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마니산 종주 산행기
**산행지 = 강화 마니산 종주
**산행일자 = 2013년 03월16일(토요일)
**누구랑 = 나홀로
**산행코스 = 분오리돈대-314봉-암릉길-마니산-하늘재-상봉-장곳돈대
**산행거리 = 13km정도
**소요시간= 4시간 10분
**상세 시간 = 분오리돈대(10;45분)-산행시작-314봉(11;35)-암릉길(11;55)-마니산(12;53)-하늘재(13;51)-상봉(14;29)
-장곳돈대(14;50)-화도터미널(15;08)-4시 화도출발
**교통편 = 송정역8시경 3000번 강화버스 승차하여 터미널도착해 2번 순환버스에 승차하여 분오리 어판장에 하차하면
(동막해수욕장에서 하차하시면 뒤로 되돌아 오시면 됩니다) 분오리 돈대가 보입니다 돈대 맞은편
조형물 뒤로 들머리가 시작됩니다
**마니산**
높이 469.4m. 마식령산맥의 남서쪽 끝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 진강산·길상산 등이 있다. 원래의 이름은 두악(頭嶽)으로 마리산·머리산이라고도 부르며, 군내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특히 마리란 머리를 뜻하는 고어로, 강화도뿐 아니라 전 민족의 머리로 상징되어 민족의 영산으로 숭앙되어왔다. 본래는 고가도(古加島)라는 섬으로 강화도 본 섬과는 떨어진 곳이었으나 가릉포(嘉陵浦)와 선두포(船頭浦)에 둑을 쌓은 후부터 육지화되었다. 일대의 산지들은 오랫동안 침식을 받아 형성된 낮은 구릉성 산지이다. 북쪽 사면을 제외한 전 사면이 거의 급경사를 이루며, 기반암은 화강암·결정편암이다. 북쪽 기슭에는 화강암반이 비교적 넓게 분포하며, 풍화된 사질토와 암괴가 양파 껍질처럼 분해되는 박리현상(剝離現象)이 나타나고 거대한 널빤지 모양의 암편이 나타난다. 기암절벽이 솟아 있는 산정 부근은 경사가 심하며, 서해안에 산재한 섬과 김포평야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백두산·묘향산과 함께 단군 왕검이 강림한 장소로 유명한 높이 5.1m의 참성단(塹星壇:사적 제136호)이 있다. 이곳에서 전국체육대회의 성화가 채화되며, 매년 개천절에는 제전이 올려진다. 참성단 탱자나무(천연기념물 제79호)가 유명하다.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한 정수사가 동쪽 기슭에 자리하며, 그 경내에는 법당(보물 제161호) 등이 있다. 또한 3면이 바다에 잇닿아 있어 산록에는 옛날 방어의 목적으로 설치한 진보·장곶보(長串堡: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9호)를 비롯한 돈대 등의 유적이 많다. 마니산 입구-마니산 참성단-마니산 정상-정수사-전등사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다. 입구의 넓은 주차장과 계곡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 참성단까지 뻗어 있는 계단길 및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현재 남쪽 해안은 간척사업으로 경지가 확장되었으며, 마니산 국민관광지의 조성으로 유서깊은 성역과 관광지로의 발전이 더욱 기대된다. 여관을 비롯한 숙박시설과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며, 인삼과 화문석이 유명하다. 신촌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강화읍까지 직행 버스가 운행된다.
**돈대**
성벽 위에 석재 또는 전(塼)으로 쌓아올려 망루(望樓)와 포루(砲樓)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높직한 누대(樓臺)를 말합니다.
진 다음으로 작은것이 보, 보 다음으로 작은 것이 돈대입니다.
돈대가 합쳐 보가 되고 보가 합쳐 진이되며 돈대는 보통 포대등을 둡니다
강화는 문화 유적지가 많아요
주말에 나들이로는 좋아요
조형물 뒤로 산행 들머리 입니다
분오리 돈대에서 바라본 신,시도
잘 읽어보세요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문 곳곳에 포가 설치되여 잇엇겟지요
동검도 입니다
가야할 능선이지요
물탱크도 하나 지나네요
곳곳에 바위도 위치하고요
동막해수욕장 방향입니다
동검도 옆으로 길상산입니다
마을이 예뻐요
일단은 사람이 아무도 없네요
신,시도 장봉도가 한눈에 보입니다.
가야할 마니산 능선길이 시원스레 조망됩니다
바위틈을 통과합니다
마니산의 백미 암릉길이 시야에 보이네요
지나온 분오리돈대에서 이어지는 능선 길
초피산 방향 뒤로 정족산,우로 길상산
길상산 옆으로 동검도 입니다
암릉길에오름니다
초피산 뒤로 정족산과 우로 길상산이 조망 됩니다
지나온 분오리 돈대에서 210봉 314봉 능선이 뚜렷하네요
신도,시도,장봉도 좌로 영종도 신도 뒤로는 무의도 호룡곡산이 위치합니다
암릉 가운데 자리잡은 소나무 한그루 모텔 역활을 톡톡히 하네요
마니산으로 향하는 암릉길이 마니산이 백미이지요 멀리 지나온 능선이 선명하고요
마니산과 참성단이 조망되네요
참성단인데 첨성대로 잘못되엇네요 이해하세요
한번 당겨봅니다
앞에 산이 진강산이고 뒤로는 혈구,퇴모산 그리고 고려산이 위치합니다.
강화군수 최석향이 숙종의 어명으로 보수하엿다 합니다
개천제가 열리다 하네요 성화 채화장이기도 하지요
마니산 정상은 참성단 직전에 잇어요
참성단 내에서는 음식물을 먹지 말아야 하는데 일부 등산객들은 아랑곳 하지 않네요
강화 참성단은 강화도 남쪽에 우뚝 솟은 마니산(摩尼山) 정상에 있으며, 단군왕검(檀君王儉)이 기원전 2283년(단기 51)에 민족의 영화와 발전을 위해 봄・가을로 제사를 올리기 위해 쌓은 제단이라고 전한다. 고려 원종(元宗; 재위 1259~1274)이 마니산 흥왕이궁에서 초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고, 1270년(원종 11)에 보수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1639년(인조 17) 단이 허물어져 다시 쌓았으며, 1700년(숙종 26)에도 고쳐 쌓았다. 숙종(肅宗) 때의 보수 내력은 참성단에서 직선거리로 100m 정도에 위치한 참성단보다는 조금 낮은 봉우리의 동남쪽 아래를 지나는 등산로에 옆에 있는 참성단 중수비(인천 문화재자료 13호)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당시 강화 유수(江華 留守; 정2품) 최석항(崔錫恒; 1654~1724)이 높이 5m에 너비 3m의 자연석에 쓴 이 비석은 등산객 대부분이 북쪽의 등산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그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여러 번 고쳐서 쌓았기 때문에 본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참성단은 높이 5.1m의 자연석을 다듬어 반듯하고 납작하게 만들어 쌓았고, 돌과 돌 사이에 아무 접착제도 바르지 않았다. 자연석에 의지하여 둥글게 쌓은 하원단(下圓壇)과 네모반듯하게 쌓은 상방단(上方壇)을 2중으로 구성하고, 상방단 동쪽 면에는 21계단의 돌층계가 설치되어 있다. 둥글게 쌓은 하단은 직경 11.75m, 네모반듯하게 쌓은 상단은 한 변의 길이가 6,6m인 정사각형이고, 단상의 넓이는 42.25㎡로 구성, 하단 원형의 지름은 8.7m로 되어 있는데 둥근 하단은 하늘, 네모난 상단은 땅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런 모습은 경주 첨성대(국보 31호)와 비슷하다. 고려와 조선 왕조는 때때로 이곳에서 도교식 제사를 거행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단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참성단을 단군 시대의 종교와 관련시켜 이해하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일제 강점기에 단군을 숭배하는 대종교가 생기고 난 이후에는 민족의 성지로서 주목받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오랫동안 돌보는 사람 없이 방치되어 오다 광복과 더불어 참성단이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6・25 전쟁 때 제단 한 쪽이 부서졌으나 화도면 주민들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특기 사항; 참성단이 과연 단군의 제천단인지는 단정할 수 없으나 강화도에는 청동기시대의 지석묘(사적 137호)가 있고, 단군과 연관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어 상고 시대에 무시 못 할 정치 세력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