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설악산을 좋아한다. 대학 시절부터 시작하여 설악산은 나의 최고의 여행지였다. 여름휴가를 설악산에서 보낸 것만도 열 번도 훨씬 넘는 것 같다. 겨울에도 생각만 나면 가속 페달을 밟아 설악산과 바다를 보고 오곤 한 게 몇 번인지 모른다.
그런데 조선시대부터 설악산 기행문은 본 적이 없다. 아마도 금강산이 최고로 아름다우니 금강산에 밀리다 보니 그렇지 않은가 한다. 금강산 기행문은 수없이 많다. 이광수의 비로봉 기행, 정비석의 산정무한(山情無限) 등을 필두로 금강산 여행기는 많이 있고, 조선시대에도 많은 선비들의 금강산기행문이 있고, 가곡도 그리운 금강산이 있지 않은가. 정비석의 금강산 여행기인 산정무한의 마지막 구절 ‘천년 사직이 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고, 태자 가신지 또 다시 천년이 지났으니, 유구한 영겁으로 보면 천년도 수유(須臾)런가! 고작 칠십 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 웅큼 부토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愁愁)롭다!“는 내가 지금까지도 외우고 있다.
남북이 열려 많은 사람들이 금강산에 다녀왔지만 나는 아직까지 다녀오지 못했다. 못 간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설악산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반도의 중추인 태백산맥 중 가장 높은 대청봉을 정점으로 펼쳐진 설악산은 남한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이다. 산세가 웅장하면서도 그윽한 산악미를 지니고 있어 계절별로 독특한 경관을 나타내는데 봄의 잔설과 신록, 여름의 맑고 깨끗한 계곡물, 설악 가을 단풍, 겨울의 눈 덮힌 설경 그리고 속초의 푸른 물결까지 있으니 이런 경치를 어디 가서 찾을 수 있을까. 특히 겨울의 설악산은 ’눈을 맞으며 날이 저물고 싶은‘ 그런 산이다.
올해도 우리 가족은 설악산에서 보내기로 했다. 8월 15일에 출발하여 2박 3일로 일정을 잡았다. 숙소는 오색그린야드호텔로 잡았다. 오색그린야드호텔은 한계령 설악산 속에 둘러 싸여 있다. 그런데 가는 날부터 비가 계속 내렸다. 날짜를 잘못 잡았지만, 바꿀 수도 없어서 그냥 출발했다.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고 국도로 가기로 했다. 여행은 고속도로보다는 국도여행이 여행의 묘미를 더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오후 1시 정도에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에서 짐을 풀고 좀 쉬다가 호텔 내에 있는 온천탕에서 온천욕을 하기로 했다. 온천은 물도 좋고 특히 황톳빛 탄산수탕에 들어갔다 오니 피부가 깨끗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내와 딸은 탄산수탕에 대한 칭찬을 입이 마르도록 했다. 지금까지는 주로 척산온천을 주로 갔는데, 거기서는 황톳빛 탄산수탕은 없었다.
온천욕 후 식사를 하려고 하니 호텔 식당은 비가 내려서 그런지 손님도 별로 없어서 근처의 동네 식당으로 갔다. 비빔밥, 순두부, 곤드레밥, 황태탕 등을 시켰는데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첫날은 호텔 안에서 창밖에 내리는 비를 보며 마음을 달랬다. 둘째 날이 되니 아침에는 다행스럽게도 비가 오지 않아 오색약수터로 향했다. 전날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약수터에 물이 넘쳐흘렀다. 아마도 빗물이 많이 섞어있었기 때문이리라. 빗물이 섞여 약수에는 철분이 약해 물이 좀 밍밍했다. 약수터에서 약수를 한 바가지씩 마시고 우리 가족 넷은 오색약수를 중심으로 주위 8킬로 이내에는 물줄기가 끊이지 않는 풍치 절경 지대를 답사하러 올라갔다. 약수터 앞 골짜기는 불상 1만개가 늘어서 있는 듯하다고하여 만불동 계곡이라고 하는 주전골과 높이 200미터가 넘는 기암절벽인 만경대, 선녀탕, 용소폭포 등이 있다. 용소폭포로 가는 길은 과연 절경이었다. 구경하고 내려오는 사람한테 아내가 물었다.
“위에 볼 것 많아요?”
“많고 말구요. 절경입니다. 저는 이 좋은 데를 두고 왜 중국 황산에 다녀 왔는지 모르겠어요.”하는 게 아닌가.
2004년 여름 호주와 뉴질랜드를 여행한 적이 있다. 호주의 시드니와 그 주변 블루마운틴 그리고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마운트 쿡, 밀포드사운드, 퀸즈타운 등을 둘러보았다. 많은 사람들은 때 묻지 않은 청정한 지역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호주와 뉴질랜드에 비해 우리나라의 설악산이 훨씬 좋다는 생각을 한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신생국이기 때문에 주요 볼거리는 경치인데, 그 곳의 경치는 그다지 감동을 주지 못했다. 경치를 보기 위해 갈 만한 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유럽의 도시와 같이 역사의 향취도 풍겨 나지 않고, 현대적인 고층 건물들은 그다지 정이 가질 않았다. 우리나라의 산하가 훨씬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오색약수계곡을 갔다 와서 우리는 물치항으로 향했다. 회를 먹기 위해서였다. 직접 생선을 그 자리에서 잡아서 그런지 싱싱하고 맛이 있었다. 저녁에는 호텔로 와서 노래방으로 갔다. 얼마만이던가. 아들‧딸의 노래를 들어본 지가. 아내와 나는 애들의 변모된 모습과 성숙한 모습을 보며 그동안 보지 못 했던 애들의 또 다른 면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노래방에 가서 보니 우리 애들을 좀 더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앞으로 좀 더 자주 이런 기회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날 잠을 깨니 또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었다. 사실 그날은 정선의 레일바이크를 타려고 했는데, 비 때문에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대관령에 있는 양떼목장과 봉평의 이효석 문화마을을 들릴 생각이었다. 나는 수없이 대관령휴게소를 들려 봤지만 양떼 목장이 여기와 연결되어 있는 줄은 몰랐다. 다행히 비가 내리지 않아 목장을 잘 둘러 볼 수 있었다. 마음 속에서 상상하던 목가적인 모습의 목장이었다.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목장이 있었던가. 애들은 연신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딸은 나에게 “유럽의 목장 같아요.”라고 하며 방문한 것에 만족해했다.
양떼목장 관광을 마치고 이효석 문화마을로 향했다. 그런데 효석문화축제는 9월이어서 그냥 효석 생가만 들렀다. 소금을 뿌려 놓은 듯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그리고는 집으로 향했다. 대관령을 넘어 횡성으로 가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조금 지나니 비가 오는데도 하늘엔 해가 빛나고 있었다. 이런 날을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 하던가. 조금 있다가 비는 그쳤다.
그런데 문득 창밖을 보니 쌍무지개가 떠 있는 게 아닌가. 애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카메라로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그래도 부족해서 차를 잠시 세웠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쌍무지개를 본지가 도대체 얼마 만인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어릴 때 읽었던 김래성의 ‘쌍무지개 뜨는 언덕‘이 생각났다. ’쌍무지개 뜨는 언덕‘ 때문에 소설에 등장하는 가곡, 슈베르트의 보리수(Lindenbaum)와 이은상의 ’성불사의 밤‘이 떠 올랐다. 쌍무지개 주는 의미는 평화, 안녕, 희망, 행운이라고 한다. 애들은 쌍무지개를 보니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고 좋아했다. 비록 사흘 휴가 기간 동안 비는 왔지만 쌍무지개를 봄으로써 올해 여름휴가는 즐겁게 마무리 짓게 되었다. (2013년 8월)
첫댓글 읽을수록 맛이 더 진해지는 환상같은 수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