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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담고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김진삼 / 무역학부
쪽빛 하늘 아래 분홍 꽃 코스모스는 하늘거린다. 바람에 이리저리 춤추는 억새는 한껏 자태를 뽐낸다. 유난히 무덥던 한철을 뒤로 하고 연인처럼 다가온 이 계절이 반갑다.
명예교수회에서 가을 나들이 문화탐방으로 소록도에 간다고 한다. 소록도는 한센인들을 격리해 수용하던 섬으로 알고 있지만, 정확한 위치는 몰랐다. 소록도가 어디에 있는지 지도를 보았다. 완도와 여수 사이에 있는 고흥의 앞바다 작은 섬이다.
이십여 년 전 아들의 입대를 앞두고 가족여행을 떠났다. 녹우당,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거쳐 서남쪽 끝인 해남 ‘땅끝 마을’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보성 녹차밭과 완도를 거쳐 여수 돌산, 향일암 등으로 며칠 쉬엄쉬엄 추억을 쌓았다. 가족여행에서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서남쪽에 있는 고흥은 그냥 지나쳤던 것 같다.
세월이 많이 흘러 명예교수회에서 고흥의 소록도와 ‘나로호 우주발사전망대’에 문화탐방을 간다. 반가운 마음에 선착순 일찍 신청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소록도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자료를 찾아보았다. 소록도(小鹿島) 이름은 섬의 형상이 작은 사슴 모양을 닮아 붙여졌다고 한다. 한센인들의 비극이 서려 있는 한(限) 많은 섬이 소록도라는 것을 새삼스레 알았다. 아내와 나는 무겁고 들뜬 묘한 마음으로 문화탐방의 출발을 손꼽아 기다린다. 대구 ‘어린이 세상’에서 이른 아침 출발하였다. 소록도까지 네 시간 소요된다.
버스 내에는 부부 동반한 교수와 싱글로 온 교수들이 초등학생 소풍 가는 것처럼 들뜬 표정이다. 최근에 만난 사람도 있지만 오랜만에 손을 잡아보는 분이 더 많다. 서로 근황을 소개하는 시간에는 남녀의 첫 만남처럼 쑥스럽기도 했다. 현직에 있을 때는 전공 분야가 다르고 만남이 뜸해도 한 가족 같았다. 정년 이후 모래알처럼 뿔뿔이 흩어졌다. 햇살이 바람을 안고 가듯이 삶 또한 시간을 타고 흘러갔다. 다행히 명예교수회가 있어 우리는 다시 한 가족으로 모이게 되었다. 오늘 문화탐방으로 만난 선후배 교수들이 반갑고 또 고맙다.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 광주-대구 간 고속도로를 달린다. 차창 밖에는 가을빛으로 물든 산과 멀리 희미한 산들이 서로 어깨동무하고 있다. 이런 모습이 차 안에 있는 우리를 보는 것 같다. 첫 논공휴게소에서 심호흡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울긋불긋 단장한 나무들이 가을맞이 치장을 하고 있다. 오늘 우리의 화려한 외출도 이쯤 아닐까? 몇 고개를 넘어 누렇게 익은 들판이 보이고 마음은 풍요롭다.
고흥반도에서 소록도까지 남해 위를 연륙교인 소록대교가 놓여있다. 소록대교가 없던 시절에는 유일하게 배로 이동했지만, 지금은 연륙교 덕분에 섬이 육지로 바뀌었다. 차창 밖 남해의 푸른 물결 위로 윤슬이 반짝인다. 버스는 국립소록도병원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현지 해설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소록도 전체는 국유지로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소록도병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소록도의 주민은 병원 직원과 전염력이 없는 음성 한센인 환자들이다. 병원 직원과 일반 사람들이 거주하는 ‘관사지대’와 한센인들이 거주하는 ‘병사지대’로 나누어진다. ‘병사지대’는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해설사의 안내로 ‘관사지대’로 갔다. 가는 길목에 원불교, 일본 신사가 있었다. 관사지대의 큰 철문을 지나 왼편 적벽돌 집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사십여 년 동안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를 돌본 파란 눈의 두 수녀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가 살던 집이다. 인적은 없고 싸늘한 바람만 일렁인다.
지대가 조금 높은 곳에 성모 마리아상이 있는 동굴이 있다.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잠시 묵상하였다. 왼편을 내려다보니 우거진 산림과 해변, 멀리 보이는 성당 건물들이 유럽의 어느 정겨운 마을 풍경처럼 느껴졌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 굽이치는 백사장에 하얀 포말을 드러낸 파도, 짙푸른 바다 물결은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것 같다. 이곳에서 합동으로 추억 한 토막을 남겼다.
우리는 병원 옆에 있는 검시실과 중앙공원으로 이동하였다. 인도의 데크 길은 해변이 보이는 방향으로 구불구불 길게 늘어져 있다. 길 중간쯤 큼직한 흑백 사진 한 장이 가로수 나무에 붙어있다. 빛바랜 사진은 가운데 길을 사이에 두고 왼편에는 어린이들이 일렬로 줄 서 있다. 오른편에는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마주 보고 서 있는 모습이다. 해설사는 이곳이 탄식의 장소인 수탄장(愁嘆場)이라고 한다.
여기에서부터 한센인의 아픔이 서린 장면을 보게 되는 것 같다. 한센인의 자식은 부모로부터 전염을 우려하여 미감아 보육소에서 생활하였다. 한 달에 한 번씩 부모와 자식의 면회하는 모습이 가로수 나무에 붙어 있는 흑백 사진 속에 슬픈 비극으로 남아있다. 어린아이와 부모의 흐느끼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듯하였다. 짐승도 어린 새끼를 떼어놓으면 어미와 새끼가 애를 끊는 듯 울부짖는다. 하물며 사람이 부모와 어린 자식 사이에 손 한번 잡지 못하고 눈물로 안부를 물어야 하는 장면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탄장을 뒤로 하고 중앙병동 옆을 지나 우리는 한센인들의 검시실로 이동하였다. 검시실 중앙에는 긴 테이블이 놓여있다. 당시 한센인의 사망자는 가족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곳 검시실에서 시신의 해부를 거쳐야 했다. 테이블의 바닥에는 중앙으로 몇 개의 홈이 사선으로 파여 있다. 시체 해부에서 나오는 피를 중앙 홈으로 모으기 위해서이다. 이곳에서 한센인의 일부는 단종수술(불임수술)을 받기도 했고 한센인 여성이 임신하면 강제 낙태를 시켰다고 한다. 테이블 위로 얼마나 많은 한센인의 시신이 거쳐 갔을까 생각하니 섬찟한 생각이 들었다.
검시실에서 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 중앙공원이 있다. 해방 전 한센 환자들의 위안 장소로 시작하여 한센인들의 피와 땀으로 다듬어져 지금의 중앙공원이 만들어졌다. 하얀 구라탑(救癩塔)이 우뚝 서 있다. 거대한 탑은 천사가 창으로 나균을 박멸하는 모습의 조형물이다. 받침대에는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중앙공원에는 파란 잔디 위에 오래된 수목원처럼 반송(盤松), 편백나무, 매화나무 등 많은 수목이 노익장을 자랑한다. 가을맞이 단장을 하고 우리를 맞아주었다. 붉게 물든 나뭇잎이 바람에 사그락거린다. “어떻게 소록도에 이처럼 거목들로 공원을 잘 가꾸어 놓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송은 밑에서 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우산 모양으로 자라며 쟁반을 엎어놓은 모양이다. 이곳 반송은 백여 년이 넘는 공원의 역사와 함께한 산증인답게 위엄을 보여준다.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반송의 기둥들이 마치 선대 한센인이 환생하여 서로 손잡고 하늘로 비상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중앙공원 옆 작은 공원에 천주교인들이 연못 가운데 작은 섬 위에 십자가상을 세웠다. 십자가상의 자리는 옛날 벽돌공장의 가마터라고 한다. 적벽돌은 서양식 건물을 짓는 데 사용되었고 벽돌을 굽던 곳이다. 소록도에 서양식 건물이 세워진다는 것에 한센인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작업하였다.
해설사는 “벽돌공장 사업의 재정 악화로 벽돌을 외부 건설 현장에 판매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작업은 무리하게 진행되었다. 작업하던 한센인들은 감각 없는 손발에 심한 화상 등으로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한센인의 감각 없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뜨거운 불길에 익어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말로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 밀려온다.
마리안느 스퇴거 수녀님과 마가렛 피사렉 수녀님의 공덕비가 보인다. 두 수녀님은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온 파란 눈의 천사들이다. 사십여 년 이상 소록도의 한센인들을 돌보는 데 평생을 헌신한 분들이다. 공덕비는 아름다운 공원 한 곳에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의 헌신적인 사랑은 소록도에 깊이 새겨져 있고 숭고한 정신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흰 간호사 가운을 입은 채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할 것만 같다.
일본인 사대 국립소록도병원 스오 마사스에 원장의 동상 좌대가 있다. 그는 한센인들을 상대로 학대와 금품을 갈취했다고 한다. 살아있는 본인의 동상을 세우고 그곳에 한센인들이 감사 인사를 하게 했다. 이에 한센인 이춘상에게 살해되었다. 그의 동상은 2차 대전 당시 철거되고 좌대만 남아있다.
이춘상 의거 기념비는 스오 원장 동상 좌대가 있는 부근의 아래에 있다. 소록도 갱생원에 격리되었던 스물일곱 살 한센인 이춘상이 스오 원장을 살해한 일이 일어났다. 스오 원장은 한센인을 강제 노역을 시키고 폭압 함에 따라 한센인들의 원성이 높았다. 이춘상은 사형을 언도받고 이슬로 사라졌다. 이에 팔십여 년 만인 최근 년에 한센인들의 염원을 담아 중앙공원에 이춘상 의거 기념비가 세워졌다.
해설사는 “지금까지 본 바와 같이 비극의 현장을 설명하면서 늘 가슴 아프다.”라면서 슬픈 표정을 짓는다.
우리는 소록도에서 다시 육지로 가기 위해 소록대교를 건넜다. 소록대교 끝 지점이 녹동항 이고 소록도와 마주 보고 있는 가까운 항구이다. 녹동항은 제주도를 오가는 선착장이며 이곳에서 푸짐한 해산물로 점심을 먹었다.
가까이에 있는 고흥우주발사전망대를 찾았다. 부근의 남열해수욕장에서 보면 해변 왼쪽 끝 절벽 위에 우뚝 세워진 전망대이다. 나로우주센터와 가까운 거리에서 로켓과 인공위성의 발사 순간을 눈으로 관측할 수 있는 곳이다. 나로우주센터 시험발사는 나로호 3회, 누리호 4회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곳 전망대는 칠 층 회전 전망대와 카페가 있고 전망대 전체가 천천히 회전한다. 아내와 함께 카페에서 차 한 잔을 들고 테이블 한곳에 앉았다. 전망대에서 멀리 바라본 남해는 검푸른 물감을 푼 듯 고요하고 아름답다. 살아있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낀다.
멀리 백야도, 낭도, 개도 등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이국적인 풍경이다. 오른편 해변 가까운 곳에 남열해수욕장이 보인다. 파도가 심하여 서핑하기 좋은 곳이라고 한다. 하얀 이빨을 드러낸 백사장이 있고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파도를 가르고 있다. 갑자기 집채만 한 파도가 덮쳐오는 영화 장면이 떠오른다. 무섭기도 하지만 부럽기도 했다.
왼편 해변 언덕 위에는 파아란 하늘에 흰 뭉게구름이 떠 있고 황금빛으로 물든 계단식 다랑논들이 서로 껴안고 있다. 계절이 그린 풍경이 뭉클하게 가슴에 닿는다. 푸른 바다 물결 위의 반짝이는 윤슬, 다정한 형제처럼 보이는 작은 섬들, 한 폭의 그림같이 누렇게 익은 다랑논 그리고 푸른 숲을 전망대에서 파노라마로 눈에 담는다.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 전망대 주차장에 내려왔다. 주차장은 넓고 공간이 많았다. 먼저 도착한 일행 중 몇 분은 편집위원장의 스포츠 댄스 강습을 받고 있다. 동참해 보았지만 어설프고 부끄럽기만 했다. 편집위원장의 열정이 우리 명예교수회의 자랑이라 생각된다. 어느 모임이든 재미가 있어야 사람들이 모인다. 한사람이 ‘부끄럼 없이 소신 있게 무너지는 모습(?)’에서 모두 용기를 얻는 것 같다.
우주발사전망대에서 아쉬움을 멀리하고 고흥과 여수를 잇는 섬섬백리길로 향했다. 팔영도, 적금도, 낭도, 둔병도, 조화도를 연결한 연도교 길을 섬섬백리길이라 한다. 버스는 천천히 섬섬백리길의 첫 관문인 팔영대교로 들어섰다. 차창 너머 고흥반도와 남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팔영산을 뒤로하고 멀리 우주발사전망대가 보이고 남해의 짙푸른 물결은 섬과 섬 사이에서 잠잠하다.
적금도, 낭도, 조발도 등 이름 모를 작은 섬들은 반갑다고 손짓하는 것 같다. 가을빛이 조용히 내리는 물결 위에 잔잔히 일렁이는 다도해를 바라본다. 어쩐지 마음이 울컥해진다. “어쩌나 가을 타는 가봐!” 오션뷰 카페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우리 버스는 여수를 거쳐 하동에 도착했다. 한우고기로 저녁 식사하면서 테이블마다 재직시절 얘기로 꽃을 피웠다.
어느덧 어둠은 깔리고 늦은 시간에 출발지를 향했다. 창밖은 짙은 어둠이 내리고 버스 안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다. 하루 일정이 팍팍했나 보다. 버스 유리창에 비치는 내 모습은 소록도의 흑백사진에서 본 한센인과 흐릿하게 겹쳐 보인다.
붉은 단풍잎 머리에 이고 이른 아침, 우리는 즐거운 문화탐방의 여행을 떠났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샛노란 은행잎과 붉은 단풍, 잔잔한 다도해‧‧‧. 소록도는 가을옷을 입고 있었다. 소록도의 자연 풍광은 이국적으로 아름답다. 푸르고 울창한 숲과 수목, 굽이치는 해안선, 밀려오는 파도에 부서지는 하얀 포말, 잘 가꾸어진 중앙공원, 적벽돌의 성당들이 멋을 부리고 있다. 국립소록도병원이 있는 소록도에는 슬픈 사연을 먹고 자란 어린 사슴이 얼비친다. 소록도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지만 한센인들의 한(限) 많은 비극의 역사를 마주하니, 가슴이 먹먹하였다.
늦은 밤 가로등 불빛이 교교히 흐르는 시간, 출발 지점에 도착했다. 새벽공기를 가르며 출발하여 인적이 뜸한 이 밤까지, 우리들은 명예교수의 한 가족임을 새삼 느꼈다. 추억의 알맹이들을 가슴에 담고 뿔뿔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본고의 사진은 명예교수회 카페에서 다운받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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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교수님, 바쁘신 시간 쪼개어 우리의 하루를 그림같이 그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가을 나들이의 하루 시간들이 차례로 떠오릅니다. 함께 했던 분들의 표정과 날씨, 하시던 말씀까지..... .몇달 동안의 마음 부담을 터심도 축하드립니다. 책 예쁘게 만들겠습니다. 늘 도와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글을 읽으며 여행을 한 번 더 하는 호강을 누렸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