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5장 포도나무의 비유
유명한 이야기이지요. 포도나무의 비유가 됩니다. 요한복음 15장 1절을 보겠습니다. 먼저 15장 1절을 보면서 그동안 계속 진행되었던 요한복음의 특징 중 하나인 "나는 무엇이다"라는 '에고 에이미' 선언을 일단 마무리하고 15장 본문 자체로 들어가도록 하지요.
15장 1절, "나는 참포도나무요." 이 선언으로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7대 자기 선언이 마무리됩니다. 전체적으로 다시 한번 언급해 볼까요? 요한복음 6장 35절에서 "나는 생명의 떡이요", 8장 12절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요", 10장 7절에서 "나는 양의 문이라", 10장 11절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 11장 25절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14장 6절에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로 "나는 참포도나무요"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일곱 가지 자기 선언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요한복음 1장부터 11장까지에서 7대 표적을 보았지요. 요한복음은 숫자 7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7대 표적이 나타나고 7대 자기 선언이 나타나는데,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 영어로 'I am'인 이 선언은 근원적으로 구약 성경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호렙산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I am who I am)"라고 하셨을 때의 선언입니다. 가장 쉬운 말로 하면 "나는 나다"라는 의미로 전달되는 것이 가장 정확하지요. 바로 그 'I am' 공식으로 예수께서 당신의 신원, 즉 정체성을 정확하게 표현하신 내용들을 요한이 일곱 가지로 정리하여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바로 그 마지막 일곱 번째가 요한복음 15장 1절의 "나는 참포도나무요"로 나타납니다.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포도나무 비유는 15장 1절부터 11절까지 이어집니다. 예수께서 포도나무이고 그의 제자들은 가지라는 비유지요. 이 비유로 예수께서 가르치시려는 핵심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로 인한 열매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5장 1절부터 11절의 포도나무 비유의 핵심을 이해하려면 계속해서 반복되는 두 가지 기본 단어를 포착해야 합니다. 그 두 단어의 개념을 포착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전하시려는 예수와 제자들의 관계, 더 정확히 말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듭니다.
그러면 1절부터 11절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두 단어가 무엇인지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본문을 읽겠습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본문 4절에서 "붙어 있지 아니하면"이라고 했는데, '붙어 있다'라는 말이 사실 '내 안에 거하라'는 동사와 헬라어로 똑같습니다. 단지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이기 때문에 '붙어 있다'라고 번역했을 뿐, 같은 '메노'라는 헬라어 동사입니다. 본문을 읽어 보니 끊임없이 반복되는 핵심 단어가 무엇인가요?
첫째는 '거하라'는 단어이고, 또 하나는 '열매'라는 단어이지요. 물론 '안에'라는 단어도 계속 반복됩니다. 주님과 우리와의 기본적인 관계를 나무와 가지로 설정한 다음, 그 관계를 나타내 주는 개념으로 '안에 거함'을 제시하셨습니다. '안에'는 헬라어로 '엔(en)', '거하다'는 '메노(meno)'입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안에 거한다'고 묘사하고, 그 관계의 결실로서 '열매'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포도나무 비유를 이해하는 핵심은 '안에 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이해하고, 그렇게 거할 때 맺어지는 '열매'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가지인데, 그 관계를 풀어 주는 말이 '거한다'입니다.
우선 15장 1절을 보시지요. "나는 참포도나무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냥 포도나무라 하지 않고 '참포도나무'라고 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도 포도나무의 종류를 구분하여 표현했습니다. 히브리 원어로도 종류에 따라 구분하는 단어가 다릅니다. 이사야 5장 2절을 보시지요.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포도나무 앞에 '극상품'을 붙였습니다. 극상품 포도나무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소레크'인데, 구약에서 세 번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또 다른 경우로 예레미야 2장 21절을 보시지요.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여기서 '귀한 포도나무'와 이사야 5장 2절의 '극상품 포도나무'는 모두 똑같은 히브리어 '소레크'입니다. 그런데 구약에서 이 두 경우는 모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기대하셨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본문 모두 하나님께서 기대하셨던 극상품 포도나무가 들포도를 맺으며 실패했음을 나타냅니다. 이사야 5장에서는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 즉 '바우쉼'이라는 악취 나는 나쁜 열매를 맺었다고 탄식합니다. 구약의 참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적용되었으나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 예수께서 "내가 참포도나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두셨던 기대가 좌절된 상황에서, 메시아가 오셔서 온전한 참포도나무를 이루신다는 의미가 전제된 표현입니다.
이어지는 표현은 "내 아버지는 농부라"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농부로 묘사하심으로써 그리스도와 성도 간 관계의 모든 맥락이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형성됨을 먼저 선언하십니다.
2절부터 주님과 제자들의 관계에 대한 묘사가 본격화됩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열매를 맺는 가지를 더 열매 맺게 하기 위해 '깨끗하게 하신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헬라어 원어 '카다이로'는 본래 깨끗하게 씻는다는 뜻이지만, 원예 문맥에서는 나무를 전정(가지치기)한다는 뜻입니다.
농사를 지어 보면 풍성한 결실을 얻기 위해 반드시 잔가지를 잘라내야 합니다. 이 전지 작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과일의 품질이 결정됩니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볼품없는 열매만 맺히거나 제대로 결실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 한글 성경 번역본은 이를 '다듬으시느니라'로 번역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열매를 맺기 위한 핵심 작업 중 하나가 바로 이 가지치기, 즉 다듬으심입니다. 잘라내 주어야 열매가 더 크고 풍성하게 맺힙니다.
그 다듬으심이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는 타고난 성질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됨됨이를 말할 때 가장 고상하게는 '성품', 거칠게는 '성질', 중립적으로는 '성격'이라고 합니다. 성품은 좋다고 하고 성질은 더럽다고 하지요.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성질은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으로 다듬어져야 합니다. 고난과 시련을 겪으며 깨어지고 깎여 나갈 때, 성질이 다듬어져 성숙한 성품의 열매가 맺힙니다. 하나님은 전정 작업을 통해 우리를 깨끗하게 다듬어 가십니다.
그런데 3절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신앙의 출발점, 즉 칭의와 세례(침례)의 경험을 가리킵니다. 이미 말씀으로 씻음을 받았으니 이제 "내 안에 거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7절에 힌트가 나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곧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 안에 머물고 말씀이 우리 삶 중심에 자리 잡는 것입니다. 성경을 단순한 문학작품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몰입하여 살아가는 경험입니다.
9절에서는 의미가 더 깊어집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은 곧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 거하는 삶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삶 속에서 사랑으로 구현되어야 합니다.
그 사랑을 어떻게 실현합니까? 10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그리고 그 계명이 무엇인지 12절에서 밝히십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예수께서 말씀하신 새 계명은 단순한 조문 준수를 넘어, 계명의 본질인 '사랑'의 실천입니다. 여기서 하나의 귀결이 나타납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은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고,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은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며,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맺어지는 열매는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첫머리에 '사랑'이 나옵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열매'는 복수가 아니라 단수입니다. 사랑이라는 하나의 본질이 희락, 화평, 오래 참음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는 것입니다. 결국 요한복음 15장에서 주님이 요구하시는 궁극적인 열매는 '사랑'입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여 계명을 지키면, 우리 삶에 사랑이라는 열매가 풍성해집니다.
13절은 그 사랑의 절정을 보여 줍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친구'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사랑을 뜻하는 '필로스'에서 왔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심으로써 완전한 친구이자 참된 사랑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17절에서 다시 결론짓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18절부터 27절은 앞으로 닥칠 박해에 대한 예고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고 주님의 택하심을 입었기 때문에, 죄악 된 세상은 주님의 친구 된 제자들을 미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20절에서 주님은 위로를 건네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요한복음 13장 16절 세족식 때 하셨던 말씀을 다시 상기시키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세상이 주인인 예수를 핍박하여 십자가에 못 박았듯이 제자들도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종은 주인보다 크지 않으므로, 제자들이 겪을 고난이 주님이 감당하신 십자가의 고통보다 크지 않을 것임을 기억하고 담대히 이겨내라는 격려입니다.
주님은 세상이 하나님 아버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유 없이 미워한다고 하시며 시편 말씀을 인용하십니다(시 35:19, 69:4). 그리고 진리의 성령, 즉 보혜사가 오시면 그분이 주님을 증언하실 것이며, 처음부터 함께했던 제자들도 담대히 증언하게 될 것임을 약속하시며 말씀을 맺으십니다.
핵심 요약 정리
참포도나무 선언(에고 에이미): 구약에서 실패했던 포도나무(이스라엘)의 모형을 완성하시며, 예수님 자신이 참포도나무요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이심을 선언함.
가지치기(정결케 하심): 열매를 더 많이 맺게 하려고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삶의 모난 성질과 불필요한 가지들을 다듬으심.
거함의 구체적 의미: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은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며, 이는 곧 '사랑' 안에 거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하는 삶으로 연결됨.
비유의 궁극적 열매: 주님의 가지로서 맺어야 할 본질적인 열매는 성령의 첫 열매이자 율법의 완성인 '사랑'임.
세상의 박해와 위로: 제자들이 세상의 미움과 박해를 받더라도, 주인이신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 고난보다 크지 않음을 기억하며 성령의 도우심으로 끝까지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