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릭, 어떻게 만들고 사용할까?저자Brookhart, Susan M.출판우리학교발매2022.12.23.
이 책을 구본희 샘이 읽고 너무 좋아서 장은경 샘한테 얼른 번역하라고 압력(?)을 넣었다고 했다. 장은경 선생님은 번역은 정말 노동 그 자체인데 적확한 언어를 찾느라 200번 읽으셨다고 하셨다. 우리가 루브릭 어렵다고 징징(?)거리니 이 책을 200번 읽으면 이해할 수 있을 거라며.
수잔 부룩하트와의 일화를 알려주신 것이 재미있었다. 이 책 맨 뒤에는 일반적 루브릭이 실려 있는데 처음에 번역하려고 읽었는데 아무리 봐도 이상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장은경 샘은 수잔에게 편지를 썼다.
"수잔, 부록에 있는 루브릭 번역을 못 하겠어."
"아, 그 루브릭! 우리도 써보고 잘 안 맞아서 이번에 완전 새롭게 개정했어."
"그래? 그러면 내가 번역하고 있는데 알려줬어야지."
수잔조차 어려운 루브릭, 그러니까 전문가는 완벽한 루브릭을 짜는 사람이 아니라(이런 것은 있지도 않고) 써보고 계속 고치는 사람.
일단 루브릭을 왜 써야 하는지 정확한 사랑의 언어로 납득이 되었다. 단지 공정성과 민원을 받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생 성장의 사다리가 되기 때문이다. 루브릭을 경유하여 학생들은 자신의 학습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고, 필요한 역량을 향상시킬 수 있다. 평가에서 여러 가치가 상충할 때 어디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
백워드 설계가 좋은 이유는 학습 목표를 먼저 세우고 그것에 따라서 수업 내용을 정렬하면 수업이 파편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식을 단순히 암기하게만 하는 평가도, 활동에만 중심을 두는 수업도 바람직하지 않다. 성취기준을 잘 보여줄 수 있는 평가 과업을 고민해야 한다. 수업에서 달성하고자 하는 과업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냥 재미로 포스터나 카드 뉴스 만들기를 하면 안 된다.
루브릭은 학생의 성장을 돕는 것이지 학생들을 통제하거나 관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참여도와 같은 평가요소를 설정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 학습자 주도성은 학생들이 평가의 주체로 서게 하는 것이다. 학생들과 함께 루브릭의 평가요소를 추출해 보는 것은 단순히 학생들의 말을 다 반영해주겠다는 뜻이 아니다. 학생들과 함께 협의하는 과정을 통해 교사가 설정한 루브릭이 왜 타당한지 학생들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루브릭 사용해서 어려웠던 지점은 루브릭을 통한 자기 평가이다. 장은경 샘은 학생들에게 루브릭으로 초고를 채점해 보라고 한 다음, 그것이 교사의 예상과 일치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비교할 기회를 준다. 만약 교사는 낮게 평가했는데 학생이 높게 평가한 요소가 있다면 학생이 채점기준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조율을 통해서 학생이 다시 한 번 성장하는 기회를 준다. 나는 학생들에게 초고를 루브릭으로 점검한 후 전략을 세워보게 했지만 초고에 대한 교사의 평가는 알려주지 않았다. 올해 S가 수행평가 총괄평가 점수를 보고 "선생님, 점수가 너무 짜요." 했는데 왜 이런 반응이 나왔는지 이해가 되었다. 만약 자신의 초고에 대한 교사의 평가 정보가 있었다면 생각보다 더 많이 개선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부분을 내년에 반영할 것.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루브릭을 통해서 수업 성찰을 한 장면이었다. 내가 "이 수행평가를 통해서 새롭게 배운 점을 쓰시오."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별로 건질 것 없는 두루뭉술한 대답이 많았는데 루브릭을 바탕으로 개선할 점을 쓰게 하면 구체적인 성찰이 나온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 "저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해야한다는 점이 개선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에세이에서는 이번 에세이와 다르게 문단을 붙여 쓰기 말고 나누어 더 나은 에세이가 되도록 해야겠다." 요것도 꼭 기억.
분석적 채점기준표를 썼을 때 글이 조각조각은 괜찮은데 전체적인 매력이 떨어져서 고민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무릎을 탁 쳤다. "그런 걸 영어에서는 톤, 목소리, 보이스라고 해요. 전체적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글의 매력도죠. 그걸 평가요소로 설정하면 돼요."
또 하나 답답했는데 시원해진 부분. "수행수준을 기술할 때 구체성과 추론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야할지 모르겠어요." "그걸 할 줄 아는 게 바로 전문가죠. 채점을 하기 전에 동교과 선생님들이 샘플 채점을 하면서 추론의 여지를 조율하면 좋아요. 평가자 간 차이가 큰 국어과에서 쉽지는 않겠지만 여럿이 가르쳐야 하는 경우 이걸 꼭 해봐야겠다.
오늘은 호탐대실이 게스트로 함께 했는데 맨마지막에 던진 질문이 참 좋았네.
"수석님은 왜 이렇게 평가 공부에 열심이신가요?"
"저는 수업을 항상 열심히 했는데요,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평가가 안 바뀌면 결국 수업이 안 바뀌더라고요. 그리고 열심히 하는 이유는 내가 교사로서 누군가에게 불쌍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싶지 않아요.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