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근대의 무연탄과 시멘트 공장
관내 매장된 광물은 종래 산북면에서 흑연 채굴을 하였지만 근래 재계 불황 때문에 수지가 맞지 않아 중지 상태이다.
1926년 6월 7일 허가를 받아 호서남, 마성, 가은면에서 무연탄의 채굴을 대대적으로 계획되어 현재 광구면적은 1,950,000평, 생산량 1,260톤, 가격 12,260원 이고 장차 더욱 유망시 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문경군 니시와키(西脇)씨 경영의 문경탄광 배후에 두께 30척의 무연탄 괴탄층(塊炭層)이 발견되어 목하 시장에 괴탄 1톤당 10원의 싼값으로 공급하고 있다.
무순유연탄(無順有煙炭) 22원을 비롯하여 규슈탄(九州炭) 기타를 남선 일대에서 구축(驅逐)하고 있다. 탄층은 예상외로 풍부하여 예부터 석탄이 생산되지 않았던 남선(南鮮)의 연료계는 갑자기 활성화되었다.
문경지대에 탄광의 문을 가장 먼저 연 것은 1926년 문경탄광의 광업권 설정 때였다. 은성탄광은 1926년 6월 박남득이라는 탄광업자가 광업권을 설정하고, 후에 일본광업주식회사가 개발권을 인수 하여 1938년부터 개발에 착수하였다. 1938년말부터 조선총독부는 <조선중요광물증산령 (朝鮮重要鑛物增産令)>을 공포하고 광산기술 자들을 우리나라 전국의 파견하여 탐광 조사(探鑛調査)를 착수하였는데 당시 문경탄광지대로 파견 된 사람은 일본인 기사(技士) 시로키(白木)이었다.
그는 문경탄광과 은성무연탄광의 매장량을 조사하고 그 엄청난 지하자원에 감탄했다고 한다. 시로키 기사는 조선총독부에 적극적이고 대대적인 채광작업을 하자고 건의하여 조선총독부에서는 일본광업주식회사(日本礦業株式會社)로 하여금 은성무연탄광(恩城無煙炭纖)을 매수하게 하여 집중적인 개발을 하게 되었다.
문경탄광과 은성무연탄광이 대규모의 자본을 앞세운 일본 회사에 의해 개발되자 두 탄광을 문경탄광으로 호칭하고, 채굴탄을 수송하기 위해 조선총독부에서는 김천과 점촌사이에 부설된 산업철도를 이용토록 하였다.
시멘트 공장은 오노다(小野田)시멘트 주식회사에서 1928년 12월부터 문경군 호서남면에 시멘트분공장 설치의 계획을 세우고 토지 매수를 개시하였다. 공장부지와 원료채취 등에 약 300여만평, 투자금액 20여만원이 되고 경기회복을 기다려 사업 개시를 할 것이다. 매수지는 말할 것 없고 부근 일대의 시멘트 원료가 무진장 있을 뿐 아니라 부근에 있는 도쿄 니시와키씨가 경영하는 연료 무연탄이 무진장으로 생산되니 동 공장 건설에 대하여 매우 유망시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