가운데 딱 한 번만 제외하고 24번을 “칭기 칸”이라고 쓴다.
왜일까? “친기 칸”은 바로 원대 남인(南人)의 말로 “진국왕”이라는 소리이다. 곧 칭기스 칸은 ‘발해국왕(渤海國王)’이라는 뜻이다.
이는 곧 ‘세계 정복자’ 칭기즈 칸은 자신의 이름과 칭호를 통해 자신이 고구려 대무신왕의 후예이자, 발해국왕의 후손이라고 밝히고 자처한 것이다.
셋째 이유는 “몽골”이라는 종족칭 및 국명이다. <타리히 고지데(Tarikhi Gojide, 선별된 역사)>가 밝히듯이 칭기즈 칸은 자기 당시까지는 이름도 없던 그 땅의 여러 부족들을 통일하고 오늘날 “몽골(몽골리아)”라고 부르는 자신의 나라 이름을 처음으로 “몽골”이라고 붙이고, 자신의 종족을 ‘몽골’이라고 칭한 까닭은 무엇인가?
오늘날 학자들은 이 말을 보통 송나라인들의 기록 <흑달사략(黑?事略)> 등에 따라 “멍거(은, 銀)”라고 하는 몽골어에서 나왔다고 본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칭기스 칸 자신과 자신의 종족이 “몽골”이라고 그가 이름 붙인 이유는 그 말이 바로 발해-말갈이라는 ‘말갈(靺鞨)’, 곧 고구려-말갈어로 “말/몰(馬)키우는 마을, 고을”을 뜻하는 ‘말골(馬忽)/몰 고을’이라는 말이다.
테무진(대무신), 칭기 칸(진국 왕), 몽골(말골)이 바로 그가 고구려-발해인의 후손임을 극명히 보여준다.
이러한 언어학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이상의 결론을 밝혀주는 것이 바로 문헌사학적 자료이다.
필자가 중앙아시아에서 획득한 한 중.고대 사서 <사국사(Arba’Ulus Tarikhi)>와 <집사>, <투르크의 계보(Shejerei Atrok)> 등에는 칭기스 칸의 선조 계보가 나온다. 이는 지금부터 705년가량 전 라시드 웃딘이 자신이 찬술한 방대한 사서 <집사>에서 말한 그 사라진 <황금의 책(Altan Daftar)>의 삽입판들인데, 그것은 놀랍게도 바로 칭기스 칸 가문의 선조를 밝힌 족보이다.
황금겉장으로 입힌 진국왕(震國王) 대조영과 대야발의 후손의 <황금의 책>, 족보
발표자는 이 족보의 계보를 <구당서>, <신당서>, <삼국사기>, <고려사>, <요사> 및 <금사> 등 여러 동방사서와 대조, 교차하여 연구한 결과 그 계보 속에서 칭기스 칸은 놀랍게도 발해 고왕 대조영의 아우인 반안군왕 대야발의 제19세손임이 드러난다.
결국 “몽골제국”은 조선반도의 우리민족과 함께 사라진“말갈”의 나라, 곧 “발해왕국”의 계승자였던 것이다! 918년에 발해가 망한지 어언 1000년 중 3년이 모자라는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에 와서 밝혀진 놀라운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역사적 진실이 발견되었다. 오늘날 서울대 국사학과 송기호 교수를 비롯하여,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소속의 우리 주류 국사 학자들은 “말갈”을 이른 바 “퉁구스족”이라는 “말갈족”으로 부른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갈”이 우리 조선민족의 선조인 “고구려인”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구분하고 있다.
심지어 국사교과서에서조차도 “발해는 지배층 고구려인과 피지배층 말갈인으로 이루어진 나라”라고 서술하고, 송기호 교수 등 일부 주류학자들은 “발해는 퉁구스족 말갈족이 만든 나라이므로 고구려적 요소를 빼면 발해사는 우리 한민족의 역사가 아니라 만주사”라고까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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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이른바 “동북공정”을 저지하라는 목적으로 세워졌다고 알려진 “동북아역사재단”은 왜 스스로가 인터넷에서 쓴 대로 “『구당서』의 ‘고려별종’이 바로 대조영과 그 건국주체가 고구려 유민”인지 제대로 밝히지도 못하고 그렇게 동어반복적으로만 되풀이하면서, 발해를 세운 “말갈”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모른 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상의 동북공정에서 보이는 중국 중심적 발해 인식을 우리의 시각과 대비시켜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학계는 발해를 당나라 시기 말갈인, 즉 중국 고대 소수민족이 세운 지방정권이라 한다.
그러나 발해는 고구려 멸망이후 고구려유민이 중심이 되어 건국한 고구려 계승국이다. 『구당서』의 ‘고려별종’이 바로 대조영과 그 건국주체가 고구려 유민임을 나타낸다.
또 일본에 보낸 발해국서에도 고구려의 옛 터를 회복하고 부여의 전통을 이은 고구려의 계승국임을 명기한 것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둘째, [동북공정은: 필자 보충] 발해 건국 초기의 정식 국호는 “말갈”이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중국 사료에 엄연히 ‘진국’이 초기 국명으로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의적인 해석의 오류다.”
동북아역사재단은 발해의 건국주체가 “말갈”이라는 동북공정의 논리에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구당서』의 ‘고려별종’이 바로 대조영과 그 건국주체가 고구려 유민”이라고만 하는 정도의 엉성하고 취약한 논리로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발해의 건국주체는 동북공정이 말하듯이 분명히 “말갈”이다. 또 우리측 학계가 동북공정측이 말하는 “말갈”에 대항해서 발해의 건국 주체가 “고구려인”이라는 것도 분명히 옳다.
그렇다면 양측은 다 옿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인데 왜 양측은 자신들의 논리로 서로 상대방에게 대항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가지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양측은 다 “말갈” "말굴" "말구르", "말구리"가 "구리" 즉, “고구려”와 같은 말임을 모두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