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7/ 하나님께서 창세기의 부조들에게 그분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알리지 않았다는 의미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출 6: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당신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알리지 아니하셨다니 이게 무슨 뜻인가? 창세기에는 그 이름이 수도 없이 등장하는데... '여호와는 창세기 2장 4절에 처음 언급된 이래로 출애굽기 6장3절까지 무려 200번 가까이 등장한다. 부조들의 삶은 곧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삶이었다.
첫째로 아브라함의 경우,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는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창 15:7)고 하신 말씀을 비롯하여 그와 관련하여 이 호칭이 73회나 기록되고 있다.
둘째로 이삭의 경우, 그가 평생 잊을 수 없는 하나님의 호칭이 바로 '여호와 이레'(창 22:14)이다. 창세기에는 이삭과 관련하여 여호와 칭호가 14번 사용되고 있다. 셋째로 야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벧엘에서 돌베개를 베고 잘 때 하나님이 그의 꿈속에 나타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창 28:13)고 말씀하신 것을 비롯하여 모두 15회나 기록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분명히 '여호와'란 자신의 이름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알리셨다. 그리고 그들도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창세기에는 그들 세 사람 모두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창 13:4; 26:25; 32:9~10)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알리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신다. 이게 무슨 뜻인가? 히브리인들에게 이름은 결코 단순한 호칭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존재의 품성과 인격 그리고 그의 사역을 나타내는 총체적 표현이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보여 달라는 모세에게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출 34:6)셨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곧 “너는 어떤 존재냐?"는 질문이었다. 이름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그의 존재와 사역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지금 구원의 상징인 출애굽 사건을 약속하면서 모세에게 여호와란 이름이 담고 있는 의미를 알리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의 족장들도 하나님의 이름을 소리로는 여호와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들이 그런 호칭으로 이해하고 있던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 곧 엘샤다이(El-Shaddai)였다.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고, 죽을 위기에 처한 이삭을 살리시고, 사기꾼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시는 능력의 하나님 '엘샤다이'였다(17:1; 28:3; 35:11; 48:3).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다. 구원은 곧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언약이었다. 하나님은 단순히 우주의 하나님이 아니라 조상들에게 언약하신 대로 그들을 구속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말씀과 함께 곧바로 이어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나는 여호와라...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출 6:4~7)고 하셨다. 하나님은 단순히 그분의 이름이 여호와임을 문자적으로 알리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기억하고 그것을 이루실 때 그들이 그분이 여호와이심을 알게 된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이런 용법은 역사가 흘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유다 백성들을 향한 기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유다 백성들에게 바벨론에서의 귀환을 약속하면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쫓겨났던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리라”(렘 16:14~15)고 하였다. 간단히 말해, 출애굽의 하나님이 아니라 탈바벨론의 하나님으로 맹세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눈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렘 16:21)고 하셨다.
비슷한 용법을 요한계시록에서도 볼 수 있다. 요한계시록 19장 11절에는 하늘이 열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백마를 타고 등장하신다. 그런데 그 이름은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계 19:12)다. 이 구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아무도 아는 자가 없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온 세상이 밝히 안다. 그런데 그 이름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는 예수께서 왕으로 즉위하시는 그 심판의 날까지 아무도 진정으로 그가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계 19:16)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뜻이다. 그날 드디어 그 이름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는 뜻이다.
어떤 억울한 죄수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물론 그는 대통령의 이름을 안다. 그러나 그 죄수가 대통령의 이름을 안다고 해서 그가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는 대통령의 이름을 알지만 대통령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대통령이 그의 사면을 위해 자기의 이름으로 그 죄수의 사면장에 서명을 하였다. 그 순간, 그 죄수가 이미 알고 있던 대통령의 이름은 그에게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다가온다. 이 구절의 의미가 바로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