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고 했다. 누군들 잘 먹고 잘 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음식 냄새만 맡아도 온몸이 가렵고 부어오르는 데는 장사 없다.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음식 알레르기의 고통. 최근 땅콩버터 탓에 사망한 어느 가여운 소녀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음식 알레르기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그 고소한 땅콩이, 나눠먹기도 아까운 계란이 누군가에겐 극약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이 믿어지시는가?
# 까다로운 그대 입맛
음식물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입이 고급이 된다. 달걀 알레르기로 죽다 살아난 이모씨(31). 날계란을 숟가락 끝에 묻혀 살짝 맛을 보았을 뿐인데 두드러기와 호흡곤란, 복통 및 구토 증상이 일어나 응급실로 실려갔다. 전신에 걸쳐 가장 급격하게 일어나는 알레르기 쇼크 ‘아나필락시스’를 겪은 것이다. 계란이 들어간 음식뿐만 아니라 계란 요리가 담겼던 그릇에도 반응을 일으키는 탓에 밖에서 사먹는 음식은 꿈도 못 꾼다. 집에서 정갈하게 만든 음식을 깨끗하게 닦고 또 닦은 접시에 담아 먹을 수밖에.
주부 김모씨(29·여)는 딸기우유 하나를 먹어도 우유에 신선한 생딸기를 넣고 직접 갈아 마신다. 특정 색소에 알레르기가 있어 딸기우유만 마시면 얼굴에 두드러기가 올라와서다. 코가 양쪽 볼에 파묻혀 평면을 이룰 만큼 부어오른 얼굴을 감싸쥐고 괴로워 하노라면, 좀 비싸도 생과일 음료만 먹겠다고 결심하지 않을 수 없다.
회사원 박모씨(27·여)도 “신랑 소고기 해먹이느라 허리가 휜다”고 푸념한다. 남들은 없어서 못 먹는다는 돼지고기에 남편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괴롭기는 남편 본인이 더할 터. 연말 회식 자리, 물밀듯 밀려오는 삼겹살의 파고를 뛰어넘을 일이 막막하기만 하다.
#즐길 수 없다면 피해라
음식 알레르기는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특정 음식물을 해로운 침입자(항원)로 잘못 알고 과민하게 반응하는 증상이다. 주로 소아나 영·유아 환자가 많지만(유병률 5~8%) 알레르기 항원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성인한테서도 나타날 수 있다.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음식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음식이 항원이 될 수 있으며 한사람이 동시에 2~3가지 종류의 식품 알레르기를 앓기도 한다.
지난해 서울대 의대, 서울대 의학연구원, 연세대 의대, 아주대 의대, 경북대 의대가 알레르기 증상으로 내원한 환자 1,452명에게 총 61가지 식품에 대해 피부단자시험을 실시한 결과 성인의 경우 번데기 알레르기(10.1%)가 가장 많았다. 2위는 새우(6.4%), 3위는 밤(3.4%)이 차지했다. 가장 흔한 증상은 두드러기. 구토, 복통, 혈관부종 등도 나타난다.
가벼운 증상은 지나가면 그만이지만 위험한 것은 급성 쇼크다. 서울대병원 알레르기내과 조상현 교수는 “우리나라는 메밀이나 계란, 번데기 쇼크가 많다”며 “심한 경우 음식을 섭취한 직후 바로 사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알레르기는 2~3년 지나면 저절로 없어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땐 완치할 방법이 없다. 약을 사용해 반응을 약하게 하거나 증상을 순간적으로 가라앉힐 뿐이다. 그저 먹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얘기.
종종 식중독이나 소화효소 결핍(우유 마시고 설사하는 것 등)을 알레르기와 혼동해 해당 음식을 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검사를 해보면 실제 알레르기를 가진 사람은 10명 중 1명도 되지 않는다고. 알레르기가 의심될 경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야 근거 없는 편식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