폄훼당한 역사, 철학 없는 정권
송필경 (전 (사)전태일의친구들 이사장, 치과의사)
2026-07-25 페북글
<철학 없는 역사는 공허하고,
역사 없는 철학은 맹목이다.>
철학자 칸트 할배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라고 물으면 이렇게 답하셨을 것이다.
우리 남한에서 역사라면 나에게는 대체로 이렇게 다가온다.
1, 울긋불긋 사모관대를 두른 사람들의 여러 정치적 암투와 궁중 여인의 암투
2. 또는 ‘태정태세문단세…’ 같은 시험을 위한 암기 지식
3. 또는 민족수난사 앞에서 비분강개해야 할 사실들의 나열
시대의 격동을 견뎌낸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 꿋꿋한 삶의 흔적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선 자리를 알려주는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를 역사서로 통해 읽는 게 아니라 서사 매체(문학, TV 드라마, 영화)에서 픽션의 소재로 대면한다.
이런 픽션은 인물의 감정과 일상을 생생하게 담아내는 데는 뛰어날지 몰라도, 개별적인 삶의 정황과 자극적인 감정에 몰입하게 하여 오히려 시대를 관통하는 역사적 인식인 철학적 사유가 거세되거나 왜곡될 위험이 있다. 사건이나 인물의 행위에 담긴 역사적·철학적 당위보다는 개인의 고통, 동정심, 눈물에 집중하여 핵심 본질을 사소한 이야기 거리로 소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시대를 이겨낸 보통 사람들의 삶 속에는 엄연히 그 시대의 모순에 맞선 주체적 역사의식과 사상이 존재했음에도, 픽션은 이를 그저 '운명에 휩쓸린 피해자'나 '수동적 존재'로 단순화하기 쉽다. 시대의 비극을 만든 근본적인 구조와 철학적 물음을 던지기보다, 개개인의 서정적 서사로 마무리함으로써 역사에서의 철학적 의미를 유예해 버린다. 예를 들어 홍범도 장군의 흉상 제거가 그렇다.
홍범도 장군을 둘러싼 담론과 흉상 이전 논란은, 대중과 현실 정치가 독립운동가라는 존재를 다룰 때 얼마나 손쉽게 지워버리는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다.
홍범도 장군의 삶은 곧 일제강점기 시대 민중의 위대한 역사였다. 머슴, 포수, 광산 노동자로 살아왔던 보통 사람이 일제의 침탈에 직면해 스스로 무장하고,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불멸의 승리를 일궈냈다. 말년에 소련에 망명한 것이 남한에서는 ‘빨갱이’로 둔갑했다. 장군은 맑스-레닌주의 이념가가 아니라, 오직 조국 독립을 위해 당시 가능한 최선의 수단을 택했던 현실적 무장 투쟁가이자 민중의 지도자였다.
당시 제국주의 일본이라는 압도적 폭력에 맞서기 위해 독립군이 소련 측의 무기와 지원을 모색했던 것은, 철저하게 독립을 향한 현실적이고 주체적인 정치적 결단이었다. 이를 단순히 ‘시대에 휩쓸려 공산당에 가입하게 된 수동적 의지’가 아니었다.
'공산주의 가입 이력'이라는 단편적 사실 하나로 남한은 홍범도를 가두었다. 보통 사람들이 독립을 위해 어떤 사상적 모색과 선택을 거쳤는지에 철학적 구조를 통째로 지워버렸다.
진보사학계에서는 친일반공적인 시각을 전적으로 부인하지만, 거짓의 장막을 거두어 버릴 현식적인 힘이 없다.
역사의 참된 의미를 나타내는 철학은 감상적인 픽션의 흥밋거리 뒤에 숨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 인간이 어떤 주체적 의식과 사유를 품고 시대를 어떻게 이겨냈는지를 명확하고 타협 없이 규명할 때만 드러난다.
역사를 철학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결여된 서사는 결국 일시적인 감동에 그칠 뿐, 우리가 가야 할 주체적인 길의 길잡이가 되지 못한다.
진보 사학계에서는 비분강개해야할 사실들만 나열하고, 매듭을 지어야 할 철학을 모색하지 못하는 정치 구조의 한계에 갇혀 있다. 우리 민중은 그저 멀뚱히 바라볼 수밖에 없다.
5·18항쟁도 그렇지 않은가? 진보적 정권에서도 항쟁의 역사적 가치를 정교하게 제도화하고 승리의 역사로 매듭짓기보다, 매년 기념식 때마다 비분강개와 피해의 기억을 호출하는 데 그쳤다.
5·18에 '미래를 향한 민주주의의 이정표'라는 철학적인 매듭을 짓지 못하자, '과거의 슬픔과 분노를 전유하는 전유물'처럼 대중이 인식하는 한계를 보였다. ‘국민의 정부’에서 5·18 반란의 수괴로 무기징역형을 받은 전두환을 어이없이 사면했다.
현실 권력 없는 사학계가 진영논리에 그만 주저앉아 버렸다. 5·18을 완결한 역사적 자산'으로 매듭짓지 못한 게 정치적 진영 논리에 따라 조롱받거나 폄훼 받는 가장 큰 원죄라고 나는 생각한다.
올해 5·18을 겪은 지 46년, 아직도 내로라하는 기업인이 조롱하고 덩달아 고등학생까지 폄훼했는데 내년에는 그렇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하겠는가.
사학계가 정치인을 견인하지 못하는 것은 힘의 한계인가, 진영 논리에 매몰당해서 인가?
역사에서 철학이란, 과거의 비극에서 냉정한 교훈을 얻고, 시대의 모순을 직시하여, 인간 존엄과 자주성을 향한 분명한 결말을 만들어가는 주체적 의식이다.
그런 철학은 역사를 수동적인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실천의 장으로 바라보게 한다.
역사의 철학은 사건을 비분강개의 한탄으로 흐지부지 남겨두지 않는다. 어떤 역사이든 사건의 결말에 분명한 매듭을 요구한다. 그 매듭을 바탕으로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떤 가치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라는 당당한 선언을 내리는 것이 역사에서 철학의 최종 의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눈 앞에 있은 5·18마저 이럴진대 그 이전의 역사적 사건은 말 할 나위도 없을게 아닌가?
전국에는 많은 역사의 기념관이 있다. 내가 가 본 만주에도 많은 역사 기념관이 있다. 그러나 끝을 매듭하여 철학적인 결론을 내린 기념관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역사의 사건을 단순히 관람객의 감상이나 분노, 비분강개(悲憤慷慨)의 영역에 머무는 것은 역사를 소모하는 것에 불과하다. 과거의 희생과 비극을 수동적으로 관조하고 "참으로 슬프고 애통하다"는 식의 박제된 눈물로 끝맺는 전시 공간들은, 결국 관람객에게 어떠한 주체적 의식도, 미래를 향한 나침반도 제시하지 못한다.
역사의 철학은 반드시 선명한 매듭을 요구한다. 그 매듭은 단순히 과거의 일을 정리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비극과 모순의 원인을 냉정하게 파헤치고, 그 속에서 '인간 존엄과 자주성'이라는 불변의 가치를 건져 올린 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세상과 어떤 가치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라는 당당한 실천적 선언이 있는 매듭 말이다.
철학이 텅 빈 기념관은 유물과 사진을 나열한 박제의 공간일 뿐, 주체적 의식을 매듭으로 한 결론을 제시할 때 비로소 그 공간은 미래를 변혁하는 생생한 실천의 장이 된다.
국내와 만주의 수많은 사적지와 기념관들이 비극의 사실(Fact)을 전달하는 데는 치열했을지 몰라도, 그 비극을 관통하는 '주체적 자주철학'으로 매듭지어 관람객에게 서늘한 교훈과 당당한 이정표를 안겨주는 데는 아직 한참 모자라고 있다.
골수 친일파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독립기념관의 관장을 맡았었고, 5·18을 조롱하는 인사가 총리급 직위에 버티고 있었고, 조선시대 사대주의자(事大主義者)보다 더한 굴종을 실천하던 종미주의자(從美主義者)가 정부의 주요 직책에 임명되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정권의 좌우 진영을 막론하고 말이다.
철학의 부재는 진영을 가리지 않고 천박한 모습을 드러낸다.
남한의 역사 창고는 철학이 텅 빈 시간의 창고에 불과하다. 비분강개해야 할 사실들만 가득한 창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