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아침, 다랑쉬오름과 용눈이오름
1. 일자 : 2024. 5. 4 (토)
2. 장소 : 다랑쉬오름(412m, 2.37km, 64분), 용눈이오름(248m, 2.27km, 44분)
새벽, 해비치는 아직 어둠에 잠겨 있다. 야자수가 가로등 불빛에 반사된 은은한 황금빛 풍경이 근사하다.
차를 몰아 다랑쉬 주차장에 도착했다. 꽤 멀다. 어찌보면 다랑쉬를 찾은 건, 사전 지식의 부족(올라 보니 비고 220m급의 산이었다. 상황을 알았으면 망설였을 게다)과 근사한 오름 하나쯤은 올라야 한다는 욕심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선 한라산은 가지 않기로 하고 대신 오름을 올라보기로 오래 전부터 마음 먹었다.
05:41, 키 큰 나무의 농밀한 숲이 호위하는 계단을 시작부터 치고 오른다. 초반부터 숨이 차오른다. 길은 계단 - 평지 - 계단을 반복한 끝에 정상으로 이어진다. 멀리 바다의 기별이 느껴진다. 바라보는 풍경엔 성산일출봉이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잔득 흐린 날씨에 먼저 온 사진작가는 불평을 쏟아낸다. 그러나 한바탕 바람이 지나가니 구름 사이에서 오늘의 해가 떠오른다. 장엄하다. 붉은색 기둥이 점점 커진다. 섬 오름에서 맞는 태양이라니, 이 경험 하나만으로라도 이번 여행은 값진 것이리라.
오름의 실체를 바라본다. 전체적으로 넙적하고 울퉁불퉁한 토기 그릇 모양새이다. 분화구가 달처럼 둥굴게 생겨 월랑봉이라 불리는 다랑쉬오름 위로 달이 떠오르는 모습이 명품이다 하는데 오늘은 일출이 장관이다. 사방을 천천히 둘러본다. 높고 낮고, 다양한 색의 조화가 감동적이다. 살면서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이색적인 풍경이라 더욱 그렇다. 평지에 살포시 솟아오른 모든 것들이 다 오름이리라.
올랐으니 내려선다. 새벽 어둠을 이겨내고 이곳에 오른 보상은 달콤했다. 오름의 분화구는 백록담과 닮아 있다. 그 편안하고 완만한 내려앉음에 마음이 편해진다. 삼각대를 세운다. 사진 찍기 놀이에 빠진다.
오름의 나머지 반은 걷기에 편안했다. 농밀한 녹색 숲이 주는 편안한 분위기에 취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원을 한 바퀴 돌아 다시 갈림에 선다. 그리고 내리막을 내려서 주차장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기대 이상이었다.
망설이다 용눈이오름으로 차를 몬다. 자주 오는 기회도 아니고 게다가 내일부터는 큰 비가 온다 하니 또 기회가 있을까 모르겠다.
06:56, 용눈이오름 주차장에 선다.
용눈이오름은 용이 누워 있는 모습과 닮았다 한다. 입구는 평탄하게 한참 이어지다 우측으로 작은 오름 하나를 끼고 정상으로 이어진다. 다랑쉬오름보다 훨씬 걷기 편하다. 높이를 따질 것도 없이 곧 분화구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선다. 비고는 100m가 채 되지 않는다. 구릉을 오르며 바라보는 구름 낀 하늘과 녹색 풀과 누런 흙이 만들어내는 조화가 그만이다. 원형으로 분화구를 돌자고 마음 먹었는데 등로가 끊긴다. 사유지라 길을 막았나 보다. 왔던 길을 내려온다. 2시 방향으로 좀전에 다녀온 다랑쉬오름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정상에는 구름이 인다. 다시 천천히 무덤을 지나 입구로 돌아온다. 길지 않지만 전형적인 제주 오름의 모습을 지녔다하니 더 인상적이다.
이른 아침에 제주 동북 지방에서 유명한 오름 두 개를 오르고 나니 뿌듯한 기분이 든다. 새벽을 뚫고 길을 나서서 잊지 못할 경험을 하고 보람된 마음으로 해비치로 귀가한다. 인적도 차도 그문 한적한 도로를 달리는 기분이 최고였다. 묵은 숙제도 하고 그것보다 더 진한 감동을 안고 숙소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