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페이퍼 샤먼을 보러 갔었다.
이 창극은 박칼린이 연출을 맡았고
여러 쟁쟁한 배우들이 나와 환상적인 공연을 선보였는데,
최근 보았던 마당놀이 홍길동전에서 보았던 창극단 배우 조유아씨가
이 페이퍼 샤먼 공연에서 토선생 (토끼) 의 역할을 맡았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홍길동전에서 조유아씨는 굉장히 연기를 잘했다.
그 배우는 홍길동을 따라다니는 광팬으로서의 감초같은 연기를 선보였다.
특유의 구성진 목소리로, 길동을 찬양하면서
" 덕후 덕후 ~~~~ 덜렁 덜렁 ~~~ " 하면서
삼충이의 멋진 캐릭터를 ...
오히려 나는 그의 연기를 보며 덕후가 되었었다.
그런데
그가 바로 페이퍼 샤먼에서의 토선생이었다니 ...
만일 버리데기가 현대에 환생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샤먼의 모습일 것이다.
버리데기
< 5장 >
한해가 저무는 동짓달, 끝자락, 햇볕 밝은 아침, 버리데기의 초가집,
앞마루에 앉아서 대추, 곶감을 그릇에 정성스레 담고 있는 봉이
일을 마치면 그릇을 소반 위에 올려놓고, 촛대며 향로를 닦고 있다.
아래쪽 굿당 안에는 버리데기가 여러 혼령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녀의 목소리는 반쯤 열려진 문틈으로 들렸다가 안 들렸다 한다.
버리데기 : 미안 ... 그래... 미안... 아니... 그래... 아파, 나무, 강, 풀...
가뭄... 응 비었어... 가지마, 미안... 그래, 땅도 아파...
자꾸 뿌려... 많이... 만, 쌀... 응... 왜 이래 ? 갈려고 ? 도와줘...
알아, 그래도... 도와야지... 모르겠어... 이상해... 피해... 안 쳐다봐...
응... 가려고 ? ... 싫어 ?
- 버리데기가 굿당 안을 누군가의 뒤를 따라 가듯이 걸어다닌다.
그러다가 가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보거나 ,
재빨리 몇 걸음 옮긴 다음 두 손으로 앞을 가로막는 자세를 취한다.
다시 팔을 내려 뜨리고 또 뒤로 따르는 걸음을 걷다가 털썩 제자리에 주저앉기도 한다.
사이, 다시 일어서려다가 냅다 자리에 누워버린다.
그리고 앙탈을 부리듯 팔다를 털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
버리데기 : 그래, 가아. ... 응... 가... 아니... 할 수 있어... 멀리 가지 마...
- 버리데기, 누군가가 자신의 몸에 간지럼을 먹이는 듯 몸을 움츠리며 웃는다.
그리고 옆으로 뒹굴기 시작한다. 웃음 소리가 커진다.
마침내 조용해지고 버리데기는 그대로 바닥에 엎드려 있다.
그 사이 봉이가 다가와서 굿당 문을 조심스레 닫는다.
사이, 왼쪽에서 오서방이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다.
봉이가 아는 척 한다,
오서방은 자전거 뒷 좌석에서 봇짐 하나를 풀어 봉이에게 준다.
봉이가 봇짐을 가지고 초가집 마루로 올라간다.
마루에는 하얀 천 뭉치와 소반이 놓여있다.
봉이가 봇짐을 푼다.
오서방이 따라와서 봇짐 안의 물건들을 설명한다. -
오서방 : (두터운 겨울용 두루마기를 가리키며) 오부인이 고맙다고 보살님에게 선물한 거야.
(굿당을 내려다보며) 저기 계셔 ?
봉이 : 응
오서방 : (갓난 아기 옷가지들을 가리키며) 이건 뭔지 알지 ?
보살님이 가져오라고 했어.
봉이 : 아기 ... 옷.
오서방 : 천도제... 아기 천도제.
- 잠시 침묵, 봉이가 방 안으로 들어가서 둥글게 말아 묶은 돗자리를 가지고 나온다. -
오서방 : 지금 하는 거야 ?
봉이 : ...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오서방 : 그래, 알아, 해가 저만치 와야지. (하늘 왼쪽을 가리킨다)
봉이 : 오... 부인 ?
오서방 : 누님 ? 왜 ? 괜찮아. 많이 나았어. 건강해.
봉이 : 잘돼.
오서방 : 보살님 덕분이지.
봉이 : 아기 ?
오서방 : ... 어쩔 수 없재... 운명 같은 거지.
봉이 : 불쌍.
오서방 :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래.
페이퍼 샤먼의 한 장면
백인 노예무역상에게 잡혀가다
깊은 바다 속에 수장된
수많은 아프리카의 희생자들의 넋을 치유하면서 건져올리는
김우정 배우
치유사, 힐러, 무당, 마녀, 마법사, 수호자, 위치 닥터, 드루이드, 투앗드다나안, 만신, 샤먼…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예민한 자들이여”
라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밝히는 다른 대륙에서 온 영험한 자들이 모여
아시아 동북쪽 한국을 찾은 까닭은 어떤 치성이 닿았기 때문이다.
시공간을 넘어 다른 대륙의 예민한 자들에게까지 닿은 치성은 아주 평범한 것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아이 하나 점지해 주소서”라는 소박한 기원.
등장하면서부터 기후위기며 가자지구의 폭격과,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대한 소리로 관객의 기대치를 높인 예민한 자들 앞에서
삼신굿을 올리고 아이를 바라는 첫 시작은 아주 소박하다.
삼신굿에 답해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는 팔자가 평범하지 않으니 감추어 키워야한다는 무당의 예언도
글로벌 재난과 위기에 비하면 별 것 아닌 듯하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계곡처럼 많은 것을 품으라는 이름 ‘실’을 받고 담장 안에 꽁꽁 숨겨져 자란다.
집 밖을 나설 수 없는 실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은 오직 ‘소리’ 뿐이다.
담장 밖을 오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사정들.
그 사람들의 푸념이나 궁금한 것들도 별 것 아니다.
좋아하는 이웃 오빠, 가족의 건강 따위 사소한 일상들.
고만고만한 일들에 대해 덕담처럼 건네지는 실의 목소리가 용하다며 밖으로 이끌려 나가기까지는
다른 대륙의 예민한 자들이 쏟아낸 재난과 위기에 비해 한국적 무속의 스케일은 참 소박하다 싶다.
용하다고 반기던 이웃들이 길한 일 뿐 아니라
흉사도 가리지 않고 전하는 실에게 보내는 적대 앞에서 실의 가야할 길이 험한들 얼마나 험하랴 싶을 정도로
어린 실이 강신무가 되기 전까지는 고민도 갈등도 소박하다.
자신이 남과 다르게 앞날을 알고, 죽은 존재들을 보고,
사람 아닌 뭇 생명들과 통하는 것을 알게 된 실이 내림굿을 받고 강신무가 되는 과정은
창과 소리, 춤과 놀이를 아우르는 한국 전통예술의 바탕에 무속이 있고,
그 바탕을 제대로 익힌 연희자들의 소리와 사위에 실리니 멋과 흥을 한껏 돋운다.
그래도 갓 신 내림받은 어린 무당이 4 대륙 샤먼들을 두루 불러들여놓고
앞으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려고 하는 걸까 싶다.
오랜 세월 길흉 점치고, 아이 점지하고, 돌아가신 조상의 넋을 위로하는
토속 신앙으로서의 무속을 예술적으로 재현하는 것 말고 또 뭐가 있으려나 싶을 때
친어머니와 신어머니가 실을 떠나보낸다.
큰 신이 내린 실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너의 길을 찾으라면서 ...
실의 길에 함께 하는 이들이 바로 처음부터 지켜본 다른 대륙에서 온 예민한 자들이다.
영화 〈서편제〉에서 이미 대중적인 소릿길을 펼쳐보인 안숙선은
소리꾼으로는 드물게 판소리 다섯 바탕을 모두 완창한 대명창으로서
지금까지 국립창극단 무대의 작창을 맡아왔는데
이번 무대에서는 국립창극단 소속으로 스타가 된 젊은 소리꾼 유태평양이 작창을 함께 했다.
이 둘이 어찌 다른 대륙의 샤먼을 그려낼까,
한국적 소리가 문화적 배경이 다른 지역의 무속을 표현할 수는 있을까 싶었는데,
새로운 창극의 시대는 이제부터 시작일 듯하다.
무릇 무당이란 다른 존재를 보고, 듣고, 느끼고, 공감하고, 위로하는
아주 특별하고 ‘예민한 자’들이라는 처음의 정체성 선언은
창극단 연희자들의 신들린 무대에서 관객을 휘몰아친다.
백인 노예무역상에게 잡혀가다 깊은 바다 속에 수장된 아프리카의 희생자들,
제국주의 침략자들에게 몰리고, 뺏기고, 죽어간 아메리카 원주민과 버팔로들,
비무장지대 DMZ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수습도 못되고 낡은 군화로 굴러다니는 넋들,
제국주의 백인들 발길이 닿은 후로 무성하던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멸종되는 짐승들과 부족들….
다른 역사 다른 대륙의 샤먼들을 통해 그 처절한 한이 무대에 넘치고 넘쳐 관객에게로 흘러들 때,
그저 자기가 왜 남들과 달라서 숨어 살아야하냐고 투정부리던 실이
그 한에 아파하고 절절한 씻김굿을 펼칠 때,
우리는 모두 하나요, 이 세상 어느 고통 어느 희생도 내 것이 아닌 것이 없으며,
지구적 차원의 전쟁과 재앙이 켜켜이 쌓여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되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묻는다.
한국의 소리는 ‘한’을 담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무속은 무당의 목소리와 몸짓을 빌어 ‘한을 풀어주는 굿’으로 펼쳐진다.
어떤 간절함을 이루기 위해 바리데기가 길을 떠나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었듯
실이 전세계의 과거와 현재의 한 서린 기운을 따라가는 씻김의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실 혼자만이 아니라 아직도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까지.
출처 : 현대불교(https://www.hyunbu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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