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절
김규련
어딘 선가 Glen Campbell 에 “Time, oh, time where did you go? Time ,oh, good ,good time where did you go?” 노래 소리가 들린다.
나는 지금 손자 축구 시합을 보러왔다. OWEN은 올해 5살이다. 둘째딸 에리카의 장남이다. soccer 운동장에 옹기종기 모인 노랑머리, 갈색머리, 까만색머리 애들 중에서 키가 제일 크다. 아무튼 미국에선 크고 볼일이다. 나도 막내아들 BRIAN을 5살부터 12살까지 야구를 시켰다. 운동신경이 그런대로 좋아서 야구선수 올스타 케쳐로 뽑혀 열심히 뛰었다. 그러나 매해 여름방학이 끝나고, 다시 새 선수들이 모이면 노랑머리 아이들은 내 아들보다 머리하나는 더 커져서 운동장에 와 있었다. 아들은 갈수록 키 차이가 나고, 노랑머리 친구들보다 힘이 약했다. 중학교에 가선 안타깝게도 야구를 그만두고 말았다.
그러나 손자 OWEN 은 다르다. 그는 다른 학생보다 앞장서서 달린다. 골포스트까지 드리볼도 제법 잘한다. 물론 골대에 가까이 가서 키 큰 상대편 선수한테 공을 빼앗기기 일수 이지만, 구경하고 있는 우리 편이나 상대방편 부모님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가기에 충분하다.
이곳저곳에서 자기아이들 이름을 부른다. “JASON, KICK THE BALL. ADAM, DEFENSE. 아 ! 놓쳤구나“ 아버지들의 한 옥타브 높인 목소리와 실망의 소리가 동시에 들린다. 갑자기 WORLD CUP SOCCER 대회나 온 느낌이다. 무슨 운동이나 잘 되는 때가 있고, 안 되는 때가 있다. 우리들 삶의 형편과 다를 바 없다. 매번 운동 할 때마다 이기면 무슨 묘미나 재미가 있겠는가. 실력이 엇비슷해야 5살짜리 운동 시합이라도 재미있고 신나는 법이다.
에리카는 두 살 반 되는 둘째아들과 칠 개월 된 딸을 끼고, 맨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응원한다. 내가 딱 저렇게 30년전 에 앉아 있었던 그 곳에 그가 앉아있다. 우리가 살던 집을 에리카에게 팔아서 OWEN은 지금 제 엄마가 다녔던 초등학교에 다닌다. 갑자기 그 집에서 살던 옛날생각이 주마등 같이 지나간다.
홀로 이민 와서 친정 부모, 시부모 ,일가친척 하나도 없는 곳에서 애기 세 명을 줄줄이 나았다. 애기 봐 줄 사람이 없어 아침에 쩔쩔매다, 아이를 업고 일하러 간적도 있었다. 두 딸 뒤로 계획에도 없었던 막내아들이 태어났을 땐 무척 기뻤다. 기쁨도 잠깐, 새삼 기저귀를 채우는데 여자 아이 것 같이 채워 오줌이 다 밖으로 새어 나와 혼자 웃었던 날 , 인형만 가지고 놀던 딸들과 달리 밖에 나가 롤리폴리 같은 벌레를 잡아 병에 넣어 갖고 와 열심히 지켜보던 남자아이라서 달랐던 아들, 큰딸은 백인이 많기로 유명한 헌팅톤 비치에서 학생회장으로 뽑혀 같이 기뻐했던 날, 또 Student Of The Year 로 딸 이름이 학교 빌보드 전기판에 빤짝거리며 그 길을 지나가는 사람이면 다 보이는 곳에 한 달 씩 걸려있었다.
내 조그마한 딸이 한국인이여서 자랑스러웠던 그날, 둘째 딸이 Tennis 선수로, 막내아들이 야구선수로 나가 이겨 오던 날. 큰딸, 둘째딸 모두 Homecoming Queen에 나가서 아빠랑 정장입고 Huntington Beach 고등학교에서 소방차위에 타고 전교생과 학부모 앞에서 손을 흔들었고 즐거워했던 지난날들,
대학 4학년 때 단기선교로 카작스탄에서 돌아오던 날 남자친구 생겼다고 해서 놀랐고 그 친구랑 1년 후에 결혼하고 3년 후에 나에게 할머니란 새 이름을 안겨준 큰딸, 시절 그 좋은 시절 다 어디로 갔나요? 아이들 셋 기르고 났더니 저만큼 가버린 세월.
오늘 OWEN은 4골을 혼자 넣었다. OWEN이 SOCCER로 성공해서 18살이 되면 나는 80줄에 들어선다. 나의 또 다른 20년은 어떤 좋은 시절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땀에 흠뻑 젖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OWEN 이 나에게 달려와 무더운 날씨인데도 응원을 와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한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순간을 즐기련다. 지난 30년간의 추억이 순간순간의 열매였던 것 같이.
어느새 게임이 끝나고 부모님들이 모여 터널을 만드는 시간이다. 선수들은 부모님들이 만든 터널 밑을 지나면서 상기 된 얼굴로 누군가가 준비한 스넥 가방을 더듬는다. 차가운 드링크와 짭짭한 팝콘이 들어있다. 아이들은 즐겁다.
이렇게 나의 좋은 시절도 흐르고 또 흘러가는구나.
나의 지금이 있음은 그 많은 추억들을 겹겹이 쌓여서 모아모아 간직해온 결실일지니 다함이 없는 은혜에 감사, 또 감사.
대를 이은 기도의 강물은 쉼 없이 흐르고 흘러 증기처럼 상달되기를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