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빚’에서 ‘사랑의 빛’으로!
지난 2019년부터 교구설정 100주년을 향한 새로운 복음화란 계획에 따라 우리 교구는 신앙생활의 5가지 핵심요소(성경-교회의 가르침-성찬례-기도-사랑실천)를 각각 매년마다 기억하고 생활화하고 있다. 이 중에서 올해 마지막 주제인 사랑실천은 신앙생활의 결실이자 열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하느님 사랑을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 알고, 성찬례와 기도를 통해 체험했다면, 이제 그 사랑은 다른 누군가에게 전하고 나누어짐으로써 꽃 피워져야 한다.
그렇다면 사랑실천을 위해 가장 첫 번째로 필요한 일이 뭘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고귀한 신원, 곧 ‘하느님께 선택받고, 사랑받는 사람’ 임을 제대로 깨닫는 일이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는 사랑의 계명을 주셨는데, 여기서 기억할 점은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 이전에, ‘내가 너희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먼저 알려주셨다는 것이다(1요한 4,10.19 참조).
“사랑은 주는 것”(1969)이란 노래 가사 중 일부는 이렇다. “사랑은 주는 것, 아낌없이 주는 것. 주었다가 다시 찾지 못해도(…) 미련 없이 주는 것. 사랑은 주는 것, 영원히 주는 것.” 실제로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요한 3,16),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로마 8,32)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셨다. 설령 다시 찾지 못해도, 돌아오지 않아도, 하느님 사랑은 우리에게 영원히 무조건적으로 베풀어졌고, 어떤 상황에도 결코 취소-철회되지 않는다. 이 사실을 복음, 곧 기쁜 소식으로 깨닫고, 확신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사랑실천은 단순한 계명 준수가 아니라, ‘이미’ 넘치도록 받은 하느님 사랑에 대한 응답이다(『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항 참조).
이처럼 사랑은 한쪽의 일방적인 요구나 강요가 아닌, 서로 간의 주고받음 속에 이루어지는 상호 응답으로 이루어진다. 예컨대 누군가로부터 진심이 담긴 선물을 받은 이는 자연스러운 응답으로 상대방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한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심으로써 우리에게 구원의 큰 선물을 주셨다면, 우리의 응답은 어떠해야 할까? 내가 ‘먼저-이미’ 주님께 사랑의 빚을 졌으니, 그 사랑을 나 역시 다른 누군가에게 되갚는 사랑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예수님은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마태 11,19)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당시 가장 가난하고 사람 취급받지 못하며 사회에서 철저히 소외된 이들의 벗이 되어주셨다. 나아가 최후심판의 기준을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라고 선언하시며, 당신을 가장 보잘것없는 이와 동일시하셨다. 이렇게 본다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 실천은 단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넘어서서, 오늘날의 가장 작은 이, 곧 ‘또 하나의 작은 예수’를 돕고, 살리는 일이요(『교회헌장』 8 참조), 무엇보다 ‘사랑의 빚’에서 ‘사랑의 빛’으로 나아가는 위대한 사랑의 행위이다!
- 윤태종 토마스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