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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성은 물리학에 중점을 둔다.
핍진성은 작품 그 세계의 물리학에 중점을 둔다. 생생함, 박진감, 세부묘사를 통해 확보됨. '작품 세계, 배경, 설정에서 나올 수 있는 관계인가
개연성은 작품 그 세계의 인물들과 규칙 등, 인과관계에 중점을 둔다. '이야기 속 인과관계의 올바른 정도'를 의미
핍진성과 개연성
핍진성
[ Verisimilitude ]
핍진성이란 용어의 원래 의미는 외견상 사실적이거나 진실해 보이는 정도나 질을 의미한다.
이것은 고대인들이 이야기에 대해 요구했던 '그럴듯함', 혹은 '있음직함'이라는 개념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용어인데, 이것이 주요한 문학용어로 등장하게 된 것은 구조주의 문학이론가들에 이르러서다.
어떤 사건들의 연쇄, 혹은 그것을 통해 꾸며진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일련의 사건을 일관된 전체에 맞추면서 텍스트의 틈새를 채워 넣은 독자들의 능력에 의존하는데, 조나단 컬러는 이를 소쉬르 용어를 빌어와 서사적 능력(narrative competence)이라고 정의한다.
말하자면 어떤 관련 상황을 택하거나 구축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러나 이 핍진성이란 환상은 비단 독자 개인의 능력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 공동체가 공유하고 있는 관습에 의존하는 문화적 현상이다.
한 사회에서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다른 사회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여지거나 해석되지 않을 수 있으며, 또 같은 사회라 할지라도 시기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상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구조주의자들은 이 핍진성이라는 것을, 해당 작품보다 선행했던, 한 사회 내의 적합한 행동의 텍스트들에 의해서 누적적으로 확립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박진감 혹은 생생함이라는 용어로도 불려지는 이 핍진성은, 현실반영의 원리를 금과옥조처럼 견지하는 리얼리즘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나 문학성을 기법과 동일시하는 러시아형식주의자들에게서는 그리 높이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형식주의 이론가인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문학작품이 어떤 외적 현실을 지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대상을 생소화(예술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미적 기능에 부수적인 효과의 하나로 간주하고 이를 동기부여(motivation)라고 부른다.
이 견해에 따르면 동기부여가 되어 있는 핍진성 있는 작품은 예술적인 생소화라는 미적 변용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높은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김경수)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1.30, 국학자료원)
핍진성
[ Verisimilitude ]
제라르 주네트의 용어인 vraisemblance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 용어로서, 박진감이라는 말로도 번역된다.
이 용어는 문학에서 실제적인 것보다는 그럴듯함(plausibility)에 호소하는 오랜 전통, 혹은 서사물들에 사실적인 신빙성을 부여하는 오랜 관습과 관련되어 있는데, 관습(convention)이나 자연화(naturalization)에 관한 논의와 더불어, 이 용어의 개념은 주네트, 조너선 컬러 등의 구조주의 이론가들에 의해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바 있다.
구조주의 비평가들에게 문학에 있어서의 핍진성과 자연화는 동일한 맥락을 지니는 개념이다. 자연화의 개념은 서사물의 생산이나 수용이 이루어지는 관습적 토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서, 서사적 관습을 자연화한다는 것은 곧 그것이 지닌 관습적 성격 자체가 의식되지 않은 채로 서사물의 생산자나 수용자의 의식 속에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어떤 서사물을 인위적으로 가능한 것, 혹은 있을 법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특정한 문화적 관습을 자연화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다. 어떤 서사적 허구가 그 생산자에 의해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어질지라도 그 자연스러움 혹은 그럴듯함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엄격한 문화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어떤 서사물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게 하는 관습의 토대는 사회에 따라, 또 같은 사회 내에서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서사적 허구에 사실적인 개연성을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수용하는 관습화된 이해의 수준을 충족시키는 핍진성의 주요한 소설적 장치로는 동기 부여(motivation)나 세부 묘사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현대 소설에서 세부 묘사는, 주인공에 대한 정보의 제공 및 플롯의 전개에 필요한 것 이외에는 세부 묘사를 기피하거나 간단한 요약적 설명으로 대신했던 이전의 소설들에 비해, 이야기의 전개에 불요불급한 나날의 삶의 무의미하고 비본질적인 세부들을 포함함으로써 이야기에 보다 사실적인 실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주의적인 동기 부여나 비본질적인 세부 묘사는 서사물에 신빙성을 부여하는 관습들 가운데 단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구조주의 시학》에서 컬러는 핍진성을 이루는 관습적 요소들의 단계를 다음과 같이 분류해놓고 있다.
그 첫째는 허구를 믿을 만한 것으로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물리적 조건으로서, ‘현실적인 것’ 그 자체, 즉 삶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취해진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정신과 육체를 가지고 있으며, 생각하고 상상하고 기억하고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은 너무나 자명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따로이 자연화할 필요가 없다.
두 번째 범주는 문화적 핍진성으로서, 컬러는 그것을 ‘상투화된 문화적 관습이나 지식들…… 첫 번째 유형과 같이 특권적인 지위를 누리지는 못하지만 문화적 관습에 의해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영역’으로 정의한다. 문화적 핍진성은 한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관습, 혹은 인과적인 필연성을 갖춘 행위나 지식을 이루는 것으로서, 작가는 그에 대해 다만 한두 마디 언급하는 것으로도 독자에게 작품의 사실적인 실감을 전달해주는 핍진성의 효과에 이를 수 있다.
세 번째 범주는 문학적 관습들과 관련된 것이다. 이를테면 사실주의적 서사물의 경우 그것이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독자에게 사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독자가 그러한 서사 유형에 관습적으로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비록 작가가 작품 속에서 이야기가 허구라는 것을 밝힌다고 해도 그 때문에 작품의 핍진성이 손상받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문학의 핍진성은 그 이야기가 허구인가 아닌가라는 명시적인 확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자연화해서 우리에게 믿을 만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관습화된 문화적 장치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네 번째 단계는 작가가 어떤 서사물에서 사용되는 장치들의 인위성을 드러냄으로써 관습으로부터의 이탈을 통해 진정성에 이르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자연화의 전형적인 과정은 서사물의 규범적인 장치들을 거스르는 형태로 이루어지거나(여러분은 다음에 X라는 사건이 일어나리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러한 일은 단지 책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라는 식의), 혹은 인물 묘사 등을 통해서 어떤 사건을 의심스러운 것으로 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행해진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생겨나는 효과는 문학적 관습들에 대한 패러디이다. 작가는 기존의 문학적 관습들을 폭로함으로써 개인 혹은 집단의 행위를 지배하는 관습화된 규약이나 믿음들을 의심스럽게 보이게 한다. 그러나 핍진성의 관습적 토대를 풍자하거나 무너뜨리려는 이러한 문학적 행위 역시 또 다른 관습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서사적 행위는 어떤 삶이나 문학이 의미 있는 것은, 다만 그것이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동안일 뿐이라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환기시켜준다. 따라서 삶과 문학에 있어서의 선택의 영역은 관습과 관습 밖의 진실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습과 관습 사이에 있는 것이다.
핍진성 [Verisimilitude] (소설학 사전, 1999.2.25, 문예출판사)
개연성
[ 蓋然性 , Probability ]
사건이 현실화될 수 있는 확실성의 정도 또는 가능성의 정도.
허구적인 작품의 어떤 내용이 실제로 있다는 충분한 근거는 없지만, 현실화될 수 있거나 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이 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사용하였다.
흔히 허구는 거짓을 뜻하지만, 문학에서 허구는 개연성을 띤 허구, 곧 현실성이나 진실성을 띤 허구로 간주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허구의 이러한 성격을 두고, 그것이 역사적 사실보다 더 철학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허구가 개연성을 통해 보편성에 접근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연성이 문제시되는 것은 특히 소설과 같은 서사 장르이다. 제라르 쥬네트, 츠베탕 토도로프, 조나단 컬러 등 구조주의 이론가들은 개연성의 문제를 핍진성(逼眞性, verismilitude)이나 그럴듯함(vraisemblance, plausibility)과 관계지어 논한 바 있다.
이들은 소설이란 허구의 산물이므로, 그 허구를 독자들이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게끔 신뢰감과 설득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렇게 신뢰할 수 있게 만드는 장치 중 대표적인 문학적 장치들을 인과 관계에 의한 연결(필연성), 복선에 의한 암시 등으로 보았다.
한편 조나단 컬러는 허구가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지게 만드는 요소를 다음과 같이 든다.
첫째, 너무도 자명한 현실 또는 삶 자체의 물리적 조건들,
둘째, 보편적인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문화적 관습이나 인과적 행위와 지식들,
셋째, 독자가 사실을 제시하는 것으로 흔히 간주하는 명시적인 문학적 관습들,
넷째, 그러한 명시적인 문학적 관습에 의존하지 않고 이탈함으로써 도리어 그 작품에서 말해진 바를 더욱 그럴듯하게 만드는 것 등이다.
여기서 네 번째 요소는 문학이 관습에서 출발하면서도 그 관습을 벗어날 때 더욱 진정성을 가지게 되는 것임을 뜻하는데, 컬러는 이것 또한 문학의 중요한(암시적인) 관습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편 이 개연성이라는 말은 역사와 문학을 구별하는 용어로 쓰기도 한다. 역사가 이미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기술하는 것에 비하여 문학은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일어날 수 있음직한 사건을 서술한다는 것이다.
개연성 [蓋然性, Probability]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1.30, 국학자료원)
핍진성
핍진성(逼眞性, verisimilitude)은 진실과 거짓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을 때 객관적인 관측자가 진실에 가깝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를 이르는 형이상학적 성질로, 주로 철학과 문학에서 사용된다. 문학적 핍진성은 '문학 작품에서, 텍스트에 대해 신뢰할 만하고 개연성이 있다고 독자에게 납득시키는 정도'를 의미한다.
2. 정의
핍진성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아래 핍진성의 정의는 대부분 문학에서의 핍진성을 가리킨다. 칼 포퍼를 필두로 한 철학자들이 구획 문제 논의 등에서 사용하는, 철학적 핍진성(truthlikeness)은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의 문서(영어)를 참조.
핍진성은 극적인, 또는 극적이지 않은 픽션 속 현실의 외형으로, 묘사되는 행동이 독자 스스로의 경험 또는 지식에 비추어 수용할 만 하거나 설득력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또는, 사이언스 픽션이나 초자연적 설화 등을 제공함에 있어, 독자가 기꺼이 의심을 멈추고 이야기의 틀 안에서 있을 수 없는 행동을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유도해야 함을 의미한다.
진실되어 보이거나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성질.
그녀는 이야기에 핍진성을 부여하기 위해 책 속에 사진들을 끼워넣었다.
또한, 이에 대응하는 한국어 사전에서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 #
핍진-하다2(逼眞하다) 형용사
1. 실물과 아주 비슷하다.
대저 진상(眞像)을 그림에 있어 핍진하게 하기가 가장 어려운 것이다. 가령 대면해서 모사(模寫)한 칠분의 진본(眞本)이라 할지라도 털 하나 머리카락 하나가 어긋나지 않기를 바라기는 어려운 것인데….
<<번역 정조실록>>
2. 사정이나 표현이 진실하여 거짓이 없다.
그리고 심유(沈攸)의 소(疏)가 묘사한 것이 너무나 핍진하여, '심극전(沈極傳)'이라고 하였다.
<<번역 숙종실록>>
고려대학교 한국어대사전의 정의
핍진성(逼眞性) 명사
(형태: ±逼眞-性)
1. 문학 작품에서, 텍스트에 대해 신뢰할 만하고 개연성이 있다고 독자에게 납득 시키는 정도.
소설을 이해하거나 평가하는 데 있어 핍진성이나 리얼리티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핍진-하다2(逼眞--) 형용사
(활용형: <불규칙 활용> 핍진하여 핍진해 핍진하니 / 형태: ±逼眞-하_다)
1. (사정이나 표현이) 진실하여 거짓이 없다.
그 작가의 필치는 생동하고 표현은 핍진하다.
그는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는지 핍진하게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2. (무엇이) 실물과 아주 비슷하다.
3. 어형과 역사[편집]
원어 'verisimilitude'는 신고전주의에서 '현실성', '도덕성', '일반성'의 부속 개념으로, '정말인 것 같음', '진짜처럼 보이는 것'을 가리킨다. 용어로서의 'verisimilitude'는 17세기 영국에서 라틴어 verisimilitudo(truth-like)의 변형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영어권에서는 이 용어를 'truthlikeness(진실성)'나 'fidelity(충실도)'로 풀어 쓰기도 한다. 한국어에서는 영미권 해석인 'truthlikeness'를 번역하여 현실성(現實性), 진실성(眞實性)의 유의어로 설명한다.
국립국어원은 'verisimilitude'의 번역으로 '핍진성', '정말 같음'을 제시했는데, 용어의 한자 뜻을 풀이해 보면 逼(핍박할 핍), 眞(참 진), 性(성품 성)으로 '진실에 가까운 정도'가 된다. 다만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상기 정의처럼 '핍진-'은 '핍진하다'의 어근으로서만 제시하고 있고 '핍진성'을 단독 명사로 등재하지는 않았다.
이 '핍진성'이라는 어휘는 이전부터 문학계에서 쓰여 왔던 '핍진하다'라는 말로부터 유래했다. 이러한 어휘가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920년대 내외로 추정되며 ("1921년 '핍진한 회화'의 예", 조선일보), 일제강점기의 문학 비평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1]
오늘날 '핍진하다', '핍진성'이라는 말은 일상 회화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용어지만,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자주 쓰인다.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진 단어는 아니므로 비평문, 특히 대중문화 비평문에서 핍진성이라는 단어를 남발하면 비평문에 익숙치 않은 대중들에게 자칫 현학적으로 보여 독자들과의 거리감이 생길 수도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4. 유사 개념과 비교
4.1. 개연성과의 차이
개연성과는 다르다. 개연성은 '이야기 속 인과관계의 올바른 정도'를 의미하지만, 핍진성은 '작품 세계, 배경, 설정에서 나올 수 있는 관계인가'를 의미한다.
개연성의 예시
그 사람이 나의 친구를 죽였다. → 오랜 세월 끝에 복수에 성공했다.
마왕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악당이다. → 용사는 미련없이 그를 죽였다.
친구가 그녀를 좋아하고 있는 것을 알았음에도 고백했다. → 세 사람 사이에 큰 싸움이 일어났다.
핍진성의 예시
봉건 군주 앞에서는 경칭을 사용하며, 자세를 낮춘 상태로 대화한다. → 왕 앞에서 반말을 했으니 불경한 일이다. (현실성, 핍진성 둘 다 있음)
반란은 중범죄로, 도모하기 위해선 큰 결단이 필요하다. → 반란을 모의하다 잡힌 사람은 큰 처벌을 받는다. (현실성, 핍진성 둘 다 있음)
신체 자체가 어지간한 흉기에도 사람이 쉽게 죽지 않으며, 부상을 입어도 회복이 쉬운 세계이다. →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서 사망한다. (현실성은 있지만 핍진성은 없음)[2]
엘프는 자연을 사랑하며 폭력을 싫어한다. → 인간이 숲을 파괴한 행위에 엘프들은 분노할 것이다. (현실성은 없지만 핍진성은 있음)
데스노트에 이름이 적힌 사람은 죽는다. → 이름이 알려지면 살해당할 수 있다. (현실성은 없지만 핍진성은 있음)
어지간한 흉기에도 사람이 쉽게 죽지 않으며, 부상을 입어도 회복이 쉬운 세계이다. → 근거리에서 초대형 폭탄이 터져도 죽지 않을 수 있다. (현실성은 없지만 핍진성은 있음)
초공간에 진입해 광속을 넘는 속도로 이동이 가능하다. 유의미한 물리적인 피해를 줄 수 없다. → 이를 이용해서 함선을 파괴하는 자폭 돌격을 감행한다. (현실성이 없으며 핍진성도 없음)[3][4]
핍진성이 떨어지는 작품은 읽다가 개연성과는 다른 의미로[5] "뭐야 이게 말이 돼?"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작가가 자신이 만든 작품 속 세계의 규칙이나 법칙을 어긴다면 핍진성을 상실한 것이다. 보통 작가가 자신이 세운 세계의 규칙을 간과, 혹은 까먹었거나 미리 생각해둔 줄거리가 자신이 앞서 만들어온 세계의 규칙을 어기게 될 때 수정하지 않고 앞서 만들어온 수많은 이야기들과 엮여 있는 세계의 규칙을 뒤늦게 수정할 수는 없으니까 어거지로 이야기를 끼워넣어 서사를 이어가면 이런 일이 발생하며, 일반적으로 설정오류 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현상은 이런 핍진성 부족을 의미한다.
핍진성은 해당 사건과 연관성이 있는 사실적인 작품 내 바탕(=배경설정)이고 개연성은 해당 사건과 연관성이 있는 작품 내 과거 사건(=전개)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쉽게 말해 그 작품 속의 인물이 그 작품에서의 발생하는 상황들을 봤거나 들었을 때 사실적이라고 생각되면 그 이야기는 핍진성을 지킨 것이고 아니라면 핍진성을 어긴 것이다.
4.1.1. 개연성은 떨어지지만 핍진성은 확보한 개별 예
고전 문학에는 개연성은 떨어지지만 핍진성이 좋은 사례가 많다. 대표적으로 그리스·로마 시대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전개의 연극을 들 수 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연극에서 이야기 마무리에 모든 사건과 갈등이 신의 등장으로 한방에 다 해결되는 스토리 전개를 일컫는데, 이는 분명 개연성을 심각하게 해친 부분이다. 하지만 당대 연극은 대부분 신화의 신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신탁, 계시, 예언 등의 방법으로 작품 초반부터 신에게 물음을 구하고 애초에 이야기 자체가 신이 내린 과업이나 신들 자체가 등장인물이 되는 일이 많았다. 신들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어 인간의 갈등 구조 따위는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존재들이며 관객들 또한 이에 충분히 공감했다. 따라서 핍진성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는 셈이다.
이러한 양상은 현대에도 성경과 같은 종교 문헌을 읽는 독자들에게서 유사하게 발견할 수 있다. 신자로서 성경을 읽는 이들은 기적과 같이 개연성을 어기는 현상이 일어나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으며, 신이라는 인물이 그러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음을 충분히 납득하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기적들을 통해 신의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 역시 성경 독서의 목표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를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들 수 있다. 먹을 게 없다는 난관을 그냥 음식을 복사해서 해결한다는, 다소 개연성 떨어지는 전개로 끝내는데 의문을 표하는 독자는 없다. 오히려 그게 신의 권능이고 기적이라고 받아들인다.
중국의 대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삼국지연의 역시 개연성은 떨어지지만 핍진성이 좋은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작부터 유비, 관우, 장비가 만나 도원결의를 맺고 의기투합하는 모습은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뜬금없게 보일 정도로 개연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황건적이 날뛰고 나라 전체가 혼란스러운 시대상, 나라를 걱정하는 세 젊은이의 등장, 진정으로 나라와 백성을 구하겠다는 충의(忠義) 정신의 부각이 '이런 사람들이 나올 수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함으로써 좋은 핍진성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고전 문학들은 권선징악으로 대표되는 결말에서 알 수 있듯 대체로 스테레오타입적이며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흘러가는 방식으로 진행되기에 인물들 사이에 개성이 떨어질 경우 오히려 지루한 전개와 뻔한 결말만 보기 쉬워진다는 단점이 있다.
4.2. 사실성과의 차이
그래서, (나의) 우주에는 소리가 있다. 이제 와서 아무 소리도 없이 날아다니는 우주선을 만들 수 없는 것은 내가 그런 우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건 이미 내 은하의 규칙 중 하나로 굳어졌고, 나는 그 규칙과 함께 살아야 한다.
조지 루카스, '왜 스타워즈 시리즈의 우주에서는 소리가 있냐?'는 질문에 대해
핍진성은 '작품 안에서 설정된 세계'를 근거로 현실적인 정도를 판단하기 때문에 사실성과 구별된다. 사실성은 작품 속 세계가 현실 세계의 모습을 반영하지 못하면 사실적이지 않은 것이 되어 버리지만 핍진성은 작가가 설정을 그렇게 짰다면 현실의 세계는 어떻든 관계가 없다. 오직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작품 속 세계에 맞게 살아가는지만이 중요하다.
만약 이종족과 마법과 주술이 난무하는 판타지 소설이라면 판타지는 원래 허구이기 때문에 사실성을 따질 수가 없다. 하지만 허구성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설정이 정교하게 짜여있고 작중 사회와 등장인물들이 서로 적절히 어우러져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라면 핍진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인기 만화인 헌터×헌터에서 작중 등장하는 국가나 집단, 넨 등의 능력은 완전한 허구지만 그 안에 국가체제, 인터넷 등 통신 인프라, 국가간 대립구조, 협회 규정 등이 나름의 합리성이 있기 때문에 독자는 허구성을 쉽게 느끼지 못한다. 혹은 마찬가지로 중세 판타지인 왕좌의 게임이나 이 분야 끝판왕 반지의 제왕 또한 사실성은 떨어진다 할 수 있겠지만 핍진성과 이야기 연출력은 굉장히 정교하다고 평가받는다.
단, 어떤 작품이 명백한 현실에 기반한 작품, 예컨대 역사 소설이나 사극[6] 혹은 현대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라면 핍진성과 사실성은 거의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 작품에서 설정해둔 세계가 곧 현실의 사람들이 만든 세계이므로, 핍진성을 따지는 것이 곧 사실성을 따지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 배경의 작품이라 해도 사실성이 바로 핍진성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핍진성은 어디까지나 작품 향유자가 느끼는 사실감이며, 이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인식에 부합하느냐에 따라 결정되지, 그 사실이 물리적으로 현실에서 일어났던 사건인지의 여부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가령 추신구라를 보면 중세 일본에서는 칼싸움이 벌어지면 가해자뿐 아니라 피해자까지 할복하는 게 일반 통념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적 사실에 맞춰 창작물에서도 그런 전개를 넣으면 그 사실을 모르는 현대인으로서는 '무슨 저런 말도 안 되는 세계가 있냐'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설령 현실의 일이라 해도 독자가 핍진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전제가 되는 상황에 대한 설명이 충실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현실과 다른 관념을 지닌 세계를 그리는 작품에서는 독자들이 그런 세계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초반부에 그런 규칙을 활용한 상황들을 제시해주곤 한다.
여기에 더해서 사람은 사실성과 개연성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혀 개연성 없는 일이 매일같이 벌어지는 현실이 오히려 사실성이 없게 느껴지는 것 역시 낯설지 않은 현상이다. 이민족의 침략에 맞서 자신의 문명권을 구한 전쟁영웅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서 죽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런 일은 개연성 없이 여겨질 것이다. 그런데 창작물은 현실이 그렇게 개연성이 없다 해도 창작물로서 최소한의 개연성은 확보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창작물의 확률적 요소, 즉 운이란 작가가 설정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7] 개연성 없이 확률적으로 전개한단 건 사실상 작가 맘대로 전개해놓고 운이 좋아서 그랬다고 우기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리고 핍진성 역시 창작물에 적용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개연성은 있어야지만 그것을 현실감 있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즉, 핍진성이란 사실성과 동시에 개연성도 어느 정도 갖추어져야지만 느낄 수 있는 개념인 것이다. 괜히 현실이 소설보다 더하다라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니다.[8] 소설은 어느 정도는 개연성이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연성이 없다고 느꼈는데 알고 보니 실화를 그대로 묘사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벙찌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실화 배경 작품들도 우연한 사건들을 두고 앞으로 일어날 일의 징조였다느니 하는 (현실적이진 않고 오로지 창작물 상의 개연성만을 위한) 복선을 넣어 개연성을 보강할 때가 많다.[9]
5.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오크와 해리 포터 시리즈의 집요정의 예[편집]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세계에 등장하는 오크와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세계에 등장하는 집요정, 두 종족을 비교해보자. 오크는 '우리는 노예가 되지 않는다'는 말마따나 힘과 명예를 중시하고 다른 종족으로부터의 지배를 거부하는 반면 집요정은 남에게 복종하고 봉사하는 것을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종족이다. 이러한 뒷설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난다면 워크래프트의 오크가 다른 종족의 지배를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이야기나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자신들을 해방시켜주겠다는 인간들의 권유를 오히려 거부하는 집요정들의 행보가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똑같이 허구의 존재들이고 서로 상반된 전개임에도 독자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핍진성이 잘 지켜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워크래프트의 스랄처럼 오크 하나가 탄압받는 동족들을 구하기 위해 반란을 도모하는 이야기로 간다고 해보자. 워크래프트의 지식이 없더라도 반란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범죄이며 매우 큰 소동이 될 것이라는 걸 독자들은 예상이 가능하다. 이처럼 작품 내 명시된 설정이 없을 때 독자는 현실의 핍진성을 작품 내 세계에 대입시키게 된다. 즉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반란을 일으켰으니 그냥 안 넘어가겠구나'하는 사실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가 붙잡혀 처형된다거나 스랄처럼 반란에 성공한다거나 하는 전개가 찾아오면 독자는 이를 자연스럽게 납득하게 된다. 반란을 일으킨 중죄인이 처형되거나 반란에 성공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개연성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아무런 사전 설명이 없었는데 집요정 캐릭터 하나가 등장하여 탄압받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반란을 도모하는 전개가 등장한다면 독자는 위화감을 받게 된다. 이는 개연성을 해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새로운 전개'의 등장은 명제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A라는 원인이 있으니 B라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 부분의 'A'에 해당되는 부분이 처음 언급됐을 뿐이다. 그럼에도 독자는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분명 설정상 집요정 종족은 남에게 복종하고 봉사하는 것을 즐기는 종족인데, 반란을 일으키는 전개는 어색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핍진성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이를 자연스럽게 바꾸기 위해서는 작가가 핍진성을 보충해주어야 한다. 즉 집요정의 예를 다시 들자면, 집요정 도비가 그렇게 자기 종족의 본성과는 다른 행동을 한 데에는 루시우스 말포이라는 요인이 필요하며, 도비가 특이한 건지 종족 전체가 생각이 바뀐 건지 등 보충 설정으로 핍진성을 보충해야 한다.
6. 차용을 통한 핍진성 보충[편집]
핍진성 보충을 위해 실제 현실이나 다른 유명한 작품을 끌어오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영화, 게임, 소설, 만화 등 많은 창작품들이 나오지만 보다 보면 어디선가 봤을 법한 설정을 볼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마따나 쓰다 보니 우연히 겹쳐진 것도 있지만 이미 존재하는 작품의 설정을 차용함으로써 핍진성을 세우는 데 소모되는 자원을 줄이려는 것이다.
한편 각 분야에서 소위 '대작'을 넘어 '바이블'로 취급받는 작품들은 이러한 핍진성을 밑바닥부터 세운 경우가 많으며, 더 나아가 다른 작품에까지 영향을 주곤 한다.
6.1. 현실 개념 차용
현실의 개념을 가져오는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제국', '황제' 같은 단어를 쓰거나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프로토스 종족의 직책에 '집정관', '법무관' 같이 로마 제국 시대의 단어를 주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배경이 우주인 SF 장르이고 외계 종족의 직책은 창작자가 어떻게 설정하든 자유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개념을 넣어줌으로써 독자들은 현실의 그 개념을 자연스럽게 흡수하게 된다. 프로토스는 초능력과 오버 테크놀러지가 난무하는 외계 종족임에도 플레이어는 고결함, 싸움에 물러서지 않는 용맹함 등 고대 로마의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스타워즈 또한 마찬가지로 은하계를 배경으로 하는 서사물에 전근대시기에나 존재했던 황제와 제국이라는 단어를 넣었음에도 관객들은 위화감을 느끼지 않고 제국이란 단어가 주는 위압감과 지배욕, 무력 등을 자연스레 연상하게 된다.
반대로 스타워즈 시리즈의 '은하 제국'이 다른건 모두 같지만 이름만 '은하 깐따삐야'였다고 해보자. 창작물의 명칭은 창작자가 어떻게 설정하든 자유지만 이렇게 해버리면 독자들은 현실의 배경지식에서 오는 이미지와 심상을 얻을 수 없게 된다. 이를 구축하기 위해선 '은하 깐따삐야'라는 국가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고 왜 현실의 '제국'과 같은 분위기를 보이는지를 따로 분량을 할애해서 설명해야만 한다. 이런 식으로 순수 100% 밑바닥부터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의 핍진성을 끌어올리려 하다 보면 많은 분량과 역량이 필요하다. 이는 거의 대부분의 작가들에게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묘사할 결과물이 결국에 공화국, 제국처럼 현실에 있는 것이라면 현실의 배경지식을 굳이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크지 않다.
이러한 실제의 개념이 차용된 세계는 엄밀히 말하자면 실재할 가능성은 낮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의 세계와 전혀 연관이 없는 세계가 만약 실재한다면 '제국(Empire)'이라는 표현을 쓸 리도 없고, 국가 체계도 실제 세계와 비슷할 순 있어도 완전히 같을 리야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작물에서 가상 세계를 만드는 것은 완벽히 그 자체로 실재하는 것이 가능한 세계를 만드는 데에 목표를 두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이입을 시키는 데에 주안을 두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점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톨킨이 기존 언어/문화 표현을 활용하는 방법을 쓰지 않고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낸 것은 앞선 단락에서 언급한 "이런 세계가 실재할지도 모른다"와 같은 사실감까지도 표현하기 위함이다.[10] 이와 같은 시도는 핍진성을 높일 수는 있지만 완전히 처음부터 새로운 개념이기에 독자들이 이해하기 매우 어려워지고 작품의 허들이 높아진다. 핍진성을 밑바닥부터 끌어올린 것도 모자라 퀘냐 같은 인공언어까지 창조했음에도 그 정교함과 사실감에 많은 독자들이 감탄하고 이입하는데 성공한 톨킨의 창작이 그만큼 대단한 창작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개연성/현실성/핍진성을 설명하는 위의 이미지가 유명하다.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민간인들이 매트릭스가 만든 세상에 위화감을 느끼는 것[19]은 작중 세계의 인물이 자신들의 '현실'에서 핍진성이 어긋나는 감각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