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화국의 개헌 저지 술책
1. 5공화국이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정치적 위기가 닥쳐왔다. 김대중과 김영삼을 고문으로 하고 이민우를 총재로 삼아 급조된 신민당이 1985년 2월 총선에서 관제 야당 민한당을 누르고 제1야당으로 부각했다. 비록 전체 의석수는 여당인 민정당이 우위였지만, 이것은 전국구라는 기이한 제도 덕이었다. 국민의 지지를 확인한 신민당은 가장 핵심적인 정치적 목표를 ‘직선제 개헌’으로 설정하고 ‘1천만 국민 서명’을 추진하였다. 전국이 ‘직선제’에 대한 열망으로 들끓게 되었다.
2. 전두환에게 가장 큰 고민은 퇴임 후의 안전이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후계자를 선정하고 그를 현재의 간선제를 통해 대통령에 앉힌 뒤, 막후 조정하려는 의도를 분명하게 갖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직선제 개헌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이자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분쇄시켜야 하는 도전이었다. 하지만 개헌의 요구가 커져가자 전두환 세력은 끔찍한 음모에 돌입한다.
3. 첫 번째가 ‘금강산 댐’ 위협이었다. 북한에서 건설하기 시작한 금강산 댐의 위력을 과장하고 거짓 정보를 확대하여 ‘금강산 댐’이 북한의 남한 공격용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발표하면서 국민들을 전쟁의 공포로 몰아 넣았다. 전문가들이 공격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말했음에도 안기부를 중심으로 금강산 댐의 위력은 언론을 통해 공포되었고 정국은 ‘개헌’에서 ‘반공’으로 전환되었다. 금강산 댐을 막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 모금이 시작되었고 전 국민의 자발적인 성금이 쇄도하였다. 5공 세력은 ‘개헌’의 흐름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었고 거기에 더해 국민들의 성금을 이용한 정치 자금을 확보하는 2중의 이익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4. ‘평화의 댐’이 계획적으로 진행된 음모였다면, ‘수지김 간첩사건’은 우연하게 일어난 사건을 조작한 끔찍한 인권말살의 범죄였다. 홍콩에서 활동하는 사업가 윤태식은 부부 싸움 중 아내 ‘수지 킴(김옥분)’을 살해한다. 감옥에서 썩을 것을 두려워 한 윤태식은 북한 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하였지만 거절당했고, 결국 미국 대사관으로 가 납북당할 뻔 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한국 대사관으로 인도되었고 안기부에 보고된 사건은 조사 결과 윤태식의 거짓 증언으로 판명되었지만, 안기부는 기막힌 음모를 꾸미게 된다. ‘개헌’ 정국을 잠재울 호재로 여긴 것이다. 안기부의 조작을 통해 윤태식은 홍콩에서 수지킴을 통해 납북 당할 뻔 했다는 기자 회견을 갖고 북한의 만행(?)을 거짓 폭로한 것이다.
5. 금강산 댐에 이어 ‘여간첩 수지 킴’ 사건은 한국 내의 ‘레드 콤플렉스’를 자극하였다. 북한에 대한 규탄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국민들은 북한의 음모에 공포를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개헌 확산에 따른 정치적 위기를 5공 세력은 두 개의 음모를 통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지 킴’ 사건은 수지 킴 가족을 회복할 수 없는 비극으로 몰아갔다. 결과를 가져왔다. 안기부에 의해 끔찍한 고문을 받은 것 뿐 아니라 빨갱이라고 낙인찍힌 가족들은 고향에서 살 수 없어 쫓겨나야 했으며 그 후유증으로 어머니는 사망했고 언니는 미쳐버려 거리에서 객사하였던 것이다. 국가의 추악한 음모로 평범한 한 가족이 철저하게 파괴되고 말살되었던 것이다. 이 사건의 진실은 2000년대 초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재조명되었다.
6. 우리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얼마나 추악하고 집요한 공작이 이루어지는가를 두 가지 사건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언론이 통제되고 잘못된 정보에 현혹된다면 진실은 언제나 감춰지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제거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 우리에게 일어나는 정보를 해석하고 판단하는 데 신중하고 논리적인 사고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40년의 시간이 흘렀고 수많은 정치적 학습을 거쳤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정치적 술수에 무력한 존재에 가깝다. 그렇지만 제한된 상황 속에서도 기본적인 인과관계와 상황에 대한 해석을 적용하다면 최소한의 진실에는 접근할 수 있는 힘을 유지할 수 있다. ‘깨어있는 시민’의 탄생은 파당적 지지나 이데올로기적 맹목, 그리고 수많은 인연(혈연, 학연, 지연, 직업)과는 관계없이 ‘진실’ 그 자체를 보려고 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인간들의 사안에 따른 느슨하지만 합리적인 연대가 변화를 가져오고 거짓된 선동에 저항할 수 있는 것이다.
첫댓글 깨어있는 시간은 짧고 느슨한 시간은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