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왕에 대한 지식
(렘10:12-16)
선지자는 우상을 섬기는 무지하고 어리석은 자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가지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우상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온전한 지식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거짓된 세력에 미혹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살 때에도
그 물건에 대한 온전한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면
속는 것처럼
세상 것에 미혹되고, 이단에 미혹되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에
미혹되는 것입니다.
남유다가 우상을 섬기게 된 원인은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 온전히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도 없고
하나님의 마음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이십니까?
첫째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12절)
“그의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의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의 명철로 하늘을 펴셨으며”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권능과 지혜와 명철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와 명철 앞에
감히 누가 나설 자가 있겠습니까?
성경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1:1)
라고 시작됩니다.
그 창조를 사람과 동물과 생물을 제외하고서는 모두가
말씀으로 “있으라” 하시매 창조되었습니다.
만약에 이 사실을 믿지 아니한다면
성경을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에 어떤 신이
그 무엇 하나 창조한 것이 있습니까?
오히려 그들 신은
사람이 만든 것에 불과한 형상들뿐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맨 첫 번째 알아야할 마음입니다.
그 다음 알아야 할 사실이
“누가 나를 창조했느냐?”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하나님에 대해 비로소 아는 자의 모습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동물의 사랑처럼
남녀 간의 사랑으로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창조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아는 자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하는 말이
“신묘막측” 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시139:13-14)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 때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비밀을
깨닫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이 놀라운 비밀을 깨닫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또 다른 하늘의 비밀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비극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못한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남유다 백성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도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알아야 합니다.
그 분은 세상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나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몸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나를 만드신 분의 것입니다.
온 세상이 다 창조하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내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전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의 것인 인간들이
죄로 인해 타락하자
하나님은 자신의 것을 찾으시기 위해서
값을 주고 다시 사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이시고
나를 다시 하나님의 것으로 사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사실을 아는 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자들의
진실된 모습인 것입니다.
내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 몸 까지도 내 목숨까지도
창조주이신 하나님 것임을
깊이 깨닫고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누구이십니까?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13절)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창조하신 만물을 주관하십니다.
천둥을 일으켜 많은 비를 쏟게 하실 수 있고,
사방에서 구름을 모아 비를 낼게 할 수도 있고,
번개를 일으키고 바람을 내실 수도 있습니다.
우상은 어떻습니까?
우상은 스스로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무기력하고 헛된 형상에 비한다면
하나님은 참으로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주관 하신다는 것은
곧 다스리시고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창조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창조된 것을 다스리고 계신 분도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주관하시고 다스리고 계신 것이
어찌 자연 뿐이겠습니까?
인간도 창조하셨으므로
인간들의 모든 생사화복도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고
하나님으로 끝이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나의 인생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주관하고 다스리시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은
모든 인생들을 주관하시기를 원하시지만
먼저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고백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이시고
나를 주관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주셨고
그 예수를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다는 사실을
고백하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할 때
하나님은 비로소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어주시고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십니다.
(잠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여러분은 이러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으며 살고 있으십니까?
남유다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지 않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자신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무엇입니까?
성령의 다스림을 받으며 사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내 생각과 수단과 방법이 앞선다면
그것이 어떻게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자라 할 수 있고,
성령의 충만한 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믿는 자들이 기도할 때나 무슨 일이 생길 때
“주여! 주여!” 는 잘합니다.
“주여” 가 무슨 의미입니까?
나의 주인이 예수님이시라는 의미 아닙니까?
“주여! 주여!” 는 잘 하는데
주인의 뜻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지 않고 있다면
어떤 자입니까?
주인의 이름만
이용하고 살고 있는 자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다시 말해서
피조물이 창조주의 다스리심을
거부하며 살아가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래서
하나님께 버림 받았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성령님의 다스리심을 받으며 살아가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누구이십니까?
만물을 조성하시는 분이십니다. (14-16절)
만물을 주관하신 하나님은
또한 만물을 조성하시는 분이십니다.
즉 이모저모로 꾸며 가신다는 것입니다.
우상들은 사람의 손에 의해서
이모저모로 조각하고 꾸미고
색을 칠하지만
우상에게는 생기도 없고
거짓된 형상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직접 이 세상을 꾸며 가시고
인생들의 삶도 조성해 가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토기장이로
인생들을 진흙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렘18:6)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롬9: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진흙에 불과한 존재들입니다.
진흙이 아무리 잘 났다고 큰 소리 친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는
하나의 진흙에 불과한 존재들입니다.
진흙이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토기장이 하나님 손에 의해
우리는 만들어져 가고 있는
하나의 그릇들입니다.
그릇이 크다고 귀한 것도 아니고
그릇이 작다고 천한 것도 아닙니다.
그릇이 크다고 자주 사용되는 것도 아니고
그릇이 작다고
사용되지 아니한 것도 아닙니다.
토기장이 하나님 손에
한 번이라도 사용되면 감사한 것이고
사용되지 아니했다면
사용되어지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릇이 잘 났다고 설치면 깨지기 쉽고,
또한 하나님이 깨뜨려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토기장이 하나님의 손에
그릇이 사용되면 감사한 일이지만
사용되지 않더라도
하나님 앞에 귀하게 있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이 바라보기만 해도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비싼 도자기들을 보면
그 도자기들은 사람들이 바라보기만 합니다.
사용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30년 동안
나사렛에서 묵묵히 살아가셨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때가 찰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는
놀라운 체험을 한 후에
3년 동안 아라비아에 있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왔지만
예수님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에서 복음 전하는 일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고향 다소로 내려가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다소에서 무려 10년 이라는 세월을
묵묵히 보내었습니다.
(전3: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시고
나를 다스리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는다면
나를 조성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안타까운 모습은
그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조성하시는 손길을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 스스로
인생을 꾸며 가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어린 아이가
길을 혼자 걸어간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들이
우리 주위에 의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9장 23-24절에서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너희의 지혜와 용맹과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자랑하라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거룩함을 자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를 조성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전능하신 손길에
내 인생을 맡기시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모두 다 무거운 짐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그 분은 나의 인생을 책임지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