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그의 종, 엘리에셀에게 이삭의 신부감을 구해 오라고 보냈습니다. 이삭의 아내가 될 사람의 조건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종에게 ‘가나안 여자들 가운데서 얻지 말고, 내 고향, 내 친척의 땅으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의 아내 될 사람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건은 굉장히 간단했습니다. 엘리에셀은 주인의 뜻을 정확하게 행하기 위해서 몇 가지를 더 묻고서 곧바로 길을 떠났습니다. 그는 출발할 때 아브라함의 낙타 열 마리와 좋은 선물을 가지고서 길을 나섰습니다. 그가 향한 곳은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이 살고 있는 성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스스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엘리에셀이 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이삭의 아내가 될, 합당한 사람을 자신이 직접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을 선택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도 아내와 연애를 하고서 결혼을 했습니다만, 누군가의 아내를 대신 선택해 준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놀라운 것은 여기서부터 엘리에셀의 기도가 시작이 됩니다. 엘리에셀은 자기가 직접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의 기도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는 저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제가 주인 아들의 아냇감을 순탄하게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제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저는 지금 우물가에 서 있고, 성의 여자들은 물을 길으러 나오고 있습니다. 제가 그 중 한 여자에게 ‘그 물동이에 있는 물을 좀 먹게 해 주십시오.’하고 말할 때, 만약 그 여자가 ‘마시세요. 내가 당신의 낙타들에게도 물을 먹이겠습니다.’라고 말하면, 그 여자를 주의 종 이삭의 아냇감으로 알겠습니다. 주께서 제 주인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으로 알겠습니다.”(창세기 24장 12절-14절, 쉬운성경)
그의 기도는 매우 간결했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엘리에셀의 기도를 묵상하다가 한 가지 주신 마음이 있습니다. 지금 기도하는 사람은 이삭이 아닙니다. 마땅히 이삭이 해야 될 기도를 종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물론 기도는 당사자인 본인이 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그를 위해서 대신 중보해 주는 사람들의 순종과 기도를 통해서도 동일하게 역사하기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에셀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종의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리브가가 성에서 나왔습니다. 리브가는 종이 기도했던 대로 물을 마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낙타에게까지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v.18,19)
우리들이 구하는 기도제목들이 이렇게 정확하게 즉각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몇 해 전에, 어떤 자매와 자신의 결혼에 대해서 상담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자매의 얘기를 들어 보니까 신랑을 위한 기도를 무려 100가지나 적어놓고 매일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는 만나는 남자들마다 자신의 기도조건에 맞지 않아서 늘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 기도하는 자매의 모습을 보고서 깜짝 놀랐습니다. 엘리에셀의 기도을 통해서 가르쳐 주시는 것은, ‘하나님은 소원을 들어주시는 요술램프의 지니와 같은 분이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엘리에셀의 기도는 하나님의 축복과 섭리를 기도를 통해서 이루시는 하나님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은 성경에서 그 이름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엘리에셀의 기도는 하나님의 축복과 섭리 안에서 아름답게 쓰였습니다. 그의 기도는 저의 믿음에 큰 도전을 주고도 남았습니다. 이제 종의 기도는 이렇게 끝납니다.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이삭의 아내를 구하는 엘리에셀의 기도가 참 은혜롭게 들립니다. 때론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이 지칠 때도 있고, 잊게 될 때도 있지만 더 힘을 내어서 기도합니다.
저는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터키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우리 교민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진심으로 경험하고 고백하는 날까지, 중보기도의 끈을 놓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