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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 장
열 처녀*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과 감람산 위에 앉아 계셨다. 해는 서산에 지고 하늘은 저녁 그늘에 덮여 가고 있었다. 거기서 내려다보이는 한 집에서는 무슨 잔치가 베풀어지는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열린 창문을 통해 흘러나오는 불빛과 집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멀지 않아 혼례 행렬이 나타나게 될 것을 능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동양의 많은 나라에서는 혼인 예식을 밤에 행하는 풍습이 있었다.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그를 맞아 자기 집으로 데려온다. 혼례 행렬은 횃불을 앞세우고 신부집을 나와 신랑집으로 간다. 신랑의 집에서는 초대받은 손님들을 위하여 피로연을 준비한다. 그리스도께서 내려다보시던 장면 역시 한 무리가 혼례 행렬에 참가하기 위하여 행렬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었다.
신부의 집 가까이에는 흰옷을 입은 열 처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각각 불이 켜진 등과 기름을 담은 작은 병을 갖고 있었다. 모두 다 신랑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랑은 지체하였다. 한 시간이 가고 두 시간이 지났다. 기다리는 자들은 피곤해서 잠이 들고 말았다. 밤중이 되어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부르짖음이 들려 왔다. 졸고 있던 자들은 황급히 깨어 벌떡 일어났다. 그들은 횃불을 환히 밝히고 음악에 맞춰 즐거운 혼례 행렬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신랑의 말소리와 신부의 말소리를 들었다. 열 처녀는 등을 들고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 중 다섯 처녀는 등잔에 기름을 채우는 일을 등한히 했다. 그들은 그렇게 오래 지체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으므로 그러한 비상 사태를 위하여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절박하여 슬기 있는 처녀들에게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이미 병의 기름을 다 등잔에 부은 후였으므로 그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저희는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고 대답하였다.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동안에 혼인 행렬은 그들을 버려 둔 채 지나가 버렸다. 불이 켜진 등을 가진 다섯 처녀는 그 무리와 합세하여 그 행렬과 함께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문은 닫혀 버렸다. 미련한 처녀들이 피로연이 열리는 집에 다다랐을 때에 그들은 의외로 거절을 당하고 말았다. 잔치 주인은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고 하였다. 그들은 문밖 캄캄한 거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신랑을 기다리는 무리를 내려다보시면서 제자들에게 열 처녀의 이야기를 말씀하셨는 데 그들의 경험을 예로 들어 당신의 재림 바로 직전에 있을 교회의 경험을 설명하셨다.
신랑을 맞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두 종류의 처녀는 주님을 기다린다고 자칭하는 두 종류의 사람들을 대표한다. 그들을 처녀라고 부른 것은 저희가 순결한 신앙을 지킨다고 공언하기 때문이다. 등불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표한다.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기름은 성령을 표상한다. 스가랴서에도 성령이 기름으로 설명되어 있다.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깨우임 같더라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대가 있는 데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이있고 그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 데 하나는 그 주발 우편에 있고 하나는 그 좌편에 있나이다 하고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 다시 그에게 물어 가로되 금 기름을 흘려내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 가로되 이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니라"(슥 4:1-14).
두 감람나무에서 금 같은 기름이 흘러나와 금관을 통해서 등대 기름통으로 들어가고, 거기서부터 성전에 빛을 비춰 주는 금 등잔으로 들어간다. 이와같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거룩한 분들에게서 나온 성령은 당신의 사업에 헌신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진다. 기름부음을 받은 두 사람의 사명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늘로부터 온 은혜를 나누어 주는 것인데 이 천혜(天惠)만이 주의 말씀이 우리 발에 등이 되고, 우리 길에 빛이 되게 할 수 있다.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비유 가운데 열 처녀가 다 신랑을 맞기 위하여 나아갔다. 모두가 다 등과 기름 담을 그릇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그들 사이에 별다른 차이를 볼 수 없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의 재림 바로 전에 사는 교회도 그러하다. 모든 사람이 다 성경의 지식을 가지고 있고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가 가까웠다는 기별을 들었으며 그분이 오실 것을 확신하며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비유 가운데 나타나는 일들을 오늘날에도 볼 수 있다. 기다리는 시간에 우리의 마음은 시험을 받는다.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고 부르짖을 때에 준비되지 못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들은 등은 가졌으나 기름 그릇에 기름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성령이 결핍되어 있다.
하나님의 성령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만을 아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성령의 감화가 없는 진리의 이론만으로는 사람의 심령을 깨우치고 마음을 심화시킬 수 없다. 우리가 비록 성경의 말씀과 약속들에 정통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이 진리를 깊이 깨닫게 하지 않을 것 같으면 우리의 품성은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성령이 우리 마음을 밝혀 주지 않을 것 같으면 사람들은 진리와 오류를 분간할 수 없게 될 것이며, 저희는 사단의 교묘한 시험에 빠지게 될 것이다.
미련한 처녀로 대표된 계급은 외식하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진리를 존중히 여기고, 진리를 옹호해 왔으며, 또 진리를 믿는 사람들에게 매혹되었다. 그러나 저희는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지 않았다. 그들은 반석되시는 예수님 위에 떨어져 저희의 옛 성질을 깨뜨리려 하지 않았다. 이 계급은 또한 돌밭에 떨어진 씨로 묘사된 청중을 대표한다. 그들은 주저하지 아니하고 말씀은 받았으나 그 말씀의 원칙을 실천하지 않았다. 그 말씀의 감화력은 순간적이었다. 성령이 사람의 마음속에 역사하게 되고 이 역사를 당사자가 갈망하고 동의하게 될 때 그의 안에는 새로운 품성이 심어지게 된다. 그러나 미련한 처녀로 대표된 계급은 단지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행위만으로 만족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품성을 연구하지도 않고 하나님과 교제하지도 아니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할 줄도 모르고 하나님을 쳐다보고 살 줄도 모른다. 하나님께 대한 저희의 봉사는 점차 저하되어 형식화 되고 만다.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음이라" (겔 33:31). 사도 바울은 이런 상태가 예수 재림 직전에 사는 사람들의 특성이 될 것이라고 밝히 말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
이런 사람들은 위태로운 때에 평안하고 안전하다고 부르짖는 자들이다. 저희는 저희 마음을 안심시키고, 위험을 꿈에도 생각지 않는다. 저희가 저희의 혼수 상태에서 깨어났을 때에 그들의 부족을 깨닫고 다른 사람에게 가서 저희의 부족을 채워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영적 사물에 있어서는 아무도 다른 사람의 부족을 보충해 줄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는 각 사람에게 값없이 제공된다.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계 22:17)는 복음의 기별이 전파되었다. 그러나 품성은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없는 것이다. 아무도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믿을 수 없고 아무도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성령을 받을 수 없다. 아무 사람도 성령의 역사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품성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없다.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 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14:20).
품성은 위기의 때에 나타난다.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간장한 소리가 들리고 졸던 처녀들이 잠을 깨었을 때에 누가 준비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기다리는 처녀들은 나와 맞으라는 소리를 갑자기 듣게 되었다. 그 중에 어떤 이들이 이 불의의 사태를 위해 준비하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준비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와같이 지금도 뜻밖의 재난이나 죽음에 직면하게 될 어떤 사태가 생길 때에 과연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참으로 믿고 있었는지의 여부가 판명될 것이며 또 그의 마음이 은혜로 말미암아 보존되어 있는지를 드러낼 것이다. 은혜의 시기가 끝나고 최후의 큰 시련이 임하게 될 것인데 그 때 가서 심령의 부족을 채우기에는 너무 늦게 될 것이다.
열 처녀는 이 세상 역사의 저녁에 신랑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모두 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한다. 모두 다 초청을 받고 기름과 등을 가지고 있으며 모두 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 모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중 다섯은 준비되지 않았다. 그 다섯은 놀라고 당황하면서 연회장 밖에 있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갈 권리를 주장하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눅 13:26).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마 7:22). 여기에 대하여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써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 나를 떠나 가라"(눅 13:27)고 대답하신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친밀히 사귀지 못했으므로 하늘나라의 방언을 알지 못하며 하늘의 기쁨도 알지 못한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2:11).
일찍이 인간의 귀에 들린 모든 말 가운데 가장 슬픈 말은 곧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는 운명의 선고일 것이다. 그대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성령과의 교제가 혼인 잔치 때에 그대로 하여금 기뻐하는 무리에 참가할 수 있게 해 줄 유일한 것이다. 성령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는 그대가 그 자리에 참여할 수 없다. 그 빛이 소경의 눈에 보이게 될 것이며, 그 아름다운 음악이 귀머거리의 귀에는 들리게 될 것이지만 그 곳의 사랑과 기쁨은 세속으로 마비된 마음에 아무런 즐거움도 일으킬 수 없을 것이다. 그대 자신이 천국에 들어가 어울려 살기에는 부적합하기 때문에 그대는 천국에서 제외될 것이다.
우리는 "보라 신랑이로다"라는 소리를 듣고 비로소 깨어나 텅빈 기름병을 잡고 기름을 넣으려고 하는 그런 방법으로는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할 수 없다. 우리가 이 지상에 살 동안 그리스도를 멀리 떠난 생애를 살았다면 하늘에 가서도 그분과 교제하며 살기에는 합당치 못할 것이다.
이 비유를 보면 슬기 있는 처녀들은 등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릇에 기름을 담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등불은 기다리던 그 밤 동안 조금도 흐려지지 않고 환하게 불타 오르고 있었다. 그 등불은 신랑을 축하하기 위하여 비추는 불빛을 더욱 환하게 해 주었다. 어두움 속에서 비치는 이 등불은 신랑이 혼인 잔치를 위하여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환하게 비추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도 성령을 통하여 어두운 이 세상에 빛을 비춰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시며 그것을 받는 자의 생애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된다. 성령은 그들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을 심어 주심으로써 사람들 속에 하나님의 속성을 계발시켜 준다. 그분의 영광의 빛인 그분의 품성은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게서 비춰나와야 한다. 그리하여 저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집으로 가는 신랑의 길을 비춰주며, 하늘 도성으로 가는 길과 어린 양의 혼인 잔치로 가는 길을 밝혀주게 된다.
신랑이 온 때는 가장 캄캄한 때, 즉 밤중이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의 재림도 이 지상 역사의 가장 캄캄한 시대에 있을 것이다. 노아와 롯 시대의 형편은 인자가 오시기 직전의 세상 형편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 시대를 예언하는 성경절들은 사단이 모든 힘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살후 2:9, 10) 활동할 것을 말하고 있다. 그의 활동은 마지막 날에 급속도로 증가하는 어둠과 오류와 이단과 미혹으로 명백해지고 있다. 사단은 단지 세상을 사로잡을 뿐만 아니라 그의 속임수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자처하는 교회들을 암암리에 부패시키고 있다. 큰 배도는 점점 격화되어 광선이 통과할 수 없는 총담같이 캄캄한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때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진리를 위한 시련의 밤이 될 것이며, 슬픔의 밤과 핍박의 밤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어두운 밤으로부터 하나님의 빛이 비치게 될 것이다.
그는 "어두운 데서 빛이 비치"(고후 4:3)게 하신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창 1:2) 을 때에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창 1:3)었다. 이와같이 영적으로 어두운 밤에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 있으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고 하신다.
성경은 또 이렇게 말한다.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사 60:2)라.
이 세상을 덮고 있는 어두움은 하나님께 대한 오해의 어두움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지식을 잃어버리고 있다. 하나님의 품성은 잘못 이해되고 그릇 해석되고 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기별이 전해져야 한다. 이 기별은 광범위한 감화력과 구원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품성이 널리 알려지게 해야 한다. 이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의 빛 곧 그분의 인자와, 긍휼과, 진리의 빛을 비춰 주어야 한다.
이 사업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다음의 말씀 중에 간단하게 요약되어 있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릴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사 40:9, 10).
신랑의 오심을 기다리는 자들은 백성들에게 "너희 하나님을 보라"고 외쳐야 한다. 세상에 비칠 마지막 자비의 빛 곧 세상에 전파되어야 할 마지막 긍휼의 기별은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 그들은 저희의 생애와 품성을 통하여 저희를 위하여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야 한다.
의의 태양 광선이 선행 곧 진실한 말과 거룩한 행실을 통하여 비춰지도록 되어 있다.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의 빛으로써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하여 오셨다. 그분에 대하여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그분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행 10:38),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었다. 그분은 나사렛 회당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 19). 이것은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맡기신 사업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4, 16)고 그분은 말씀하셨다.
이 일은 이사야 선지자로 말미암아 아래와 같이 묘사되었다.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사 58:7, 8).
이와같이 하나님의 영광이 영적으로 어두운 한밤중에 당신의 교회를 통하여 비춰짐으로써 낙담한 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슬퍼하는 자들을 위로해 준다.
사방에서 온갖 슬픔으로 통곡하는 소리가 들인다. 궁핍하고 딱한 처지에 있는 자들이 사방에 널려 있다. 인생의 고난과 불행을 덜어 주고 구제해 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실천은 설교만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우리는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주며, 집 없는 자를 맞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보다 더 큰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영혼의 요구는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만족시킬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거룩한 동정심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막혔던, 그리스도의 것과 같은 진지한 사랑의 샘물이 터져 나오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질로써 궁핍한 자들을 도와주기를 요구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쾌활한 모습과, 희망을 주는 말과, 친절한 악수로 도와 주기를 요구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병자들을 고쳐 주실 때에 당신의 손을 그들에게 얹으셨다. 이와같이 우리도 우리가 도와주려는 그 대상자와 친밀해져야 한다.
세상에는 절망 상태에 있는 자들이 많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밝은 태양빛을 비춰 주라. 용기를 잃은 자들도 많이 있다. 그들에게는 용기를 줄 만한 말을 해 주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 생명의 떡이 요구되는 자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성경 말씀을 읽어 주라. 세상의 유향으로도 고칠 수 없고, 의사도 고칠 수 없는 영적으로 병든 자들이 많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을 예수께로 데려오라. 그들에게 길르앗에 유향이 있고 크신 의원이 있다고 말해 주라.
빛은 축복이 되나니 곧 감사치 아니하고, 거룩지도 아니하고, 부패된 세상에 그의 보화를 쏟아 붓는 우주적인 축복이다. 의의 태양의 빛도 그러하다. 죄와 슬픔과 고통의 흑암에 둘러싸인 이 지구를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지식의 빛으로 비춰야 한다. 하늘 보좌에서 비치는 빛은 종파나 인종이나 계급을 구별하지 않고 비친다.
소망과 자비의 기별은 땅 끝까지 전해져야 한다.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그의 손을 내밀어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고 그와 화친할 수 있다. 이교도들이 더 이상 캄캄한 어두움 속에 그대로 갇혀 있도록 놔 두지 말라. 의로운 해의 밝은 광선 앞에서는 어떤 칠흑 같은 어두움도 사라져버린다. 음부의 권세는 이미 정복되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자기가 받지 못한 것을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없다. 하나님의 사업에는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은 하나도 없다.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을 위한 빛의 전달자가 될 수 없다. 끊임없이 밝은 빛을 내게 하는 것은 하늘의 사자들이 금 그릇에 있는 금 기름을 금관(金管)을 통하여 성소의 등잔에 넣어 주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빛을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게 하는 것은 곧 끊임없이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연합된 모든 사람 속에는 사랑의 금 기름이 값없이 부어져서 그 사랑의 빛이 선행과 하나님을 위한 진실하고 참된 봉사를 통해서 반사하게 된다.
크고 헤아릴 수 없는 성령의 선물중에는 하늘의 풍성한 능력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사람에게로 흘러내려오지 않는 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제한하시기 때문이 아니다. 누구나 받고자 하면 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저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귀한 은혜와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부요함이 세상에 나누어질 수 있는 산 통로가 될 특권을 가졌다. 그리스도께서는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 당신의 영과 품성을 대표할 자들을 가장 크게 원하신다. 사람을 통하여 구주의 사랑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보다 더 절실한 요구는 없다. 온 하늘은 사람의 마음에 즐거움과 축복이 될 거룩한 기름을 부어 줄 수 있는 통로의 역할을 할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가 임마누엘의 영광을 가지고 세상의 빛이 되신 그분의 빛을 비추고 변화된 단체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온갖 필요한 준비를 다하셨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빛과 평화의 영적 분위기로 둘러싸이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시다. 그는 우리가 우리의 생애 가운데서 당신의 기쁨을 나타내기를 원하신다.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신다는 증거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서 흘러나오는 사실로 증명될 것이다.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헌신한 사람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게 될 것이다.
의로운 해는 그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말 4:2). 이와같이 모든 참된 제자들로부터 생명과 용기와 도움과 참된 치료의 감화가 흘러나와야 한다.
그리스도교는 죄를 사하는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리의 죄를 제거한 다음에 그 빈자리를 성령의 은혜로 채운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또 신령한 빛으로 마음을 밝히고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빈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심으로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심령을 다스릴 때에 그것은 순결하게 되고 죄에서 해방된다. 그리하여 복음의 계획의 영광과 충만함과 완전함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완성된다. 사람이 구주를 받아들이게 될 때, 완전한 평화와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확신의 빛을 반영하게 된다. 우리의 생활 속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품성의 아름다움과 향기로 하나님께서 진실로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구주로써 보내셨다는 것을 증거하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빛을 비추는 일에 힘쓰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너희 빛을 비추라고 하신다. 만일 그대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을 것 같으면 빛은 그대에게 있다. 장애물들을 제거하라. 그리하면 주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이며, 그것이 어둠을 뚫고 들어가 어둠을 흩어 버릴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감화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빛을 비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인성 속에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심으로써 하늘이 인간에게 매우 가까이 오도록 하신다. 그리하여 내적 성전을 단장하는 아름다움이 구주께서 거하시는 모든 사람의 심령 속에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내재하시는 구주의 영광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이와같이 하여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은 많은 영혼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찬송과 감사의 조류(潮流)를 타고 그 영광이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이 기별은 신랑을 맞으러 나가는 자들에게 전하여져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권능과 큰 영광으로 오신다. 그분은 당신의 영광과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신다. 그분은 모든 거룩한 천사들과 같이 오신다. 온 세상이 흑암 가운데 있을 때에 성도들이 거하는 모든 곳에는 빛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영광의 빛을 누구보다도 먼저 보게 될 것이다. 그의 혁혁한 빛으로 부터 전혀 오점이 없는 밝은 빛이 비취게 될 것이며, 구속자이신 그분은 당신을 섬기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경배를 받으시게 될 것이다. 악한 자들이 그리스도를 피하여 도망하는 반면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기뻐할 것이다. 욥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를 바라보면서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욥 19:27)고 말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신실한 제자들에게 날마다 만나는 매우 친밀한 친구가 되셨다. 그들은 하나님과 매우 긴밀한 접촉을 가지고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애를 살았다. 저희 위에 여호와의 영광이 비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저들에게서 반사되었다. 이제 저희는 위엄을 갖추고 나타나시는 만왕의 왕의 광채와 영광의 빛 가운데서 즐거워 한다. 그들은 이미 하늘과 어울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미 그들은 마음으로 하늘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머리를 들고 저희 위에 비치는 의의 태양 광선을 받으면서 저희의 구속이 가까이 임함을 알고 크게 기뻐하면서 신랑을 맞으러 나간다. 저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사 25:9)라고.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계 19:6-9), "그는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니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은 부르심을 입고 빼심을 얻고 진실한 자니"(계 17:14, 구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