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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강 기독교교육개론
Ⅰ. 기독교 교육의 영역
1. 기독교 교육의 의미
기독교 교육을 포함한 넓은 의미에서의 종교 교육이란 어떤 종교기관이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적 생활의 신앙과 방식을 이해하며, 받아들이고, 예증할 수 있도록 추구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종교기관에 따라 그 추구하는 노력이 다른 것이다. 그 이유는 종교기관에 따라 종교적 생활의 신앙과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 종교기관의 사항에 따라서는 추구하는 방법도 다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 교육은 그 종교의 경전이나 교리를 가르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종교의 경전이나 교리를 하나의 학문으로 가르치는 것은 일반 학교에서도 할 수 있다. 불교의 경전이나기독교의 성경을 가르치는 것만으로 종교 교육의 전부라고느 생각할 수 없다. 그 종교의 신앙진리와 생활방식을 이해하며, 받아들이고, 그리고 증거할 수 있도록 추구하는 것이 종교의 교육이다. 그러므로 종교 교육이 목적하는 바는 단순한 교리의 학습만이 아니라 교화(敎化)이다. 그 교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여 믿고, 그대로 실천하는 신자의 생활을 기대한다. 이런 면에서 종교 교육은 종교 전도와 궁극적 목적이 동일하다.
기독교적 종교 교육 속에는 성경 교육, 신학 교육, 교회학교 교육, 또는 기독교학교 교육등이 포함된다. 왜냐하면 이 모든 교육들이 단순한 지식의 전달만이 아니라 종교의 신앙진리와 생활방식을 이해하며, 받아들이고, 증거할 수 있는 신자의 삶을 살기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 한 예로서 신학교육을 들 수 있다. 국립대학, 또는 일반대학에서 가르치는 기독교 신학은 종교기관에서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기독교신학 또는 종교철학과 교수 목적이 다르다. 후자는 종교 교육 기관에서 수행되는 종교 교육 활동이다. 신학이나 종교 철학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이것을 생활과 말로서 이웃에게 증거하는 신학자, 또는 교역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1) 기독교 교육의 중요성
일반 교육에서와 마찬가지로 기독교 교육에서도 인간의 형성이 유전에 의하여 결정되느냐 아니면 환경에 의하여 결정되느냐는 문제로 오랜 논쟁을 겪어오고 있었다.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교육에 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전결정설을 신봉하면 교육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환경결정설을 기초로 하면 인간이 의도하는대로 자유롭게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두 이론이 모두 극단화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종합되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따라서 교육과 유전에는 한계가 있게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기독교 교육을 아무 의심없이 실시하여 왔고 또 강조하여 왔다. 그러나 학문도 이론화를 위하여는 기본적인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기독교 교육은 가능할까? 다시말하면 인간은 인간에 의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새롭게 변화될 수 있을까? 기독교 교육은 기독교 국가나 기독교가 전례되어 교회가 설립된 국가에서 실시 되고 있다. 기독교 국가에는 두 종류의 국가가 있다. 두 종류의 대표적 국가의 하나는 미국과 같은 국가이며 다른 하나는 영국이나 스칸디나비아와 같은 국가이다. 미국과 같은 국가는 신앙의 자유를 찾는 기독교인이 설립하였고 다른 나라들은 이방 종교를 숭상하고 있는 민족들이 선교사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 국가로 바뀐 나라들이다.
우리 나라도 선교사들이 약 100여년 전에 입국하여 기독교가 전래된 국가이다. 우리 나라의 기독교 교육은 기독교가 전래된 때부터 탄압을 받았으므로 미국과 같은 나라의 교육과는 다르다. 우리 나라는 피선교 국가로서는 선교사상 큰 이적을 이룩하고 있는 나라 중 첫째로 손꼽히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미국 선교사들에 의하여 선교활동이 교육사업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선교사업의 대성은 기독교 교육에 기인된 것을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국가의 민족의식의 뿌리를 깊이 심어준 것도 기독교 교육의 영향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또한 사회 정화의 기풍이 세워진 것도 기독교 교육의 힘이 컸다.
그러나 일제의 무서운 탄압은 오늘의 비극을 가져왔다. 즉 기독교 교육사업이 크게 저해받게 된 것이다. 해방이 되었으나 자유의 거센 물결은 무서운 사상의 변천과 청소년의 범죄를 크게 증가시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사실을 좀더 밝힌다면 과거의 기독교 학교에서 철저하게 실시되던 기독교 교육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교회 감독하에 운영되던 많은 초등학교들이 일제 말기에 문이 닫힌채 오늘에 이르기까지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가정 교육도 대부분이 학교교육에 의존하고 있어 기독교 가정도 지금은 일반 불신 가정이나 다름없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 나라의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은 물론 기독교 국가라는 미국에서도 많은 어린이와 학생들이 불신 사회사상의 체재하에 성장하고 있다. 즉 현 하바드 대학교의 총장이 로랜스 대학에 봉직하고 있을 때 청소년의 범죄가 급증되어 가는 근본 요인은 [기독교 교육이 약화된 것에 기인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사실이다. 기독교 교육이 부재한 사회나 교회는 무서운 병 즉 퇴폐적 사조가 만연되고 있어 그 영향이 사회 전체에 미치게 하고 있다. 지금이야 말로 기독교 교육을 통해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가 매우 갈급한 때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육을 담당한 교사들은 유대민족을 구원시킨 에스더와 같이 우리의 교인 자녀들을 하만과 같은 악과 불의의 사자들에게서 구출해 내야 될 것이다.
2) 기독교 교육의 정의
많은 사람들에게서 "기독교 교육이란?" 질문을 자주 받는다. 더우기 기독교의 많은 교사들이 기독교 교육이 무엇인지 그 정의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기독교 교육도 물론 교육의 한 현상이다. 우선 일반적으로 교육이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일] 즉 인간을 형성하는 작용으로 바람직한 인간을 육성하려는 노력이다. 다시 말해서 비교적 성숙한 자가 비교적 미숙한 자를 성숙시키려는 노력 등을 의미한다.
기독교 교육은 기독교인에 대한 교육으로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근거하고 시작 하고 있다. 골로새서 1:18에 "그는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고 했다. 그리스도는 인간사상과 생활의 중심이고, 기독교 교육의 중심 내용이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의 확신과 중생하는 데서 온다. 학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을 중심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아니한 피교육자들은 인간에게 있는 기본적인 죄악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육은 피교육자들에서부터 기본적인 죄악이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17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인간에게 있는 기본적인 죄악을 청산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 하였다. 현대의 진보적 교육은 학생중심 교육이다. 학생들의 기본권리를 최대한도로 강조한다. 그러나 그 교육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한 교육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교육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예수 중심의 교육인 기독교 교육이 학생을 중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학생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다. 기독교 교육은 예수께서 부탁하신 대로 실시하고 있는 교육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한 교육은 피교육자 생활 전체가 하나님께로 인도되어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하는데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자들이 되게 하는데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본 형상이고 참다운 본보기이시다. 그래서 학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의 참다운 본보기를 따라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은 이들은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한 삶을 갖게 된다"(골3:17).
이와 같이 기독교 교육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조화된 교육이 실시된다. 이 기본 원리는 교육 내용의 통합과 상호작용 관계로 나타나게 한다. 기독교 교육의 주제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고 예수님과 함께 배우며 행동하는데 있다. 예수님의 교훈하에서 교육이 진행될 때 그 교육은 새로운 뜻을 가지게 된다. 역사는 사람을 취급한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리는 복음이 여러 나라에 전파되는 것과 앞으로 전파하기 위한 안내서이다. 과학은 하나님의 법의 완성이다. 수학은 하나님이 절대자란 것을 보여주는 인정서이다. 사회과학은 세계의 문화, 정치 그밖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를 보여 주고 있다. 생물학과 생리학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아름답고 정교하게 창조하셨는가를 보여주는 자연의교과서이다. 경제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되어 작용되는 것이 강조되어 있다. 예수님을 중심한 모든 학문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잘 깨닫도록 하는 안내서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학문의 모든 분야에 대하여 성경적인 관점에서 바른 지식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을 배우게 하는 것이다. 기독교 교육은 예수님의 생애와 봉사에 의해 생활에 관한 모든 것을 평가하는 것이다. 생활에 대한 목적과 갈망은 그리스도의 생활의 조명 아래서 모두 평가되어야 한다.
기독교 교육은 학생들이 그리스도의 생활에 따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음을 가르치는 것이다. 기독교 교육의 모든 행위, 사상, 행동은 하나님께 정직하며, 진실하며,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로 행해져야만 한다.
2. 기독교 교육과 성령의 역사
1) 교사로서의 성령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기독교 교육은 교사가 성령의 역사를 보여줌으로 그 영향력을 크게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즉 기독교 교육은 성령의 역사에 의해 생활을 향상시켜 거룩하게 살도록 하는 힘이 있다. 일반 교육은 성령의 역사를 무시하나 기독교 교육은 성령의 역사를 존중하는 것이다. 즉 성령께서 교사에게 격려하여 주고 힘을 북돋아 주며 교사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게 한다. 또 성경의 교훈을 받아들여 마음속 깊이 움직여 생활에서 실천케 하기도 한다. 성령께서 교사에게 능력을 채워 주시며 유능한 교사가 되어 학생들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과 날마다의 생활에 새로운 힘을 주어 생활의 큰 변화를 일으키게 한다.
하나님께서 배우고 가르치는 법을 창조하셨고, 가르침의 선물을 주셨다. 그리고 인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사역하신다. 교사로 하여금 감화력 있는 교훈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성령의 감동이다. 다시 말해서 성령께서 교사를 사용하여 말하게 하고, 배우고, 가르치게 한다. 성령께서 친히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안내와 교훈 그리고 지식도 공급해 주신다.
2) 성령의 인도를 받는 기독교 교육
교회 학교도 일반 학교나 다름없이 학교마다 성공할 수 있는 확실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학교에서 학년을 담임한 교사나 다름없이 교회 학교에서도 반담임 교사로서 각 반의 교육목표를 가져야 한다.
기독교 교육의 주요한 목표는 학생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성경 말씀을 가르쳐 훈련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가 완성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성령이시다. 즉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은 교사가 그런 교육의 목표를 완성시킨다. 그러므로 교사 중의 교사는 성령이시다.
기독교 교육은 성령과 학생들의 일상생활과 연관성이 매우 깊다. 기독교 교육은 현대의 일반 교육과 다름없이 학생만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기독교 교육은 학생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느끼고 행해야 할 것을 돕는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 기독교 교육도 학생들로 하여금 학과를 배울 때마다 그 학과의 내용을 자기생활과 연관시켜 이행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육에 있어서도 배운다는 것은 사람의 요구와 능력에 큰 관계가 있는 것이다. 즉 기독교 교육은 사람마다 가정, 사회, 직장 그리고 교회 등 모든 생활을 성경 진리에다 연관시키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련성을 보여줌으로써 학생들이 예수님을 닮아 하나님의 형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비록 기독교 교육의 중심은 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할찌라도 기독교 교육의 적용은 사회적으로 되어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다. 우리 인간은 모두 한 세계에 살고 있지만 동거하는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요한복음 15:19에서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기독교 교육도 학생들이 모두 어떻게 살고, 일하고, 놀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이다. 학생들로 하여금 기독교 신사, 숙녀의 특성인 사회적 도덕을 배우게 하는 것도 기독교 교육이다.
현대 사회의 문제는 성령의 조명 아래 해석되어 진다. 기독교 교육은 학생들이 어느 곳에서나 승리하며 살 수 있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 사회적인 관계에까지도 성경적 원리를 적용시키는 것이다.
3) 성경에 기초를 둔 기독교 교육
기독교 교육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에다 둔다. 성경은 하나님, 사람, 세상에 대한 진리의 근본적 원천인 것이다. 우리의 모든 생활은 성경의 진리를 통해서 비춰지며 해석되어 진다. 성경은 절대적인
진리이다. 그 까닭은 성경 진리는 정확 무오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니라"(마24:35)고 하셨다.
⑴ 성경에 기초한 교육의 표준
기독교 교육은 외모, 행위 훈련의 표준도 갖고 있어야 한다. 날마다 변해가는 세상의 표준과 달리 기독교 교육은 만고불변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표준으로 삼고 있다. 고로 성경에 기초를 둔 기독교 교육은 절대적인 진리를 주고 있으므로 성경 이외에 다른 것으로는 절대적인 진리를 찾아 볼 수가 없다. 이 진리는 하나님의 계시인 까닭에 절대적이다. 인간인 교사의 힘만으로는 성경이 보여주는 이상을 성취할 수 없다. 오로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성령의 역사를 무시하는 일반 교육과는 달리 기독교 교육은 성령의 역사를 근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육만이 절대적 진리를 전달할 수 있다. 그 진리는 영원 불변하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라고 주님 자신이 밝히고 있다. 즉 요한복음 14:6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셨다.
⑵ 성경에 근거한 기독교 교육은 성경적 진리에 기초한(하나님의 피조물) 모든 물질 세계와 활동을 감안하여 교육한다.
기독교 교육이 다루는 모든 교육 내용은 성경적 원리에 의거해야 되며,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표준을 두지 아니하는 한 기독교 교육에서는 어떠한 주제, 내용,방법, 실제활동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 기독교 교육은 기도로 준비하며, 시작하고 진행시키고, 끝을 맺는다. 기도없는 교육은 기독교 교육이라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육이 무엇인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신실한 교사들이라면 기도로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고 성령의 인도에 따라 성경을 가르치며 학생들을 대하며, 사회적 적응을 시킨다. 기도하는 교사는 기독교 교육의 진의를 바로 이해 하게 된다.
3. 기독교 교육의 목적
교육이란 인간을 변화시키려는 계획적인 과정이므로 교육이라 하면 무슨 교육에 있어서든지 목적이 있게 된다. 즉 교육의 목적은 무엇으로 부터 무엇에로 변화시키느냐 하는 이상적인 상태를 뜻한다. 교육 목적은 교육 전반에 걸쳐 방향을 알려주고, 계속성 있게 하며 교육과
정 선정을 통제하고, 효과적 방법을 암시하며, 평가의 기준 등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교사와 학생에게 교육할 의욕을 고취한다.
인간은 어떤 행동에서 목적을 갖는다. 목적은 그 행동의 방법과 의미와 목표를 결정해 준다. 일반 교육의 목적은 학생으로 하여금 그 사회의 유익(有益)한 인물이 되어 자신이 속한 사회에 유익을 주면서 살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세속교육인 일반 교육에 있어서는 영적인면이 소홀히 취급되며 무시당하고 있는 실정에 사람들이 진실된 교육을 어떻게 받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세속교육이란, 사회적 순응, 개인의 욕망과 이익을 갈망하는 사람을 밖으로 배출해 내거나, 금전적인 동기에 의해 좌우되는 인간들 밖에 배출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목적에서 교육이 실시되고 있는 세속 교육은 기독교 교육적 차원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우리는 기독교 교육의 목적가운데서 이런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교육의 목적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교육의 목적은 그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명시해 주셨다. 때문에 우리가 그 교육 목적을 성경에서 찾을수 밖에 없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 기독교 교육의 목적에 대한 해석과 강조점은 여러가지로 차이가 있어 왔다. 초대교회에 있어서는 목적이 주로 기독교의 교리와 생활양식을 가르쳐 주는 데 있었다. 유대인들에게는 구약에 대한 해석을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재해석하는 것이었으며, 이방인들에게는 유대-기독교의 전통과 생활양식을 가르쳐 주는데 주력했다. 이것이 세례받기 위한 학습문답으로 발전케 된 것이다. 그후 기독교의 세력이 점차로 확장되면서 교인들의 자녀들을 위한 양육과 지도자들을 위한 훈련이 기독교 교육의 목적은 예수의 제자로 양성한다는 것이었다. 이때의 교육의 목적은 예수의 제자로 양성 한다는 것이었다. 즉 예수의 인격과 그의 선하심을 닮아가는 제자를 양성한다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예수의 성격을 닮은 기독교적 성격 함양이라는 국면에 중점을 두고 지도했다. 그리하여 예수의 개인생활을 모방하여 금식과 독신생활을 존중하게 되었고, 복음서에 나타난 그의 온유하고 겸손한 성격을 본따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상으로 내세우게 되었다.
종교개혁 이후 평신도들에게 성경이 공개되면서 성경교육이 점차로 기독교 교육의 핵심이 되었다. 지도자 훈련이 성직자 양성을 위한 직업교육이 되고, 주일학교 운동이 전 세계에 보급되면서, 기독교 교육의 목적은 그 강조점을 학생을 위한 성경학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더우기 정통주의 신학사조의 영향이 여기에 크게 작용했다. 성경무오설을 주장하면서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표준이란 신조 아래 성경 교육이 크게 성행케 된 것이다. 그리하여 기독교 교육이 점점 주일학교 어린이 교육으로 그 범위와 대상이 좁혀지면서 그 내용이 성경이야기와 성경암송 등으로 인기를 모으게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 교육 목적에 대한 현대 동향은 과거의 지식함양이나 정신훈련 또는 성격훈련등에서부터 전인양성, 원만한 생활등으로 그 양상이 달라지게 되었으며, 형이상학적인 국면에서부터 좀더 사회의 실용적 필요에 관련된 것으로 변천케 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행동적 변화를 목표로 해서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상)이를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교육목적은 교육평가가 뒤따를 수 있는 것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면을 강조하고 있다 .
기독교 교육의 목적설정에 있어서 일반적인 궁극적 목적을 세우는 동시에 개체의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중심으로 한 구체적 목적을 정립하고 있다.
1) 궁극적 목적
기독교 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완전한 기독교인을 양성하는데 있다. 즉 개인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복음에 접촉하여 그의 생활이 그리스도의 성품과 행위에 드러난 것 같은 그리스도의 생활로 변하게 하려 함이다. 따라서 인생의 모든 영역에 관련된 기독교의 진리와 신앙생활 원리를 모든 연령의 피 교육자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이며 그 결과로서 하나님과 이웃사이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관계를 맺는 동시에 산기독교 공동체(Dunamic. Christian Community)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기독교 교육의 목적대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고전 10:31).
2) 구체적 목적
올바른 교육을 하려면 교육의 목적이 바로 선정되어야 한다. 구체적 목적은 교육 내용과 방법을 규정하게 된다.
⑴ 기독교 사상 형성
인생의 목적과 기독교 인생관을 형성하기 위하여는 성경을 규칙적으로 연구하게 한다(시119:105,전12:13). 기독교 교육의 기초는 성경 연구에 인간생활의 여러가지 문제에 대한 기독교적 해답을 주는 것이다(딤후3:15-17).
⑵ 기독교 인격 훈련 (약 1:2,빌2:12,갈5:22-23)
회개하고 입신하는 것만이 기독교 교육의 목적이 아니다. 신앙을 가지고 기독교 교인이 가져야 할 성품 즉 믿음, 책임감, 성실, 관용,정직, 온유, 겸손 즉 인격의 훈련이 필요하다. 신앙을 가진 사람이 이러한 성품과 덕이 없으면 그가 증거하는 복음은 아무런 효과도 없다.
⑶ 그리스인의 생활 (마 7:24,약2:17)
그리스도인은 일상생활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믿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지도하는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과 태도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진실과 관용으로 남을 사랑하며 용서하는 심정을 가지게 하며 모든 일에 화평하며 공정한 태도를 가지게 하는 것이다.
⑷ 기독교적 사회 건설 (마5:13-16,시127)
기독교의 이념과 사상은 모든 사회 생활에 적용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 으로서의 인간과 가치관이 각 사람이 사는 가정, 직장, 회사, 사회 전반에 적용되어 기독교적 사회 윤리의 형성이 필요한 것이다.
이상의 구체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좀더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확실한 방침들을 서술해 보고자 한다. 이 방침은 주님께서 승천직전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인 마28:19:20에 명시되어 있다. 즉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이다.
첫째, 영혼 구원
"너희는 가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라는 것은 영혼 구원을 의미한다. 영혼을 구원하려면 어디든지, 누구에게나 어느 때든지 가야한다. 주님의 부탁은 지금부터 영혼 구원을 시작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나아가게 해야 하며 교사들은 학생들을 교회학교롤 인도하여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오로지 교회학교 학생들이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질 때만이 바람직한 교육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성경 교수
주님께서 두번째로 말씀하신 교육 목표는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라"고 하셨다. 다시 말해서 성경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성경이란 주님의 분부한 말씀이다. 성경은 진리이다. 약 2천년 전에 "진리가 무엇인가?"를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14:6)라고 하셨다. 또 예수님께서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비록 예수님께서 진리에 대해서는 그렇게 해답을 주셨지만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그것을 해결하지 못한 채 찾고 있다. 진리에 대한 계속적인 추구로 진리를 찾는 두 개의 기본적인 방향이 있다.
하나의 방향은 진리는 상대주의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들은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모든 것들이 상대적이므로 표준 가치도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매우 주관적인 진리로 알려졌다. 즉 오늘의 진리가 내일의 진리일 수 없다. 그들에게는 상황에 따라 필요할 때만이 정당한 진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방향은 진리를 절대주의적인 것으로 본다. 이러한 절대적 진리는 만고 불변의 진리이다. 절대적 진리는 반드시 객관적이다. "객관적" 이란 어휘는 "사람이 말할 때 말하는 그 사람의 사상이나 감정보다는 그 외적인 것과의 양쪽, 그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편견없이 사실대로 나타내는 일반적인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 교육의 표준은 성경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절대적 권위가 있다. 이런 절대적 권위를 예수님께서 마24:35에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즉 기독교 교육은 이런 절대적인 성경권위에 기초하고 있다. 기독교 교육에 헌신하는 교사들이 그 성경을 가르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셋째, 생활 훈련
"지키게 하라" 즉 생활 훈련이 세 번째의 교육 목표이다. 우리는 인간 사회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 본위로 살고 있는 까닭에 자신들을 신격화시키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이 사는 사회를 중요시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회주의를 매우 중요시하며 강조하고 있다. 이 문제는 일반 교육목표의 중요한 요소 이다. 기독교 교육은 사회적응에 대한 목표가 일반 교육에서의 주장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일반 교육은 사회가 주체가 되어 인간이 그것에 적응해야 한다. 즉 사회에 비위를 맞추어야 한다. 이에 따라 진리 자체도 사회환경과 분위기와 상황에 따라 변해진다. 그렇다면 만고불변의 절대적인 진리인 성경이 사회의 환경과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해야 된다. 그렇다면 우리 성경의 기초위에 있는 기독교 교육은 일반 교육의 교육 목표와 달리 적응이라는 말보다는 훈련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훈련은 진리에 따라 살도록 생활지도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에 적응시키는 것보다 진리에 적응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빛 자체가 그 본질인 밝음을 그대로 산 위에 세운 등대와 같이 사면에 비춰야 됨을 뜻한다.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요8:12)고 하셨으며 또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4)고 말씀하셨다. 빛의 역할을 잘 하려면 우리에겐 훈련이 필요하다. 훈련이란 말씀에 따라 사는 순종을 뜻하며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의 본을 따라 행하는 과정이다. 이런 생활지도가 기독교 교육 목표의 중요한 부분이다. 주님께서는 12제자들과 3년 동안 동거동락하여 언어 행동 제반에 따르는 생활을 실제로 인도하셨다.
우리 교사들도 주님의 본을 따르는 삶을 보여주면서 성경말씀에 순종하는 생활,겸손한 생활, 봉사생활, 헌신생활 등의 실천과 함께 학생들을 잘 지도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은 세상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속하여 있다. 그래서 교사들은 "마땅히 행할 일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 길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는 말씀대로 배움에 있는 자들에게 부지런히 계명을 지키는 생활을 지도해야 된다. 마땅히 행할 바라는 것은 신명기 6:6-7에 있는 말씀대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게 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잘 섬긴다는 것은 교회 출석을 잘하게 하며 기도생활, 성경 읽기, 전도,교회 봉사, 사회 봉사를 잘하게 하는 것이다.
Ⅱ. 기독교 교육의 실제
1. 교육 지도의 실제
기독교 교육 심리학의 이론을 실제 교육면에 어떻게 적응시키느냐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기독교 교육의 실제적인 면이며, 전인교육과 생애교육의 실상이기도 하다.
1) 영.유아기의 특성과 지도
⑴ 신체적 특성과 지도
영.유아기는 출생에서 만 3세까지를 말하는데, 이것을 세분한다면 영아기는 출생에서 만 1세까지, 유아기는 만2 - 3세로 나눌 수 있다. 영.유아기의 신체적 특성은 한마디로 활동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어린이는 항상 움직이고 뛰어놀며 조금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활동이란 성장의 기초이다. 갓난 어린이는 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성장한다. 생후 6개월 까지 몸무게가 2배로 늘며 3세가 되면 4배가 는다. 키는 1세까지 50% 늘고, 3세까지 75%로 는다. 특별한 방해 요소가 없는 한 먹고 자는데서 어린이의 성장이 오게 된다. 그러므로 활동은 성장의 기초이다.
어린이의 활동은 발육의 기초가 된다. 성장이란 단순히 키가 크고 몸무게가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고, 발육이란 성숙하여지고 튼튼하여지는 신체적 특징에 변화가 오는것을 말한다.
성장과 발육은 하나님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육체적 성장에 따라 신경도 발육하고 미각,촉각,후각,시각,청각 등 오각이 발육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어린이를 양육하기 위해서는 어린이의 활동영역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어린이의 생활 과정은 먹고, 자고, 노는데 있다. 이들의 힘은 성장 외에도 정상적인 해소책이 필요한데 즉 놀이(P-lay)를 통하여 해소시켜 주어야 한다.
어린이로 하여금 적절한 반응을 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어야 한다. 외부에서 오는 자극은 감각 신경을 거쳐 뇌에 전달된다. 이것이 근육을 통하여 운동신경의 운동을 자아낸다. 자극에 대해 바른 반응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은 교육을 통해서이다. 어린이가 좋은 것은 좋게, 나쁜 것은 나쁘게 반응하도록 교육하여야 한다.
⑵ 정신적 특성과 지도
영.유아기의 정신적 특성은 무엇을 새로이 발견하려는 의욕이다. 이 의욕을 통해서 새로운 환경과 사물을 인식하게 되고 새로운 것은 배우게 된다.
경험과 활동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바른 경험을 가지게 하기 위하여 간접적인 자극도 필요하다.
갓난 아기에게는 어머니가 전부이다. 어머니는 어린이에게 있어서 세상의 첫 스승이다. 어머니의 품에서 보호를 받고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게 된다.
영.유아기에는 어머니를 발견하는 시기이다. 또한 이 시기는 세상을 발견한다.작은 요람 속에 살던 아이가 밖에 나와 세상의 새로운 사물을 접하게 된다. 경험의 범위가 넓어져서 스스로 보고 듣는 것이 많아지지만 판단이나 반성할 힘이 없다.
영.유아기의 어린이들은 불완전하나마 자신의 기준 즉, 양심을 가지고 성장한다. <나>와<너>를 구분하게 되고 소유권(내것)을 주장하게 된다. 나아가서 이들은 <싫다>는 자기의사 표시가 뚜렷하게 된다.
⑶ 도덕적 영적 특성과 지도
영.유아기에는 모방을 통한 종교성이 확립된다. 이들은 어른의 행위를 모방 하는데, 집안에서의 신앙 분위기는 어린이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그러므로 신앙교육을 통하여 어린이의 종교성을 확립시켜 주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어머니들은 잠자기 전에 어린이들에게 탈무드(Tal-mud)를 읽어준다. 여기서 자립정신, 신앙정신 그리고 민족정신을 키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어머니들이 해 주는 이야기는 주로 전래동화로서 "옛날에 호랑이가....", "흥부와 놀부" 또는 "콩쥐와 팥쥐" 등의 이야기 뿐이다.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어린이들이 알만한 탈무드같은 것을 읽어주므로 그들의 신앙관을 정립시킬 수 있다.
어린이들은 모방을 통하여 도덕적 습관이 생긴다. 어린이의 생활 태도와 도덕적 습관은 어른들의 것을 모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옛말에 "자녀를 알려면 그 어머니를 보라"는 말이 있다. 어머니가 군것질을 좋아하면, 대부분의 자녀도 그와 같다.
우리는 어린이의 바른 신앙 성장을 위하여 교회와 가정이 협력하여야 하며, 바른 지도 방안을 강구하도록 하여야 한다.
2) 유치기(학력전기)의 특성과 지도
⑴ 유치기 어린이의 특성
㈎ 신체적 특성
이 시기의 어린이는 신체적 활동을 요구한다. 영아기보다 의미있는 활동이 요구되고, 대근육을 사용하는 활동으로 더욱 발전한다. 또 손을 사용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무엇을 그리고, 만들기를 원한다. 이 시기에는 자기의 이익을 추구한다. 혼자서 옷을 입을 수 있고, 리듬에 맞출 수도 있다. 또 말하기를 좋아하고 피부의 촉감에 민감하다.
㈏ 정신적 특성
이 시기의 어린이들이 주의력을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 정도이다. 또 정신적 능력이 증가하고 독립적이며 자기를 내세운다. 유치기에는 생생한 상상력을 가지며 실제와 공상을 혼돈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해가 희박하며 호기심이 많아 많은 질문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 시기를 질문기라고 하는데, 이들의 질문에 대하여 성의있는 대답을 해 주어야 한다.
사회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데, 타인과의 친교, 소꼽놀이 등으로 사회성이 발달되고,지도적 역량이 발달하게 된다. 이들의 소꼽놀이에도 대장이 있게 마련이다.
㈐ 도덕적 영적 특성
여러가지 환경의 변화 중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뻐한다. 가정, 친구 그리고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과 가까이 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혼동하는 사례가 많으며, 하나님을 이해할 때 자기가 원하는대로 해주는 분으로 생각한다.
이 시기의 어린이들은 풍부한 어휘로 기도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들을 지도할때 기도의 습관을 키워줄 필요가 있다. 식사 시간이나 잠자리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며, 자신이 잘못 하였을 때 하나님께 용서를 빌도록 하여야 한다.
이 시기의 어린이들은 교회에 대한 소속감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 교회"라는 어휘를 사용하며, 교회의 일원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게 된다.
⑵ 유치기 어린이의 지도
㈎ 예배
이 시기의 어린이들이 주의력을 집중시킬 수 있는 시간은 10분 정도이니 이들의 주의력이 집중되는 범위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유치부의 예배를 동화나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는데 이것은 잘못이다. 비록 어린이들의 예배일지라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며 성경 중심의 예배가 되어야 한다.
예배하는 반드시 찬송, 기도,말씀 그리고 봉헌이 있어야 한다. 어린이가 이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바른 예배의 훈련이 있어야 한다.
㈏ 성경 공부
유치부 어린이들에게 알맞은 성경 공부를 시켜야 한다. 총회 교육부의 공과를 활용하며, 각 교회의 실정에 알맞은 성경공부를 도입하여야 한다. 이들에게 효과적인 성경 공부를 시키기 위해서는 절기와 행사에 관련된 성경을 선택하여 가르치는 것이 매우 유익하다고 본다.
㈐ 생활 지도
이 시기의 어린이들의 생활 지도는 가정과 밀접한 연락을 통하여 이루어져야야 한다. 가정과의 연락에서 어린이들이 고쳐야 할 점을 파악하고, 여기에 따른 지도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칭찬을 해주므로 선행 동기를 유발시켜 보다 열심히 착한 일을 하도록 해야 한다.
3) 유년부 어린이의 특성과 지도
⑴ 유년부 어린이의 특성
㈎ 신체적 특성
이 시기에 와서는 신체의 성장 속도가 매우 느리다. 그러나 정력이 급격하게 폭발하고, 다양성 있는 활동을 요구하게 된다. 심한 활동을 하는 반면에 쉽게 피곤하여지기도 한다. 이들은 손을 사용하고 물건을 다루기를 원하다. 그래서 무엇을 만들었다가 부수고 다시 만드는 일들을 반복하기도 한다. 신체적 특성 가운데 하나는 감기와 전염병에 민감하고 이빨이 빠지는 변화를 겪게 된다.
㈏ 정신적 특성
이들은 느낌, 경험 그리고 말을 통하여 학습한다. 이들의 사고는 구체적이며 문자적이다. 상상력과 합리력이 생기며 남을 잘 믿고 종종 긴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 시기의 어린이들의 흥미, 집중 시간은 20분 정도이다.
매스미디어를 통하여 광범위한 세계를 안다. 성경 이야기 가운데서도 영웅 이야기들, 즉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나 다니엘의 이야기 등을 좋아하고 모험적인 선교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들은 사고력 보다 기억력이 좋고, 이유를 따지는 질문을 많이 한다. 무슨 일에나 흥미를 가지고, 불쌍한 사람에 대한 동정심이 많다. 이들은 개별적 지도와 애정을 갈망한다. 그러므로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이들을 사랑하고 돌보아 주는 따뜻한 손길이 있어야 한다.
㈐ 도덕적 영적 특성
유년부 어린이들은 교훈과 실기를 통하여 존경심을 배운다. 기도는 대단히 중요하며 만족할만한 태도로 발전시켜야 한다. 성경을 통하여 문제의 해결을 찾도록 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알게 된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는 영적으로 성숙한 태도가 필요하며 이것을 통해 바른신앙의 원리를 알게 하여야 한다.
이들은 현상 세계에 대하여 경이감을 가지며, 천국과 죽음에 대해서도 경이감을 갖는다. 가치를 찾으며 의와 불의를 분간하기 시작하고, 개인적인 종교를 가지기 시작한다.
⑵ 유년부 어린이의 지도
㈎ 예배
이들의 예배 시간은 길지 않아야 한다. 질서있고 규칙적인 예배를 드리도록 해야 하며 경건심을 양성하는데 주력하여야 한다. 어린이들은 예배의 참여자이며, 모든 순서마다 함께 동참한다는 사실을 바로 교육하여야 한다. 어린이들이 예배의 구경꾼이 되게 해서는 안된다.
㈏ 성경 공부
유년부 어린이들을 위한 성경 공부는 체계화되고 조직적인 공부가 되어야 한다. 일관성 있는 공부를 실시하며 규칙적인 성경 공부를 시도해야 한다.
어린이들에게 요리 문답을 공부시키고 숙제와 성경읽기 등을 체계적으로 하도록 해야한다.
㈐ 생활지도
어린이의 생활지도는 격려와 징계가 함께 실시되어야 한다. 잘한 일은 칭찬 하여야 하고, 잘못한 일은 징계하므로 시정토록 해야 한다. 어른을 모방하고,어른들의 제안을 기대하며, 비판할 줄도 안다.
어른들이 신앙 생활에 모범을 보여야 하며 생활을 통한 지도가 있어야 한다. 이들의 생활을 지도할 때 협력, 친절, 사색 등을 훈련시켜야 하며, 바른 인간관계를 유지하도록 지도하여야 한다. 또한 경쟁적 활동을 피하게 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하는 지도가 있
어야 한다. 때때로 반항하기도 한다. 사랑을 통하여 바른 지도를 해야 할 것이다.
4) 초등부 어린이의 특성과 지도
⑴ 초등부 어린이의 특성
㈎ 신체적 특성
서서히 성장하면서 남자의 성장이 더 빠르다. 이 시기는 일생에 있어서 가장 건강한 시기로서 정력과 활동이 무제한이다. 그러므로 과로하는 경향이 있고,신체적 활동에도 절제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남자 어린이의 경우에는 침착하지 못하고, 불평을 할 때는 그 일에서 떨어져 나오려고 한다. 이들은 직접적 활동과 경험 그리고 항상 새로운 일을 바란다.
㈏ 정신적 특성
이 시기에는 주의력을 집중하고, 기억력이 좋으며, 집념의 능력이 증가한다. 혼자서 생각하는 때가 많으며, 자기일에 주의하며 비판적이다. 또 자기 행동에 대하여 책임지려고 하며, 그들대로의 근심과 걱정이 있다. 모든 일에 호기심을 가지며, 이성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영웅 숭배자들인데 특히 스포츠인들이 이들에게 영웅시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바로 배우고 닮아가도록 지도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영웅 숭배적 특성을 활용하여 바른 신앙관을 교육시켜야 한다. 이 시기에는 우표나 포장지 등 여러가지 물건들을 수집하려고 하며, 자연에 대하여 관심을 가진다.
㈐ 도덕적 영적 특성
이들은 만물의 창조자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한다.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믿으며, 우리들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활에서 감명을 받는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통하여 보여주는 위대한 사역을 믿으며 예수님의 구속 사역과 사랑의 행동에 감명을 받는다.
이 시기에는 교리적 진리의 일부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교리 전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해도 진리 가운데 일부는 그들이 이해하게 된다.
또한 죄에 대한 인식이 자란다. 그래서 용서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사죄 은총이 무엇이며 우리에게 왜 필요한 것인지를 바로 알게 된다. 그리고 종교적 사실에 대하여 깊은 감명을 받고,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하고 순교한 신앙인들의 사역에 감격하게 된다. 그러니 부모와 교사들이 이들을 바로 지도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과의 기도의 체험을 하게 되고 기도라는 대화를 통하여 하나님께 아뢰고 또 응답을 받는다. 자신의 문제나 어떤 기도의 제목을 놓고 스스로 기도하게 해야 한다.
부모들은 이 시기의 어린이들을 지도할 때 훈계보다 모범을 보여야 한다. 즉 어린이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 왜 사느냐? 하는 근본 문제에 대하여 해답이 나오게 해야 한다. 돈이나 명예나 권력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삶을 가지도록 지도하여야 한다.
또 어떻게 사느냐? 하는 삶의 방법론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사는 방법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예배를 위한 책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규범이라는 사실을 바로 가르쳐야 한다. 그러니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생활 원리를 바로 가르치기 위하여 부모와 교사들이 훈계 일변도가 아니라 모범을 통한 실제적인 지도를 해야한다.
⑵ 초등부 어린이의 지도
㈎ 예배
바른 예배를 위한 지도가 필요하다. 주일 성수를 지도하여야 한다. 오늘날 주일 성수에 대한 의식이 희박해져 가고 있는 실정에서 주님의 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킨다는 사실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바로 가르쳐야 한다.
예배의 경건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예배순서 하나 하나에 관심을 가지고 어린이들에게 적합한 방안을 활용토록 하여야 한다. 어린이들의 일상생활에서 기도생활을 훈련할 필요가 있다. 신앙일기를 기록케 하고, 하나님과의 구체적인 대화가 있도록 하여야 한다. 이러한 예배를 위해서는 설교의 구체성이 필요하다. 막연한 교훈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 적용되는 내용을 선포하여야 한다.
또한 설교에서는 회개를 강조하여야 한다. 이 시기에 회개한 신앙 위인들이 많이 있다. 순교자 폴리갑은 9세에 주석가 매튜헨리는 10세에, 찬송작가 아이삭 왓츠는 9세에, 설교가 요나단 에드 워드는 7세에 회개하였다. 바른 예배 지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사는 신전인격자로 성장토록 가르쳐야 한다.
㈏ 성경 공부
예수님은 12세 때 성전에서 성경 문답을 하셨다. 이 시기의 어린이들이 성경을 배워야 할 모범을 우리에게 보이고 있다. 초등부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때 규칙적인 성경 읽기를 훈련시켜야 한다. 교회에서나 가정에서 성경 읽기를 장려하여야 하고, 잘 실천하는 사람에게 시상토록 해야 한다.
성경 공부는 부모의 협력없이는 불가능하다. 가정에서 부모들이 관심을 가지고 어린이들을 돌보며 지도하여야만 한다. 또 성경 공부에 관련된 위인동화나 건전한 어린이 문고들을 개발하고 기독교 문학 작품들을 읽히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 본문 즉, 요적 등을 암송케 하여 성경을 밝히 알도록 하여야 한다.
㈐ 생활지도
이 시기에는 정의감이 생기고 친절해진다. 또 약자에 대한 보호의식이 생겨서 어려운 사람을 돌보아 주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개성이 발달되고 개인으로 대우받기를 원한다. 독립적이고 자기 주장을 한다. 그러니 이들의 개성을 잘 발달시키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그룹 의식이 생기고, 단체 활동을 좋아한다. 주일학교의 어린이회를 통하여 단체 활동에 대한 훈련을 시켜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친교를 가지고 함께 노력하는 삶의 자세를 가지도록 해야 한다. 이 시기에는 신앙의 생활화를 강조 해야 한다. 신앙의 열의를 가질 수 있도록 신앙적 생활 분위기를 조성하여야 한다.
5) 중등부의 특성과 지도
⑴ 중등부의 특성
㈎ 신체적 특성
신체적 성장이 빠른 시기이다. 특히 소녀들의 경우에는 소년들 보다 더 빨리 성장한다. 청년전기의 신체적 변화가 나타난다. 체모가 생기며, 음성이 변하고, 월경을 하며 신체의 변화가 생긴다. 이 시기에는 왕성한 식욕을 가진다. 그래서 음식을 많이 먹고 자주 먹으려고 한다. 이것은 이 시기의 신체적 활동에 따른 요구이기도 하다.
㈏ 정신적 특성
새로운 사실에 대한 탐구와 모험을 좋아 한다. 그래서 새것에 대해 도전을 하려 한다. 사고력의 발달로 모든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어떤 사태에 대하여 신속하게 판단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이들의 상상은 매우 적극적이서서 엉뚱한 상상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성인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어떤 조직에 소속되기를 원하며 자아의식이 강하여 진다. 이들 가운데는 영웅 숭배 의식이 강하게 작용하여 자기가 이상으로 그리는 인물상을 마음에 새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 도덕적 영적 특성
이들은 실제적인 종교를 원한다. 하나의 추상성의 탐구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신앙 형태를 구비토록 해야 한다. 구원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다.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가지며, 헌신의 길에 들어서는 학생들도 생긴다. 봉사하기를 좋아하는 이들의 특성은 신앙 생활에도 나타 난다. 반면에 종교적 의심과 회의가 생기는 시기이기도 하기에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경우도 있다.
⑵ 중등부의 지도
㈎ 예배
주일 성수 지도를 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한 날이라는 관념을 가지게 하고, 예배와 선한 일을 위하여 이 날을 활용토록 하여야 한다.
중등부 예배는 순서에 변화가 있어야 하고, 학생들에게 알맞는 말씀이 선포되어야 한다. 학생들로 하여금 예배에 적극 참여토록 유도하며, 순서를 담당시키고, 안내를 맡기는 등의 참여 기회를 주어야 한다. 또 특별 집회를 개최하여 영적 결단의 기회를 가지게 하는 것이 무엇 보다 중요하다.
㈏ 성경공부
주일 오전의 주일학교 시간을 활용하여야 하고, 주일 오후나 토요 집회 시간의 활용 방안을 연구하여야 한다. 제한된 시간을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하여야 한다.
제한된 시간을 활용하여 효과적인 성경 공부 방안을 강구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여야 한다. 정기적인 성경 읽기와 스스로 성경 공부를 하도록 지도할 필요가 있다. 중학생들을 위한 성경 공부는 개발하여야 할 많은 영역을 안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하여 지도자들이 준비하여야 하고, 깊은 성경 연구가 있어야 한다.
㈐ 생활지도
학교와 교회의 가르침이 다를 경우 대립 현상이 나타난다. 실례를 들면, 학교에서는 진화론을 가르치는데, 교회에서는 창조론을 가르친다. 여기서 교육적 대립 현상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것을 조정하여 신앙으로 바로 이끄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생활지도를 위하여 지도자를 중심으로 철저히 심방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의 문제를 발굴하고 문제에 대해 상담하므로 문제 해결 방안을 찾도록 해야 한다. 보다 적극적으로 적은 기도 그룹을 만들어 학생들로 하여금 기도생활을 하도록 지도하여야 한다.
6) 고등부의 특성과 지도
⑴ 고등부의 특성
㈎ 신체적 특성
이 시기는 신체적으로 성인이 되었다. 신체적으로 습관이 형성되며, 근육이 발달하고 식욕이 매우 왕성하다. 또한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데 술과 담배등을 하는 시기이기도 한다.
㈏ 정신적 특성
교육의 계속으로 말미암아 많은 지식을 가지게 된다. 비록 미숙하기는 하지만 그들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모든 사물에 대하여 이유을 따지기를 좋아한다. 이 시기는 기억력이 좋아 배운 것을 기억하고, 창조적이며 이상적인 것에 대해 무한한 기대와 관심을 가진다. 그래서 이상주의자가 되기 쉽고 그들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한다.
조직체의 일원으로서 책임감 있는 행동을 원하며, 사회에서 자기의 위치를 찾으려 하고,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며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다. 이 시기에는 이성에 대하여 매혹되며, 무분별적인 사랑을 하려는 충동을 받기도 한다.
㈐ 도덕적 영적 특징
이 시기는 종교적 열정을 가지고 헌신한다. 자신의 장래에 대해 결단하는 시기이며, 바른 삶을 영위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 또, 독자적인 신앙 성장을 위하여 노력한다.
신앙이 성장하도록 바로 지도해야 한다. 이 때의 위험은 신앙에 몰입하거나 신앙에서 떠나는 그러한 양상을 보이기가 쉽다. 그러므로 신앙에 대한 바른 지도가 있어야 한다.
⑵ 고등부의 지도
㈎ 예배
고등부의 예배에서 특별히 강조하여야 하는 것은 개인적인 결단을 촉구하는 강한 멧시지가 필요하다. 자신의 문제를 발굴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하게 도전하는 역사가 필요하다. 예배의 숭고성이 강조되어야 하며, 경건한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예배가 형식에 치우치지 아니하고 진실하고 강한 예배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특히 주일 성수 문제에 유의하여야 한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공부에만 몰두하느라고 주일을 바로 지키지 못하는 일들이 있는 데 이것을 바로 시정하도록 지도하여야 한다.
㈏ 성경 공부
고등부에서는 체계있고 규칙적인 성경공부를 하도록 해야 한다. 단편적인 지도보다 신구약을 열람토록 하든지 요리문답을 공부하도록 해야 한다.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도록 지도하며 스스로 성경을 공부하게 하여 성경속에서 인생의 길을 찾도록 할 필요가 있다.
㈐ 생활 지도
앞으로의 문제에 대하여 번민하는 경우가 많다. 취직이나 진학등의 문제를 중심으로 상담활동을 전개하여야 한다. 스스로의 문제를 지도자나 부모와 상담 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가정심방을 강화하여 가정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도록 해야하며 생활지도를 서로 연결하여 하도록 해야 한다.
이 시기의 가장 큰 문제는 남녀간의 이성교제에서 오는 문제이다. 자칫하면 정도에서 이탈하기 쉬우니 개인지도가 필요하다.모든 것을 기도를 통해 해결토록 하는 신앙 자세가 있어야 한다.
7) 대학부의 특성과 지도
⑴ 대학부의 특성
㈎ 신체적 특성
신체적으로 성인이 되어 자아의식이 매우 강하다. 자기대로의 생활 패턴에 몰입되기 쉽고 자신의 젊음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 성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현상들이 나타나며, 인생의 신체적 절정기에서 하향적 곡선으로 내려가는 시기이다.
㈏ 정신적 특성
실제적 지식을 원하고 있다. 이들은 훌륭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어서 당면하는 문제에 대하여 결단하는 힘이 있다. 결혼 적령기에 처하여 이성 친구를 원하고 있으며, 사회적 관심이 지대하고, 지도자로서의 삶을 원하고 있다. 어떠한 일에도 두려움이 없고,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하여 불안해 하기도 한다.
㈐ 도덕적 영적 특성
이들은 인격적 하나님을 섬기며, 자기 신앙에 대하여 논리적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이 시기에는 영적 습관이 정착되고, 자신의 생애를 바쳐 헌신하고 봉사할 대상을 찾게 된다.
⑵ 대학부의 지도
㈎ 예배
변화된 예배 시도가 필요하다. 전형적인 형태의 예배도 중요하지만 변화를 시도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대학부의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멧시지이다. 특색있는 멧시지가 전달되어야 하는데 사상과 용어에서 특히 그러하다. 대학부 멧시지를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
㈏ 성경 공부
교리와 생활 문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어떻게 믿을 것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성경을 통하여 찾게 해야 한다. 이러기 위하여 계속적인 성경 연구와 성경 읽기를 실시하여야 한다. 또한 신학적인 문제와 특별한 주제에 대한 연구와 토론도 필요하다. 외부의 전문적 강사를 초빙하여 새로운 분야를 탐색케 하는 것도 중요하다.
㈐ 생활지도
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 상담을 강화하여야 한다. 개인의 문제를 발굴하고 이 문제에 대하여 답을 얻도록 지도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영적 체험을 위하여 금식기도, 철야기도 등의 신앙체험을 하도록 해야 한다. 또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장래 문제에 대하여 지도하고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신앙적인 지도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2. 성경교수의 실제
교안작성을 하고나면 어느 정도 교수에 자신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설교 준비를 다하고 자신이 있는데도 실제로 설교해보면 어쩐지 딱딱하고 어색하며 결과가 좋지 않을 때가 있듯이, 교사가 교안을 작성했고 자신이 있는데도 실제로 가르쳐 보면 거북하기도 하고 뜻대로 되지 않아, 애먹을 때가 적지 않은데 그것은 무리가 아니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교사는 교수의 실제 요령을 터득해야 하고, 경험을 쌓기도 하고, 더구나 넓고 깊게 더 연구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⑴ 교사의 세가지 조건
결국 교사의 입장에서 볼 때, 아무리 다른 면에서 원만을 기하였다고 하더라도 세 가지 면의 교사의 조건을 거치지 않으면 교수의 실제면을 결코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첫째가 신앙의 체계이다.
신앙의 체계가 서 있다는 것은 그만큼 원만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을 뜻하며 구원의 확신과 봉사에 대한 소명 그리고 정확한 교회관이 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서 남을 가르치려든다는 것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격이 되고 말 것이요, 봉사의 소명이 없다면 기쁨으로 하는 봉사가 아니라 억지 봉사가 될 것이니 부당하다 하겠고, 정확한 교회관 정립이 없으면 전도나 교육의 원만을 기할 수 없게 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할 때에 디모데전.후서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지나치다고 할 만큼 철저하게, 넓게, 깊게 인식시키면서 복음선교의 사명을 다할 것을 당부하였다.
바울은 권하기를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딤후3:14)라고 하였고, 또한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없이 말며" (딤전 4:14)라고 하였고,또한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3:15) 라고도 하였다.
그 둘째가 교육적 소양이다.
교사에게 교육학적 소양이 있다는 말은 학생들을 가르칠 준비가 다 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며, 따라서 그렇게 되려면 어느 정도까지는 교육학의 이론과 교육학이 늘 추구하는 바른 인격이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옛날에도 국민학교 교사는 사범학교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서야 교사로 자격증을 받아 교육 일선에서 종사하였다. 그러나 근간에는 일보 더 전진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가 교육대학에서 수년간에 걸친 훈련을 받은 뒤에야 교사로 임명받고 있는 실정이며, 더구나 중고등학교 교사는 사범대학을 나온 이가 원칙적으로 정교사로 임명되고 있다.
교회학교 교사도 이러한 어떤 훈련과 교육의 과정을 거쳐서 임명 되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서울 시내의 어떤 교회에서는 이러한 일을 감안하여 해마다 교회내의 자체 교육기관을 설치하여 신년벽두와 그밖의 기회를 포착하는대로 사계의 권위자들을 초청하여 교육과 훈련을 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선견지명이 있는 좋은 현상이라고 하겠고 크게 권장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 세째가 표현능력의 원만이다.
주일학교 교사의 입장에서 가장 원숙한 것이 기대되어야 할 국면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표현능력이라고 하겠다. 물론 신앙을 외면하고 교육적 사명도 등한시 하면서 표현능력 곧 기술적인 면에만 치중하려 드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하겠으나, 그렇다고 하여 신앙과 교육학적 소양이 풍부하다고 하더라도 표현능력이 졸렬하다면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다.
교육현장에선 대상을 분별하여 교수법의 응용에 원만해야 하겠고 말과 제스츄어에 어색한 점이 없이 자유스럽게 학습이 진행되어야 하겠고 성경본문과 비유를 들때에 주객을 뒤바꾸는 일이나 원제목에서 탈선하는 일도 없어야 하겠으며, 음성이나 용어, 태도나 안색에도 신앙적 인격의 감화력이 스며 있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산상보훈을 가르치시고 마치시자 무리들이 놀랐다고 하는데 그것은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다고 하는데(마7:29) 이것은 우리 예수님의 가르치시는 표현능력이 얼마나 위대하였음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2) 교 수 법
⑴ 기독교 교육과 교수법
기독교 교육학은 이론과 실천이라는 두가지 측면에서 고찰되어야 한다. 모든 교육 이론들은 실제에서 적용하고 가르치는 교육행동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제대로 되어지지 못하면 교육으로서의 목표 달성은 어려운 것이다.
교수법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각도에서 분석할 수 있으나 여기서는 크게 네 가지 주제를 취급하려고 한다.
㈎ 설화법 (설화법)
이 방법은 가장 오래되고 보편적인 방법으로서 설교, 강의, 동화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 방법의 단점은 학생들에게 먼저 경험할 기회를 주지 아니 하는데 있다.
<설화의 요소>
⒜ 줄거리
이야기에는 줄거리가 있어야 한다. 이야기 줄거리는 이야기에 나오는 여러가지 사건의 골자이다. 그것은 대화나 여러가지 사건들을 잘 연결시킨다. 그래서 줄거리는 이야기를 절정으로 이끌어 나간다.
⒝ 인 물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인물의 성격이 명확하여야 하고 또 잘 알려진 것이면 더욱 좋다.
⒞ 회화
회화는 이야기중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회화란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내적 생활과 생각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회화는 듣는 사람에게 긴장감과 현실감을 줄 수 있다.
⒟ 묘 사
묘사는 이야기의 기분을 창조한다. 묘사를 잘하므로 결정을 효과적으로 나타낼 수 있고, 인물과 이야기의 줄거리를 더욱 실감나게 한다.
< 설화의 요점>
⒜ 서 론
서론은 짧아야 하며 간결하면서도 말하고자 하는 것을 분명히 하여야 한다 때와 장소, 인물 소개 정도면 충분하다.
⒝ 본 론
이야기의 중심 부분으로서 처음과 같이 흥미를 계속 줄 수 있어야 한다. 이 부분에서는 행동, 감정, 긴장 등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 클라이막스
이야기의 클라이막스가 절대로 비현실적이어서는 안된다. 이야기 중에 뚜렷이 나타나야 한다. 클라이막스는 놀라움과 긴장의 요소를 가진다.
⒟ 결 론
서론과 같이 간결하여야 하고 윤리적 적용이 있어야 한다.
< 설화의 기술 >
⒜ 자연성
설화자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야 한다. 부자연스러운 자세는 설화의 본 뜻과 달라질 수 있다.
⒝ 음 성
설화자의 음성에 따라 이야기의 전달방안이 달라진다. 이야기의 흐름과 항상 직결되어야 하고 감정의 전달이 있어야 한다.
⒞ 직접성
설화자는 보통 이야기하는 것처럼 청중들에게 하여야 한다. 여러가지 사람에게 이야기 하듯이 직접적인 감정을 전달하여야 한다.
⒟ 창작성
청중에게 상상으로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을 써야 한다. 창작성을 통하여 이야기의 행동,기분,배경 등을 전달하여야 한다.
⒠ 이야기의 전개가 생동감이 있어야 한다. 등장 인물이 움직여야하고 생생한 장면들을 보여야 한다.
㈏ 시청각법
시청각 기구를 통하여 교수하는 것은 많은 효과를 볼 수가 있다. 시청각 기구는 교수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으나 교수 자체를 할 수는 없다.
<시청각 기구 사용의 장점>
⒜ 기구는 사물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시청각 교육 자료들은 사실, 기술, 태도, 지식, 이해, 감상을 분명하게 해 준다. 이러한 재료는 이해시키기에 쉽고 오래 기억에 남아 있을 수 있다.
⒝ 사물들을 확실하게 한다.
피교육자로 하여금 분명한 인상을 가지게 하며 보다 확실하게 한다.
⒞ 교육의 효과를 거둔다.
기구를 통하여 배움의 기회가 넓어지고 배우는 속도가 빨라진다.
⒟ 실천에 도움을 준다.
교육의 원리들을 실천하는데 도움을 준다. 사물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이를 적용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 시청각 기구 사용의 주의 >
⒜ 교육 기재는 교회 학교에서 사용되는 시간표에 부합해야 하며 또한 연령층 범위 내에 합당해야 한다.
⒝ 기재들은 교육과정 또는 배운 과목의 직접적 목적에 맞게 활용되어야 한다
⒞ 학생들이 시청각 기구에 대한 준비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볼 것에 대하여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 기구 사용 후에 질문과 토론 시간이 있어야 한다. 시청각 교재를 통해 배운것을 이해하고 서로의 의견을 교환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 교재 사용의 장소가 잘 정리되어야 한다.
3) 수업과정의 실제
실제 성경 교수에 있어서는 연구해야 할 적지 않은 문제들이 있음을 보게 된다.
⑴ 분위기
교육적 분위기는 사실상 예배의 분위기만큼 중요하고 그 분위가 예배나 성경 공부에 얼마나 치명적인가 하는 것은 경험해 본 이는 누구나 다 인정할 것으로 믿는다. 그러므로 교육하는 책임자와 의논하여 우선 성경공부를 원만하게 할 분위기를 조성하여 놓고 충분한 시간을 내어 공부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어린이나 학생을 어떤 형태로 정돈시키고 교수에 임할까를 생각하는 것도 필요하다. 때에 따라서는 한 줄로 앉게하고 가르칠 수도 있겠고, 두 줄로 앉게 하고 가르칠 수도 있을 것이며, 자리가 마루나 하나의 방이라면 한 줄이나 두 줄의 반원을 그리게 하고 가르칠 수도 있는 것이다.
출석과 기도와 첫 인사도 중요한 것이다. 출석을 부르며 다정하게 인사를 주고 받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하겠으며 교사가 인도하거나 어린이, 학생이 돌아가며 순번을 따라 기도하게 한 뒤에 공부에 들어가는 것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교사와 학생사이의 간격을 최대한으로 좁히고 완전히 마음문을 연 뒤에 학습에 몰두하는 것은 절대적인 조건이다.
⑵ 도입
설교의 서론과 마찬가지로 도입은 교육대상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면에서 성공의 성패를 가늠하는 중요한 첫 단계라고 하겠다.
"호박은 떡잎부터"라는 속담이 있다. 떡잎이 원만하고 검푸르며 흠이 없으면 많은 호박을 따게 될 것이요, 반대로 그 떡잎이 원만하지 못하고 이지러졌거나 노랗게 되어 있다면 그것은 제대로 자라거나 호박은 따지 못할 것으로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경공부의 도입은 떡잎 모양으로 아주 원만하고 은혜로우며 자극적이어야 하는데, 서구 목사님들의 설교 첫마디는 유쾌하고 명랑하며 은혜있는 비유를 들어 청중을 일단 웃기고 난 뒤에야 설교에 들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사는 도입에서 먼저 어린이나 학생과의 접촉점을 찾고, 또한 그들에게 크나큰 기대감을 줄 것이며 적극적인 자세로 학습에 임하도록 유도하여야 한다. 유능한 교사는 도입에서 먼저 어린이나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거기에 더하여 지난과의 복습을 깨끗이, 간단하게 요약한 뒤, 그날 공부하려는 학습에 대한 서론답게 말에 여백을 두고 곧잘 본론 곧 성경 이야기에 들어갈 것이다.
⑶ 성경이야기
도입은 이 성경이야기의 중심을 전하여 소기의 성과를 기대하려 하였기에, 떡잎이 좋아야 하지만 떡잎이 목적이 아니라 호박이 목적이듯이, 이 본론 전개에 실패하면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다.
교사는 본론 전개에서 먼저 어린이들이 모르고 있던 진리를 알게 하여야 한다.다시 말하면 지식 전달에 인색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진리를 알게하되 진리와 비진리를 비교하여 진리가 참으로 진리요, 비 진리가 거짓임을 명백히, 인상깊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거의 예외없이 믿음과 의심, 선과 악, 진리와 거짓을 비교 대조시키면서 소개해 주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시면 마귀도 있고, 아벨과 가인이 나타나고, 다윗과 사울이, 베드로와 유다가 서로 비교, 대조되어 나타난다. 그것은 빛을 어두움과 대조시키고 선을 악과 견주어 관찰할 때, 더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또한 교사도 본론 전개에서 취사선택을 잘하게 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인격이 있고 개성이 있는 이가 아무리 옳고 좋은 것이라도 그것을 전달해 주는 이가 바른 인격과 바른 방법으로 전해주지 않으면 오히려 반감을 사서 역효과를 자아내게 할 때가 있다. 그러므로 취사선택을 옳게, 바르게 하도록 조건지어 주는 것은 교사의 절대적 사명이라고 하겠다.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청년들이 느닷없이 찬송가를 불러대는 것을 볼 때가 있다. 그것은 그 청년들이 모두 주일학교 출신이요, 찬송이나 성경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는 하나 그들이 취사선택을 옳게 하지 못하여 결국은 바른 길에 서지 못하고 곁길로 떨어져 나간 것이
라고 하겠다.
취사선택을 하게 할 여건은 너무나 많고 다각적이다. 교사의 신앙과 인격, 성경본문의 내용, 교사가 표현하는 표현능력, 적절한 예화나 비유 등인데 교사는 세심한 주의와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조건이 다 메워졌는데도 불구하고 좋은 결과가 나지 않을 때도 있음을 보게 된다. 어떤 지도자는 이런 경우에 실망하고 자포자기 하기도 한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한 가지가 더 부족했다고 보아야 하겠는데 이것이 기독교 교육과 세속교육의 근본적 차이라고 하겠다.
18세기부터 싹트기 시작한 "인도주의" (humanism)는 "죄"를 "무지"로 해석하고 그 "무지"를 "교육"으로 깨쳐서 "지상낙원"을 꿈꾸고자 하였다. 그러나 제 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은 그러한 사상이 망상임을 실증해 주었고 제 3차 대전에 위험은 인류에게 "위기의식" 까지 가져다 주었다. 이것은 인도주의나 인본주의가 결코 완전한 진리가 아님을 보여주는 동시에 교육에 하나님의 역할이 얼마나 절실하고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산 경험이라고 하겠다.
교회가 자기 책임을 다하고 하나님께 기도드려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므로 곧 하나님의 재창조의 역사가 나타난다. 이 재창조의 역사가 곧 기독교 교육의 본격적인 열매이다.
본론 전개 때에, 가끔 학생들이 떠들거나 분위기가 어지러워질 때가 있다. 지혜있는 교사는 이럴 때에 왜 그렇게 되었는지 빨리 알아보고 임기응변으로 그 대책을 세우기 마련인데, 대개 그 원인을 따져보면...
⒜ 처음부터 분위기가 어지러웠기 때문에
⒝ 방해자가 개입하였기 때문에
⒞ 또는 교사가 인격에 결함이 있어서 표현능력이 졸렬하기 때문에.
⒟ 그리고 공과내용에 모순이나 자가당착이 있을 때.
⒠ 논리적으로 맞지 않거나 부자연스러운 때 등등을 들 수 있다.
본론 전개에 예화는 하나의 활력소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예화가 진부하거나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거나 본문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면 도리어 방해가 되고 산 활력소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가능한한 예화는...
⒜ 근자에 일어난 사건으로서
⒝ 가까운데서 생긴 일,
⒞ 그리고 신앙적이요 은혜가 있는 것으로
⒟ 그나마 한가지만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실물이나 시청각 도구도 좋다. 그것은 배우는 자들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오래 기억하게 하는 효과를 준다. 그러나 너무 지나치게 남용하면 소위 면역성이 생겨 별로 신통한 효과를 얻지 못하게 된다.
예화나 시청각 도구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보조적 역할을 할 뿐임을 교사는 언제나 자각하여 피교육자의 마음에 성경 말씀이나 예수님이 남지 않고 비유나 시청각 교재가 남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⑷ 다짐하는 말
도입이 잘 되었고 성경이야기 곧 본론이 원만하였다면 다짐하는 말 곧 결론은 절로 쉽게 맺아지는 법이다. 장년들과 달라서 어린이나 중고등부 학생들에게는 이 다짐하는 말을 가능하면 간단하게 그리고 현실 적용에 적응시키되, 그나마 할 수 있으면 문답이나 토의로 하도록 하고 결단을 내리고 용기를 내게하며 성경본문이 약속하고 있는 영광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중요한다는 구실 밑에, 이미 가르친 내용을 다시 반복하거나 강요하는 따위는 일반적으로, 한국교회의 교회학교에서는 거의 천편 일률적으로 교사가 주입식으로 일방적으로 공과를 가르치고 마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물론 근자에 많이 개량된 점도 있지만 아직도 원시적인 방법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결론 단계에서 어린이나 학생들 하나 하나에게 그들의 의견을 묻기도 하고, 제목이나 문제거리가 나오면 토의도 하고, 나아가서 함께 적당한 찬송을 부르고 통성으로 기도도 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3. 학습지도와 평가
무슨 일이든지 되어진 일을 검토하고 평가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앞으로 보다 나은 발전을 하기 위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 평가의 절차
평가를 하는데에도 절차가 있다. 이것은 정립되지 아니하고는 바른 평가를 할 수가 없다.
첫째, 평가 목적을 명확하게 규정하여야 한다.
무엇을 평가하며 왜 평가할 것이냐 하는 목적이 뚜렷하여야 한다. 그래야 여기에 필요한
방법이 나올 수 있다.
둘째, 평가 대상을 명확하게 규정하여야 한다.
무엇을 평가하는지 대상과 한계가 정확하여야 한다.
세째, 평가 방법을 명확하게 규정하여야 한다.
평가의 여러가지 방법 가운데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 분명히 하여야 한다.
네째, 평가 장소를 규정하여야 한다.
어디서 평가할 것인지를 정하여야 한다.
다섯째, 평가 조건을 규정하여야 한다.
어떠한 조건 아래서 평가할 것인지를 정하여야 한다.
2) 평가의 방법
평가 방법 가운데 필답식 평가법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⑴ 논문형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어 오는 방법으로서 <논하라> <설명하라> 등등의 지시되어진 문제에 대하여 학생들이 답을 한다. 이 방법은 폭넓은 내용 파악 여부를 측정하는데 장점이 있지만 평가 방법으로서 신뢰도가 낮고, 문제수가 제약되므로 부분적인 평가가 되기 쉬우며, 문제 제작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으나 채점과 평가에 많은 시간이 걸리고 또 주관적인 평가가 되기 쉬운 단점이 있다.
⑵ 단답형
주관적인 논문형의 약점을 보완한 방법으로서 비교적 객관성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채점하기도 쉽고, 짧은 시간에 넓게 할 수 있는 방안이다. 예를들면, <예수님이 자라신 곳이 어디냐?> <창세기의 기자가 누구냐?> 라는 식의 질문이다.
⑶ 완성형
단답형과 비슷한 형태인데 문장 주에 빈칸을 두어 짧은 답을 기입하여 그 문장을 완성시키는 방법이다. 문제를 만드는데 중요한 것은 정답이 분명하여야 하고, 문제의 핵심을 써 넣는 것이어야 한다.
⑷ 진위법
흔히 O X 법이라고 하는 것인데 옳고 그른 것을 가려내는 방법이다. 이 방법에는 O가 되든지 X가 되든지 대답이 하나만 나와야 한다. 그러므로 문제가 복잡해서도 안되고, 한 문항에 한 가지 문제만이 있어야 한다.
⑸ 연결형
여러가지 사실과 개념 또는 원칙을 어떤 관계에 비추어 서로 연결하는 방법 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는데 주위하여야 하는 것은 어떤 관계에 의하여 연결시킬것인지 분명히 하여야 한다. 연결하는 항목이 너무 많아도 안된다.
⑹ 선다형
요사이 널리 사용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만드는데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답은 대개 4개 이상으로 만든다. 그러나 정답은 하나여만 한다. 또 정답의 위치가 골고루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선다형은 몇 가지의 답가운데 정답이 하나 있고, 그와 비슷한 비중을 가진 틀린 답들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평가의 방법들을 통하여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노력하여야 하는데 기독교 교육에서는 정당한 평가야 말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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