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 독산성(세마대)
2024년 09월 14일(일요일)
산행코스 : 독산성산자락(17:35) - 보적사(17:44) - 북문(18:00) - 주차장(18:30) - 양산봉(18:40) - 세마대(18:55) - 독산성산자락(19:20)
산행거리 : 6.2km
세마역 1번 출구에서 9번, 31번 버스로 세마산업단지(보적사 입구) 하차
세마산업단지에서 바라본 독산성
독산성 들머리
독산성 390m, 세마대지공용주차장 440m, 휴게공간 590m, 양산봉 1.15km
좌측 남문, 우측 동문,보적사
휴게공간
주차장 역할을 하는 휴게공간과 우측 저멀리 양산봉이 보입니다.
세마사 석주
양산봉 560m, 산림욕장 710m, 숲속교실 100m, 보적사 400m
대한불교조계종 백제고찰독산성세마사(大韓佛敎 曹溪宗 百濟古刹禿山城洗馬寺)
"하늘 아래 땅 위에 나 홀로 높다 하신 부처님 자비 광명 온누리에 가득하소서"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사적140호)
오산 독산성(禿山城)과 세마대지(洗馬臺址)는 1,095m의 데뫼식 산성과 산 정상부에 복원되어 있는 권율 장군의 승정과 관련된 장대를 말합니다. 독산성은 독성산성이라고도 불리는데, 오산과 수원, 화성에 걸쳐 펼쳐진 평야 한가운데 우뚝 솟아 주변을 두루 살필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독산성은 백제 시대에 처음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통일 신라와 고려 시대에도 지속적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임진왜란때 권율 장군의 승전으로 군사적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여주 파산성, 용진 토성 등과 함께 도성을 방어하는데 중요한 근거지가 되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임진왜란 중인 선조 27년(1594)에 경기도 관찰사 유근이 백성들과 함께 4일 만에 고쳐 지었으며, 임진왜란 이후 선조 35년(1502)에 방어사 변옹성이 석성으로 다시 지었습니다. 정조 16년(1792)에는 약70일간 새로 짓는 것과 비슷하게 큰 규모로 공사를 했고, 정조 20년(1796) 수성 화성이 완공된 이후 협수 체제를 구축하였습니다.
산꼭대기에는 세마대가 복원되어 있으며, 동문 안에 보적사가 있습니다. 내부시설로 성문 5개, 치 8개, 우물1개, 수로1개가 남아 있습니다.
동문(東門)
동문은 평거식 성문으로 천장석과 바닥에 성문을 고정시켰던 문확석이 각각 두 개씩 남아있습니다.
'화성지'의 기록에 따르면 문루와 이름이 없습니다. 동문은 사람만 다니던 문으로 성문 안쪽에 보적사가 있습니다. 1982년에 정비하였습니다.
동문 안쪽
독산성에서 바라본 좌측 양산봉, 동탄 방향
보적사(寶積寺)
이 사찰은 삼국시대에 독산성을 축성한 후 성내인 현재의 터에 전승을 기원하기 위해 창건된 이래 여러 차례의 전란으로 중건을 거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내에는 조선22대 정조가 용주사를 건립할 당시 재건되었던 것으로 전하던 주 건물인 약사전과 요사3동이 있었으나, 약사전은 약사여래상을 안치하고 정면3칸(6.5m), 측면2칸(3.97m)의 굴도리 집형에 단청이 섬세한 겹처마 팔작지붕 약식이던 것을 1987년 사적의 경관에 조화를 이룰수 있도록 정면3칸(9.0m), 측면2칸(5.7m)의 방풍판을 설치한 맞배지붕 양식으로 중개축하였습니다.
대웅전(大雄殿)
대웅전은 1920년 주지였던 주대식스님이 지었다고 합니다.
전면에 걸린 네개의 주련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諸惡莫作 (제악막작) 악한 일을 저지르지 말고
衆善奉行 (중선봉행) 선한 일을 받들어 행하며
自淨其意 (자정기의) 스스로 마음을 깨끗이 하라
是諸佛敎 (시제불교) 그것이 곧 부처님의 가르침이니라
대웅전(大雄殿) 편액
도광정운(道光正云)스님이 쓴 대웅전 편액 좌측에 작은 글씨로 丁卯年 六月 道光 書(정묘년(1987) 6월 도광 서)라고 쓰여 있습니다.
석가모니불을 중앙에 약사여래불과 아미타불이 함께 하는 삼세불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중앙 석가모니불, 좌측부터 약사여래불, 보현보살,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북동1치
동문과 북문 사이의 북동2치 전망대
성벽 중앙에 북문이 보입니다.
태행산, 일진전기
병점 방향
융건릉 , 용주사와 그 뒤로 수리산, 삼성산, 관악산, 청계산, 백운산, 광교산이
양산봉과 좌측 저멀리 백운산, 광교산, 수원시내가 보입니다.
북문 안쪽
북문(北門)
북문은 평거식 성문으로 천장석과 바닥에 성문을 고정시켰던 문확석이 각각 두개씩 남아 있습니다.
'화성지(華城志) '의 기록에 따르면 문루와 이름이 없고 사람만 다니던 문입니다. 1982년에 정비하였습니다.
*평거식성문 : 양쪽 벽 위에 장대석이나 판석을 수평상으로 겊져 방형의 통로를 만든 성문
*문확석 : 문짝을 여당을 때 문짝이 달려 있게 하는 것
*문루 : 궁문, 성문, 지방관청의 바깥문 등의 위에 지은 건물
북문 문확석(門確石)
융건릉, 용주사 그 뒤로 수리산, 삼성산, 관악산, 청계산, 백운산, 광교산
북서치
서봉산, 건달산, 화성시 정남면 방향
서문 안쪽
양산봉 1.3km, 보적사 0.3km
서문(西門)
서문은 남문과 함께 독산성의 주 출입구 역할을 하였습니다. 정조14년(1790) 독산성에 행차한 정조가 서문을 통해 출입하였습니다.
이 문은 순조 4년(1804) 현륭원의 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폐쇄되었습니다. 파손되어 있던 것을 1983년에 복원하여 정비하였으며, 바닥에 성문을 고정시켰던 문확석 2개가 남아 있습니다.
남서1치
이편한세상오산세교아파트, 학봉
학봉, 노적봉과 장애학생이 특수교육을 받는 성심학교가 보입니다.
서오산JC 방향
황구지천이 오산화성고속도로 옆으로 흘러갑니다.
당겨본 태행산
태행지맥
화성시 봉담읍 시가지, 일진전기가 보입니다.
수리산 방향
수로(水路)
수로 및 수구는 성안의 물을 빼고 생활 하수를 배출하기 위한 것으로 길리150cm, 폭 50cm이며, 바닥에는 법돌이 깔려 있고덮개들은 일부만 남아 있습니다.
수로와 연결된 수구는 높이 52cm, 폭 45cm로 서문과 암문 사이의 성벽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수구(水口)
암문 안쪽
암문(暗門)
암문은 평거식 성문으로 바닥에 성문을 고정시켰던 문확석 2개가 남아 있습니다.
이 문은 순조 4년 (1804)에 현륭원의 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서문을 폐쇄하는 대신 새로 지은 성문입니다. 1985년에 복원하여 정비하였고, 이후 2010년 개거식 성문을 평거식 성문으로 복원하였습니다.
남문 안쪽
남문(南門)
남문은 독산성의 정문으로 진남루(鎭南樓)라는 문루(門樓)가 있었습니다. 1831년 편찬된 '화성지'의 기록에 따르면 문루의 규모는 6칸이었으며, 남문은 영조, 정조, 순조 때 고쳐 지었다고 합니다. 이 문으로는 말과 소가 다닐 수 있었으며 독산성의 주 출입구 역할을 하였습니다. 지금의 모습은 파손되어 있던 것을 1979년에 복원하여 정비한 것이며, 바닥에 성문을 고정시켰던 문확석 2개가 남아 있습니다.
남문 문확석(문을 고정시키는 돌)
뒤돌아본 남문과 오산세교아파트, 학봉, 노적봉이 보입니다.
세마역 방향
안성 천덕산 방향
당겨본 안성 천덕산
여계산, 석산
오산시공동묘지가 있는 곳입니다.
오산세교아파트, 학봉, 노적봉이 보입니다.
노적봉
백운산, 광교산, 양산봉, 동탄
당겨본 백운산, 광교산
동탄방면
메타폴리스아파트(66층) 4동이 보입니다.
오산대 방향
부적사
주차장인 휴게공간을 가로 질러 양산봉으로
휴게공간 130m, 양산봉 430m, 유아숲체험원 180m
체력단련장
양산봉 0.4km, 극기훈련장 0.2km
양산봉 160m, 독산선 820m, 휴게공간 400m
중앙으로 직진하면 양산봉입니다.
양산봉 정상이 보입니다.
양산봉
한신대학교 480m, 휴게공간 560m, 독산성 980m, 늘푸른아파트 1.15km
세마대(洗馬臺)
세마대는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의 승전과 관련하여 성안 꼭대기에 세워진 장대로 일제 감점기와 .25를 거치면서 파괴대었다가 1957년 8월 15일 민관으로 구성된 세미대 중건 위원회에 의해 팔작지붕을 올린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복원되었습니다. 북쪽에는 세마대라는 현판이, 남쪽에는 세마대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중 남쪽 현판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직접 글씨를 썼습니다.
1831년에 편찬된 '화성지'에는 세마대와 관련하여 "도원수 권율이 독산성에 들어갔다 , 성안에 샘이 적어 오래 지키기에 어려웠다. 적이 염탐하여 그것을 알고서는 급히 성을 공격하고자 하였습니다. 권율은 군사에게 적을 향하여 망을 세우고 쌀을 홑날리게 부어 씻게 하였습니다, 그것을 본 왜적이 성안에 물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고 마침내 포위를 풀고 갔다, 훗날 그 곳을 새마대라 일컽으니 곧 지금의 장대이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세마대(洗馬臺) 북쪽 현판
남쪽에 있는 현판은 이대통령각하(李大統嶺閣下) 휘호(揮毫)라고 쓰여있어, 복원 후 이승만 전 대통령이 직접 글씨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마대(洗馬臺) 북쪽 현판은 세마대(洗馬臺) 남쪽 현판 세마대(洗馬坮)라고 쓰여 있습니다.
臺(대대)나 坮(대대 臺의 古字) 어차피 같은 뜻은 인데, 왜 다르게 썼는지는 알수 없습니다. 둘다 멋진 현판입니다.
세마대에서 바라본 보적사와 양산봉
서봉산, 건달산, 태행산, 일진전기, 황구지리
태행산, 태행지맥, 일진전기
융건릉, 용주사, 그 뒤로 수리산, 삼성산, 관악산, 청계산, 백운산, 광교산
백운산, 광교산, 양산봉
보적사와 그 뒤로 세마대
동탄방향
오산 세교동 방향
독산성산자락
세마산업단지에서 바라본 독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