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2년 위정철(魏廷喆) 고신(告身) 1
1642년(인조20) 9월 11일에 인조가 위정철에게 통정대부행갑산도호부사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문서이다.
기본정보
분류: | 고문서-교령류-고신 / 정치·행정-임면-고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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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주체: | 인조(仁祖) / 위정철(魏廷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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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지역: | 한양 / 서울특별시 종로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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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시기: | 1642 년 / 인조 2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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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사항: | 크기 : 51×61 / 낱장 , 1장 / 종이 / 한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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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장서명: | 施命之寶 1개 (10×10, 적색, 정방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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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1642년(인조20)에 仁祖가 魏廷喆에게 通政大夫行甲山都護府使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문서.
내용 및 특징
1642년(인조20) 9월 11일에 仁祖가 魏廷喆에게 通政大夫行甲山都護府使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문서이다. 통정대부는 정3품 東班 문관에게 주던 上階 품계이고, 도호부사는 조선시대 도호부를 다스린 종3품 외관직이다. 도호부가 있는 갑산은 지금 량강도 중부에 있는 지역이다. 품계가 관직보다 높으므로 行守法에 따라 관직 앞에 '行'자를 붙였다.
위정철의 字는 子吉, 號는 晩悔齋이고, 본관은 長興이다. 1583년에 태어나 1657년에 사망했다. 21세인 1603년 무과에 급제하여 僉使, 縣監, 府使, 防禦使 등을 역임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 때 병조참판에 제수되고 왕명으로 심양에 다녀왔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진군하였으나 講和 소식에 통곡하며 낙향하였다. 부인은 昌寧曺氏, 珍原朴氏, 穩城孟氏이다. 장흥위씨 판서공파조 위덕화의 아들이다. 1806년(순조6)에 향리 유생들의 발의로 竹川祠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長興魏氏大同譜』, -, 1999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유서필지』, 전경목 외, 사계절, 2006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정구복 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생활문화와 옛문서』, -, 국립민속박물관, 199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집필자 : 박선미
원문텍스트
敎旨
魏廷喆爲通
政大夫行甲
山都護府使
者
崇德七年九月十一日[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