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신이 부르심을 받아 쓰여진 시기에 대하여 불만과 후회를 가질 때 가 있습니다. 늦게 부르심을 입은 사람은 '왜 좀 더 일찍 부르시지 않으셨을까?' 일찍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왜 나도 남처럼 세상을 알고 나서 부르지 않으셨을까?'궁금히 여깁니다.
사무엘은 나서 자라면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삶을 살았으니 이 분이야말로 그런 의문을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삼상 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앞에 결단코 범치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즉, 세상의 삶 따로 사명자의 삶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따라 세상에 사는 것이 진정한 삶임을 알려주고 있으며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가르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의 삶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는 어떻게 이런 구분된 사람으로 살수 있었을까요? 사무엘은 어머니 한나의 기도와 서원으로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으로 태어난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같은 사사임무를 지니고 태어났으나 세상의 정욕에 빠져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사람입니다. 즉, 기도와 서원의 사람은 지켜주심이 따른 다는 것을 알려주는 비교입니다. 그러면 사무엘의 신상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 이름: '사무엘'은 히브리어로 '샤마(듣다)'동사와 '엘(하나님)'의 명사가 합해진 이름으로 사무엘이라 지어졌으며 그 의미는 '하나님께서 들으신 바 됨' 이라는 뜻입니다. 그의 부모는 엘가나와 한나로 레위족속 그핫의 후손이었으며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 소빔'에서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잉태를 위한 한나의 서원에서 나실인으로 기를 것을 약속하였기 때문에, 그는 평생 독주나, 포도주를 마시지 않아야하고,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아야하며 시체나 부정한 것과 접촉을 피하고 순결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이같은 삶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사람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 생애: 사무엘은 3살쯤 되어 어머니 품을 떠나 성소에서 살도록 제사장 엘리 에게 맡겨졌습니다.그는 세마포'에봇'(제사장의 옷)을 입고 잠도 하나님의 궤가 있는 여호와의 전에서 자면서 하나님과 가까운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가 12세가 거의 되었을 때 하나님 께서는 그를 부르시어 엘리 제사장에 대한 예언을 들려주셨습니다. 하나님보다 두 아들을 더욱 두둔하였던 제사장의 실책에 대하여 그의 집안에 모두가 젊어서 죽는 심판을 행할 것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로부터 사무엘은 선지자의 사역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마지막 사사요, 선지자요, 제사장으로서 이스라엘의 3대 직분을 한 몸에 지닌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었으며 평생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 70세가 넘어 죽어 고향인 라마에 묻혀졌습니다. 그에게는 아들이 둘이 있었는데 요엘과 아비야는 사무엘의 신앙교육에도 불구하고 불량한 자들이 되었으며 그럼에도 그들을 사사로 세워 백성앞에 세운 것은 사무엘의 실수로서 백성들로 왕을 요구하기에 이르는 계기요 그 동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이것은 사무엘 생전에 풀지못한 오직 한가지 실수의 큰 아픔이 되었습니다.
* 사역: 사무엘은 생전에 3가지의 특기할 만한 사역을 이루웠습니다. 이는 바로 미스바 부흥운동과 왕정정치를 도입한 것꽈 선지자 학교를 운영한 일이었습니다. 1. 미스바 부흥운동으로 신앙을 회복시킨 사무엘(삼상 7장)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한후 20년 동안이나 블레셋의 지배를 받아 왔으며 과거 성지의 역할을 했던 세겜과 실로 역시 블레셋의 소유가 되어버렸습니다. 그에 따라 법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뒤로 20년 동안이나 블레셋 족속의 지역에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에는 성소는 커녕 제대로 된 지도자 한 사람도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오직 블레셋의 압제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세우셔서 그의 백성을 다음의 경로를 따라 구원하였습니다.
1) 우상숭배에서 여호와께로 돌아와 하나님만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삼상 7:3-4)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의 농경신인 '아스다롯'을 섬겼으며 그 여신이 땅의 풍요를 가져다주는 매혹의 신으로 가장 사랑받는 우상이었습니다. 이깉이 우상숭배는 욕심으로부터 출발하며 유익만을 추구할 때 하나님은 항상 두번 째로 밀려나게 됩니다.
2)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그들을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삼상 7:5-6)
사무엘이 백성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것은 하나님과 백성들간의 언약관계를 회복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기 위함이며, 이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백성들은 금식하며 회개하였으며 물을 길어 여호와앞에 부었습니다. 이 행위는 바로 그들이 그릇에서 쏟아져 나온 물과 같이 그들의 죄도 다 쏟아 버리고, 다시는 쏟은 물을 그릇에 담을 수 없듯이 쏟은 죄도 다시 담지 않겠다는 의연한 표현이었습니다.
3) 하나님은 이미 큰 우뢰를 발하여 침공한 블레셋 군대를 물리쳐 버리셨습니다. (삼상 7:7-10)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회개와 기도를 위해 모인 것을 마치 전쟁준비를 위해 모인 것으로 보고 침공을 하였습니다. 블레셋은 가장 불리한 때에 이스라엘을 침공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사무엘의 기도와 응답으로 하늘에서 큰 우뢰소리를 발하시어 놀라 도망가게 하셨는데 대개 짐작으로는 벼락 등 불길이 내려와 블레셋 사람들을 살른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싸움에 이겨 기념비를 세운 장소는 '에벤에셀'인데 이 장소는 과거 20년전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크게 살륙당했던 바로 그 장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회개에 용서로 응답하신 것이 바로 과거에 패전하였던 그 장소에서 크게 이기게 하심으로 이를 확증시켜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회복을 위한 참된 회개가 필요한 시기임을 봅니다.
2. 왕정정치의 시대를 열은 사무엘 (삼상 10:1-8)
백성의 장로들은 사무엘에게 우리에게도 왕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유는 '당신은 늙었고 당신의 아들은 불량하니 따를 수가 없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이 이방국가의 왕정정치에 현혹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왕인 하나님은 너무나 조용히, 천천히, 늦게 나타나시며 더우기 눈에 보이는 군대의 위세등 실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실물이 아니기 때문에 싫증이 나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도 왕과 더불어 치세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사무엘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왕을 세우는 기준을 들려주고 사울을 초대왕으로 기름부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들의 악한 계교를 아시면서도 그들에게 왕정정치를 허락하셨을까? 이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 계획에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은 신약의 모형도로 초점을 예수님께 맞추기 위하여 둥그런 원처럼 흩어진 상태의 삶에서 예수님 중심인 초점으로 향한, 좁혀 들어오는 과정의 역사로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의 예수님 으로부터는 구원의 섭리 계획은 이스라엘에서 이방인으로 다시 세상의 둥근 원으로 확대 되어 나가야만 합니다.
신정 정치의 한계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대행자인 사사로서는 이방인 들에겐 더 이상 영향을 줄 수없는 시대가 올 것을 아시기 때문에 진정한 왕이신 예수님을 보내시기 위하여 왕정정치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악도 사용하시고, 악인의 기도도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도 전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포함되어 져 있기 때문입니다.
3. 선지자 학교를 세운 사무엘 (삼상 19:20)
선지자 무리가 모여 학교처럼 가르침을 받고 운영된 시작은 사무엘로부터 임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 엘리야와 엘리사 시기에 이르러 길갈, 벧엘, 여리고 등에 상당히 많은 숫자의 생도가 운영되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왕하 4:38, 43) 그런데 이 선지자 무리가 생긴 이유는 제사장들의 타락과 백성들의 우상숭배 행위를 더 이상 막기가 어려워 진정한 하나님을 섬기는 지도자를 양성하여 백성들을 가르치기 위함이 대두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사무엘은 자신의 고향인 라마에 가서 선지자들을 양육하는 기관을 세웠는데 그 이름을 '나욧'이라 지명하고 이는 기숙사라는 뜻을 가지는 '처소기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모인 자리에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난 것은 그들은 영이 열린 사람들이었고, 말씀에 순종하며, 용기로 대언하고 위험한 일에도 몸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 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무엘의 선지자 학교의 뜻을 본받는 진정한 신학교와 주의 예비종 들이 모여 수련후 배출된다면, 이땅의 구원의역사에 크게 기여할 줄로 믿습니다.
사무엘은 훌륭한 신앙을 근본으로 돌이키는 삶을 산 사람입니다. 바로 이 시기에 우리도 사무엘을 본받아 하나님 중심근본으로 돌아가는 신앙을 회복하는 시기가 되도록 노력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