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단위다. 하나 둘 하고 셀 수 있는 것은 단위다. 무엇이 존재한다는 말은 객체가 단위를 이루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 세상은 원자의 집합이 아니라 단위의 집합이다. 우리가 아는 원자 개념은 외부 관측의 단위다. 관측은 외부에서 일어난다. 외부에서 작용하면 상호작용이다. 사물은 외부에서 관측되지만 변화는 내부에서 일어난다. 총알은 총 내부에서 발사된다. 외부의 아날로그와 내부의 디지털이 있다.
방정식 - 외부 관측 단위, 대칭성, 아날로그, 상대성, 사물의 세계, 열역학 1법칙
함수 - 내부 결정 단위, 일방향성, 디지털, 절대성, 사건의 세계, 열역학 2법칙
헷갈리는 이유는 안에서 지속되는 변화와 밖에서 일어나는 일회적인 변화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부를 보는 것은 방정식이고 내부를 보는 것은 함수다. 외부를 보는 것은 1법칙이고 내부를 보는 것은 2법칙이다. 완전히 다른 세계가 열린다. 보존법칙은 외부에서 건드리지 않는 한 그대로 있다는 말이다. 즉 외부를 보는 것이다. 사과가 썩어도 에너지는 보존된다는 것은 사과 내부를 보지 않는 것이다. 내부는 논외다.
1법칙은 외부에서 에너지가 들어가거나 나왔는지만 감시한다. 이는 외부인이 부부싸움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내부를 본다면? 사과는 썩었다. 에너지는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2법칙은 내부를 보고 있다. 그렇다면 외부와 내부를 가르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단위다. 원자 개념은 자의적으로 단위를 정한 것이고 자연의 진짜 단위는? 사건이다. 에너지의 입력에서 출력까지가 하나의 의사결정 단위다.
닫힌계를 정하면 1회 에너지 입력에서 출력까지가 하나의 단위가 된다. 세상은 원자의 집합이 아니고 의사결정 단위의 집합이다. 외부에서는 관측의 단위 곧 상호작용의 단위가 되고 내부에서는 변화의 단위가 된다. 그 변화는 자발적 변화다. 통제되는 변화다. 미래가 예측되는 변화다. 결과를 바꿀 수 있다. 완전히 다른 두 세계가 있다. 대칭으로 보는 사물의 1법칙 세계와 일방향성으로 보는 사건의 2법칙의 세계가 있다.
과학자들이 엔트로피의 법칙을 어렵게 설명하는 이유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왜 무한동력은 안될까? 동력은 자발적 변화다. 학자들이 이 부분을 말해주지 않았다. 중력의 작용은 자발적 변화가 아니다. 중력은 외부에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외부의 중력에 맞서 반작용을 하므로 무한동력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외부의 힘을 이용하는 어떤 장치를 만들든 무조건 내부에서는 반작용하게 된다.
에너지는 공유가 깨지는 것이다. 위치에너지의 위치는 공유의 위치다. 에너지의 사용은 위치를 깬다. 에너지를 사용하여 공유가 깨지면 에너지가 아니다. 물론 에너지라는 말을 여러가지 의미로 쓰기 때문에 에너지가 아닌 것도 에너지라고 해서 헷갈리게 하지만 사용할 수 있어야 에너지다. 공유된 것은 공유되지 않은 것보다 밀도가 높고 자발적 변화는 그 밀도를 잃는다. 이렇게 정의를 딱 해주면 다들 납득하게 된다.
무한동력이 안 되는 이유 = 에너지는 닫힌계 내부에서 공유결합을 깨는 자발적 변화이기 때문이다. 에너지를 사용하면 깨져서 안 된다.
무한동력 착각을 하는 이유 = 닫힌계 외부의 작용 힘을 가져오는데 내부에서 반작용하므로 상쇄되어 안 된다. 안밖을 구분하지 않았다.
왜 자연은 대칭적일까? 둘이 하나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모르는 사실이다. 모든 대칭에는 공유가 있고 더 높은 차원이 있다. 바퀴축은 바퀴보다 차원이 높다. 공유는 사유보다 차원이 높다. 바퀴가 선운동을 한다면 바퀴축은 각이고 디퍼런셜 기어는 체다. 차원이 높다. 함수는 방정식보다 차원이 높다. 2법칙은 1법칙보다 차원이 높다. 어떤 것이 대칭되어 있다면 반드시 둘을 공유하는 더 높은 차원이 있다.
두 다리가 대칭되어 있다면 둘을 통일하는 몸통이 있다. 두 다리는 몸통을 공유한다. 두 다리는 몸통에 갇혀 있다. 다리를 보면 대칭이지만 몸통을 보면 함수다. 에너지는 언제라도 몸통에서 두 다리로 간다. 공유에서 사유로 간다. 몸통은 함수이고 함수는 입력과 출력이 있다. 즉 두 다리 중심의 방정식 사고를 할 것이냐 몸통 중심의 함수적 사고를 할 것이냐다. 여당과 야당이 두 다리라면 국민이 몸통임을 알아야 한다.
몸통은 두 다리를 움직일 수 있지만 두 다리는 잘해봐야 교착될 뿐이다. 한쪽 다리가 가지 않으면 다른 다리도 움직이지 못한다. 방정식은 멈추게 할 수 있을 뿐 시동을 걸 수 없다. 함수는 시동을 걸 수 있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방정식이라면 둘이 공유하는 문명은 함수다. 함수에는 압력이 걸려 있다. 문명인 몸통이 먼저 가고 진보의 왼발과 보수의 오른발은 따라가는 것이다. 우리는 걷는 방법조차 모른다. 무지하다.
두 다리를 움직여 걷는다는 것은 착각이고 몸통을 전방으로 기울여서 걷는다. 두 다리는 몸통이 쓰러지려고 할 때 교대로 받치는 것이다. 다리가 먼저 가면 안 되고 몸통을 기울여야 한다. 100미터 경주의 출발선에서 모든 선수가 상체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보면 보이는데 인간이 보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휴머노이드 로봇 중에 이 원리를 적용시킨 로봇은 아직 없다. 로봇은 아직 걸음마도 할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