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새로운 의안(按)
내가 예전에 친구들과 같이 유람(:遊)하다가 유관(楡關: 지명)에 머물게 되었다.
숙소(:客邸) 내에서 어떤 친구가 평소 풍류(:風月)을 탐(耽)하였는데, 중동(仲冬: 음력 11월) 어느 날 북소리(:鼓)가 처음 들릴 때(: 20시 내외) 갑자기 그 친구가 급히 나의 방문을 두드렸느니라. 열어서 물어보니, 장황하게 구(救)하여 주기를 구하면서 말하기를 "같이 놀던 기생(:妓)이 갑자기 급증(急證)을 얻어 그 세(勢)가 수위(垂危: 응급)에 있으니, 혹 액(厄)을 당하면 그 화(禍)를 풀 수가 없을 것이다." 하였다.
내가 가서 보니, 입으로 백말(白沫)을 토(吐)하였고 땅에 강부(僵仆)하였으며 수(手)로 만져보니 구비(口鼻)와 사지(四肢)가 모두 냉(冷)하였고 기식(氣息)이 절(絶)한 듯 하였다. 갑자기 그런 증상(:狀)을 보고는 나도 매우 놀랐었다(:驚駭).
수(手)로 팔을 당겨 진맥(:診)하여 보았더니, 기구맥(:氣口)이 화평(和平)하였으므로 맥(脈)이 증(證)과 맞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를 '맥(脈)이 이와 같이 화(和)한데, 어째서 증(證)이 이처럼 위(危)한가?' 하였다. 내가 초(初)에는 경식(經識: 경험과 지식)이 많지 않았으므로 그것이 꾀병(:詐)인 줄 몰랐었다. 곰곰이 생각하면서 반신반의(:將信將疑)하다가, 다시 그 맥(脈)을 진(診)하여 보았더니 편안(:安然)하고 여전(:如故)하였으므로, 크게(:豁然) 깨달으면서(:省悟) '아! 바로 중경(仲景)의 그 말(:說)이구나!' 하게 되었다.
이에 내가 큰 소리로 꾀병을 하는 기생(:妓) 옆에다 대고 말하기를 "이 병(病)은 위(危)하다. 화공(火攻)이 아니면 절대로 활(活)할 수가 없다. 조(棗)나 율(栗) 크기의 애(艾)를 사용하지 않으면 활(活)할 수가 없다. 또 미심(眉心) 인중(人中)과 소복(小腹)의 여러 곳에 연이어 구(灸)하지 않으면 활(活)할 수 없다. 나의 숙소에 애(艾)가 있으니 빨리 갖고 와서 구(灸)할 것인데, 화(火)로 구(灸)하려면 오히려 늦으니, 잠시 먼저 약(藥)을 줄 것이다. 연(嚥)할 수 있고 또 연(嚥)한 후에 조금이라도 성식(聲息)이 있으면 생의(生意)가 돌아오는 것이므로 구(灸)하지 않아도 되지만, 만약 연(嚥)할 수 없고 또 연(嚥)한 후에라도 성(聲)이 없으면 당연히 빨리 구(灸)하여야 된다." 하였다. 약(藥)을 주면서 부탁하기를 "복용한 후에는 바로 나에게 와서 알려 달라."고 하였다.
그 교활한 노(奴)가 나의 말을 듣고는 속으로 경포(驚怖: 놀라 두려워하다)하였고, 특히 큰 애(艾)를 몸에 붙여야 한다는 것을 공(恐)하였으므로, 약(藥)을 주자마자 바로 연(嚥)하였고 연(嚥)한 후에 바로 신음소리(:哼聲)을 내면서 천천히 움직이고는 기(起)하였다.
다음 날에 내가 그 까닭을 물었더니, 곧 시기와 질투(:吃醢)로 발(發)한 것임을 알았느니라. 내가 그것을 듣고는 크게 웃으면서 비로소 여자들(:姊妹)의 행실 중에는 이처럼 간교(奸狡)한 정황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 내가 도중(都中)에 있을 때 서로 잘 아는(:相契) 김씨(:金吾公)가 두 첩(妾)을 두었다. 그 중 하나가 연희(嚥姬: 이름)였는데, 그 모친(:母)이 그녀를 따라 다녔느니라. 하루는 두 첩(妾)이 서로 다투다가(:相競) 연희(燕姬)라는 첩(妾)이 말문(:理)이 막히니(:屈), 첩(妾)의 모친(:母)이 악(惡)을 돋우며 소리를 지르고 펄쩍펄쩍 뛰면서(:叫跳) 행패(:撒賴)를 마구 부리더니 결국 기궐(氣厥)하여 죽은 듯 하였다. 이에 어떤 비(婢)가 부축(:抱持)하여 앉혔는데도, 모(暮)에서 단(旦)까지 전혀 소생(甦生)할 기미(:意)가 없었다.
청신(淸晨: 이른 아침)에 나에게 치료(治療)하기를 청(:延)하길래, 처음에 방(:室)에 들어가 보니 육(肉)은 후(厚)하였고 색(色)은 흑(黑)하였으며 면(面)은 청(靑)하였고 목(目)은 명(瞑)하였으며 수(手)는 풀려있었고(:撒) 식(息)은 미(微)하였다. 이어 그 맥(脈)을 진(診)하였더니 복묘(伏渺: 숨고 작다)하여 탈(脫)한 것 같았느니라. 생각하기를 '진짜 위(危)하도다!' 하였다. 이 시(時)에 온보(溫補)를 시(施)하려고 하여도 대노(大怒)한 후이라서 역기(逆氣)가 혹 산(散)하지 않을까 우려(:慮)하였고, 개도(開導)를 가하려고 하여도 그 맥(脈)이 절(絶)한 것 같이 허극(虛極)하므로 이겨낼 수 없음을 염려(:慮)하였다.
이에 주저(躊躇)하며 결(決)하지 못하였다가, 다시 진(診)하기를 청(請)하길래, 방(:室)에 다시 들어가 보니, 앞서(:前次)와 같이 수(手)가 풀려있지(:撒) 않고 십지(十指)를 교차(交叉)하면서 복(腹)을 포(抱)하고 있었으며, 비(婢)의 품(:懷)에 편안하게 누워 있었다(:仰坦). 이로 인하여 의심(疑)하기를 '아까는 수(手)가 풀려 있다가(:撒) 지금은 수(手)를 교차(叉)하고 있으니, 어찌 타인(他人)이 그렇게 한 것이겠는가?' 하였다. 아울러 수(手)를 붙여서(:著) 다시 진(診)하려고 하였더니 싫어(:嫌)하면서 용납(:容)하지 않으려는 기미(:意)가 있었고, 끌어도(:拽) 움직이지(:動) 않았으므로, 더욱 의심(:疑)이 되었다. 이에 불시(:不意)에 갑자기 힘껏(:卒猛) 훅 당겼더니(:扯) 갑자기 힘이 탈(脫)하면서 소리(:聲)를 내었는데 그 힘이 강경(强勁)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앞의 의문(:疑)이 비로소 풀렸느니라. 이르기를 '사(死)하려는 사람이 어찌 힘이 이와 같은가?' 하였다. 맥(脈)이 그와 같은(:伏渺) 것은 생각하건대 혹 육(肉)이 후(厚)하고 기(氣)가 체(滯)하는 것은 북인(北人)의 품부(稟賦)에 많이 있기 때문이고, 혹 양액(兩腋)을 긴(緊)하게 협(夾)하여 간교한 사람이 교활하게 속이려고 한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면(面)이 청(靑)하고 식(息)이 미(微)한 것은 노기(怒氣)가 그렇게 한 것이므로 족히 괴(怪)하지 않다.
이렇게 식견(識見)이 정(定)하여지자, 탄식하면서 그 위(危)를 말하였고 구법(灸法)을 듣게 하여 공(恐)으로 이를 승(勝)하게 하였다. 이어 먼저 한 제(劑)를 투여(投)하였더니, 인(咽)에 이르자마자 바로 활(活)하였다.
그 다음 날에 공(公)을 만났는데, 나에게 물으며 이르기를 "어제의 병(病)은 그 세(勢)를 헤아리건대 매우 위(危)하였다. 그런데 진사(眞邪)이라면 어째서 그 약(藥)이 순(脣)에 닿자마자 효(效)가 그와 같이 준속(峻速)하였을까? 가사(假邪)이라면 어째서 종야(終夜)로 주작(做作: 짓다)된 형증(形證)이 그와 같이 유사(:似)하게 닮았을까? 어제 공(公)이 쓴 약(藥)이 도대체 얼마나 현비(玄秘)한 것인가? 이를 모두 의(疑)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나의 현비(玄秘)는 그 비(秘)가 말에 있을 뿐이다. 단지 그녀를 구(懼)하게 하였을 뿐, 속(速)히 활(活)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경(經)에 이르기를 '우(憂)는 노(怒)를 승(勝)한다.' 하였으니, 바로 이를 말하는 것이다." 하였다.
이로 '인정(人情)의 교활(:巧)함을 헤아리기가 가장 어렵다.'는 사실이 모두 이와 같은 경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제 다시 진(診)하지 않고 다시 살피지 않았다면 나도 거의 속았을(:誑)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종류(類)를 만나면 더 상세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또 어떤 친인척 중의 선비(:士子)가 관리의 집(:宦家)에서 두들겨 맞고서(:毆) 와병(臥病)하기를 10일이 되었고 토혈(吐血)하더니 분(盆)을 채울(:盈) 정도이었다.
이로 인하여 인명(人命: 사람 죽는다)에 대해 요란하게(:喧) 전(傳)하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이르렀고(連及), 의(醫)가 여럿이 청(:延)함을 받았지만 그 위극(危劇)한 상(狀)을 보고는 모두 속수무책(:束手)으로 멀리 피(避)하면서 누(累)가 미칠까 스스로를 방어(:防)하였다.
최후(最後)로 내가 가서 보았는데, 그 색(色)을 살펴보니 전혀 군고(窘苦)한 기미(:意)가 없었고 그 맥(脈)을 진(診)하여보니 결국 모두 화완(和緩)하고 여상(如常)하였다. 내가 비로소 의심(:疑)하고는 이어서 알아차렸느니라. 그에게 은밀히(:潛) 말하기를 "다른 사람은 기(欺)하여도 나를 기(欺)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너의 혈(血)인가? 아니면 가금(家禽)의 혈(血)인가?" 하였다. 그 사람이 놀라면서(:愕然), 나에게 부탁하기를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말라.' 하였다. 결국 잘 조화(調和)하도록 해 주었고, 서로 감사(:感)하면서 헤어졌느니라.
또 어떤 이웃의 부인(:婦)이 첩(妾)을 시샘하여 성을 내고, 남편을 책망하고 반목(反目)하다가 이로 인하여 병(病)이 극(劇)하게 되어 교아(咬牙)하고 징안(瞪眼)하며 강궐(僵厥)하고 소(蘇)하지 않아 명(命)이 호흡(呼吸)의 사이에 있는 것 같았느니라. 그 남편이 당황(:驚皇)하여 조치(:措)하지 못하였고 그 첩(妾)이 연이어 만나주어도 감당(堪)하지 못하였다.
나에게 구(救)하여 주기를 부탁하였는데, 그 맥(脈)에 그 병(病)이 아니었다. 따라서 앞의 법(法)을 쓰면서 치(治)하였다.
나은 후에 그 남편이 나에게 감사(感謝)를 하였으나, 자기의 어리석음은 끝내 몰랐느니라.
이와 같은 두 사람은 또한 인사(人事) 중의 항상 있는 형편이니, 밝은(:懸朗) 살핌(:鑑)이 없다면 이 중(中)에는 변환(變幻)하여 가병(假病)이 진병(眞病)을 초래하고, 소분(小忿)이 대화(大禍)를 초래한다.
이에 내가 마치 먼지(:埃)를 털어내듯이 다 털어내었으니, 단지 사람들을 위하여 복(福)도 만들고, 또한 사람의 기(欺)도 막을 수가 있게 하였다.
따라서 이 또한 기록하여 창졸(倉卒)에 급(急)히 쓸 수 있도록 자(資)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