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千字文)
이야기 |
沙月 李盛永(2013. 3.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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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天地玄黃 三年讀 焉哉乎也 何時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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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28년(1752)부터 37년(1781년)까지 10년 동안 정승직에 있으면서 네 번 정승직에서 해임되고, 네 번 다시 오른
이천보(李天輔) 대감은 본래 성품이 소탈하고 정직하며 벼슬자리에 앉아 하는 일 없이 안주한 적이 없고 또 아부할 줄을 몰라 자주 임금의 뜻을
거슬리면서 옳은 말을 상주했기 때문에 여러 번 정승자리에서 해임되었다. 그러나 임금 영조도 그의 이러한 성품과 순수성을 알고 신뢰했기 때문에
다시 임명했던 것이다.
그는 연안이씨(延安李氏)의 자랑인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백주(白洲) 이명한(李明漢)-청호(靑湖)
이일상(李一相)으로 이어지는 삼대대제학(三代大提學) 집안의 두 번 째 이명한의 차자 빙헌(氷軒) 이가상(李嘉相)의 증손(曾孫)이니까 백주
이명한에게는 현손(玄孫)이요, 월사 이정구의 오대손(五代孫)으로 가풍(家風)을 이어 문아(文雅: 시문 등이 풍치가 있고
아담함)하고, 풍모(風貌)가 청소(淸素: 맑고 깨끗함)하며, 심회(心懷: 마음에 품은 것)가 넓고 뇌락(磊落: 기상이 활달하여 작은 일에 구애되자
아니함)하였으며, 죽은 뒤 염습할 옷이 없을 정도로 청빈(淸貧)하였다.
그런 그에게 무거운 근심거리가 하나
있었다. 후사(後嗣)를 이을 아들이 없어 양자(養子)를 물색해야 하였기 때문이었다. 영조27년(1751) 쯤 이조판서로 있을 때에 고향인 경기도
가평에 내려왔다. 그가 가평 사촌형 이국보(李國輔)의 집에서 양자로 점찍어 데려온 이문원(李文원)과 천자문(天字文)이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 한
토막을 먼저 올린다.
경기도 가평의 산속 길을 벽제소리 요란히 울리며 귀인을 태운 사인교가 어느
마을로 어느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인교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이야 말로 나중에 일국에 어진 재상이 되고 장래에 일어날 일들을
일일이 예측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바로 악동대신(壺洞大臣) 이천보(李天輔)요, 그가 들어간 집은 그의 사촌 이국보(李國輔)의 집이었다.
이국보의 집에서는 비록 사촌간이라고 하더라도 신임 이조판서가 들어 닥치고 보니 접대하는 범절의 체면도 있어 안팎이
야단법석이었다. 읍에서는 군수가 나와 소를 잡는다, 돼지를 잡는다, 하여 떠들썩 한데 사랑에서는 오래 만에 만난 종형제끼리의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자 그 때 겨우 일곱 살 밖에 안 된 이국보의 둘째 아들 문원(文源)이 개울 건너 글방에서 글을 읽고
있다가 자기 집에 사람들이 들락날락하고, 야단인 것을 보자 읽던 책을 내팽개치고 집으로 달려왔다. 집에 돌아와 보니 사랑에는 손님이
있으므로 안채로 들어가니 여종들은 찬간과 부엌에서 무엇을 만드는지 분주하고 어머니는 마루에서 고기를 굽고 있다.
문원은
다짜고짜로 어머니 더러 「어머니, 나 고기 한 점 주어요」하며 화로 앞으로 달려드니 어머니가 깜짝 놀라 손을 내저으며 「예, 그런 소리 말아.
서울서 오신 판서 아저씨 드릴 반찬이야. 그러지 말고 어서 나가 놀다 온」한다. 「체, 서울 아저씨만 입이 있나요? 나도 입이
있는데--- 그만 두셔요. 나는 쇠불알이나 하나 떼어다가 구워 먹을 걸.」하더니 식칼을 들고 사랑 마당 외양간으로 내려간다.
문원이가 쇠불알에 막 칼을 대려고 하는데 사랑에 있던 천보가 이걸 보고 「형님, 어떤 애가 칼을 들고 쇠불알을 떼려 하오」한다. 국보가 깜짝
놀라 내다보니 작은 아들 문원이다. 「이놈, 그게 무슨 짓이냐. 어서 칼을 놓고 이리 올라와서 서울 아저씨께 인사나 드려라」
문원이 그 말을 듣고 코를 훌쩍이며 사랑으로 올라와서 꾸벅 절을 하고 나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가면서 혼잣말로 「난 서울 아저씨는
별다른 사람인줄 알았더니 예사 사람과 똑 같구먼!」하면서 나가버린다.
문원의 하는 말을 듣던 천보가 빙그레 웃더니 형님인
국보더러 「형님, 내가 이번에 온 것은 남들에게는 성묘하러 온다고 했습니다 만 사실은 형님 아들 중에서 하나를 양자로 데려가려고 온 것입니다.
더 말씀 하실 것 없이 그 쇠불알 떼려던 놈을 나를 주시오」한다.
국보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여 승락하고 안으로 들어가
부인에게 그 말을 전하니 부인은 펄쩍 뛰며 「양자를 보내시려면 차라리 다른 애를 보내시지 그 장난꾸러기를 어디다 보내시려고 그러셔요? 친어미
아비도 못 견딜 지경인데 남의 속을 얼마나 태우라고--- 나가서 다시 의논해 보셔요」한다. 국보가 다시 사랑에 나갔다 들어오더니
「판서 말이 다른 애는 싫고 굳이 그 놈만 달라니 할 수 있소? 허락합시다.」-(중략)-
문원이 서울에 오자 처음 며칠은 장난도 않고 천연스레 있더니 차차 집안 사람들과 익숙해지자 상노들과 장난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도 양부(養父) 천보 대감은 얼마 동안 저 하는 대로 놓아두었다. 그러다가 두어 달이 지나자 비로소 글방을 차리고 선생을 데려다가
천자문(千字文)을 가르치게 했다.
공부를 시작한 지 며칠 지나 판서대감이 선생을 불러 문원의 공부하는 모양을 물으니 선생이
죄송하다는 듯이 손을 비비며 「참 큰일 났습니다. 장난 치기와 다른 일에는 그처럼 분명한 아이가 글만은 지나칠 정도로 둔합니다.
天地玄黃(천지현황) 네 자를 닷새가 지나도록 깨치지 못합니다.」「거 너무 쉽사리 다룬 탓이 아니오? 좀더 다잡아 보오」판서 대감은 한마디
이르고는 선생을 내보냈다.
그리고 나서 한 달이 지난 뒤에 다시 들어보니 그 때까지도 天地玄黃(천지현황) 그 넉자를 깨우치지
못했다고 하면서 선생도 책임상 물러가겠다고 황송해 한다. 판서 대감이 선생만 나무랄 수도 없고, 기가 차서 문원을 불러다 놓고 물어보니 과연
모르는 게 분명하다. 겉으로는 차마 내색하지 않았으나 내심으로는 '내가 보기로는 대신은 몰라도 판서는 틀림없는 줄로 알고 데려왔더니
글을 저렇게 싫어하니 큰일이로구나' 하며 한탄을 마지 않았다.
그 며칠 후 어느 날 아침 판서 대감은 하인을 불러 가만히
무엇을 일러준 다음 문원을 불러 「내가 너를 아들로 삼아 훌륭하게 되기만을 바랐더니 네가 공부에는 마음이 없고 장난만 하니 어쩔 수 없구나. 네
집에 도로 보낼 터이니 그리 알아라. 내가 파양(罷養)한 까닭에 너의 장래 출세에 지장을 미치게 한 것은 내 잘못도 잘못이지만 너도 잘못이다.
혹시 너의 집에 가서라도 공부한다는 소문이 들리면 다시 데려 올 터이니 집에 가거덜랑 공부를 잘 하도록 해라」하고 타일렀다.
양부의 말을 듣자 문원은 아무 말도 아니하고 천연스레 하직 절을 하고 나서 기다리고 있는 하인의 등에 업힌다. 하인이 문원을 업고 길을 나서서
얼마 가다가 심근솔(植松里) 밖 정자나무 아래서 쉬면서 「도련님도 딱하기도 하오. 시골 양반이 재상 댁 도련님이 되었으니 이 좀 좋소.」하니
문원이 픽 웃으면서 「얘, 시골 살면 벼슬도 못하고 과거도 못 한다더냐? 그러면 재상은 대대로 재상이고 시골사람은 대대로
농사만 짓게? 나도 시골 가서 공부를 하면 다 할 수 있느니라. 왜 내가 그까짓 천자쯤 모르겠니? 내가 그 댁에 가서 책 넣는 광을 보니 책이
한 만권은 쌓였더라. 섣불리 아는 체 했다가는 그 많은 책을 다 배우라고 할 테니 그걸 언제 다 배운단 말이냐. 숫제 처음부터 읽지 않아야
다음에도 배우라고 하지 않을 것 아니냐. 자 이걸 보아라」하더니 손가락으로 흙 위에 천자문을 거의 반쯤이나 쓰고 나서 한 구절 시를 쓰듯이
「天地玄黃 三年讀 焉哉乎也 何時讀」(천지현황 삼년독 언제호야 하시독)이라 쓴다.
이는 ‘천자문의 첫 구절 天(천),地(지),玄(현),黃(황), 네 글자를 삼년이나 읽어야 깨치니 마지막 구절
焉(언),哉(재),乎(호),也(야) 네 글자는 언제 읽을 것인가?’ 하는 말이다. 그러나 문원은 이미 천자문의 마지막 글자
焉哉乎也(언재호야)까지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쓰기를 끝낸 문원이 하인에게 「자, 이래도 나를 천지현황도 모른다고
할테냐?」하고는 태연히 일어나서 「얘, 그만 쉬고 어서 가자!」하면서 재촉하는 것이었다.
하인이 이를 보자 너무나 기뻐서
「아이구! 그만하면 서울 대감 댁 도련님이 되고도 남겠소. 어서 다시 돌아갑시다. 내가 대감께 여쭈어서 다시 계시도록 할 테니요」하자, 문원은
「미친놈 같으니라구. 내가 네 청으로 도로 돌아 갈 사람이냐? 잔말 말고 어서 가자」하며 호령호령 한다.
그러자 하인은 배가
아파서 더 갈 수 없다고 핑계를 하고 천천히 가고, 멀찍이 뒤에서 문원의 거동을 살피며 따라오던 다른 하인이 급히 판서 댁으로 달려가 자초지종을
알리자 선생이 쫓아와 문원을 도로 데리고 갔고, 판서대감이 그 곡절을 알고 기뻐한 것은 물론이요, 글이야 읽든 말든 집안을 빛낼 것만은
틀림없으리라고 믿어져 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韓國歷代野史全集 10권- 傑人 李文源원 편)
문원이 자라서
글은 남보다 앞서게 잘 하지도 처지지도 않고 자기 앞가림은 할 정도로 하였지만 어려서 장난기에 발휘하던 기지(機智)는 관직에 나아가
일을 처리를 함에 있어서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기지를 발휘해서 일을 능수능난하게 처리한 숱한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왔으며
사람들은 이문원을 ‘걸인(傑人)’ 이라 불렀다.
문원을 키운 이천보 대감은 10년 가까이 정승에 머물다가 네 번째 영의정에
임명되었을 때 세자(사도세자)의 평양 원유사건(遠遊事件)이 발생하여 벽파(僻派) 노론들의 집요한 추궁으로 세자가 위기를 면할 수 없는 입장이
되자 이천보 대감은 임금(영조)에게 세자를 용서해 주라는 내용의 유언을 남기고, 세자사(世子師)로서의 책임을 지고 음독 자결하였다.(이어서
좌의정 민백상, 우의정 이후 등도 따라 자결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세손(世孫: 사도세자의
아들)이 영조를 승계하니 이가 곧 정조(正祖)이고, 아버지 사도세자를 변호하며 자결한 이천보 대감에게 감사하면서 그 아들 문원이를
불러 과거를 보게 하고, 관직을 주고 잘 보살펴 이천보 대감이 예측한 바와 같이 정승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이조판서에 3회, 예조판서에 2회,
병조판서에 2회, 공조판서 1회, 도승지 등을 역임하면서 걸인 다운 55세의 생애를 마치자 정조가 이틀간이나 철조(輟朝: 임금이 조문의 뜻으로 조정을 폐함)할 정도로 애석해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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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수문(白首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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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千字文)은 중국 남조(南朝) 양(梁)나라 주흥사(周興嗣:470?∼521)가 글을 짓고 동진(東晉)의 왕희지(王羲之)의 필적
중에서 해당되는 글자를 집자(集字)하여 만들었다고 하며 사언고시(四言古詩) 250구(句)로 ‘천지현황(天地玄黃)’에서 시작하여
‘언재호야(焉哉乎也)’로 끝나는데 합해서 1,000자가 한자도 같은 글자가 없고 각각 다른 글자로 되어 있다.
주흥사(周興嗣) 가 이 천자문을 짓고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고 하여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한다. 당나라 이후 많은
서가(書家)에 의하여 쓰여져 급격히 보급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습자교본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왕희지의 7대손 지영(智永)이 진서(眞書:楷書)와
초서(草書)의 두 체로 쓴 《진초천자문(眞草千字文)》 본으로 1109년에 새긴 석각(石刻)이 전하고 있다.
천자문(千字文)은
태초(太初) 우주(宇宙)의 운행에서부터 인간이 지켜야 할 강상(綱常: 사람이 지켜야할 도리 三綱 - 君爲臣綱, 父爲子綱,
夫爲婦綱 - 과 五常 - 仁, 意, 禮, 知, 臣)은 물론 농정(農政)에 이르기까지 다루지 않은 것이 없다. 따라서 천자문 속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금언(金言)으로 삼아야 할 귀중한 말들이 수없이 많이 들어 있다.
천자문이 한국에 전해진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백제 근구수왕(近仇首王, 375-383) 때 이미 왕인(王仁)이 《논어(論語)》 10권과 함께 이 책 1권을 일본에 전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보다 훨씬 전에 들어온 것으로 추측된다. 그 후 한문의 입문서로서 초보자에게는 필수의 교과서로 중용(重用)되었으며 선조 때의 명필
석봉(石峯) 한호(韓濩)가 쓴 《석봉천자문》이 가장 유명하여 다른 본도 몇 가지 있지만 천자문 하면 곧 이를 말하는 것으로
여겨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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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春香傳에 나오는 千字文 글자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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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양전에 천자문 앞부분 일부 글자 풀이가 나온다. 이몽룡이 바람쐬러 광한루에 나갔다가 춘양이를 만나 저녁에 집으로 찾아가겠다는 약속을
해놓고 저녁 때가 되어 사또(남원부사, 아버지)가 퇴청할 때를 지루하게 기다리면서 무료해서 오래 전에 읽은 천자문을 내놓고 글자(天에서呂까지
30개)풀이를 하는 대목이 나온다.
天(천): 자시(子時)어 생천(生天)
불언행사시(不言行四時) 유유창천(悠悠蒼天)의 하늘 천(天) 자시(子時: 밤11시-새벽1시) 즉 '맨 먼저' 하늘이 생겨나서 말없이 사계절을 행하나니 아득히 멀고 푸른 하늘 천
地(지): 축시(丑時)어 생지(生地)하야 금목수화(金木水火)를 맡아서
양생만물(養生萬物) 따 지(地) 축시(丑時: 새벽1시-3시) 즉 '그 다음'에
땅(土)이 생겨나 금목수화(金木水火)를 잘 다스려 만물을 길러 내는구나 따 지
玄(현): 유현미모(幽玄眉毛) 흑정색(黑睛色)에 북방현무(北方玄武) 검을 현(玄)
검은 눈섭, 까만 눈동자의 북방(北方) 신령(神靈) 현무(玄武: 검은 거북)로다 검을 현
黃(황): 궁상각치우(宮商角 艸아래徵 羽) 동서남북중앙(東西南北中央) 토색(土色)의 누루
황(黃) 궁상각치우(宮商角 艸아래徵 羽: 옛날 음계 이름) 다섯 음률이
동,서,남,북,중앙으로 퍼져 온통 황토색이로다 누루 황
宇(우):
천지사방(天地四方) 몇 만리(萬里)냐 팔위광활(八位廣闊) 집 우(宇) 천지 사방이 몇 만리냐 팔방(八方)으로
광활하게 활짝 열리도다 집 우
宙(주): 연대국조(燕代國祚)에 흥망성쇠(興亡盛衰)
왕고래금(往古來今) 집 주(宙) 연(燕)나라국운이 흥망성쇠하여 옛 것은 가고 새 것이 오도다 집 주
洪(홍): 우치홍수(禹治洪水) 기자추연(箕子推衍) 홍범구주(洪範九疇) 넓을
홍(洪) 우(禹)임금이 홍수 다스리고, 기자(箕子)가 홍범구주를 펼치나니 넓을 홍
荒(황): 전원장무호불귀(田園藏武呼不歸)라 삼려충의(三廬忠意) 거칠 황(荒)
제갈량(諸葛良)이 전원(田園)에서 무(武)를 감추어 두고 불러도 아니 오니 유비가 삼고초려(三顧草廬) 하자 비로소 충의(忠意) 보였도다 거칠 황
日(일): 요순성덕(堯舜聖德) 장할시고 취지여일(趣旨如日) 날 일(日)
요순의 성덕이 장하도다, 그 근본 뜻이 해와 같이 밝구나 날 일
月(월): 억조창생(億兆蒼生)의 격양가(擊攘歌) 강구연월(康衢煙月) 달 월(月)
만백성이 격양가 부르고, 번화한 거리 자욱한 연기 속에 은은히 떠서 비치도다 달 월
盈(영):오거지서(五車之書) 백가어(百家語)난 적안영상(積案盈箱)의 찰 영(盈)
다섯 수레의 백가(百家)들 책을 읽어 책상 위 상자에 책이 가득 차니 찰 영
厠(측): 세상만사(世上萬事) 생각하니 달빛과 같은지라 십오야 둥근 달이 기망(幾望)부터 기울
측(厠) 세상만사를 생각하니 흥망성쇠가 마치 달과 같으니, 보름날 둥근 달이 십사일부터 기울 측
辰(진): 이십팔수(二十八宿) 하도낙서(河圖洛書) 지류정광(?) 별 진(辰)(宿: 잘
숙, 성좌 수) 동청룡, 서백호, 남주작, 북현무에 각각 일곱개 별자리 28수와 복희씨(伏羲氏)가 황하(黃河)에서
하도(河圖), 하우(夏禹)가 낙수(洛水)에서 낙서(洛書)를 얻어 지류정광(?)하였도다 별 진
宿(숙):가련금야숙창가(可憐今夜宿娼家)로다 원앙금침(鴛鴦衾枕)의 잘 숙(宿)
가련하구나 오늘저녁에 창가에서 자게되었구나 원앙금침에 잘 숙
列(영):
절세가인(絶世佳人)의 좋은 풍류(風流) 만반진수(滿盤珍羞) 벌릴 열(列) 절세가인의 좋은 풍류에다 상에 가득히
진수성찬을 벌릴 렬
張(장): 어허 월색삼경야(月色三更夜)의 탐탐정회(貪貪情懷)
베풀 장(張) 아! 달빛은 이미 삼경인데 마음껏 회포를 베풀 장
餘(여): 이러한 고운 태도(態度) 일생(一生) 보아도 남을 여(餘) 이렇게
아름다운 몸맵시 평생 보아도 싫증나지 않고 남을 여
成(성): 백년동락(百年同樂)의
깊은 맹세(盟誓) 산과해에 이룰 성(成) 백년을 함께 살자고 산과 해를 두고 맹세하여 이룰 성
歲(세): 이리저리 노닐다가 갑오세월(甲午歲月) 해 세(歲) 이리 저리
놀다보니 좋은 세월이로다 햇 세
律(율): 조강지처(糟糠之妻) 박대(薄待) 말아
대전통편(大典通編)의 법중 율(律) 조강지처 박대하지 말아라 대전통편에 있는 법 률
呂(여): 춘향과 나와 단 둘이 앉어 법중 여(呂)자로 놀아보자. 이리 한참 읽어가더니마는,
"보고지고 보고지고 우리 춘향 보고지고 추천하든 그 맵시를 어서어서 보고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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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문(千字文)책 글자와 구절(句節)
해역(解譯) > |
다음은 선친(先親 字善哉 諱鉉玉)께서는 나를 가르치기 위해 이웃에서 천자문 책을 빌려와서 당신께서 손수 필사(筆寫)하여 천자문 책을
만들었다. 내게는 귀중한 선친의 유묵(遺墨)이기 때문에 오래 보존하고 싶고 또 수시로 꺼내 보기 위하여 전문을 스캔하여 파일을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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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字文(천자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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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페이지 x 16字 = 992字) + 마지막 페이지 8字 = 1,000字
己丑年(기축년)은 1949년으로 내가 己卯生(호적상에는 庚辰生임)이니까 만 10살로 국민학교 4학년 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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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首文(백수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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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흥사(周興嗣:470?∼521)가 이 천자문을 짓고,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고 하여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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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千地玄黃 宇宙洪荒 日月盈측 辰宿列張
(천지현황 우주홍황 일월영측 진수열장) (측: 日아래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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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하늘 천, 따 지(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집 우, 집 주, 넓을
혼, 거칠 황, 하늘은 고요하고 아득히 멀어서 검게 보이고, 땅은 그 빛이 누르며, 하늘과 땅 사이 즉
우주는 한없이 너르고 그칠어서 그 긑이 없다. ② 날 일, 달 월, 찰 영, 기울 측, 별 진,
성좌 수(잘 숙), 벌릴 영, 베풀 장,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달도 차면 이즈러는 것이 우주 운행의 진리이며,
십이진(辰)과 이십팔수(宿)의 성좌(星座)가 하늘에 넓게 벌려져 있다.
< 이십팔수(二十八宿) > : 예로부터 동양 천문에서는
하늘의 별자리를 28수(宿)라고 하였는데 그 별들이 위치한 동서남북의 방위와 형상에 따라 동청룡(東靑龍), 서백호(西白虎),
남주작(南朱雀), 북현무(北玄武)로 구분하며, 또 각 방에는 각각 7수(宿)의 별자리가 있어 28수(4방 x 7수)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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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寒來暑往 秋收冬藏 潤餘成歲 律呂調陽
(한래서왕 추수동장 윤여성세 율여조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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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찰 한, 올 래, 더울 서, 갈 왕, 가을 추, 거둘 수, 겨울 동, 간직할
장(감출 장) 찬 것이오면 더운것은 가고, 가을에 곡식을 걷우고 겨울에 저장한다. ② 부를 윤(윤달 윤), 남을 여, 이룰 성, 해 세, 법 율, 음률 여(법 여), 고를 조, 볕 양 일년
이십사절기, 나머지 시각을 모아 윤달로 하여 한 해를 이루며, 육율(六律)과 육여(六呂)는 천지간의 양기(陽氣)를
고르게하나니 율(律)은 양(陽)이요, 여(呂)는 음(陰)이다.
< 율려(律呂)
> 육률(六律)과 육려(六呂)의 십이운율(十二韻律). 육률(六律)은
십이율(十二律) 중 양성(陽聲)에 속하는 여섯 가지 소리로 황종(黃鐘), 태주(太簇), 고선(姑洗), 유빈(艸아래豕生 賓),
이칙(夷則), 무역(無射)들이고, 육려(六呂)는 십이율 중 음성(陰聲)에 속하는 여섯 가지 소리로 대려(大呂),
협종(夾鐘), 중려(仲呂), 임종(林鐘), 남려(南呂), 응종(應鐘)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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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雲騰致雨 露結爲霜 金生麗水 玉出崑崗
(운등치우 로녈위상 금생여수 옥출곤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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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구름 운, 오를 등(날 등), 이룰 치, 비우, 이슬 로, 맺을 결,
할(하) 위, 서리 상 구름이 날아 냉기를 만나면 비가 되고, 이슬이 맺혀 찬 기운에 닿으면 서리가 된다.
② 쇠 금, 날 생, 고울 려(빛날 려), 물 수, 구슬 옥, 날 출, 뫼 곤, 뫼
강 금(金)은 여수(麗水: 중국의 지명)에서 많이 나고, 옥(玉)은 곤강(崑崗:중국의 지명)에서 많이 난다.
* 박팽년(朴彭年, 1417~1456)의 시조(時調) < 금생여수(金生麗水)라 한들 >:
금생여수(金生麗水)라 한들 물마다 금이 나며 옥출곤강(玉出崑崗)이라 한들 뫼마다 옥이 나랴 아무리 사랑이 중타 한들 임마다
쫓을쏘냐 [해설] 금(金)이 여수(麗水: '고운 물', '아름다운 물'로 해석 )에서 난다 하지만
아무 물에서나 금이 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옥(玉)이 곤강(崑崗: '뫼', '산'으로 해석)에서 난다 하지만 아무 산에서나
옥이 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사랑(임금을 모시는 것)이 무겁다 하더라도 가리지 않고 아무 임금(世祖)이나 섬길
수는 없는 법이다. 여기서 금과 옥은 단종(端宗)을 말하며, 작자는 종장에서 세조(世祖)를 배척하고, 단종에 충성하는 마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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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劍號巨闕 珠稱夜光 果珍李奈 菜重芥薑
(검호거궐 주칭야광 과진이내 채중개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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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칼 검, 이름 호, 클 거, 집 궐(뚫을 궐), 구슬 주, 일컬을 칭, 밤
야, 빛 광 거궐(巨闕)은 구야자가 만든 칼(명검) 이름이고, 구슬의 빛이 밤도 낮과 같게 하므로
야광(夜光)이라 한다. ② 과실 과, 보배 진, 오얏 이, 벚 내, 나물 채, 중요할 중(무거울
중), 겨자 개, 생강 강 과일 중에 오얏과 벚지가 진미(珍味)이고, 나물은 겨자와 생강이 중요한 몫을
찾이한다.
< 巨闕(거궐) > : 중국 고대 명검(名劍) 중의 하나로 월(越)나라 구야자(歐冶子)가 만들었다고 한다. 거궐이 얼마나 단단하고 예리한지
청동(靑銅) 또는 쇠(鐵) 그릇을 찌르거나 자르면 잘린 단면에 기장쌀 만한 구멍들이 곳곳에 보이는데 이는 청동이나 쇠 속에 있던
기포(氣泡)가 잘린 것이라 한다. 그래서 칼 이름에 闕(궐)자를 붙였는데 이때 闕(궐)자는 (구멍)'뚫을 궐'로
해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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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海함河淡 鱗潛羽翔 龍師火帝 鳥官人皇
(해함하담 인잠우상 용사화제 조관인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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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바다 해, 짤 함, 물 하, 맑을 담, 비늘 린, 잠길 잠, 깃 우(날개
우), 날개 상 바닷물은 짜고 강물은 담담한 민물이고, 비늘이 있는 고기는 물속에 잠기고 날개 있는 새는
공중에 난다. ② 용 룡, 스승 사, 불 화, 임금 제, 새 조, 벼슬 관, 사람 인, 임금
황 복희씨(伏羲氏)는 벼슬을 용으로 기록하려 용임금이라 하고(龍師), 신농씨(神農氏)는 불로서 기록해서
불임금이라 하였으며(火帝), 소호(少昊)는 새로써 벼슬을 기록하고(鳥官), 황제(黃帝)는 인문을 갖추었으므로
인황(人皇)이라 하였다.
< 삼황(三皇) 오제(五帝) >:
중국의 고대 전설에 나타나는 임금들로서 여러 설이 있으나 삼황(三皇)은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 를 말하고, 오제(五帝)는 소호(少昊), 전욱(顫頊), 제곡(帝 輿밑言), 요(堯), 순(舜)을 말하는데,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는 오제(五帝)에 소호 대신 황제(黃帝)를 넣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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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始制文字 乃服衣裳 推位讓國 有虞陶唐
(시제문자 내복의상 추위양국 유우요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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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처음 시(비로소 시), 저울 제, 글월 문, 글자 자, 이에 애, 옷 복,
옷의, 치마상 복희씨 신하 창힐이 새 발자국을 보고 글자(文字)를 만들었고, 이에 황제가 의관(衣冠)을
지어 등분을 분별하여 위의(威儀)를 엄숙히 하였다. ② 밀 추, 자리 위, 사양할 양, 나라 국,
있을 유, 나라 우, 화락할 요(질그릇 도), 당나라 당 벼슬을 미루고 나라를 사양하니 덕(德) 있는 자에게
양위(讓位)하였는데, 유우(有虞) 제순(帝舜)은 아들 상균 대신 우(禹)에게, 요당(陶唐) 제요(帝堯)는 아들 단주
대신 순(舜)에게 양위함을 말한다.
< 요순(堯舜) 당우(唐虞)
: 태평성대(太平盛代)를 말하는 요순(堯舜)시절 즉 중국 고대 堯임금과
舜임금 때를 당우(唐虞)시절이라고도 한다. 앞의 요순(堯舜)은 임금의 칭호인 제요(帝堯), 제순(帝舜)에서 딴 것이고,
뒤의 당우(唐虞)는 요(堯)임금의 본명 요당(陶唐), 순(舜)임금의 본명 유우(有虞)에서 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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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弔民伐罪 周發殷湯 坐朝問道 垂拱平章
(조민벌죄 주발은탕 좌조문도 수공평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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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조상할 조, 백성 민, 칠 벌, 허물 죄, 두루 주(나라 주), 필 발,
나라 은, 끓을 탕 불쌍한 백성을 도우고, 죄지은 임금을 벌주었으니 주(周) 무왕(武王)은 은(殷)의
폭군 주왕(紂王)을, 은의 탕왕(湯王)은 하(夏)의 걸왕(桀王)을 몰아냈다. ② 앉을 좌, 아침 조, 물을 문, 이치 도, 드리울 수, 팔장낄 공, 평평할 평(고를 평), 글
장 조정에 앉아 백성을 다스릴 올바른 길을 물었도다. 밝고 평화스럽게 다스리는 길을 겸손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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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愛育黎首 臣伏戎羌 遐邇一體 率賓歸王
(애육려수 신복융강 하이일체 솔빈귀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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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사랑 애, 기를 육, 검을 려, 머리 수, 신하 신, 엎드릴 복, 오랑케
융(되 융), 오랑케 강(되 강) 여수(黎首)는 임금이 백성을 사랑하고 양육함을 말한다. 이상과 같이
나라를 다스리면 그 덕에 융(戎)과 강(羌) 오랑케들도 항복하고 만다. ② 멀 하, 가까울 이, 한
일, 몸 체, 거느릴 솔, 손 빈, 돌아올 귀, 임금 왕 멀고 가까운 나라가 전부 그 덕망에 귀순케 하여 일체(壹體)가 될 수
있으며, 거느리고 복종하여 임금에게 돌아오니 덕을 입어 복종치 않음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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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鳴鳳在樹 白駒食場 化被草木 賴及萬方
(명봉재수 백구식장 화피초목 뇌급만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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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울 명, 봉황 봉(새 봉), 있을 재, 나무 수, 흰 백, 망아지 구, 먹을
식(밥 식), 마당 장 덕망(德望)이 미치는 곳마다 봉(鳳)이 나무 위에서 울고, 흰 망아지도 감화되어
사람을 따르며 마당에서 풀을 뜯게 된다. ② 될 화, 입을 피, 풀 초, 나무 목, 힘입을 뢰, 미칠
급, 일만 만(여럿 만), 모 방 덕화(德化)가 사람이나 짐승에게 미칠 뿐만 아니라 초목에까지도 미치나니 만방이
극히 넓으나 어진 덕이 고루 미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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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蓋此身髮 四大五常 恭惟鞠養 豈敢毁傷
(개차신발 사대오상 공유국양 기감훼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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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덮을 개, 이 차, 몸 신, 터럭 발, 넉 사, 큰 대, 다섯 오, 떳떳할
상(항상 상) 사람의 몸과 털은 부모님께서 물려받은 소중한 것이며 네가지 큰 것(四大)은
지풍화수(地風火水)이고, 오상(五常)은 인의예지신(仁義禮知信)이다. ② 공손할 공,
오직 유, 기틀 국, 기를 양, 어찌 기, 감히 감(구태여 감), 헐 훼, 상할 상 부모의국양(鞠養=鞠育, 사랑으로 기름)함을
공손히하라 부모의 은혜이기 때문이며, 부모님이 낳아 길러주신 이 몸을 어찌감히 휘손할 수 있으랴
*
사대(四大): 사람의 몸 또한 지풍화수(地風火水)로 구성되었다고 보고, 사대(四大)는 '사람', '사람의
몸' 을 사대(四大)라 하기도 한다.
< 예순(禮順) 비구니의 한시
自歎 >(자탄: 혼자 탄식함) 祗今衣上汚黃塵
(지금의상오황진) 어느새 이 몸 풍진 속에 더럽혔느니 何事靑山不許人
(하사청산불허인) 청산마저 이 몸을 싫다는 구나 환宇只能囚四大
(환우지능수사대) 하늘 땅 넓다 해도 이 몸 하나 둘 곳 없네 金吾難禁遠遊身
(금오난금원유신) 금오랑 넨들 멀리 떠도는 이 몸 잡을 수 있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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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女慕貞烈 男效才良 知過必改 得能莫忘
(여모정열 남효재량 지과필개 득능막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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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계집 여(여자 여), 사모할 모, 곧을 정, 깨끗할 결, 사내 남, 본받을
효, 재주 재, 어질 량 여자는 정조를 지키고, 행실을 단정하게 해야하며, 남자는 재능을 닦고 어진 것을
본받아야 한다. ② 알 지, 허물 과(지날 과), 반드시 필, 고칠 개, 얻을 득, 능할 능, 말
막, 잊을 망 누구나 허물이 있는 것이니 자기 허물을 알면 즉시 고쳐야 하며, 사람으로 알아야 할 것을 배운
후는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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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罔談彼短 靡恃己長 信使可覆 器欲難量
(망담피단 미시기장 신사가복 기욕난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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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없을 망, 말씀 담, 저 피, 짧을 단(나쁠 단) 아닐 미, 믿을 시, 몸소
기(몸 기), 긴 장(좋을 장) 남의 단점을 함부로 말하지 말 것이며, 자신의 특기를 믿고 자랑하지 않는
것이 더욱 발전할 수 있다. ② 믿을 신, 하여금 사, 옳을 가, 되풀이할 복, 그릇 기, 하고자할
용, 어려울 난, 헤아릴 양 믿음이 진리라는 것을 알았으면 마땅히 거듭 행할 것이며, 사람의 기량은 깊고 깊어서
해아리기 어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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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墨悲絲染 詩讚羔羊 景行維賢 剋念作聖
(묵비사염 시찬고양 경행유현 극념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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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먹 묵, 슬플 비, 실 사, 물들일 염, 글 시, 칭찬할 찬, 염소 고, 양
양(염소 양) 흰 실이 한번 검은 물이 들면 다시 희어지지 모하는 것처럼 사람도 나쁜데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하며, 시전(詩典) 고양(羔羊)편에 문왕(文王)의 덕이 소남국에까지 미쳤음을 칭찬하고 있다. ② 볕 경(경치 경), 행할 행, 벼리 유, 어질 현, 이길 극, 생각 념, 지을 작, 성인 성 행실을
훌륭하게 하고, 당당하게 행하면 어진 사람이 되며, 성인(聖人)의 언행을 잘 생각하여 수양을 쌓으면 자연 성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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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문왕(周文王) > |
주(周)나라 문왕(文王) 희창(姬昌)은 관대하고 어질며 인재를 깍듯이 우대할 줄 알았던 통치자다. 상(商)나라
마지막 임금이자 폭군의 대명사 주왕(紂王)의 횡포가 갈수록 심해지자 문왕은 자세를 낮추고 때를 기다리는 모략을 선택했다. 다른 제후국들을 위해
주 임금에게 간청하고, 자신의 서쪽 땅을 바쳐 많은 사람을 괴롭힌 혹형 '포락형'을 폐지시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주(紂)
임금에 의해 유리성에 7년이나 감금당했다. 이 사이 큰아들이 가마솥에 삶기는 팽형을 당해 죽고, 문왕은 참으로 끔찍하게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아들을 넣고 끓인 인육탕을 다 먹었다. 주(紂) 임금은 문왕이 아들의 인육탕을 다 먹고 나자 사실을 알렸고, 문왕은 그때까지 먹은 것을 다
토했다. 그때 토한 것이 작은 무덤 하나가 되어 지금까지 전해온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문왕은 8괘를 64괘로 풀이하여
『주역(周易)』을 짓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다.이렇듯 문왕은 치욕과 고통을 참아내면서 점차 민심을 얻어갔는데, 강상(姜尙:
姜太公)이라는 걸출한 군사(軍師)를 얻음으로써 천하 대권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었다. 민심을 잃은 상나라를 치기 위한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졌을 무렵 문왕(文王)은 큰 병을 얻어 결국 이 대업에 나설 수 없었다. 문왕의 대업은 그의 큰 아들 희발(武王)이 완수했다.
죽기에 앞서 문왕은 아들 희발(姬發)을 불러 다음 세 가지를 유언으로 남겼다. 첫째, 좋은 일을 보면 게으름 부리지 말고 바로
달려가라. 둘째, 시기가 오면 머뭇거리지 말고 바로 달려가 잡아라. 셋째, 나쁜 일을 보면 빨리 그 자리를 피하고 가까이 가지
말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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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德建名立 形端表正 空谷傳聲 虛堂習聽
(덕건명립 형단표정 공곡전성 허당습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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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큰 덕, 세울 건, 이름 명, 세울 립(설 립), 얼굴 형, 끝 단(바를
단), 겉 표, 바를 정 항상 세상 일을 덕(德)으로 행하면 자연히 명성(名聲)도 서게 되고, 몸의
형상이 단정하고 깨끗하면 마음도 바르며 또 표면에 나타난다. ② 빌 공, 골 곡(골짜기 곡), 전할
전, 소리 성. 빌 허, 집 당, 익힐 습, 들을 청 유덕(有德) 군자(君子)의 말은 마치 빈 골짜기에 산울림이 멀리
퍼져나가듯 하고, 빈 방에서 소리를 내면 울리어 다 들리듯이 착한 말을 하면 천리 밖에서도 듣고 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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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禍因惡積 福緣善慶 尺璧非寶 寸陰是競
(화인악적 복연선경 척벽비보 촌음시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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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재화 재, 인할 인, 악 악(나쁠 악), 쌓을 적, 복 복, 인연할 연,
착할 선, 경사 경 재앙(災殃)을 받는 자는 평소에 악(惡)을 쌓았기 때문이며, 복(福)은 착한 일을
한데서 오므로 착한 일을 하면경사(慶事)가 생긴다. ② 자 척, 구슬 벽, 아닐 비, 보배 보,
조금 촌, 그늘 음(세월 음), 이 시, 다툴 경, 한 자나 되는 큰 구슬이라고 해도 결코 보배라 할 수 없으며,
그 보다 잠깐의 시간(寸陰)이 더욱 귀중하니 시간을 아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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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資父事君 曰嚴與敬 孝當竭力 忠則盡命
(자부사군 왈엄여경 효당갈력 충칙진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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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바탕 자, 아비 부, 일 사(섬길 사), 임금 군, 가로 왈, 엄할 엄,
더불 여, 공경 경 아비를 섬기는 효도처럼 임금을 섬기어야 하며, 임금을 대하는데는 엄숙함과 공경함이
있어야 한다. ② 효도 효, 마딸할 당, 다할 갈, 힘력, 충성 충, 곧 즉, 다할 진, 목숨
명 부모를 섬기는데 마땅히 힘을 다하여야 하며, 충성(忠誠)하는 것은 즉 목숨을 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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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臨深履薄 夙興溫淸 似蘭斯馨 如松之盛
(림심이박 숙흥온청 사란사형 여송지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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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임할 림, 깊을 심, 밟을 리, 얕을 박, 이를 숙, 흥할 흥(일어날 흥),
따뜻할 온, 맑을 청(서늘할 청) 깊은 곳에 임하듯 얕은 곳을 밟을 때도 세심한 주의를 해야하며, 아침에
일찍 일어나 추우면 덥게, 더우면 서늘하게 하는 것이 부모섬기는 절차이다. ② 같을 사, 난초 난,
이 사, 향기 향, 같을 여, 솔 송(소나무 송), 갈 지, 성할 성 난초같이 향기로움이 군자의 지조를 비유한 것이며,
소나무 같이 푸르게 무성함이 군자의 절개를 말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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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川流不息 淵澄取暎 容止若思 言辭安定
(천류불식 연징취영 용지약사 언사안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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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내 천, 흐를 류, 아닐 불, 쉴 식, 못 연, 맑을 징, 취할 취, 비칠
영 냇물의 흐름이 쉬지 않음이 군자의 행(行)함을 말하는 것이요 연못이 맑아서 거울처럼 비침은 군자의
마음을 말하는 것이며, ② 얼굴 용, 그칠 지, 같을 약, 생각 사, 말씀 언, 말씀 사, 편안할
안, 정할 정 형용(形容)과 행지(行止)를 조용히 생각하는 침착한 태도를 가지며, 태도 뿐만 아니라 말씨도
안정되게하고 쓸데 없는 말을 삼가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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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篤初誠美 愼終宜令 榮業所基 籍甚無竟
(독초성미 신종의령 영업소기 적심무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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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두터울 독(돈독할 독), 처음 초, 정성 성, 아름다울 미, 삼갈 신, 끝
종, 마땅 의, 하여금 령 처음부터 정성을 기울이는 것은 진실로 아름다운 것이며, 처음 뿐만 아니라
끝맺음도 좋아야 한다. ② 영화 영, 업 업(일 업), 바 소, 터 기(바탈 기), 자자할 적, 심할
심(더욱 심), 없을 무, 마침내 경 이런 사항들을 잘 지키면 일이 번성할 수 있는 기틀(바탕)이 되며, 뿐만
아니라 명예스러운 이름이 오래도록 전해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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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學優登仕 攝職從政 存以甘상 去而益詠
(학우등사 섭직종정 존이감상 거이익영) (상; 常에서巾대신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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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배울 학, 넉넉항 우, 오를 등, 벼슬 사, 잡을 섭, 일 직, 쫓을 종,
정사 정 배움이 넉넉하면 벼슬에 오를 수 있고, 벼슬이 올라야 국가정사에 종사 할 수 있다.
② 있을 존, 써 이, 달 감, 아가위 당, 갈 거, 어조사 이, 더할 익, 읊을
영 주소공(周召公)이 아가위나무(甘棠: 山査나무) 아래서 백성을 바르게 보살폈고, 소공이 죽은 후 백성들이 그의
덕을 추모하여 감당시(甘棠詩)를 읊었다.
* 감당(甘棠: 아가위나무) : 주(周)
개국에 공이 커서 연(燕)의 시조가 된 소공(召公)이 주(周)의 서쪽 반을 다스리며 후백(侯伯)부터 서인(庶人)까지 모범적인 통치를
했다. 그는 곳곳을 순시하며 백성들의 어려움을 살폈는데, 감당(甘棠: 山査) 나무 아래에서 백성의
송사(訟事)를 듣고 공정하게 해결해 주어 백성들이 소공(召公)을 대하듯 그 나무를 대하며 그의 선정(善政)을 기렸다고 한다.
여기에서 어진 정치를 펼친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감당지애(甘棠之愛)’,
‘감당유애(甘棠遺愛)’ 등의 고사성어가 비롯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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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樂殊貴賤 禮別尊卑 上和下睦 夫唱婦隨
(악수귀천 예별존비 상화하목 부창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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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풍류 악, 다를 수, 귀할 귀 천할 천, 예도 례, 다를 별, 높을 존,
낮을 비 풍류는 귀천에 따라 다르니 천자는 8일, 제후는 6일, 사대부는 4일, 선비는 2일이며,
예도(禮道)에도 분별이 있으니 君臣, 父子, 夫婦, 長幼, 朋友의 차별이 있다. ② 윗 상, 화목할
화, 아래 하, 화목할 목, 지아비 부(남편부), 부를 창, 지어미부(아내 부), 따를 수 위에서 사랑하고 아래서 공경함으로써
화목해 지며, 지아비가 부르면 지어미가 따라야 원만한 가정이 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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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外受傅訓 入奉母儀 諸姑伯叔 猶子比兒
(외수부훈 입봉모의 제고백숙 유자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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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바깥 외, 받을 수, 스승 부, 가르칠 훈, 들 입(들어갈 입), 받들 봉,
어미 모(어머니 모), 거동 의 어린 아이가 8세가 되면 바깥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며, 집에
들어서는 어머니를 받들어 집안일에 종사해야 한다. ② 모두 제, 고모 고, 맏 백(받이 백), 아내비
숙(아저씨 숙), 같을 유, 아들 자, 견줄 비, 아해 아(아이 아) 고모(姑母), 백부(伯父), 숙부(叔父) 모두 집안 내의
친척들이며, 조카들도 자기 아들처럼 사랑하여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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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孔懷兄弟 同氣連枝 交友投分 切磨箴規
(공회형제 동기연지 교우투분 절마잠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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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구멍 공(매우 공), 품을 회, 형 형, 아우 제, 한가지 동(같을 동),
기운기, 이을 련, 가지 지 형제는 서로 사랑하며 의좋게 지내야 하고, 형제는 부모의 기운을 같이
받았으므로 나무의 가지와 같다. ② 사귈 교, 벗 우, 던질 투(줄 투), 나눌 분(분수 분), 자를
절, 갈 마, 경계 잠, 법 규 벗을 사귈 때는 서로가 분수에 따라 의기가 투합해야 하며, 열심히 닦고 배워서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지켜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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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仁慈隱惻 造次弗離 節義廉退 顚沛匪虧
(인자은측 조차불리 절의염퇴 전패비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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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어질 인, 사랑 자, 측은할 은, 불쌍할 측, 지을 조, 버금차, 아니불,
떠날 리 어진 마음으로 남을 사랑하고 측은히 여겨야 하며, 남을 위하는 동정심을 잠시도 잊지말고 항상
가져야 한다. ② 마디 절(절개 절), 옳을 의, 청렴 렴, 물러날 퇴, 엎어질 전(기울어질 전),
자빠질 패, 아닐 비, 이즈러질 휴 청렴과 의리와 사양함은 늘 지녀야 하며, 엎어지고 자빠져도 이즈러지지 말고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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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性靜情逸 心動神疲 守眞志滿 逐物意移
(성정정일 심동신피 수진지만 축물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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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성품 성, 고요할 정, 정다울 정(뜻 정), 편안할 일, 마음 심, 움직일
돈, 귀신 신(정신 신), 피로할 피 성품이 고요하면 뜻이 편안하나니 고요함은 천성이요 움직임은 인정이며,
마음이 움직이면 신기가 피곤하고, 마음이 불안하면 신기가 불편하다. ② 지킬 수, 참 진, 뜻
지, 찰 만, 따를 수(쫓을 수), 재물 물, 뜻 의, 옮길 이 사람이 도리를 지키면 뜻이 차고, 군자의 도를 지키면 뜻이
편안하며, 마음이 불안함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며, 마음도 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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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堅持雅操 好爵自미 都邑華夏 東西二京
(견지아조 호작자미 도읍화하 동서이경) (미:靡에서非대신絲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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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귿을 견, 가질 지, 바를 아, 지조 조, 좋을 호, 벼슬 작, 스스로 자,
앍을 미 맑은 절조를 굳게 가지고 있으면 나의 도리를 극진하 함이며, 좋은 벼슬도 스스로 얽혀 내게로
들어 온다. ② 으뜸 도(도읍 도), 읍 읍(고을 읍), 빛날 화, 여름 하, 동녘 동, 서녘 서,
두 이, 서울 경 도읍(都邑)은 왕성(王城)의 지위를 갖는 도시를 말하고, 화하(華夏)는 옛날에 중국을 지칭하는 말이며,
동과 서에 두 서울이 있으니 동경은 낙양(洛陽)이고, 서경은 장안(長安)이다.
< 화하(華夏), 하화(夏華) > : 중국을 지칭하는 말은
옛날에는 중국 최초의 국가 하(夏)나라를 표상으로 화하(華夏) 또는 하화(夏華)라 하다가 지금은
중화(中華)라 하고, 중국 민족을 하화족(夏華族)이라 하다가 한(漢)나라 이후에는
한족(漢族)이라 부르며, 그 글을 한자(漢字) 또는 한문(漢文)이라 하고, 중국에서 시작된
닥나무 줄기의 껍질을 원료로하여 만드는 종이를 한지(漢紙)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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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背邙面洛 浮渭據涇 宮殿盤鬱 樓觀飛驚
(배망면락 부위거경 궁전반울 루관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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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등 배(등질 배), 터 망, 면할 면(향할 면), 낙수 낙, 뜰 부, 위수
위, 의지할 거, 경수 경 동경인 낙양(洛陽)은 북망산(北望山)을 등지고, 낙수(洛水)를 바라보며,
서경인 장안(長安)은 위수(渭水)에 뜨고, 경수(涇水)를 둘렀다. ② 집 궁, 대궐 전, 서릴 반,
울창할 울, 다락 루, 볼 관, 날 비, 놀랄 경 궁전(宮殿)은 울창한 나무 사이에 서기가 서린 곳네 정하고,
궁전 가운데 누각(樓閣)은 높아서 올라가면 날아가는 듯 하여 놀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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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圖寫禽獸 畵彩仙靈 丙舍傍啓 甲帳對楹
(도사금수 화채선령 병사방계 갑장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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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그림 도, 베낄 사, 새 금, 짐승 수, 그림화, 채색 채, 신선 선, 신령
령 궁전에는 새나 짐승의 그림과 조각 등으로 장식되어 있고, 신선과 신령의 그림도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다. ② 천간 병, 집 사, 곁 방, 열 계, 갑옷 갑(천간 갑), 휘장 장, 대할 대, 기둥
영 병사(丙舍) 곁에는 통고를 열어 출입하는데 편리하도록 하고, 아름다운 갑장(甲帳)이 기둥을 대하고 있으니
임금이 잠시 머무는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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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肆筵說席 鼓瑟吹笙 陞階納陛 弁轉疑星
(사연설석 고슬취생 승계납폐 변전의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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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베풀 사, 자리 연, 베풀 설, 자리 석, 두드릴 고(북 고), 비파 슬,
불 취, 저 생 연석(筵席: 임금과 신하가 모여 諮問奏答하던 자리)을 베풀고,
북과 비파를 치고, 생황저를 불며 잔치하는 풍류이며, ② 오를 승, 계단 계, 들일
납(바칠 납), 섬돌 폐, 고깔 변, 구를 전, 의심할 의, 별 성 문무백관이 계단을 올라 납폐(納陛:임금을 알현하는 것)하는 절차이니 많은 사람들이 관(冠)에서 번쩍이는 구슬이 별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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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右通廣內 左達承明 旣集墳典 亦聚群英
(우통광내 좌달승명 기집분전 역취군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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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오른 우, 통할 통, 넓을 광, 안 내, 왼 좌, 도달할 달, 이을 승,
밝을 명, 오른편은 광내로 통하니 광내는 비서(秘書)를 보관하는 집이고, 왼편에 승명(承明)이 사모치니
승명은 사기(史記)를 교열하는 집이다. ② 이미 기, 모을 집, 봉분 분, 법 전, 또 역, 모을
취, 무리 군, 영웅 영(꽃불 영) 이미 삼황(三皇)의 삼분(三墳)과 오제(五帝)의 오전(五典)을 모아 두었고,
또한 여러 영웅들을 모아 분전을 강론하니 치국(治國)의 도를 밝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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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杜고鍾隷 漆書壁經 府羅將相 路俠槐卿
(두고종례 칠서벽경 부라장상 로협괴경) (고:艸아래高아래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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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아가위 두, 짚 고, 술병 종, 글씨 례, 옻 칠, 글씨 서(글 서), 벽
벽, 경서 경 후한(後漢) 명필 두백도(杜伯度)의 초서와 위(魏) 종요(鍾謠)의 예서가 있고, 한(漢)
영제가 돌 벽(壁)에서 발견한 서골과 공자가 발견한 육경(六經)도 있다. ② 관청 부, 벌릴 라,
장수 장, 서로 상(정승 상), 길 로, 낄 협(좁을 협), 홰나무 괴, 벼슬 경 관부(官府)에는 장수와 정승이 벌려 늘어서
있고, 길을 끼고 삼공구경(三公九卿) 고관들의 저택들이 늘어서 있다.
* 두고(杜고) : 후한(後漢) 때 두백도(杜伯度)가 쓴 초서(草書)를 말한다. * 종요(鍾謠) : 위(魏)나라 종요가 쓴 예서(隸書)를 말한다. * 칠서(漆書) : 붓이 없던
옛날에 대나무에 옻을 묻혀서 쓴 글자로 위는 굵고 아래는 가늘어 마치 올챙이(과두,蟲+科, 蟲+斗)를 닮았다하여
'과두문자'라 하였다. * 벽경(壁經) : 노(魯)나라 공왕(供王) 때
공자(孔子)의 옛집을 헐다가 벽 틈에서 발견한 경서(經書) 곧 고문상서(古文尙書), 논어(論語), 효경(孝經) 등의 과두문자로 된 옛
글을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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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戶封八縣 家給千兵 高官陪輦 驅각振纓
(호봉팔현 가급천병 고관배련 구각진영) (각:殼에서凡대신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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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집 호, 봉할 봉, 여덟 팔, 고을 현, 집 가, 줄 급, 일천 천, 군사
병 한(漢)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고 여덟 고을 민호(民戶)를 주어 공신에 봉하고, 공신들에게 각각 일천
군사를 주어 그들의 집을 호위케 하였다. ② 높을 고, 갓 관, 모실 배, 연 련, 말몰 구, 바퀴
각, 떨칠 진, 끈 영 높은 관(冠)을 쓰고, 연(輦)으로 모시니 제후의 대접이며, 수레를 몰고, 갓끈을 떨치니
임금출행에 제후의 위엄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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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世祿侈富 車駕肥輕 榮功茂實 勒碑刻銘
(세록치부 거가비경 영공무실 늑비각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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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대대 세, 녹 록, 사치할 치, 부자 부(부할 부), 수레 거(수레 차),
멍에 가, 살찔 비, 가벼울 경 대대로 녹(祿)이 사치(侈)스럽고, 부(富)하니 제후의 자손이
세세(世世) 관록이 무성할 것이며, 수레 끄는 말은 살찌고, 몸에 입은 비단옷은 가벼워 질 것이다. ② 꾀할 책, 공 공, 무성할 무, 열매 실(찰 실), 굴레 륵, 비석 비, 새길 각, 새길 명 공을
꾀함에 무성하고 충실할 것이며, 비(碑)를 세워 이름을 새기고, 그 공을 찬양하여 후세에 전하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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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磻溪伊尹 佐時阿衡 奄宅曲阜 微旦孰營
(반계이윤 좌시아형 엄택곡부 미단숙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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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돌 반, 시내 계, 성 이, 다스릴 윤, 도울 좌, 때 시, 언덕 아, 저울
형 문왕(文王)은 반계(磻溪)에서 강태공(姜太公)을 맞았고, 은왕(殷王)은 신야(莘野)에서 이윤(伊尹)을
맞았으며, 위급할 때를 도와 공을 세워 아형(阿衡)의 벼슬에 올랐다. ② 문득 엄, 집
택, 굽을 곡, 언덕 부, 작을 미, 아침 단, 누구 숙, 경영할 영 주공(周公)이 큰 공을 세워 노국(盧國)에 봉해진후
곡부(曲阜)에 저택을 세웠으며, 주공(周公) 단(旦)이 아니었던들 어떻게 궁전을 세웠으리오.
< 강태공(姜太公) > |
본명 강상(姜尙)인데 그의 선조가 여(呂)나라에 봉하여졌으므로
여상(呂尙)이라 불렸고, 태공망(太公望)이라고도 불렀지만 강태공(姜太公)이 널리 알려진 이름이다. 주나라
문왕(文王)의 초빙을 받아 그의 스승이 되었고, 무왕(武王)을 도와 상(商)나라 주왕(紂王)을
멸망시켜 천하를 평정하였으며, 그 공으로 제(齊)나라 제후에 봉해져 그 시조가 되었다.
강태공은 서백(西伯: 文王)에게
발탁되기 전까지 정통 동이족의 강족(姜族) 출신으로 동해(東海)에서 가난하게 살았다. 그러면서도 많은 분야의 학문에 정신이 팔려 집안을 돌보지
않아 그의 아내가 집을 나갔다. 나이가 들어서는 낚시로 소일 했는데 사람들은 그가 '고기를 낚은 것이 아니라 세월을 낚았다'고 하면서 지금도
한가하게 낚시하는 사람을 '강태공'이라 부르는 속어가 생겨났다.
강태공이 하루는 위수(渭水)
반계(磻溪)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인재를 찾아 떠돌던 주(周)나라 서백(西伯: 文王)을 만났다. 서백은 노인(강태공)의
범상치 않는 모습을 보고 그와 문답을 통해 인물됨을 알아보고 주나라 재상으로 등용하였다. 그를 태공망(太公望)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다음 왕으로 은상(殷商)을 멸하고 천하를 통일 한 무왕(武王)이 선군(先君) 태공(太公: 文王)이 바랐던(望)인물이었기
때문에 부르게 된 호칭이다. 강태공은 전국시대부터 경제적 수완과 병법가(兵法家)로서의 재주가 많아 《육도(六韜)》 병서(兵書)
6권을 저술하였다.
강태공도 은상(殷商)을 정벌하고, 천하통일을 한 공으로 제(齊)나라 땅 백 리의 영토를 받고
제후로 봉해졌다. 제나라를 다스리면서 조정의 동남쪽에 태일단(太一壇)을 설치하고, 천일신(天一神) 지일신(地一神)
태일신(太一神) 삼신(三神)을 모시는 등 동방 조선(朝鮮)의 신교(神敎)의 한 맥을 중국 화하족(華夏族)에게
전수하면서 160살을 살다가 죽었다. 강태공은 전반 80년은 초야에 묻혀서 가난하게 살았고, 후반 80년은 세상에 뜻을 펼치며 영광스럽게
살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강태공의 생애를 두고 ‘ 궁팔십(窮八十) 달팔십(達八十)’ 이라고 한다. |
* 이윤(伊尹) : 은상(殷商) 초기 사람. 이름이 이(伊)고,
윤(尹)은 관직 이름이며, 일명 지(摯)라고도 한다. 노예였다가 유신씨(有莘氏)의 딸이 시집갈 때 잉신(勝에서力대신女,臣: 왕후나 후궁의
시중드는 신하)으로 따라 갔다가 상(商)의 초대 왕인 탕왕(湯王, 大乙)의 인정을 받아 세 번 부름을 받고 정승에
등용되었다. 하(夏)나라 걸왕(桀王)를 치고, 천하를 통일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탕왕이 죽은 뒤
외병(外丙)과 중임(仲壬) 두 임금을 계속 잘 보좌하였다. 중임이 죽고 그 아들 태갑(太甲)이
왕위에 올랐으나 정사를 돌보지 않고 탕왕의 법을 따르지 않자 그를 동(桐)으로 축출하고 일시 섭정을 하다가 3년 뒤 태갑이
잘못을 뉘우치자 다시 왕위에 올렸다. |
* 주공(周公) : 文王의 아들로 아버지를 도와 은(殷: 商)을 멸하고
주(周)를 세우는데 큰 공이 있었다. 주왕(周王)은 형 무왕(武王)이 승계하고, 주공은 노(盧)나라 제후로 봉해졌다.
* 곡부(曲阜) : 처음 주공(周公)이 제후로 봉해진 노(盧)나라의 수도였는데,
공자(孔子)가 그곳에서 났음으로 곡부는 공자의 탄생지로 더 유명해졌다. 공자가 집필한 노(魯)나라 중심의
역사책이 유교 5경의 하나인 춘추(春秋)인데 이 역사책이 기록한 주(周)왕조가 도읍을 낙양으로 옮긴 BC770년부터 주(周)의
제후국인 진(晉)나라의 대부(大夫) 한(韓), 위(魏), 조(趙)가 진나라를 분할하여 제후로 독립한 BC 403년까지 367년간을
춘추시대(春秋時代)라 부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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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桓公匡合 濟弱扶傾 綺廻漢惠 說感武丁
(환공광합 제약부경 기회한혜 열감무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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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굳셀 환, 벼슬이름 공, 바를 광(넓을 광), 모을 합(합할 합), 건질 제,
약할 약, 도울 부, 기울 경 제(濟)나라 환공(桓公)이 천하를 바로잡아 제후들을 불러모아 맹약(盟約)을 지키도록
했으며, 약한 나라를 구제하고 길울어지는 제신(諸臣)을 도와 붇들어 주었다. ② 비단
기, 돌아올 회, 한나라 한, 은혜 혜, 기쁠 열, 느낄 감, 호반 무, 장정 정 한(漢)나라 상산사호(商山四皓)의
기리계(綺里季)는 혜제(惠帝)를 회복시켰고, 은(殷)나라 부열(傅說)이 무정(武丁: 高宗)을 감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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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환공(濟桓公) > : 제환공(濟桓公, 강소백)은 관중(管仲)을 재상으로 삼아 나라를 크게 일으키니 춘추오패(春秋五覇)의 첫 패자(覇者)가 된다.
후에 관중은 죽기전에 환공에게 여러가지 충고의 유언을 남겼으나 환공은 이를 묵살하더니 2년여후 후계자 다툼이 일어나고 급기야는
요리사 역아, 내시 수초, 공자 개방 3인방의 간신에게 휘둘려 밀실에 감금돼 餓死한다. 뒤늦게 관중의 충언을 소홀히 했음을 자책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고, 그 유명한 편작을 불렀으나 환우가 너무 깊어졌다는 최후통고를 듣게된다. 그의 시신은 한여름 67일간이나
방치되어 그 구더기가 궁궐을 기어다닐정도였다고 역사는 전한다.
비록 말년의 끝맺음은 비참하였으나, 제환공은 포숙아가 자신보다도 더
나은 친구를 기꺼이 재상으로 천거하는 우정과 또한 그 말을 진정으로 믿고 한때의 원수를 기꺼이 포용하는 관용으로 관중을 재상으로 기용하여
나라를 살폈던 제환공의 그릇의 크기는 본받아 마땅한 귀감이 되는 사례이다.
사마 천은 "세상사람들은 관중의 덕과 재능을
칭찬하기 보다는 그 사람을 알아본 포숙아를 더 칭찬했다"고 사기(史記)에 기록했다. 즉 제환공 뒤에는 관중이 있었고 , 그 관중뒤에는
그를 알아본 포숙아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친구간에 허물이 없는 친교'를 '관포지교(管鮑之交)'라 하는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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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산사호(商山四皓) > :
한 고조(漢高祖) 때 섬서성(陝西省)의 상산에 은거하던 네 노인.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角里先生)의 네 은사(隱士)로, 수염과 눈썹까지 희어 四皓라 함.<史記
留侯世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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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감무정(說感武丁) > |
서경(書經) 열명(說命)편에 부열(傅說)은 은상(殷商: : 殷에 도읍하고 있는 商나라는 뜻)의 21대왕 고종 무정(武丁)이 나라를 부흥시킬 어진 신하를
찾던 중에 신하들을 모아 "꿈을 꾸었는데 상제께서 나에게 어진 배필(신하)을 주셨다"(夢帝賚予良弼)고 말하고, 꿈에 본 인상을 그림으로 그려
전국에 찾게 하였는데 부험(傅險)이라는 곳에서 시미(序靡: 노예나 죄수들이 하는 길 닦고 담 쌓는
일꾼) 중에서 '열'이라는 사람을 찾아내었다.
궁으로 불러들여 무정이 그를 보자 크게
기뻐하며 "꿈에 본 바로 그사람이다" 하면서 은상(殷商)을 부흥시킬 계책을 물으니 '열'은 마치 미리 생각해 둔 것처럼 은상(殷商)의 폐단을
하나 하나 지적해 나가자 무정은 감탄하면서 "과연 성인(聖人)이다" 하고, 그 자리에서 그를 재상(宰相)에 임명하면서 "큰 내를 건너게 될 때는
너를 배로 삼고(若濟巨川 用汝作舟楫), 큰 가뭄이 들 때는 너를 소낙비로 삼고(若歲大旱 用汝作霖雨), 국을 끓일 때
너는 소금과 양념이 되어다오(若作和羹 爾惟鹽梅)" 라고 하면서 이름을 '부열(傅說)'이라 내렸다. 이는
'부험(傅險)에서 찾아낸 열(說)'이란 뜻도 되고, '임금을 바른 말로(正言: 說) 이끄는 스승(傅)' 이라는 뜻도 된다.
하늘이 내린 성인 부열(傅說)은 고종 무정을 잘 보좌하여 은상은 정국이 안정되고, 경제가 번영하며, 국토를 확장하는 등 중흥기를 맞아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은나라가 잘 통치되었다'(殷國大治)고 기록하였는데 무정이 재위한 59년 동안이 '무정중흥(武丁中興)'이라 부를 만치 가장
번성하였다.
후세 사람들은 부열(傅說)이 죽어서 부열별(傅說星)이 되었다고 믿었다. 예로부터 일월오성이 걸려서 운행하는
별자리를 동양 천문에서는 28수(宿)라고 하였는데 그 별들이 위치한 동서남북의 방위와 형상에 따라 각각 동청룡(東靑龍),
서백호(西白虎), 남주작(南朱雀), 북현무(北玄武)로 구분하며, 동쪽에 청룡(靑龍)의 형상을 띠고 있는 일곱 별자리 즉 각(角), 항(亢),
저(人없는低), 방(房), 심(心), 미(尾), 기(箕)를 동방칠수(東方七宿)라 하고, 이 중에 미(尾)의 자리(서양: 전갈좌와 인마궁좌)에 부열이란 별(傅說星)이 하나 있는데 주로 '왕후의 제사'나
'자손'을 관장하는 별로 인식되어 왔다. 제사는 조상을, 자손은 후사를 잇는다는 의미가 있으니 결국 나라가 무탈하도록 빌어주면서 길이 보존하기를
염원한 천문적 표상이다. |
< 저헌(樗軒) 이석형(李石亨)의 한시 '八渡河'
>(팔도하) 山重萬疊水千回 (산중만첩수천회)
산은 겹겹 일만겹이요 물은 구비구비 일천 구비인데 問幾征人此往來
(문기정인차왕래) 묻노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오갔는가 一渡且艱猶八渡(일도차간유팔도) 한번 건너기도 어려운데 여덟번 건너야 하다니 如吾敢道濟川才 (여오감도제천재) 나 같은 이야 감히 물 건너는 재주라 할 수 있겠는가
* 이 시에서 마지막구절의 제천재(濟川才)는 무정(武丁)이 부열(傅說)에게 한 말 중
약구제천(若濟巨川)에서 인용한 말로 '자신은 부열처럼 훌륭한 재상감이 못된다'는
겸사(謙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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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竣乂密勿 多士寔寧 晉楚更牌 趙魏困橫
(준예밀물 다사식녕 진초갱패 조위곤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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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준걸 준, 재주 예, 빽빽할 밀, 말 물, 많을 다, 선비 사, 이 식,
편할 녕 준걸(俊傑)과 재사(才士)가 조정에 빽빽하게 많으니 나라가 태평할 것이로다. ② 나라 진, 나라 초, 다시 갱, 으뜸 패, 나라 조, 나라 위, 곤란할 곤, 비낄 횡 진문공(晋文公)과
초장왕(楚莊王)은 교대로 패자(覇者)가 되었지만, 조(趙)와 위(魏)는 연횡(連橫: 秦나라를 섬기는
것)때문에 곤란을 겪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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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문공(晉文公) 관련 이야기 > :
제환공(濟桓公)의 딸 제강은 진(晉)나라 군주에게 시집을 갔다. 진나라는 주(周) 무왕(武王)의 둘째
아들이자 성왕(成王)의 아우인 당(唐) 수우(叔虞)가 세운 나라이다.
진 군주가 죽자. 그의 아들(晉 獻公)이 제강을 아내로
삼아버렸다. 제강은 진헌공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으니 그가 신생 이다. 신생은 심성도 곱고 꽃 좋아하고 사색도 깊었는데 "나를 낳아준 이가
할머니인지, 어머니인지 늘 출생에 대해서 고민했다"고 한다.
진헌공은 또한 북방 오랑케 적족(狄族)의 자매를 취하여 이 사이에서
중이(重耳)와 이오를 낳는다. 또 진 헌공은 서쪽 오란케 융(戎)을 정복하고 융의 미녀 여희(驪嬉)를 얻게 된다. 진헌공 또한 여희와의
사이에서 혜제(惠帝)를 낳는다.
그러나 여희는 멸망한 융의 나라와 가족의 원수를 앙갚으로 진헌공과 그의 아들들이 서로 피흘리며
물고 뜯는 꼴이 보고 싶었다. 여희의 계략으로 신생은 자결하고, 중이(重耳)는 자결을 명받지만 달아나고, 이오는 아버지 헌공과 싸움을
벌인다, 진헌공도 죽고, 혜제도 죽고 만다. 진(晉)은 하루도 싸움이 그칠날이 없이 온통 나라가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 망해가는 것으로
보였다.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했음인지 여희는 깊은 연못으로 몸을 던져 죽었다.
그래서 진(晉)은 다른 나라로 유랑을 떠났던
중이(重耳)가 귀국하여 진(晉) 문공(文公)이 되어 나라를 부강시켜 패권을 잡아 진(晉)나라가 최 전성기를 이루니 진문공은
춘추오패(春秋五覇) 중 두번째 패자(覇者)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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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장왕((楚莊王) > : 초(楚)나라 장왕(莊王, BC614-BC591)은 목왕(穆王)의 아들, 성은 웅(熊)씨이고, 이름은 여(旅, 또는 呂),
재위 23년, 시호 장(莊)이다. 제환공(齊桓公), 진문공(晉文公), 진목공(晉穆公)에 이어 네번째 춘추오패(春秋五覇)가 된 사람이다.
양자강 중류지역을 본거지로 삼았던 초나라는 기원전 7세기 중엽부터 활발한 북진정책(北進政策)을 추진했다. 장왕(莊王)이 즉위한 뒤
손숙오(孫叔敖)를 기용하여 내정을 정비하고 수리(水利)를 일으켰다. 즉위 3년에 용(庸)나라를 멸망시키고, 송(宋)나라를 공격했으며, 이어
육혼(陸渾)의 융(戎)을 토벌하였다. 여세를 몰아 주(周, 황제국)의 수도 낙양(洛陽) 근처에서 위세를 떨쳤다. 죽위 9년에
약오씨(若敖氏)의 반란을 진압하고, 필지(泌地)에서 진(晉)나라 군대를 대패시켰다. 오랜 전통을 지닌 진(陳), 정(鄭), 송(宋)나라
등을 압박하였지만 멸망시키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오패(五覇)로 불려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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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진( 蘇秦)의 합종설(合從說) > :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 사람. 장의(張儀)와 함께 귀곡자(鬼谷子)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처음에
진(秦)나라의 혜왕(惠王)을 비롯하여 제후 밑에서 유세를 하였으나 채용되지 않았다. 강국인 진나라와 한(韓)나라가 서로 교전중이라 산동
지방의 제국들은 진나라의 침략을 두려워하고 있던 때이므로, 연(燕)나라의 문후(文侯)에게 6국 합종(合縱)의 이익을 설득하여
받아들여졌고, 다시 조(趙)·한(韓)·위(魏)·제(齊)·초(楚) 등도 설복하여, BC 333년 연-초에 이르는 남북의 6국의 합종에
성공하였다. 소진이 일개 서생 출신으로 지모변설(智謀辯舌)로써 공명부귀를 얻어 그 이름을 천하에 떨쳤기 때문에 진나라를 위해
연횡책(連衡策)을 썼던 장의와 함께 전국시대 책사(策士)의 제1인자로 병칭(竝稱)되고 있다. 그의 동생 소대(蘇代)·소여(蘇勵)도 역시
유세가로서 알려졌으며, 소대(蘇代)는 어부지리(漁父之利) 고사의 주인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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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의(張儀)의 연횡설(連橫說) > :
위(魏)나라 사람. 소진(蘇秦)과 함께 귀곡자(鬼谷子)에게서 종횡술(縱橫術)을 배웠다. 한 때
화씨지벽(和氏之璧; 화씨가 발견한 천하 명옥의 이름)을 훔친 도둑으로 몰려 초죽음이 되기도 했다. 진(秦)나라 혜문왕(惠文王) 9년
진나라에 들어가 재상이 되어 연횡책(連橫策)을 써서 하서(河西), 상군(上郡), 하동(河東) 등지를 차지하게 되었다. 혜왕
경원(更元) 2년 제(齊), 초(楚)의 대신들과 교상(?桑)에서 만나고, 다음 해 위(衛) 또한 연횡을 실행해 혜시(惠施)를 쫓아내고
그가 재상을 맡았다. 3년 뒤 위나라가 다시 합종(合縱)을 써서 공손연(公孫衍)을 재상으로 임용하자 진나라로 돌아왔다. 진나라는
연횡책으로 인해 영토도 넓어졌고 강대국이 된 공으로 그를 무신군(武信君)에 봉했다. 진무왕(秦武王) 때 진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가서
재상이 되었지만 얼마 뒤 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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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假途滅괵 踐土會盟 何遵約法 韓弊煩刑
(가도멸괵 천토회맹 하준약법 한폐번형) (괵:爪아래寸+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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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빌 가, 길 도, 멸할 멸, 나라 괵, 밟을 천(천할 천), 흙 토(땅 토),
모일 회, 맹세 맹 진헌공(晉獻公)이 우(虞)나라에 길을 빌려 괵나라를 멸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도 멸했으며,
진문공(晉文公)이 제후들을 천토(踐土)에 모아 회맹(會盟)을 하였다. ② 어찌 하,
쫓을 준, 간략할 약, 법 법, 성 한(한나라 한), 폐단 폐, 번거로울 번, 형벌 형 소하(蕭何)는 한고조(漢高祖)와 함께
약법삼장(約法三章)을 준행(遵行)했으며, 한비(韓非子)는 진왕(秦王)을 달래서 형벌(刑罰)을 펴다가 그 형벌로 죽었다.
< 가도멸괵(假途滅괵) > : 진(晉)나라 이웃에 우(虞)와 괵(爪아래寸+虎)나라가 있었다. 진은 변방에서 괵과 작은 다툼이 잦다보니 이에 꾀를 내서
우공(虞公)에게 벽옥과 명마를 선물하며 괵을 정벌하고 싶은데 길을 내달라는 청을 넣는다. (假途滅괵) 한편 진은 괵의
추공(醜公)은 호색한인줄 알기 때문에 진의 미희들을 선물하며 화의를 청한다. 이를 통해서 정사를 소홀히 하는 틈을 타 괵을 정복하고
되돌아 오는 길에 우(虞)나라마저 정복을 할 계략이었다.
이때 우나라 우공 밑에 궁지기와 백리해 라는
책사가 있었는데, 궁지기(宮之奇)가 우공에게 간언하기를 우와 괵은 어깨를 맞대고 있는 나라로서 괵이 허물어지면 우나라 또한 강한
진(晉)에게 정복당할수 있음을 순망치한(脣亡齒寒)에 빗대어 고한다. 그러나 우공은 궁지기의 간언을 무시해버리고 길을 빌려
주어 결국 자기 목숨도 잃고, 나라도 잃고, 충신(궁지기)도 잃는 우를 범한다.
우공에게 강력하게 순망치한의 이치를 설명하는
궁지기에게 백리해는 "하(夏) 걸왕(桀王)이 충신 관룡봉을, 은(殷) 주왕(紂王)이 현신 비간을 죽인것은 모두 그 간언(諫言)의 도(度)를
높인탓이었다. 어리석은 자에게 좋은 말을 올리는 것은 아름다운 구슬을 길거리에 버리는 것과 같다" 라고 위로하며 먼저 나라를
떠날것을 권하여 궁지기를 떠나보내고 자기는 떠나지 않고 남아 있다가 진나라에 포로가 된다.
후에 진(晉)의 군사(軍師)가 궁금해서
백리해에게 어리석은 군주를 버리지 않고 지금껏 남아있는 이유를 묻자. 백리해는 "그래도 지금까지 그에게서 받은 녹봉의 은혜는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나만이라도 남아서 충(忠)을 다함이 의(義)라고 생각했다"고 하였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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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하(蕭何)와 약법삼장(約法三章) > :
전한 사수(泗水) 패현(沛縣) 사람. 처음에 패주이연(沛主吏 椽에서木대신手)이 되었다. 유방(劉邦)을 따라
진(秦) 수도 함양(咸陽) 들어가 진상부(秦相府)의 율령과 도서를 수장하여 천하의 요충지와 지세, 군현(郡縣)의 호구(戶口)를 소상하게
알게 되었다. 유방이 한중(漢中)에서 왕이 되자 승상에 올랐고, 또 한신(韓信)을 천거해 대장으로 삼았다. 초(楚:
항우)-한(漢: 유방)이 대치할 때 관중(關中)을 지키면서 양식과 군병의 보급을 확보하여 군수품이 부족하지 않도록 했다. 유방이 황제가 된
뒤 제1공신으로 찬후(찬侯)로 봉해져 식읍 7,000호를 하사받았고, 일족 수십 명도 각각 식읍(食邑)을 받았다. 진나라 악법(惡法)들을
약법삼장(約法三章)으로 정리하고, 나중에 율령제도를 '구장률(九章律)'로 정하였다. 고조(高祖)와 함께 진희(陳
豕+希), 한신(韓信), 경포(黑+京 布) 등을 제거한 뒤 상국(相國)에 봉해졌다. 고조가 죽자 혜제(惠帝)를 섬겼고, 병이 들어 죽을
때 조참(曹參)을 재상으로 천거했다. 시호 문종(文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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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비자(韓非子) > : 한자(韓子) 또는 한비(韓非)로도 불린다. 전국 시대 말기 한(韓)나라 사람. 이사(李斯)와 순자(荀子)에게 배워 뒷날
법가(法家) 사상을 대성시켜 덕(德)보다는 법(法)을 내세우며 '형벌은 대신(大臣)도 피하지 않으며 포상은 필부(匹夫)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왕(韓王)에게 법도(法度)를 분명히 할 것을 건의했지만 채용되지 못했으나 진시황이 그가 쓴 「고분(孤憤)」과
「오두(五두)」등을 읽고 “이 사람과 교유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까지 감탄했다 한다. 진(秦)이 한(韓)을 침공하여
그를 진나라로 오게 하자 화평의 사신으로서 갔다. 시황제는 그를 보고 크게 기뻐하여 머물게 하며 중용하고자 했다. 이를 못 마땅하게
여긴 그의 스승이었던 이사(李斯)와 요가(姚賈)가 무고하여 투옥시킨 뒤, 독약을 주어 자살하게 했다. 학설은 상앙(商?)과
신불해(申不害), 신도(愼到)의 이론은 채용하여 법ㆍ술ㆍ세(法術勢)를 겸용할 것을 주장했고, 중앙집권과 군주전제정치를 내세웠다. 농업과
전쟁을 중시하고 상업과 학술은 경시했으며, 옛 것이 옳고 지금이 그르다는 사고방식에 반대했다. 선진(先秦) 법가사상을 집대성했다는
평을 받는다. 저서에 『한비자(韓非子)』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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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起전頗牧 用軍最精 宣威沙漠 馳譽丹靑
(기전파목 용군최정 선위사막 치예단청) (전:前아래,나래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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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일어날 기(일 기), 갈길 전, 자못 파, 칠 목, 쓸 용, 군사 군, 가장
최, 정밀할 정 백기(白起)와 왕전(王전)은 진(秦)나라 장수요, 염파(廉頗)와 이목(李牧)은
조(趙)나라 장수다. ② 베풀 선, 위엄 위, 모래 사, 사막 막, 달릴 치, 기릴 예, 붉을 단,
푸를 청 장수로서의 위엄(威嚴)이 멀리 사막에까지 퍼졌으며, 그 이름을 죽은 후에도 전하기 위해 초상(肖像)을
단청(丹靑)을 한 기린각에 그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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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九州禹跡 百郡秦幷 嶽綜恒垈 禪主云亭
(구주우적 백군진병 악종항대 선주운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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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아홉 구, 고을 주, 우임금 우, 자취 적, 일백 백, 고을 군, 나라 진,
아우를 병 하우(夏禹)가 기(冀),연(六아래允), 청(靑), 서(徐), 양(楊), 형(荊), 예(豫),
양(梁), 옹(雍)의 구주(九州)를 분별하였으며 진시황(秦始皇)이 봉군(封君)제도를 페하고 일백군(一百郡)을 두었다.
② 큰산 악, 금본 종(마루 종), 항상 항, 메(뫼) 대, 터덖을 선, 임금 주, 이를 운, 정자
정 오악(五嶽)은 동태산(東泰山), 서화산(西華山), 북항산(北恒山), 남형산(南衡山), 중숭산(中崇山)인데 항산과
태산이 조종(祖宗)이며, 운(云)과 정(亭)은 천자를 봉선(封禪)하는 제사를 지내는 곳이니 운운산(云云山)과
정정산(亭亭山)을 제일 중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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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안門紫塞 계田赤城 昆池碣石 鉅野洞庭
(안문자새 계전적성 곤지갈석 거야동정) (안:雁에서 推오른쪽대신鳥)(계: 鷄에사鳥대신推오른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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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기러기 안, 문 문, 붉을 자, 변방 새, 닭 계, 밭 전, 붉을 적, 재
성(성 성) 중국 북쪽지방의 유명한 곳으로 기러기 왕래하는 안문관(雁門關)이 있고, 만리장성이 가로놓여 있으며,
또 계전(鷄田)이라는 변방의 광막한 지역은 주문왕과 진목공이 암탉을 얻고 왕이 되었다고 하는 곳이며, 치우(蚩尤:
東夷族君長, 蚩尤天王, 慈烏支桓雄)가 살았던 적성(赤城)도 있다. ② 맏 곤, 연못 지, 돌 갈, 돌 석, 클 거, 들 야, 고을 동, 뜰 정 곤명지(昆明池)라는 못은
운남성(雲南省)에 있고, 갈석산(碣石山)은 하북성 부평현에 있으며, 거야(鉅野)는 산동성 태산(泰山) 동편에 있는
넓은 평야이고, 동정호(洞庭호)는 호남성에 있는데 '팔백리동정호'라 불리는 큰 호수다.
*곤명국(昆明國):
중국의 고대 왕조가 천축국이라고 부른 인도(印度)로 가는 통로이자 중요한 무역로. 여기에 중국 왕조에 대항하는
이민족 국가인 곤명국(昆明國)이 자리하여 인도와 중국 왕조 간의 왕래와 무역을 방해하였다. 한(漢) 무제(武帝 : 재위 기원전
141년~87년)는 곤명국(昆明國)을 토벌하기 위해 수군(水軍)을 조직하고 도읍지 장안(長安)의 근교 곤명지(昆明池)를 그대로 본떠
곤명호(昆明湖) 파고 수군들의 수(水戰) 훈련을 했다 한다. * 갈석산(碣石山): 중국 고대
제왕들이 중국 대륙을 돌아보는 순행(巡行) 때 꼭 들리는 곳으로 우왕이 황하 치수(治水)을 위해 들렀고, 한(漢) 무제(武帝)가
태산(泰山)에 갔다가 이곳 갈석산에 들렸으며, 진시황은 신하들을 보내 이곳 갈석산 입구에 자신의 '위대한 공로와 업적'을 기리는 비문을
새기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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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曠遠綿邈 巖岫杳冥 治本於農 務玆稼穡
(광원면막 암수묘명 치본어농 무자가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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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넓을 광, 멀 원, 솜 면, 멀 막, 바위 암, 메뿌리 수, 아득할 묘,
어두울 명 산과 벌판과 호수가 아득하게 멀리 줄지어 있고, 큰 바위와 메뿌리(산봉우리)들이
묘연(杳然)하게(까마득하게) 줄지어 있다. ② 다스릴 치, 근본 본, 어조사 어, 농사 농, 힘쓸
무, 이 자, 심을 가, 거둘 색 다스림의 근본(根本)을 농사(農事)에 두는 중농정치(重農政治)를 펴니 때 맞춰
심고, 힘 써 일하나 많은 걷우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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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숙載南묘 我藝黍稷 稅熟貢新 勸賞黜陟
(숙재남묘 아예서직 세숙공신 권상출척) (숙:人변叔)(묘:점아래一아래田+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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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비로소 숙, 일할 재, 남녘 남, 이랑 묘, 나 아, 재주 예, 기장 서,
피 직 비로소 남양의 밭에 농작물을 심고 가꾸었는데, 나는 기장(黍)과 피(稷)을 심는 일에
열중하였다. ② 세금 세, 익을 숙, 바칠 공, 새 신, 권장할 권, 상줄 상, 내칠 출, 오를
척 곡식이 익으면 세금을 내서 나라에 쓰게 하고, 햇곡식으로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며, 열심히 일한자에게는 상을
내리고, 게으런자는 출척(黜陟: 내쫓음)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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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孟軻敦素 史魚秉直 庶幾中庸 勞謙謹勅
(맹가돈소 사어병직 서기중용 로겸근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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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성 맹, 맹자이름 가, 두터울 돈, 바탕 소, 역사 사, 고기 어, 잡을
병, 곧을 직 맹자(孟子)는 하늘에서 받은 소성(素性: 타고난 천성)을 지키려고
마음을 두텁게 길렀으며, 사어(史魚)는 위(衛)나라 대부(大夫)였는데 성격이 강직하였다. ② 무리 서, 몇 기, 가운데 중, 떳떳할 용, 수고할 로, 겸손할 겸, 삼갈 근, 삼갈 칙 어떤 일이나
언제나 중용(中庸)을 지키며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도록 해야 하며, 열심히 일하고(懃勞), 겸손(謙遜)하고, 삼가며(謹愼)
신칙(愼勅)하면 곧 중용의 도에 이르게 된다.
* 사어(史魚) : 춘추(春秋) 시대 위(衛)나라의
충직한 신하. 이름은 추(?). 위영공(衛靈公)이 어진 신하 거백옥(遽伯玉)을 중용(重用)하지 않고, 도리어 미자하(彌子瑕)를
임용한 것을 간하였다가 이루지 못하고 죽음을 한탄하여 장사하지 말도록 유언했었는데, 영공이 조문왔다가 그것을 알고 간하던 말대로
하였으므로 시간(屍諫)하였다고 하여 유명해졌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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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聆音察理 鑑貌辨色 貽厥嘉猷 勉其祗植
(령음찰리 감모변색 이궐가유 면기지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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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들을 령, 소리 음, 살필 찰, 이치 리, 볼 감, 모양 모, 분별항 변,
빛 색, 소리를 듣고 그 거동을 살피니 조그마한 일이라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모양과 거동으로서
그 마음 속을 분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② 끼칠 이, 그 궐, 아름다울 가, 꾀 유, 힘쓸 면,
그 기, 경경 지, 심을 식 도리를 지키고 착하게 행동하여 자손에게 좋은 영양을 끼쳐야 할 것이며, 착한 것을
자손에게 넘겨 주도록 힘쓰므로써 좋은 가정이 이루어 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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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省躬譏誡 寵增抗極 殆辱近恥 林皐幸卽
(성궁기계 총증항극 태욕근치 림고행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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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살필 성, 몸 궁, 나무랄 기, 경계 계, 사랑받을 총, 더할 증, 겨룰
항, 다할 극 나무랄 일(譏論)과 경계(警誡)해야 할 일이 있는가 연려하며 살피고, 총애(寵愛)가 더할
수록 교만하지 말고, 더욱 조심하여야 한다. ② 위태할 태, 욕될 욕, 가까울 근, 부끄러울 치,
수풀 림, 언덕 고, 다행 행, 곧 즉 총애 받는다고 욕된 일을 하게 되면 멀지 않아(가까이에) 위태함과 부끄러운이 오게되며,
부귀할지라도 겸퇴(謙退)하여 산간 수풀 언덕에서 지내는 것도 다행한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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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兩疏見機 解組誰逼 索居閑處 沈默寂료
(량소견기 해조수핍 색거한처 침묵적료) (료:蓼에서艸대신갓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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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두 량, 성길 소, 볼 견, 기회 기, 풀 해, 짤 조, 누구 수, 핍박할
핍 한(漢)나라 소광(疏廣), 소수(疏受)는 그 기틀을 보고 상소하여 낙향하였는데, 관(冠)의 끈을 풀어
사직하고 돌아가니 누가 핍박(逼迫)하리요. ② 찾을 색, 살 거, 한가할 한, 곳 처, 깊을
심(고요할 심), 잠잠할 묵, 고요할 젓, 고요할 료 퇴직하여 살 곳을 찾아 한적한 곳에서 세월을 보내고,
세상에 나와서 교재하는데도 언행이 침착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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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求古尋論 散慮逍遙 欣奏累遣 척謝歡招
(구고심론 산려소요 흔주루견 척사환초) (척:戚아래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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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구할 구, 옛 고, 찾을 심, 의론할 론, 흩어질 산, 생각 려, 노닐 소,
멀 요 옛 것을 구하고, 고인을 찾아 의논하며, 세상 일을 잊어버리고 자연 속에 한가히 즐긴다.
② 기쁠 흔, 아뢸 주, 여러 루, 보낼 견, 슬플 척, 사례할 사, 기쁠 환, 부를
초 기쁜 것은 아뢰고 더러운 것은 흘려 보내면, 심중의 슬픈 것은 없어지고 기쁨(즐거움)만 부른 듯이 오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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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渠荷的歷 園莽抽條 枇杷晩翠 梧桐早彫
(거하적력 원망추조 비파만취 오동조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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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개천 거, 연꽃 하, 적실할 적, 역력할 력, 동산 원, 풀 망, 빼낼 추,
가지 조 개천에 핀 연꽃도 아름다우니 향기를 잡아 볼만 하고, 동산의 풀도 땅 속의 양분으로 가지가 벋고
크게 자란다. ② 비파나무 비, 비파나무 파, 늦을 만, 푸를 취, 오동 오, 오동 동, 이를 조,
시들 조 비파나무는 (잎이 작아도) 늦겨울에도 그 빛이 푸르고, 오동나무는 (잎이 크도) 가을이되면 다른
나무보다 먼저 시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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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陳根委예 落葉飄요 遊곤獨運 凌摩絳소
(지근위예 락엽표요 유곤독운 릉마강소) (예:醫에서酉대신羽)(요:言없는謠+風)(곤:昆+鳥)(소:雨아래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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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베풀 진, 뿌리 근, 맡길 위, 가릴 예, 떨어질 락, 잎사귀 옆,
닐릴 표, 날릴 요 가을이 오면 오동나무 뿐만 아니라 고목의 뿌리는 시들어 마르고, 가을이 오면
나무잎들은 낙엽이 되어 펄펄 날린다. ② 놀 유, 고니 곤, 홀로 독, 움직일 운, 업신여길 능,
문지를 마, 붉을 강, 하늘 소 고니는 무리지어 다니지 않고 홀로 날아다니면서, 붉은 하늘을 업신여기는
듯(개의치 않고) 누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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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耽讀翫市 寓目囊箱 易유攸畏 屬耳垣墻
(탐독완시 우목낭상 이유유외 속이원장) (유:車+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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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즐길 탐, 읽을 독, 구경할 완, 저자 시(시장시), 붙일 우, 눈 목,
주머니 낭, 상자 상 한(漢)나라의 가난한 왕충(王充)은 독서를 즐겨 저자의 책방에 가서 탐독하였는데,
왕충이 한 번 읽으면 결코 잊지 않아서 마치 글을 주머니나 상자에 넣어놓은 것과 같았다. ② 쉬울
이, 가벼울 유, 바 유, 두려울 외, 붙일 속, 귀 이, 담 원, 담 장 군자는 앞뒤를 생각치 않고 가벼이 말함을 두려워
해야 하며, 벽에도 귀가 있다(耳垣)는 말이 있는 것 처럼 경솔히 말하는 것을 조심하여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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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具膳飡飯 適口充腸 飽어烹宰 飢厭糟糠
(구선손반 적구충장 포어팽재 기염조강) (어:食*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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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갖출 구, 반찬 선, 밥 손, 밥 반, 맞을 적, 입 구, 채울 충, 창자
장 진수성찬을 갖추지 않고 밥을 먹어도, 입에 맞으면 배를 채운다. ②
배부를 포, 배부를 어, 삶을 팽, 재상 재, 배고플 기, 싫을 염, 재강 조, 겨 강 배부를 때는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그
맛을 모르지만, 배가 고플 때는 겨(糠)와 재강(술찌거미,酒糟)도 맛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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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親戚故舊 老少異粮 妾御績紡
侍巾유房 (친척고구 노소이량 첩어적방 시건유방) (유:巾+椎의우측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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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친할 친(어버이 친), 겨레 척, 연고 고, 옛 구, 늙을 로, 젊을 소,
다를 이, 양식 량 친(親)은 동성지친(同姓之親; 父系)이고, 척(戚)은 이성지친(異姓之親, 母系)이며,
고구(故舊)는 오랜 친구를 말하며, 늙은이와 젊은이의 식사는 달라야 한다. ② 첩 첩, 어거할 어,
길쌈 적, 길쌈 방, 모실 시, 수건 건, 장막 유, 방, 방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안에서 길쌈을 하며,
남편을 유방(휘장을 친 방, 침실 안)에 모시고 수건을 받드는 것도 처첩이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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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紈扇員潔 銀燭위煌 晝眠夕寐 藍筍象床
(환선원결 은촉위황 주면석매 람순상상) (위:火+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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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깁 환, 부채 선, 둥글 원, 맑을 결, 은 은, 촛불 촉, 빛날 위, 빛날
황 깁(비단) 부채는 둥글고 깨끗하며, 은(銀)촛대의 촛불은 휘황찬란하다. ②낮 주, 잘 면, 저녘 석, 잘 매, 쪽 람, 대순 순, 코끼리 상, 평상 상 낮에 잠자고도 밤에 일찍
자는 사람은 한가한 사람이며, 푸른 대순과 코끼리 평상은 한가한 사람의 침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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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弦歌酒연 接杯擧觴 矯手頓足 悅豫且康
(현가주연 접배거상 교수돈족 열예차강) (연:言+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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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줄 현, 노래 가, 술 주, 잔치 연, 이을 접, 잔 배, 들 거, 잔
상 거문고를 타며 노래하고 술로써 잔치를 여니 작고 큰 술잔을 서로 주고 받으며 즐기고 있다.
② 들 교, 손 수, 조아릴 돈, 발 족, 기쁠 열, 미리 예, 또 차, 편안할 강 손을
들고 발을 두드리며 춤을 추니, 이처럼 마음 편히 즐기고 살면 이것이 곧 단란한 가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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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嫡後嗣續 祭祀蒸嘗 稽상再拜 悚懼恐惶
(적후사속 제사증상 계상재배 송구공황) (상:桑+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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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정실 적, 뒤 후, 이을 사, 이을 속, 제사 제, 제사 사, 찔 증, 맛볼
상 적자(嫡子)는 뒤를 계승하여 대를 잇고, 제사를 지내는데 겨울 제사는 증(蒸). 가을 제사는
상(嘗)이라 한다. ② 조아릴 계, 이바 상, 부번 재, 절 배, 두려울 송, 두려울 구, 두려울
공, 두려울 황 제사 때 이마를 조아려 선조에게 두 번 절하며, 제사에서 송구(悚懼: 두렵고 거북하고 미안함)해 하고 공황(恐惶: 두려워서 어쩔 줄
모름)함이 조상에 대한 공경함이 지극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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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전牒簡要 顧答審詳 骸垢想浴 執熱願凉
(전첩간요 고답심상 해구상욕 집열원량) (전:片+錢의오른쪽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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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편지 전, 편지 첩, 간략할 간, 중요할 요, 돌아볼 고, 대답 답, 살필
심, 자세할 상 글과 편지는 간략함을 요하고, 편지의 회답도 자세히 살펴서 써야 한다. ② 뼈 해, 때 구, 생각 상, 목욕할 욕, 잡을 집, 뜨거울 열(더울 열), 원할 원, 서늘할 량 몸에
때가 끼면 목욕할 것을 생각하게 되고, 더우면 시원하게 하기를 원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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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驢라犢特 駭躍超양 주斬賊盜 捕獲叛亡
(려라독특 해약초양 주참적도 포획반망) (라:馬+累)(양:馬+襄)(주:言+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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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나귀 려, 노새 나, 송아지 독, 숫소 특, 놀랄 해, 뛸 약, 뛰어넘을
초, 달릴 양 나귀와 노새와 송아지와 숫소(황소)는 가축이고, 가축들은 놀라서 뛰고, 뛰어넘고, 달리며,
논다. ② 벨 주, 벨 참, 도둑 적, 훔칠 도, 잡을 포, 얻을 획, 바반할 반, 망할 망(도망할
망) 역적(逆賊)과 도적(盜賊)은 그 목을 베어 없애고, 배반하고 도망하는 자는 잡아서 벌주어 죄를 다스려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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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布射遼丸 혜琴阮嘯 염筆倫紙 鈞巧任釣
(포사료환 혜금완소 염필윤지 균교임조) (혜:禾+尤아래山)(염:心변活의우측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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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베 포, 쏠 사, 멀 료, 둥글 환, 성 혜, 거문고 금, 성 완, 휘파람
소 한(漢)나라 여포(呂布)는 활을 잘 쏘았고, 의료(宜遼,僚) 는 탄자(彈子)를 잘 던졌으며,
위(魏)나라의 혜강(혜康)은 거문고를 잘 타고, 완적(阮籍)은 휘파람을 잘 불었다.(주) ② 편안
염, 붓 필, 인륜 륜, 종이 지, 무게단위 균, 교묘할 교, 맡길 임(성 임), 낚시 조 진(秦)나라 몽염(蒙염)은 토끼털로
처음으로 붓을 만들었고, 후한(後漢)의 채윤(蔡倫)은 처음으로 종이를 만들었으며, 위(魏)나라 마균(馬鈞)은
지남거(指南車)를 만들었고, 전국시대(戰國時代) 임공자(任公子)는 낚시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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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강(혜康,223-263)과 완적(阮籍,210-263):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220-265) 말기
산도(山濤, 205-283), 향수(向秀, 227?-272), 유령(劉伶, 221?-300), 완함(阮咸, ?-?), 왕융(王戎,
234-305)등과 함께 산양(山陽)(현 하남성 수무) 죽림(竹林)에 모여 교유하면서 세상사를 잊고 술을 즐기면서 호탕하게 살았는데,
사람들이 이들을 죽림칠현(竹林七賢) 이라 불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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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釋紛利俗 竝皆佳妙 毛施淑姿 工빈姸笑
(석분리속 병개가묘 모시숙자 공빈연소) (빈:口+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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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풀 석, 어지러울 분, 이로울 리, 풍속 속, 아우를 병, 다 개, 아름다울
가, 묘할 묘 이들 여덟 사람의 재주로서 어지러움을 풀어 풍속에 이롭게 하였으므로, 모두가 아름다우며
묘한 재주를 가졌었다. ② 털 모, 베풀 시, 맑을 숙, 모양 자, 공교할 공(공바치 공), 찡그릴
빈, 고울 연, 웃음 소 오(吳)나라 모장(毛薔)과 월(越)나라 서시(西施)는 모두 절세의 미인이었는데,
서시(西施)는 찡그리는 모습조차 어름다우니 웃을 때는 더욱 아름다웠다.
* 西施捧心(서시봉심): 서시(西施)는 중국 춘추시대 때 월나라 미녀로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애비(愛妃)가 되었는데 사람들은 서자(西子)라고도 불렀다.
서시가 가슴이 아파서 가슴에 손을 대고 얼굴을 찡그린 것이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나 예뻐 보였는지 어떤 못생긴 여자가 서시처럼
미인으로 보이려고 흉내내어 가슴에 손을 얹고 얼굴을 찡그렸더니 사람들이 그녀의 흉한 얼굴에 놀라 모두 도망을 쳤다. 그 후로
‘서시봉심(西施捧心)’이란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같은 행동이라도 행하는 사람에 따라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는 뜻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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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年矢每催 羲暉朗曜 璇璣懸斡 晦魄環照
(년시매최 희휘랑요 선기현알 회백환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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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해 년, 화살 시, 매양 매, 재촉할 최, 복희 희, 빛날 휘, 밝을 랑,
빛날 요 세월은 화살 같이 빠르게 지나가면서 매양 사람을 재촉하며, 해빛과 달빛은 온 세상을 비추며
만물에 혜택을 준다. ② 구슬 선, 구슬 기, 매달 현, 돌 알, 그믐 회, 넋 백, 고리 환, 비칠
조 구슬로 만든 혼천의(渾天儀)가 공중에 매달려 돌고 있듯이, 달은 그믐 때 빛이 없다가 보름 때 다시 밝은
빛을 내며 순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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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指薪脩祐 永綏吉邵 矩步引領 俯仰廊廟
(지신수우 영수길소 구보인령 부앙랑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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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가리킬 지, 땔나무 신, 닦을 수, 도울 우, 길 영(오랠 영), 편안할
수, 길할 길(좋을 길), 높을 소 불타는 나무와 같을 정렬로 도리를 닦으면 복을 받게 되고, 오래(永)
편안(綏)하고 길(吉)하고 높은(邵) 지위를 누릴 것이다. ② 법 구, 걸음 보, 끌 인, 차지할
령, 머리숙일 부, 우러러볼 랑(앙), 사당 묘 걸음도 바로 걷고, 얼굴도 바르게 하여 위의(威儀)가 당당하게 하며,
항상 낭묘(廊廟: 議政府)에 있는 것처럼 머리 숙여 예의를 지켜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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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束帶矜庄 徘徊瞻眺 孤陋寡聞 愚蒙等초
(속대긍장 배회첨조 고루과문 우몽등초) (초:言+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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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묶을 속, 띠 대, 자랑할 긍, 장중할 장, 배회할 배, 배회할 회, 바라볼
첨, 볼 조 의복에 유의하여 단정히 함으로써 긍지를 가지고, 배회하면서 여기 저기 바라보는 것도 모두
예의에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 ② 외로울 고, 더러울 루, 적을 과, 들을 문, 어리석을 우,
어리석을 몽, 무리 등, 꾸짖을 초 나(천자문 저자)는 외롭고(孤), 더럽고(陋),과문(寡聞)하며,
어리석어(愚) 몽매(蒙昧)함을 면치 못하는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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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謂語助者 焉哉乎也 (위어조자
언재호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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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이를 위, 말씀 어, 도울 조, 놈자(사람 자), 어조사 언, 어조사 재,
어조사 호, 어조사 야 어조(語助)란 한문의 조사(助詞)로서 언(焉)자, 재(哉)자, 호(乎)자, 야(也)자를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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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지막 페이지의 교훈(敎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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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께서 직접 필사하신 이 천자문 책 중에서 이 마지막 페이지에 유독 종횡으로 줄친 종이를 썼는데 이는 앞의 62개 면에 992개
글자를 쓸 때 글자의 크기, 종횡의 줄, 글자의 자세 등을 고르게 그리고 바르게 쓰기 위하여 각 장이 2중으로 된 한지 사이에 끼워넣어 이
16개의 칸이가 비치게 하던 종이다. 이 칸막이 종이를 마지막 페이지로 쓴 데서 선친의 두 가지 면을 엿볼수 있는 단서가 있다.
하나는 필사가 끝난 후에는 쓸모가 없어진 이 종이를 버리지 않고 마지막 페이지로 쓴 것은 선친의 근검절약(勤儉節約) 정신이다.
둘은 선친이 어린시절부터 청장년시절까지 일제 통치하에 얼마나 가난과 싸우면서 살았고 광복 이후에도 계속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선친이
내게 천자문 공부를 시키려 해도 책을 살 수 없었고, 필사하려고 해도 필요한 한지를 살 수 있는 금전적인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서낭당 우리 산
기슭을 일군 밭가에 자생하는 닥나무를 잘라다가 삶아서 껍질을 베껴 말려서 다래실(月谷)에서 한지(漢紙) 수공업을 하던 박곤(별명을 닥 종이를 만드는 사람이라 해서 '닥곤'또는 '딱곤'이라 불렀다)에게 가지고 가서
완성된 한지 제품과 물물교환을 하거나 삯을 주고 한지를 만들어와서 사용하였다. 이 천자문 뿐만 아니라 선친께서 필사한 많은 책들은 이렇게 해서
종이를 장만하여 썼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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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