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정각색된 수준을 뛰어넘었다)
■번역에 대해
혹자는 말한다. 번역은 또 다른 종류의 창작이라고.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다.
어떤 텍스트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외국어 영역의 독해나 토익의 읽기 부분과는 전혀 다른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텍스트를 번역한다는 것은 기계적으로 해석만 하는 게 아니라 원문이 가지고 있는 텍스트의 성격을 다른 언어로 바꿔서 전달해주는 것이니까 말이다.
쉽게 말해서 1->1'이 아니라 1->2인데 1처럼 보이는 것으로 하는 게 번역이다
. 실제로, 북미의 출판계에서는 역자를 작자와 동급으로 대우해준다.
그리고 여기 만화 번역계의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킨 작품(?)이 하나 있다.

(사실, 이쪽 세계는 21세기에서 16세기로 흐르는 세계다)
■해적판
한때 저작권이라는 걸 그냥 먹는 것으로 여기는 시기가 있었다.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가 그 시기인데,
이 시기에는 저작권을 쌈싸먹고 원작자와 협의도 없이 번역을 하고 제멋대로 출판을 한 해적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해적판들은 하나같이 이름이 구렸다. (드래곤볼 - 드라곤의 비밀, 도라에몽-도라몽, 원피스-킹카해적)
이들의 이름은 왜 하나 같이 죄다 이딴식인걸까.
해적판이어서 이름이 구린 건지, 이름이 구려서 해적판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만, 한 번 연구해볼만한 사항인 것 같다.

(앞이 안 보이면 막나갈 수도 있고 기술을 더욱 크게 쏠 수 있는 세계이기도 하다)
■메가톤맨
사실 해적판의 번역들은 정식으로 출판된 만화책의 번역과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 해적판 중 눈에 띄게 희한한 작품(해적판에 작품이라는 말을 써도 될랑가 모르겠다만)이 하나 있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이라는 만화를 마번역한 메가톤맨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원작부터가 기묘한 만화(너무 긴 만화여서 짧게 요약하자면 처음엔 흡혈귀가 나오고, 다음으로 슈퍼짱흡혈귀가 나오고, 그 다음엔 초~능력이 나오고, 우주가 멸망하고, 다시 우주가 태어난다)이지만, 메가톤맨의 번역은 원작의 기묘함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앞서 번역은 1->2인데 1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했는데, 메가톤맨의 번역은 1->3이다.
번역을 잘못 했더니 전혀 죠죠의 기묘한 모험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만화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건 번역이 아니다. 번역과 비스무리한 무언가다.
몇 년 전 유행했던 자막놀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걸 떠올려도 될 거 같기도 하다.
자막놀이를 모른다고? 지금 당장 러브 라이브의 자막 파일을 내부자들에 덮어 씌워서 보도록 해라. 그게 바로 자막놀이
다.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면 최근 네이버 웹툰에서 서비스 하고 있는 짤방을 떠올려봐라
. 등장인물의 말풍선을 비운 채 짤방 작업을 시켜주는 그 서비스 말이다. 메가톤맨의 번역은 그런 것과 비슷하다.

(이 기묘한 세계에서는 반말->하오->경어체 순으로 말을 해야 한다, 안 그럼 말이 안통한다)
■컬트적, 키치적
사실 전문 번역가가 '메가톤맨'을 봤다면 갈갈이 날뛰면서 이딴 건 번역이 아니라고 일갈할 게 분명한다.
그도 그럴 것이, 원작의 맥락을 전부 파괴해버리고, 웃기지도 않은 대사(근데 결과적으론 웃겼다, 전혀 다른 방향으로)나 쳐넣었으니 말이다. 나도 그런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따지고 보면 '메가톤맨'은 불법 출판물이고, 메가톤맨의 번역도 원작을 파괴해버렸다.
열렬한 죠죠러라면 메가톤맨을 싫어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가톤맨이 웃기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비록 그게 의도치 않는 웃음이었어도 말이다
. 90년대에 발번역된 사례가 20년을 뛰어넘어 아직까지도 기억되고 있다는 걸 보는 데에는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다.
다른 해적판들 중 아직까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은 것은 도라몽의 대탐험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메가톤맨이 아직까지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원작의 명성)가 있겠지만 역시 가장 큰 것은 키치적인 번역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메가톤맨의 정신 나간 번역은 그 나름대로 되돌아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메가톤맨이 알려진 이유, 밥맛의 반대는 꿀맛이다)
■그래도 이거 볼 바엔 정발본을 보자
안타깝게도, 이제 메가톤맨을 파는 곳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문학동네의 자회사인 애니북스에서 죠죠의 기묘한 모험을 정발시킨 이후로, 메가톤맨의 입지는 급속도로 줄어들어갔다.
그래도 동네 만화방이나, 헌책방(수원역 지하 만화방 짱x카페에는 전권이 있고, 부산 보수동 책방 골목에서 메가톤맨을 본 적이 있다)을 뒤지다 보면 찾을 순 있긴 하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이 책을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진 않다.
나무위키에서 메가톤맨/짤방모음 항목으로 가서 짤방 모음만 봐도 충분하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메가톤맨의 가장 큰 가치는 단락적으로 던져주는 의도치 않은 웃음에 있다고 본다.
우연이 만들어주는 웃음을 연속적으로 보는 것만큼이나 지루한 것은 없다.
필자도 한 번 메가톤맨을 주행해봤는데, 정신나간 번역 덕분에 내용도 파편화가 되버렸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생각보다 미친 번역의 비중도 그렇게 많진 않다.
그러니 메가톤맨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말고, 그냥 죠죠의 기묘한 모험을 사보도록 하자. 죠죠의 기묘한 모험은 불세출의 만화니까말이다. 따지고 보면, 메가톤맨이 흥한 것도 원작이 죠죠의 기묘한 모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냥 죠죠가 짱인 것이다.
(c.f 사실 죠죠는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개연성 없는 전개라든지, 이해할 수 없는 초능력이라든지 때문에 말이다, 그냥 메가톤맨 짤방만 봐도 초급 죠죠러 행세를 할 수 있으니 참고하자)

(기묘한 BL물이기도 하다)
■끝으로
번역이라는 작업만큼 골때리는 작업은 없을 것이다.
창비 2015년 가을호에 번역가의 고뇌에 대한 소설이 하나 있는데, 단편 소설 하나 읽을 만큼 심심하고 권태로운 사람이 있다면 한 번 보시길 바란다. 정영수 작가의 애호가들이라는 작품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다.
아무튼, 주위에 번역가 친구가 있다면 한 번 메가톤맨을 보여줘봐라. 둘 중 하나가 될 게 분명하다. 그 번역가 친구는 메가톤맨스러운 초월번역을 하게 되거나, 번역가를 때려치우거나.
세 줄 요약
죠죠짱
죠죠짱
그래 나 죠죠러다
첫댓글 처음들어본다했더니 해적판이구나..
유명한 해적판이져
밥맛 꿀맛 ㅋㅋㅋㅋㅋㅋ
밥맛좀 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