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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당 전경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수성당 전경이다. 수성당은 개양할미로 불리는 여신을 모시는 제당으로, 부안 지역 풍어와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며 제를 모시는 곳이다
수성당, 용두산 절벽의 이 작은 오두막은 개양할미의 집이다.
개양할미는 천 년이 넘도록 변산 바다를 다스리는 여해신女海神이다.
조그만 숲속 두 평도 안 되는 이 집은 인간의 역사를 넘어 해신의 역사를 보여준다.
변산의 어부들이 조상들에게서 들어온 이야기에 따르면, 개양할미는 눈매가 우렁우렁하고 입매는 다부지게 생긴 여장부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어찌나 덩치가 큰지 서해 어디를 들어가도 겨우 발목을 적실뿐이라고 한다.
개양할미는 딸 8자매를 두었는데 그 중 일곱은 우리나라 7 산 바다 곳곳에 시집을 보내 각각의 바다를 수호하게 하였다. 막내딸 하나만 데리고 천 년이 넘도록 변산 바다 곳곳에서 물 깊이를 가늠하고 파도를 조절하여 어부들의 풍어를 돕고 생명을 보호해 왔다.
용두산 절벽은 그 자체가 천 년 세월 개양할미를 모셔온 여러 시기 당집들의 잔해더미라고 할 수 있다.
그 오랫동안 당집이 세월을 못 이겨서, 혹은 어느 해 맹렬했던 바람을 못견뎌 주저앉으면 그 위에 또 다른 세월이 두터운 흙으로 쌓였다.
그럼 또 어느 해엔가 어부들은 바로 그 자리에 새 당집을 지어 개양할미를 모셨다. 그러다 다시 무너지고, 덮여 쌓이고 …, 그 위에 새로 짓는 와중 개양할미가 기거했던 그 많은 당집의 흔적은 퇴적층에 켜켜이 들어앉게 되었다.
지층이 수수만 년 동안의 인류 역사를 품어 보여주는 것과 같은 유적이다.
월명암 전경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에 있는 월명암 전경이다. 월명암은 대웅전, 관음전, 인법당, 범종각, 운해당[요사채], 수각, 기타 월상원[요사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항 전 어부들이 옹이진 손끝이 닳도록 풍어를 빌고, 폭풍 치는 날 아낙들이 조각배 위 남정네의 목숨을 빌던 애간장의 유적. 못 먹어 부황 든 채 죽은 첫째 아이 극락왕생하라고, 횟배 앓는 둘째 놈은 제 형 꼴 나지말라고 눈물로 빌던 민초들의 유적이다.
이 유적은 지금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변산 바다 가까이에서 물빛을 바라보며 소원을 비는곳이 수성당이라면 노을 지는 바다의 법음을 듣고 싶은 사람이 가야 할 곳은 월명암이다.
월명암에 가려면 우선, 능가산의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 한다.
울울창창한 나무 밑 짙은 그늘 속에서 매미소리가 나인지 내가 매미 소리인지, 그 청량함에 취해팍팍함도 잊고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아! 하는 탄성이내 안과 밖에서 동시에 울린다.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월명암의 비경을 만난 것이다.
이러한 비경에 전설이 없을 수 없다.
한데 월명암의 전설 앞에서는 이곳 풍광도 빛을 잃는다.
전설은 한층 더 아름답고 불향 깊은 까닭이다.
“스님, 부디 제 미천한 딸자식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아니면 저 엽렵치 못한 것과 이 염치없는 놈함께 죽여주십시오.
부탁입니다, 스님."
부설스님은 무구원의 간청을 듣고 잠시 마음을고요히 하며 앉아있었다.
스님은 도반인 영조, 영희와 함께 지리산과 능가산 등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며 수행하고 이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오대산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무구원은 오랜 수행을 해온 세 분 스님을 모시게 된 것을 무척이나 기뻐하며 밤새 불법을 청하여 들었다.
부설의 법문을 듣고 언어장애인이었던 무구원의 딸 묘화, 말문이 열렸다. 그 영험 후에 나온 묘화의 기막힌 말.
“이 몸 비록 한 없이 미욱하오나 스님을 제 지아비로 모시고 싶사옵니다."
부설이 단호히 거절하자 묘화는 제 목숨을 끊으려 하였다.
그 생사를 결하는 간청 앞에서 부설은 새삼 보살행의 비의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삼천대천세계에 절집은 무어며 사바는 또 무엇인가.
중생 제도 보살행에 승이 어디 있고 속은 또 어디인가. 지금 여기 내가 아니면 그 누가 있어
저 처자와 함께 지옥에 들리.'
도반들이 오대산으로 떠날 때 부설은 남아 묘화와 혼인하고 아들 등운과 딸 월명을 낳았다.
이들은비록 세속에서 살았지만, 늘 청정심을 유지하며 수도하기에 추호도 게으르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등운과 월명이 장성했을 때였다.
어느 날인가 부설은 아들 등운에게 질그릇 병 세개에 물을 가득 채워서 대들보 위에 매달아 두게 하였다.
예전에 오대산으로 떠났던 영조와 영희스님이부설을 찾아온 건 바로 그날이었다.
부설은 자신의 두 도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 매단 물병을 깨뜨리면 병 안의 물이 쏟아지겠습니까?
아니면 그대로 있겠습니까?” “그야......”
스님들은 각각 하나씩 물병을 돌로 쳐서 깨뜨렸다.
당연히 물은 아래로 쏟아졌다.
하나 부설이 하나 남은 물병을 쳐서 깨뜨리자, 그 안에 있던 물은 그대로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영조와 영희스님은 깜짝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부설은 이렇게 말했다.
“환신幻身이 생멸生滅을 따라서 옮는 것은 병이 부서지는 것과 같고 진성이 본래 영명하여 상주것은 물이 허공에 달린 것과 같습니다."
육신은 나고 죽음에 따라 유한하며 부질없는 것이지만 우리 안의 청정한 본래 성품은 생멸에 이끌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부설은 이렇게 자신의 경지를 드러낸 다음, 단정히 앉아 열반에 들었다.
그 후 부설의 아들 등운은 충청도 일원에서 법을 크게 펼친 조사가 되었고, 묘화부인은 부설원을 세우고 용맹정진하다가 입적하였다.
딸 월명 역시 부안에 암자를짓고 평생 수도하며 살아갔다.
월명암이 바로 그 암자다.
월명암에 가게 되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먼저 관음전에 들어 삼배를 올린 후 낙조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 낙조 안에서 우리는 해수 관음보살을 만날 수 있다.
붉은 바다 저편에서 다가와 나의, 그리고 당신의 어깨를 어루만지는 관음보살님. 우리의 온몸은 발그레해진다.
그 아름다운 가피 속에서 우리는 찬탄한다. 지금, 이 순간 이대로 얼마나 고마운 삶인가. 지금 이대로 얼마나 희망하는가?
그리고, 긴긴 세월 변산 바다를 지켜온 개양할미의 그 따스한 미소는 해수 관음보살의 또 다른 얼굴이었음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