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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꿰뚫다.
20.설일체유부의 번뇌론 10 –38
18.견도의 수다원
♧상주론과 단멸론에 대한 개념을 정리해 보세요
→‘나와 세계’ 그리고 ‘나와 세계를 만들게 한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는 서양 철학의 수천 년에 걸친 질문일 뿐 아니라, 인도와 불교철학의 핵심 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나는 누구인가’는 ‘나에게 영혼이 있는가?’, 영혼이 있으면 ‘사후에 어느 형태로 존재하는가?’의 상주론으로 발달되었고, 영혼이 없으면 사후의 단멸론으로 귀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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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을 조건함 경(S12:35)
3. “비구들이여,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들이, 의도적 행위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가,...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 [苦蘊]가 발생한다.”
4. 이렇게 말씀하시자 어떤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늙음. 죽음이며 누구에게 늙음. 죽음이 있습니까?”
“그것은 타당한 질문이 아니다.” 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여, 어떤 것이 늙음. 죽음이며 누구에게 늙음. 죽음이 있습니까?‘라고 말하거나 ’늙음. 죽음과 늙고 죽는 자는 다르다.‘라고 말하면 이 둘은 그 뜻은 같고 단지 문장이 다를 뿐이다. 비구여, ’생명이 바로 몸이다.‘라는 견해가 있으면 청정범행을 닦지 못한다.254) ’생명과 몸은 다르다.‘라는 견해가 있으면 청정범행을 닦지 못한다.255)
비구여, 이러한 양 극단을 의지하지 않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 죽음이 있다.’라고 중간[中]에 의해서 여래는 법을 설한다.”
생략
주석 254) “‘청정범행을 닦음이란’ 성스러운 도를 닦음이다. 그런데 ‘생명이 바로 몸이다’라는 견해는 생명이 끝나면 몸도 끝나고, 몸이 끝나면 생명도 끝난다고 집착하는 것이다. 이 견해는 중생은 [죽고 나면] 단멸한다고 거머쥐기 때문에 단견(斷見, 단멸론)이라 부른다. 그런데 형성된 것들[諸行]은 생겨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고 간주하는 것이 교법의 영역에서는 바른 견해이다.
그리고 성스러운 도는 윤회를 소멸하고 윤회를 끝장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단멸론을 가진 자에게는 도를 닦음이 없이 [모순에] 빠진다. 그래서 ‘청정범행을 닦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주석 255) “두 번째로 ‘생명과 몸은 다르다’는 견해는 몸이 여기서 끝나더라도 생명은 그렇지 않다. 생명은 새장을 벗어난 새처럼 자유롭게 간다고 집착하는 것이다. 이 견해는 생명은 이 세상으로부터 저세상으로 간다고 거머쥐기 때문에 상견(常見, 상주론)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 성스러운 도는 삼계윤회를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처럼 하나의 형성된 것이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다고 한다면 이미 생겨난 윤회로부터 벗어남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도를 닦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되는 [모순에] 빠진다. 그래서 이런 견해를 가진 자도 ‘청정범행을 닦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SA.ii69)
『상윳따 니까야』 제2권 「인연 상윳따」 (S12)
♧유물론과 유심론에 대한 개념을 정리해 보세요
→사후의 존재를 믿지 않는 자에게 있어 ‘인간은 왜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도덕적 의문은 치명적이고, 이들은 현실의 쾌락만을 존중하는 물질론으로 발달된다. ‘이 세계는 실재로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어떤 식으로 존재하는가’는 유심론자와 존재론자의 질문이다. 이 세계와 나는 ‘업의 결과인가, 신의 창조인가 혹은 우연히 생겨났는가’하는 질문은 발생론에 대한 모든 학파의 질문이 된다.
나는 몸과 마음일 뿐이다 라는 정의를 교재를 중심으로 설명해 보세요
→<구사론>은 ‘인간은 왜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 ‘이 세계는 실재로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어떤 식으로 존재하는가’ ‘업의 결과인가, 신의 창조인가 혹은 우연히 생겨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나는 몸과 마음일 뿐이다’라고 답한다, 몸은 지수화풍의 결합이고, 마음은 수상행이라는 내용물과 그 내용물을 인식하는 식의 모임이고, 세계는 지수화풍 4대로 이루어진 6가지 감각기관과 감각기관의 대상이다. 즉 몸의 대상은 느낌, 마음의 대상은 개념과 욕구이다.
그러므로 몸, 마음, 느낌, 생각, 욕구 등의 신수심법이 나이며 세계인 것이다.
불교의 여러 종파의 수행이 모두 사념주(처)를 대상으로 삼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다. 지수화풍으로 이뤄진 몸과 세상을 느끼고, 알고, 생각하고 욕구하는 이 일련의 과정은 마치 자동차가 그 자체에 차라는 것이 따로 없고, 차의 부속품들이 얽기 설기 얽어져서 유기적 관계를 지니고 있듯이, ‘나’ 또한 오온의 유기적 관계물이라는 것을 보고 알게 되면 ‘유신견’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나와 세계는 신에 의해 만들어졌다는’는 첫 번째 계금취견은 ‘나와 세계’가 욕망과 업에 의해
이루어진 것을 아는 앎과 유신견을 바로 앎으로써 견고성제에서 깨달아지고, 수행도에 대한 잘못된 견해인 두 번째 계금취견은 견도성제에서 끊어지기 때문에 두 가지 계금취견은 견도성제에서 모두 끊어진다.
인과와 4성제에 대한 ‘의심’ 역시 견도성제에서 끊어진다. 이처럼 4성제를 두루 알게 되면 유신견, 계금취견, 의심의 3가지 족쇄가 끊어지고 이를 견도 또는 수다원이라 한다.
♧견도 즉 수다원과에서 해결되는 문제를 교재를 참고해서 정리해 보세요
→견도와 수다원은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견혹과 수혹은 자아에 대한 집착이라는 동일한 바탕을 가지고 있다. 견혹과 수혹의 두 가지 번뇌가 존재하게 하는 근본 바탕은 무명이고 이 무명은 두 가지 번뇌를 포함하여 마지막 무학위에서 소멸된다.
♧견혹과 수혹에 대하여 교재를 참고해 정리해 보세요
→자아에 대한 이지적 오해는 견도에서, 감성적 집착은 수도에서 다스려지게 된다. 사실 이 두 가지 번뇌의 바탕이 다른 것이 아니라서 인격이 성숙되고 감성이 잘 닦여진 즉, 수혹을 먼저 끊은 정도 여하에 따라 견도를 성취하자마자 수다원에서 아나함의 경지를 얻게 된다. 무명은 나와 세상에 대한 잘못된 견해인 견혹과 세상에 대한 감성적 집착인 수혹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명 때문에 욕계의 세상에 대한 탐욕과 바라는 것을 성취하지 못한 것에 대한 노여움, 자아에 대한 집착인 교만 등이 발생한다. 이 네 가지의 번뇌는 근기의 차별에 의해 상중하로 구별되고, 다시 그것들이 각각 상중하로 나뉘어져 9등급이 되는데, 수도에서는 욕계에 대한 습관적 집착이 피부와 기억에 남아있는 것을 다스리는 것이다.
♧견도와 수다원과의 차이점을 교재를 참고해 설명해보세요
→견혹의 번뇌는 모두 끊었지만 욕계의 수혹을 끊지 못했거나 욕계 5품의 수혹을 제거하면 수다원향이라 한다. 수다원은 해탈을 방해하는 10가지 족쇄 중 3가지는 끊어졌지만 5하분결의 탐, 진과 5상분결의 5가지는 남아있는 상태이다. 이 7가지를 끊기 위하여 인간과 천상 사이를 7번 왕래하므로 극칠반생(極七返生)이라고 한다.
그러나 욕계의 수혹이 미리 닦여져 있는 이가 견도에 들게 되면 그 수혹의 닦여진 상태 여하에 따라서 욕계 제6에서 8품의 수혹을 끊고 견도에 들면 그를 사다함향이라 하고, 욕계 9품의
수혹이나 무소유처의 수혹을 다 끊은 뒤에 견도에 들면 아나함향이라 한다.
[ 개인 사유 토론 발표 ]
견도의 개념을 사유해 정리해 보고 수다원향에 대한 이해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세요
견도[見道] 사제(四諦)를 관찰하는 단계. 견소단의 번뇌를 잘라버리는 과정.
무루성도를 처음으로 발견하여, 성자의 무리에 든 위(位)로 견제도라고도함.
최후의 깨달음의 과정. 소승에서는 예류항, 대승에서는 초지를 말함. 각각 이 이상을 성자라고 함. 『구사론』에서는 사선근의 제4인 세제일법의 직후에 무루의 정지를 일으키고, 십육심(十六心)에 의해 점차로 육. 색. 무색의 삼계의 사제를 깨닫는 가운데에 앞의 십오심을 견도라고 함. 유식설에서는 오위의 제삼인 통달위를 견도라고 함.
수다원과[수다원향] 예류과와 같음. 처음으로 성자의 계위에 들어가는 것. 성문(聲聞)의 수행단계인 4과중의 초과를 말함. 영원한 평안에의 흐름을 탄 자.
<불교대사전 발췌>
---2567. 10. 17. 혜연 무구행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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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번뇌 경9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숲의 아나타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ㅛ”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모든 번뇌를 단속하는 법문을 설하리니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느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나는 알고 노는 자의 번뇌들이 소멸한다고 말하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의 [번뇌들이]이 소멸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무엇을 알고 무엇는 보는 자의 번뇌들이 소멸하는가?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과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함이다.
비구들이여,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에게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번뇌들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번뇌들은 증가한다.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에게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번뇌들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번뇌들은 없어진다.”
4. “비구들이여, ⓵ 봄[見]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 있다. ⓶ 단속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 있다. ⓷ 수용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 있다. ⓸ 감내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 있다. ⓹ 피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 있따.
⓺ 버림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 있다. ⓻ 수행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 있다.”
(1) 봄[見]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
5.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봄[見]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인도되지 않아서,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는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지 못하여,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마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고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는다.”
6.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지만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인가? 비구들이여, 어떤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할 때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慾漏]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가 증가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존재에 기인한 번뇌[有漏]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존재에 기인한 번뇌가 증가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무명에 기인한 번뇌[無明漏]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무명에 기인한 번뇌가 증가하면, 그 법들은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지만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이다.
무엇이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지만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인가? 비구들이여, 어떤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할 때 아직 일어나지 않는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慾漏]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가 없어지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존재에 기인한 번뇌[有漏]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존재에 기인한 번뇌가 없어지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무명에 기인한 번뇌[無明漏]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무명에 기인한 번뇌가 없어지면, 그 법들은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고 있지 않지만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이다.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고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일어나지 않는 법뇌들이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번뇌들은 증가한다.”
7. “그는 다음과 같이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한다.
‘나는 과거에 존재했을까? 아니면 나는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을까? 나는 과거에 무엇이엇을까? 나는 과거에 어떠했을까? 나는 과거에 무엇이었다가 무엇으로 변했을까? 나는 미래에 존재할까? 아니면 나는 미래에 존재하지 않을까?
나는 미래에 무엇이 될까? 나는 미래에 어떻게 될까? 나는 미래에 무엇이었다가 무엇으로 변할까? 지금 현재에 대해서는 안으로 의심한다. 나는 존재하기는 하는가? 나는 존재하지 않는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떠한가? 이 중생은 어디서 왔는가?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라고”
8. “이와 같이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할 때 그에게 여섯 가지 견해들 가운데 하나의 견해가 생긴다.
⓵‘나에게 자아가 있다.’라는 견해가 그에게 진실로 확고하게 생긴다. ⓶‘나에게 자아란 없다.’라는 견해가 그에게 진실로 확고하게 생긴다. ⓷‘나는 자아로써 자아를 인식한다.’라는 견해가 그에게 진실로 확고하게 생긴다. ⓸‘나는 자아로써 무아를 인식한다.’라는 견해가 그에게 진실로 확고하게 생긴다. ⓹‘나는 무아로써 자아를 인식한다.’ 라는 견해가 그에게 진실로 확고하게 생긴다.
⓺혹은 그에게 이런 견해가 생긴다. ‘이러한 나의 자아는 말하고 경험하며, 여기저기서 선행과 악행의 과보를 경험한다. 그런 나의 자아는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법이고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견해에 빠짐, 견해의 밀림, 견해의 황무지, 견해의 뒤틀림, 견해의 요동, 견해의 족쇄라 한다. 비구들이여, 견해의 족쇄에 계박되어서 배우지 못한 법무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9. “비구들이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을 친견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고, 바른 사람들을 친견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능숙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인도되어서,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고,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안다. 그는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고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아서,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아서,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고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한다.”
10. “비구들이여, 무엇이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고 있지 않는 법으로서,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인가?
비구들이여, 어떤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할 때 아직 일어나지 않는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慾漏]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가 증가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는 존재에 기인한 번뇌[有漏]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존재에 기인한 번뇌가 증가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무명에 기인한 번뇌
[無明漏]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무명에 기인한 번뇌가 증가하면, 그 법들은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고 있지 않는 법으로서,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고 있는 법으로서,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인가?
비구들이여, 어떤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할 때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慾漏]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가 없어지며, 아직 일어나지 않는 존재에 기인한 번뇌[有漏]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존재에 기인한 번뇌가 없어지며, 아직 일어나지 않는 무명에 기인한 번뇌[無明漏]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무명에 기인한 번뇌가 없어지면, 그 법들은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고 있는 법으로서,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이다.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고,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번뇌들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번뇌들은 없어진다.”
11.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한다. 그가 이와 같이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하면 세 가지 족쇄들이 제거되나니 [불변하는] 존재 더미가 있다는 견해[有身見]와 의심[惑]과,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戒禁取]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봄[見]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라 한다.”
(2) 단속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
12. “비구들이여, 무엇이 단속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눈의 감각기능[眼根]의 단속을 잘 단속하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눈의 감각기능의 단속을 잘 단속하지 못하면서 머무는 자에게는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눈의 감각기능의 단속을 잘 단속하면서 머무는 자에게는 그러한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귀의 감각기능[耳根]의 단속을 잘 단속하면서 머문다. ... 지혜롭게 숙고하여 코의 감각기능[鼻根]의 단속을 잘 단속하면서 머문다. ... 지혜롭게 숙고하여 혀의 감각기능[舌根]의 단속을 잘 단속하면서 머문다. ... 지혜롭게 숙고하여 몸의 감각기능[身根]의 단속을 잘 단속하면서 머문다. ...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마노의 감각기능[意根]의 단속을 잘 단속하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마노의 감각기능의 단속을 잘 단속하지 못하면서 머무는 자에게는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마노의 감각기능의 단속을 잘 단속하면서 머누는 자에게는 그러한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단속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라 한다.”
(3) 수용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
13. “비구들이여, 무엇이 수용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면서 옷을 수용하나니 오직 추위를 물리치고, 더위를 물리치고, 날파리. 모기. 바람. 뙤약볕. 파충류에 닿음을 물리치고, 부끄러운 부분을 가리기 위해서이다.”
14. “그는 지혜롭게 숙고하면서 음식을 수용하나니 즐기기 위해서도 아니고, 취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치장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장식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단지 이 몸을 지탱하고 유지하고 잔인함을 쉬고 청정범행을 잘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나는 오래된 느낌을 물리치고 새로운 느낌을 일어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잘 부양될 것이고 비난받을 일이 없고 안온하게 머물 것이다.’라고”
15. “그는 지혜롭게 숙고하면서 거처를 수용하나니 추위를 물리치고, 더위를 물리치고, 날파리. 모기. 바람. 뙤약볕. 파충류에 닿음을 물리치고, 오직 기후의 변화에서 생기는 위험을 없애고, 한거[閑居)를 편안히 하기 위해서이다.”
16. “그는 지혜롭게 숙고하면서 병구완을 위한 약품을 수용하나니 오직 일어난 고통스러운 느낌들을 물리치고, 병 없음을 최상으로 하기 위해서이다.”
17. “비구들이여, 그것을 수용하지 않으면 속상함과 ㅇ려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수용하면 그러한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수용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라 한다.”
(4) 감내함으로써 없애할 번뇌들
18. “비구들이여, 무엇이 감내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면서 감내한다. 추위와 더위와 배고픔과 목마름과, 날파리. 모기. 바람. 뙤약볕. 파충류에 닿음과, 고약하고 언짢은 말들과, 몸에 생겨난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찌르고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고 생명을 위협하는 갖가지 느낌들을 감내한다. 비구들이여, 그것을 감내하지 않으면 그에게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감내하면 그러한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감내함으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라 한다.
(5) 피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
19. “비구들이여, 무엇이 피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서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사나운 코끼리를 피하고, 사나운 말을 피하고, 사나운 소를 피하고, 사나운 개를 피하고, 뱀, 나뭇등걸, 가시덤불, 협곡, 낭떠러지, 더러운 물구덩이, 더러운 웅덩이[小澤地]를 피한다. 적합하지 않은 자리에 앉고, 갈곳이 아닌 곳에 다니고, 저열한 도반들을 사귀어서 지자인 동료 수행자들이 저열한 곳에 믿음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적합하지지 않은 자리, 영역이 아닌 곳, 저열한 도반들을 지혜롭게 숙고하여 피한다. 비구들이여, 그것을 피하지 않으면 그에게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피하면 그러한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피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라 한다.”
(6) 버림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
20. “비구들이여, 무엇이 버림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에 대한 생각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지혜롭게 숙고하여 이미 일어난 악의에 찬 생각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지혜롭게 숙고하여 이미 일어난 해코지하려는 생각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지혜롭게 숙고하여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삿되고 해로운 법들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비구들이여, 그것을 버리지 않으면 그에게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버리면 그러한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버림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라 한다.”
(7) 수행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
21. “비구들이여, 무엇이 수행으로 없애야 할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念覺支]을 닦는다. ...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택법각지]를 닦는다. ...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정진각지]를 닦는다. ...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요소[희각지]를 닦는다. ... 편안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경안각지]를 닦는다. ...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요소[정각지]를 닦는다. ...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사각지]를 닦는다. 비구들이여, 수행하지 않으면 그에게 속상하고 열 받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난 그것을 수행하면 그러한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수행으로 없애야 할 번뇌들이라 한다.”
결론
22. “비구들이여, 비구는 봄[見]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은 봄으로써 없애야 한다. 단속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은 단속함으로써 없애야 한다. 수용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은 수용함으로써 없애야 한다. 감내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은 감내함으로써 없애야 한다. 피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은 피함으로써 없애야 한다. 버림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은 버림으로써 없애야 한다. 수행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은 수행으로써 없애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비구가 모든 번뇌를 단속하여 머물고, 갈애를 끊어버렸고, 족쇄를 풀어버렸고, 자만을 바르게 꿰뚫었고, 마침내 괴로움을 끝내버렸다.고 한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했다.
『맛지마 니까야』 제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