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연기 비결
2024 7월28일 가톨릭 주보에 실린 글
저는 연기를 정식으로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죠. 그저 우연한 기회에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고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되어 지금까지 왔을 뿐입니다.
그러니 제가 연기를 잘해서 대중의 사랑을 받고 꾸준히 연기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느님의 은총이 있었을 뿐이죠.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면 연기를 정말 잘하는 배우인데 기회가 없어서 작품을 하지 못하고 대중에게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연기를 그렇게까지 잘하지 않지만, 꾸준히 배우 생활을 하는 저 같은 사람도 있죠. 그래서 저는 연기를 잘하지만 기회를 얻지 못하는 배우들에게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라도 연기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배우에 비해 늦게 연기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이죠. 늦은 만큼 저의 고민은 깊고 진지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이떤 노력이 필요한지 역할을 맡을 때마다 고민했습니다.
2002년에 H라는 영화에서 형사 역할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형사라는 직업 탓에 상당히 거칠고 험한 말을 많이 사용했는데 전 살면서 욕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하는 대사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죠. 어떻게 하면, 내가 맡은 역할의 형사처럼 욕을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먼저, 대본에 적혀 있지 않은 인물의 환경을 나름대로 설정해 보았습니다. 이 인물이 첫째일지, 둘째일지, 아니면 부모님이 양쪽 다 계실지 아니면 안 계실지, 어떤 성격의 부모님 밑에서 자랐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형사가 될 때까지 그가 겪었을 일에 대해 조사하고 그 자리에서 만났을 갖가지 범죄와 범죄자를 그려 보았습니다. 그렇게 환경을 설정하고 나니 인물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분명,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요.
이 정도의 연기 기술은 대부분의 배우가 쓰는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제가 찾은 또 하나의 연기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과 좋은 연기가 무슨 상관이냐고 물으시는 분이계실지 모르지만, 좋은 사람이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제가 깨닫고 느낀 연기 비결입니다.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좋은 것을 채우는 것이라 생자합니다.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소리를 듣고, 좋은 말을 하고, 좋은 행동을 하면서 나를 좋은 것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죠. 그러면 내 안에 좋은 것이 가득 차, 연기를 할 때, 좋은 연기로 발현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것은 배우뿐만 아니라 어떤 직업에 적용해도 좋은 비결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청소부가 되고, 좋은 사람이 좋은 선생님이 되며, 좋은 사람이 좋은 요리사가 되지 않을까요? 저는 오늘도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 내 안에 좋은 것을 채우려 합니다. 물론, 하느님의 사랑이 가장 큰 좋은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