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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웹진 《비평공간》 11호
『친밀한 가해자』 (손현주 / 우리학교) 토론
2026년 8월 12일 발행 / 출판놀이
- 자유로운 토론을 위하여 닉네임을 사용했습니다.
사회자: 만나서 반갑습니다.
출판놀이에서 <비평공간>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벌써 열한 번째 시간입니다. 청소년 소설 베스트셀러 중심으로 토론하고 있어요. 뭐든지 하나를 깊이 파다보면 주변도 더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참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친밀한 가해자』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좋은 작품은 역시 주인공에 대한 인상이 강하게 남습니다. 주인공의 욕망, 그런 것을 깊이 파고들어 탐구한 느낌이 듭니다.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을 위해서 안내를 하자면, 토론 내용은 닉네임으로 정리를 하거든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수위 조절도 할 테니까 편하게, 자연스럽게 얘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작품 읽고 난 소감부터 말씀 나눌까요?
수박: 오늘 토론에 참가하기 위해서 급하게 읽었는데요. 『친밀한 가해자』 책은 서점에 갈 때마다 봤어요. 표지도 되게 호기심을 끌게 생겼잖아요.
『친밀한 가해자』가 <비평공간> 토론 책으로 정해졌을 때,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해자’라고 하니까 되게 진지한 사건이 있을 것 같은데, 왠지 펼쳐보지는 않았거든요. 아마 오늘 <비평공간>이 아니었으면 안 읽었을 것 같아요. 『죽이고 싶은 아이』도 <비평공간>을 통해서 읽은 건데요. 토론에 참여하지 못할 때도 <비평공간>에서 선정한 책은 다 읽으면서 따라왔는데, 『친밀한 가해자』는 소문보다 훨씬 좋았어요.
약간 풍문이 있었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다루는 것에 대해서 호불호가 있더라고요. 베스트셀러인데 호불호가 있어서 책의 내용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를 맞닥뜨릴 용기가 안 났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읽고 나니 고민거리가 많이 생기더라고요. 촉법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건드리는 구나, 생각했는데, 의외로 본격적인 화두를 던지는 것 같지는 않았고요. 도덕적인 딜레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는데, 사실 독자라기보다는 부모로서 생각을 더 많이 하면서 읽었어요. 내 아이가 이런 일을 겪었을 때, 내가 작품 속 부모처럼 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될까? 저에 대한 질문을 계속하면서 읽게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아빠나 엄마의 태도를 보고, “이 인간들, 이럴 줄 알았어.” 이러면서 봤거든요. 그런데 읽다보니까 제가 살면서 남들에게 비밀리에 했던 나쁜 짓들이 막 생각이 나는 거예요. 나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결말을 어떻게 지을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작가님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끝까지 밀고 가더라도, 청소년 소설이니까 안전한 결말을 택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편하게 마무리 지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중간에 현서가 엄청 쫄깃하게 해주어서, 가해자가 현서로 바뀌는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민트: 저도 부모 입장이 공감이 많이 되었어요. 내 새끼가 이런 상황이 됐을 때, 과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했거든요. 저는 감싸주면 감싸줄수록 준형이가 더 힘들 것 같아서, “자수하게 해.” 그러면서 책을 읽었어요.
결말을 어떻게 지을까, 저도 그게 굉장히 궁금했고요. 책을 다 읽고 나서 ‘친밀한 가해자’는 결국 준형이 부모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에서 준형이 동생을 장애인으로 설정했는데요. 제 주변이 그런지 모르겠지만, 장애인을 두고 있는 가족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런 가족을 둔 형제가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작품에 굉장히 고가의 자전거라고 나오잖아요. 그래서 도대체 어떤 자전거인지, 검색 창에 ‘백화점에서 파는 고가의 자전거’ 이렇게 딱 쳐봤거든요. 그랬더니 3천만 원이라고 뜨는 거예요. 루이비통에서 만든 자전거래요. “야, 이런 자전거가 진짜 있구나.” 하고 놀랐고요.
저는 작품에서 그래도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던 인물이 현서거든요.
증거 영상을 다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준형이가 스스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잖아요. 준형이가 스스로 느끼게끔 해주려고, 사물함 같은데다가 쪽지를 넣고요. 자수를 하게 만들려는 의도였는데, 준형이가 그 쪽지를 보고 놀라서 악몽까지 꾸고 그러니까, 준형이한테 힘들었겠구나, 하면서 또 얘기를 하거든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되게 깊은 것 같아요. 제가 만약 현서라면 이렇게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저라면 정의를 위해서 경찰한테 영상을 줬을 것 같거든요. 현서가 기다려줬기 때문에 준형이가 스스로 경찰서에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되게 매력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어요.
햇살: 재미있게 읽었고요. 제가 보수적인지, 아버지의 태도가 굉장히 불편했거든요.
전에 사계절 1318 문고를 많이 읽었잖아요. 그 시리즈에 이 작품에 나오는 아빠 같은 캐릭터는 없었던 것 같아요. 인물 설정이 상당히 파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우리 현실인가, 그런 생각도 하면서 읽었어요.
사회자: 옛날 청소년 소설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교훈적인데, 이 아버지는 자식을 위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뭔가 위악적이고 미묘한 느낌이 든다는 말씀이시잖아요.
햇살: 어떻게 보면 아빠 캐릭터는 희생자일 수도 있죠. 아빠 독자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아빠 캐릭터가 마음에 안 들 것 같아요. 실제로 아빠들이 이렇게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모르죠. 그래서 지금 학교 폭력 문제라든가, 그런 게 현실인 거예요. 마음이 아팠어요.
사회자: 옛날 청소년 소설 읽을 때하고 지금 시대가 많이 바뀌었죠. 개인의 욕망이라든가 인권이라든가 어떤 개인적인 사정을 고려해야 되기 때문에, 섣불리 선악을 판단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세상이 상당히 살기 힘들어졌어요. 아이들을 사법체계 속으로 밀어 넣어서 법의 심판을 받으려고 하니까 살벌한 세상이 되었죠.
햇살: 법조차도 약자의 편은 아닌 것 같아요.
사회자: 그렇죠. 문학이니까. 여기서 아버지의 캐릭터는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작가가 이런 캐릭터를 설정한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렌지: 저는 청소년 소설을 비평 공간을 통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요. 굉장히 술술 잘 읽힌다. 잘 넘어간다, 그런 느낌이었어요. 한 자리에서 한 번도 놓지 않고 읽었고요.
저는 개인과 관계성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는데요. 현서와 준형의 관계 그리고 준형을 중심으로 엄마, 아빠, 채원의 관계. 아래층 할머니와 이웃 간의 관계, 이런 관계성을 들여다보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고 있고, 층간 소음으로 인해 여러 가지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는데요. 아래층 할머니가 층간 소음에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까, 그런 생각을 했고요.
할머니를 통해서 기성세대들이 청소년을 바라보는 시각도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아까 선생님 한 분이 아빠에 대해서 불편하다고 했는데, 저는 아빠는 물론이고, 엄마나 할머니까지 다 불편했던 것 같아요. 상대를 위한다고 하는 행동이 정작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그런 지점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고요.
현서가 준형이한테 진실을 말하라는 쪽지를 보내잖아요. 저는 준형이가 현서에게 고맙다고 하면서 마음을 바꿀 줄 알았는데, 작가가 끝까지 밀어붙여서 준형이가 스스로 깨닫게 만든 것 같아요.
채원이가 장애가 있다는 것을 이용해서 덮어씌우려고 하는 부분은 정말 너무 놀라웠어요. 마무리 부분에서 이렇게 서술되는데요. ‘채원이는 거짓말을 못한다는 것을, 아니, 안 한다는 것을. 거짓말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판단도, 평가도, 비난도 없었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함부로 할 권리는 없다는 것을 시사해 주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작가의 눈하고 교사, 독자, 부모의 눈이 어긋나는 지점이 있는데, 우리는 글을 창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주인공의 욕망을 먼저 보죠.
작가도 당연히 윤리를 생각하지만, 인물이 움직이게 만들기 위한 갈등 구조를 만들기 위해 욕망의 문제를 보는 거죠. 주인공의 욕망을 깊이 파고들어 가는 게 작가인 것 같아요. 윤리적인 문제만 내세우면 도식적인 작품이 되기 쉬운데, 작가가 인물들의 욕망을 상당히 잘 그려냈더라고요.
봉봉: 작가가 예전에 『불량 가족 레시피』라는 책을 냈는데, 그때도 제목에 끌려서 책을 봤거든요. 이 책도 역시 제목에 끌려서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는데, 이번 기회에 사서 읽었어요. 재작년인가,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라는 드라마가 되게 히트를 쳤거든요. 그 드라마가 생각나서 더 제목이 눈에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인물의 심리보다는 사건 중심으로 서술이 되다보니까 정말 잘 읽혀지더라고요. 그런데 읽을수록 제목이 왜 ‘친밀한 가해자’일까 궁금했어요. 부모는 가해자가 아니라 동조자잖아요. 친구 현서가 친밀한 가해자라면 준형이가 피해자라는 이야기인데, 그것도 아닐 것 같았고요. 책을 읽는 내내 계속 제목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고요.
작품 말미에 욕망을 드러내는 부분은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표현을 잘하셨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준형이 꿈 부분은 상투적이기도 하고 조금 아쉬웠어요. 더 감각적이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사회자: 작품이 쉽게 읽히잖아요. 그러면서도 인상 깊어요. 쉽게 읽히면서도 인상 깊은 이유가 문체의 특징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거든요.
일단 작품이 흥미로운 사건을 하나 던져주면서 시작하잖아요.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쓴 것 같은데 가만히 읽어보면 주인공이 1인칭 자기 독백을 하는 느낌이 들어요. 3인칭 서술인데도 어떤 절박한 순간에서 자기 내면을 고백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서술되어 있더라고요. 작가가 그 어떤 절박한 순간에 주인공의 머릿속에 든 생각을 중계해주는 느낌이 들었어요.
보통 3인칭 정식 문장이라면 주인공의 머릿속에 든 생각을 따옴표로 표시하잖아요. 그런데 속마음을 따옴표 없이 그냥 문장으로 서술한 느낌이에요. 이중화법적인 느낌이 있더라고요. 묘하게.
근데 무슨 대단한 얘기를 하는 게 아니거든요. 보통 다른 작품들은 “감동적으로 읽힐 만한 문장 뽑아봅시다.” 그러면 몇 쪽, 이렇게 나오는데 이 작품은 그런 문장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평범한 문장들이 흘러가고 있는데도 읽히거든요.
글을 쓰는 우리들이 이런 문체를 연구해 볼 만하겠다,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수박: CCTV가 없는 계단이었으니까 이런 글이 나왔겠지만, CCTV가 있고, 목격자나 증거가 뚜렷하게 있었다면 어떤 이야기가 나왔을까, 궁금했고요.
이건 다른 얘기인데, 형사가 압박하고 들어올 때 준형이가 증거 있냐고 얘기하잖아요. 역시 범인은 증거 있냐고 물어보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오늘날의 청소년은 어떤 압박 속에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작품 속 친할머니가 70대일 것 같은데, 예전에는 공부 잘해라, 출세해라, 그런 얘기를 하는 인물이 부모님이었다면 이제는 할머니가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잖아요. 고도성장기에 청춘을 보냈던 분들이 손주를 향해 욕망을 품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려낸 것 같아요.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인 것 같아요. 장애 비장애, 형제 간 차별, 빈부 격차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고요.
준형이는 아빠나 엄마, 동생, 할머니에게서 모두 압박감을 느끼고 있잖아요. 작품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상징으로 생각한다면,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었을 때 자신들의 마음을 얼마나 잘 표현했다고 생각할지도 궁금합니다.
사회자: 말씀해 주신 것처럼 이 작품이 할머니부터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의 문제를 담고 있더라고요.
친할머니가 등장하는데, 할머니인데도 남성적인 가부장 질서가 내면화된 분인 것 같잖아요. 부동산으로 부를 이룬 졸부인 것 같은데, 아들에게서 채우지 못한 엘리트 의식과 욕망을 손주에게 쏟아 부으면서 자기만족을 하려고 하고 있어요. 요즘 청소년들은 부모만이 아니고 조부모한테도 압력을 받는 거지요.
시대가 바뀌어도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잠재되어 있는 것 같아요. 작가가 다세대에 걸친 문제를 하나씩 툭툭 건드리고 있거든요. 그런데도 올드한 느낌이 안 든단 말이죠. 쉽게 쓰는 것도 힘든 건데 참 독특한 것 같습니다.
봉봉: 현서가 준형이한테 쪽지를 써서 보내잖아요. 그런데 학교에서 아이들이 다른 학생을 가해할 때 주로 이런 행동을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현서는 준형이가 자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쪽지를 보냈지만, 한 편으로 이건 괴롭히는 행동이라는 생각도 잠깐 들었어요.
사회자: 여러분들은 창작을 하니까 저보다 더 잘 느끼실 것 같은데요. 인물을 그릴 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도 있지만, 직접 표현되지 않더라도 그 인물이 지닌 특유의 아우라나 콤플렉스 같은 그림자 영역이 늘 존재하잖아요.
작가들이 글을 쓸 때 한 인물의 성격을 1대 1로 대응시키면 문장이 유치해지고 동화처럼 단편적으로 흐르기 쉬운데요. 청소년 소설은 인물 내면에 복잡한 회색지대가 겹겹이 쌓여 있단 말이죠.
현서 네는 편의점을 하고 있고, 잘 사는 준영이 네 집에 대한 콤플렉스 같은 것도 있잖아요. 그런데 처음으로 도덕적인 우월감을 느낀 거죠. 잠깐이라도 상대적인 우월감에 빠져서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현서는 도덕적으로 완성된 아이는 아니죠. 친구를 사랑하지만 한편으로 그런 그림자 같은 영역도 있는 거죠. 본인도 나중에 준형이한테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이 작품이 인물을 다양하게 해석하게 만드는 느낌을 받았어요.
수박: 저는 현서의 행동이 되게 좋았거든요. 『죽이고 싶은 아이』 토론할 때도 나온 얘기였는데요. 가난하다고 해서 연민의 틀에 가두지 않고, 인물이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나 열등감, 억눌린 욕망들을 작품 안에서 표출해 낸 점이 작품을 더욱 매력 있게 만든 요소였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를 불쌍하게 만들어버리거나 도덕적으로 무결하게 그린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것 같아요. 흔들리는 존재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이야기를 쓸 때 작가는 인물의 삶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이 책을 두고 왜 사람들의 호불호가 갈렸을까 생각을 해봤거든요. 가해자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이 작품을 읽은 사람은 그렇게 받아들이실 수도 있겠다. 마무리는 잘 되었지만 어떤 분들에게는 가해자에게 서사를 준 것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자: 가해자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말은 정확히 무슨 의미로 쓰신 거지요?
수박: 어떤 범죄가 일어났을 때 범인이 처했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동정론이 일 때가 있잖아요. 가해를 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못을 한 것이기 때문에 이유와 사연을 들어 가해자에게 개연성이나 맥락을 제공하지 말라는 이야기인데요.
작품이 문제의식도 있고, 마무리도 결코 만만하게 지은 건 아니지만, 이 책을 불편하게 느끼신 분들은 혹시 그런 지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회자: 지금 되게 중요한 두 가지를 말씀하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작품은 청소년 소설답게 인물들이 완성되거나 고정된 성격이 아니라 뭔가 흔들리는 존재들이잖아요. 그 흔들리는 마음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상황을 통해서 제시해 주고 있거든요.
우리는 준형이가 진짜 나쁜 아이라는 느낌은 안 들잖아요. 순간의 욕망에 휩싸여서 행동한 것인데, 물론 옹호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가해자라고 했을 때의 그 어떤 악한 이미지하고는 다른 느낌인 것 같아요.
제목이 ‘친밀한 가해자’인데 엄청 세거든요. 섬뜩한 느낌도 드는데, 저는 작가가 제목을 잘 달았다고 생각하는데, 중요한 철학적인 문제도 제시해 준다고 생각했어요.
작품을 읽고 나서 두 사람의 철학자가 떠올랐는데요. 한 사람은 『에티카』를 쓴 스피노자이고 또 한 사람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쓴 한나 아렌트예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나치 전범이었던 사람이 이스라엘에서 재판받는 과정을 기록한 것인데요. 이 재판 기록으로 인해 한나 아렌트가 엄청난 욕을 먹거든요. 나치 전범은 가해자잖아요. 물론 가해자의 편을 든 건 아니지만, 한나 아렌트가 피해자의 감정을 좀 위로해주고 배려해주면 좋겠는데 그런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아주 냉정하게 재판 과정을 기록한 거예요. 그러니까 피해를 받은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분노했던 거지요.
이 책은 당시에는 욕을 많이 먹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전이 될 정도로 유명한 책이 됐어요. 이 책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거든요.
『친밀한 가해자』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악한들이 나오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는, 그런 철학적인 문제를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가해자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지 말라. 작가들은 고민이 많이 되는 문제인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 그러면 뭘 쓰지, 하는 생각도 들 것 같고요. 어려운 문제네요.
이따가 시간이 되면 『에티카』하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나오는 문장 몇 개 읽어드릴게요. 작가 입장에서 생각할 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토론을 계속 해 보죠.
민트: 저는 현서가 매력적이면서 실망스럽기도 했거든요. 쪽지를 써서 준형이가 스스로 자수하게끔 만들었지만, 어쨌든 괴롭힌 거잖아요. 그러면서 정말 빨리 뉘우쳐요. '내가 똑같은 상황이었다면 나도 너처럼 행동했을지 몰라' 라고 문자를 보내잖아요. 준영이의 심정을 정말 빨리 이해를 하더라고요. 너무 급작스럽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이렇게 빨리 준형이의 심정까지 헤아리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읽었고요.
그리고 준형이가 ‘네가 나한테 이렇게 하고 있지?’ 하고 불러내잖아요. 학교 운동장으로 불러내는 부분도 저는 너무 가슴 떨렸거든요. 누가 들으면 어떡하지? 주변에 누가 있어서 다 들으면 어떡하지? 혹시 녹음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다들 핸드폰이 있으니까 그렇게 설정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이 운동장 장면에서 공감이 조금 떨어졌고요. 그러고 나서 현서가 ‘내가 널 좀 괴롭힌 것 같다. 네 심정 이해한다.’ 이 두 부분이, 술술 잘 읽히는 중에 조금 아쉬웠습니다.
사회자: 햇살 님은 요즘 청소년 소설 쓰고 계시잖아요. 잘 안 풀린다고 하셨는데, 작품 읽으면서 참고할 거 없으셨어요?
햇살: 읽으면서 더 절망했어요. 저는 이렇게 잘 쓸 수가 없어요. 열심히 고치다가 감옥에서 탈출했어요.
‘친밀한 가해자’ 제목이 굉장히 자극적이잖아요.
저는 꼼꼼하게 세 번에 걸쳐서 읽었거든요. 처음에는 포스트잇을 붙여가면서 읽었어요. 두 번째에는 이야기의 힘에 끌려서 읽었어요. 세 번째, 오늘은 후루룩 읽었어요. 포스트잇을 붙여놓은 곳이 세 군데밖에 없어요. 그만큼 이야기의 힘이 좋다는 얘기예요. 저를 반성하면서 포스트잇을 붙여놓았어요.
사회자: 정확하게 그 부분이 어디입니까?
햇살: 48쪽이요.
엄마는 어떤 상황이든 다 이해해 주는 아들을 원하는 것 같았다. 그런 말이 사람은 얼마나 짓누르는지 알까. 제 속에 어떤 감정들이 쌓여 왔는지, 엄마는 하나도 모른다.
이 부분에서 상당히 많은 반성을 했고요.
53쪽 밑에서 일곱 번째 줄이요.
차라리 이대로 아이를 찾지 못하면 좋겠다. 사람은 얼마나 간사한 존재인지. 그런 생각에 사로잡혔을 때, 거짓말처럼 아이가 눈앞에 나타났다.
채원이를 잃어버렸을 때인데요. 장애아를 가진 가족의 마음이 너무나 절절하게 읽혔어요.
또 하나는 94쪽 위에서 셋째 줄.
“살아가는 데에는 세상 살아가는 데에는 두 가지 말만 잘하면 큰 문제가 안 생겨.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준영은 고작 두 가지 말 중에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않아 이 끔찍한 상황을 만들었다.
이야기의 시작 같은 느낌이 들었고요. 굉장히 중요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빼어난 문장이 아니라 깊이가 있는 글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어요.
이야기의 힘이 좋은 재미있는 소설인데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아빠였거든요. 현서가 아니라 차라리 아빠와 같이 단서들을 발견했으면 어땠을까. 아빠도 뭔가 생각의 발전이 있고 그랬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아니, 좋았을 것 같다는 건 제 고정관념이겠죠. 그러니까 저는 아마추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자: 독해야 되는데 너무 착한 거예요.
작품이 윤리적으로 다 봉합한 것 같은데, 아빠에 대해서는 윤리적인 봉합을 하지 않은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햇살: 그래서 나는 아마추어구나.
사회자: 뭐 하나 배우셨네요. 그러면 좀 더 독해지셔야.
햇살: 저는 이렇게 못 써요.
사회자: 작가마다 자기 감각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게 쓰면서도 가슴을 울릴 수 있죠. 다 독하게 이런 캐릭터를 만들어야만 된다는 건 물론 아닌데, 요즘 베스트셀러들은 읽어보니까 다 독해요. 단순하지가 않아요. 우리가 예전에 읽던 그런 성장 소설 인물형은 아니에요. 그건 우리가 알아야 될 것 같아요.
햇살: 책을 많이 읽어야겠어요.
사회자: 책도 읽어야겠지만 사유체계의 문제가 중요하죠.
청소년 소설 하면 옛날 작가들은 성장 소설과 동일시했는데, 이제는 그런 도식이 너무 올드하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베스트셀러들을 읽어보니까 물론 윤리적으로는 맺음을 하는데, 그걸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가두기는 힘들어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고 있거든요. 그것을 탐구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햇살: 제목이 참 철학적이에요.
사회자: 그렇죠. 제가 『에티카』를 읽으면서 충격을 받은 대목이 있는데, 한번 읽어드릴게요.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얘기할 때 철학자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대목이기도 해요.
욕망이란 의식을 동반하는 충동으로 정의될 수 있다.
욕망이 무의식에서 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의식을 동반한 충동이 욕망이니까, 의식적으로 자기가 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거죠. 의지에서 나온다는 거죠.
우리는 그것을 선(善)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것을 향하여 노력하고 의지하며 충동을 느끼고 욕구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선하다는 판단이 있어서 노력하고 의지하고 충동한다고 교육받아 온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스피노자가 17세기 철학자거든요. 한 300-400년 전 철학자인데,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반대라는 거예요.
반대로 노력하고 의지하며 충동을 느끼고 욕구하기 때문에 어떤 것을 선(善)이라고 판단한다.
선이기 때문에 행동하는 게 아니고, 내가 욕망하기 때문에 그 욕망하는 것을 선이라고 얘기한다는 거예요.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뒤통수를 딱, 맞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동·청소년 문학 하는 사람들은 고정된 선이라는 게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잖아요. 물론 동화에서는 그런 생각이 필요할 수 있는데, 소설로 오면 인간들이 자기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이것이 선한 거예요.” 하고 우긴다는 거예요.
내가 선한 인간입네, 하는 것이 허황된 의식이라는 거죠. 욕망이 디글디글한 욕심꾸러기들이 “이게 다 선이네.”하면서 온갖 행동을 포장하면서 미화시킬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작가들이라면 우선 인물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섣불리 선이라고 하는 타자들이 정해놓은 개념에 절대 휩쓸리면 안되는 거죠. 오히려 인물을 비틀려고 하는 게 작가들이잖아요. “안 속는다. 너희들 욕심이 만든 선일뿐이야.” 하면서 인물의 욕망을 파고들어가는 거지요.
그런 면에서 작가가 만만치 않은 것 같아요. 선일 수도 있고 악일 수도 있는, 어느 하나로 판단되지 않는 모호한 인물들의 이중적인 행위들을 그려내고 있거든요. 인간의 욕망을 깊게 들여다 볼 줄 아는 거지요. 그렇게 그리니까 재미있는 갈등 스토리 라인도 엮이고요.
인물을 선과 악이 구별되는 규정된 인간으로 그릴 때는 성장 동화나 옛날 올드한 청소년 소설 느낌이 나는데, 요즘 나오는 청소년 소설은 그런 면에서 상당히 도전적인 면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오렌지: 책에다 쪽지를 쓰면서 와 닿는 장면을 정리를 했거든요. 169쪽인데요.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큰 고통을 안겨주고 있었다.
중략
“꼭 친구가 아니어도 돼. 선생님도 부모님도 언제나 널 지켜보잖아.”
그것도 틀린 말이었다. 늘 옆에 서 있는 사람들 때문에 준형은 힘들 때가 많았다. 도대체 어른들은 언제까지 지켜본다는 말을 할 건지 궁금했다. 지켜보다가 제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떻게 하려는 걸까?
선생님들 말씀하는 것을 쭉 들으면서 든 생각인데요. 제가 사회복지 쪽에서 일을 오래 해서 그런지 작품을 되게 윤리적 관점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것들이 교훈이 될 수도 있고 설명이 될 수도 있는데, 작품을 쓸 때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요.
『불순한 어린이들』이라고 하는 오유신 작가가 쓴 책을 읽었는데요. 그 책하고 이 책하고 겹쳐서 생각이 많이 되었습니다.
사회자: 아이들을 교훈적으로 본 책은 아닌가 보죠?
오렌지: 학교 교사가 쓴 책인데요. 본인이 어렸을 때 너무 가난해서 돌봄을 받지 못하면서 자랐던 이야기를 솔직하게 쓴 책이에요. ‘귀엽다’는 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시는데, 우리는 아이들한테 귀엽다는 말을 잘하고, 아이들도 귀엽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데, 본인은 그런 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용어 자체가 사회적인 언어라고 생각을 하시더라고요. 귀엽다는 말이 오히려 아이들을 망치는 말이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사회자: 우리가 어렸을 때 어린이들하고 지금 어린이들은 완전히 다른 환경 속에서 살잖아요.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생각도 다르고, 삶의 바탕이 달라졌기 때문에 언어도 다르고요.
그래서 우리 아동·청소년 문학하는 사람들은 요즘 아이들의 내면을 볼 줄 알아야할 것 같아요. 윤리적인 시선을 포기하자는 게 아니고요. 스피노자가 말했듯이, 아이들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욕망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사유에서 벗어나서 보자는 거예요. 그 흔들리고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또 작가들인 거지요. 그런 면에서 손현주 작가는 인물들을 날카롭게 그려낸 것 같아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105쪽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오거든요. 책 흐름으로 보면 중간쯤인데, 독자가 이 정도 읽으면 이제 스토리도 좀 알고 그래서 몰입이 떨어지거든요. 그런데 작가가 이걸 중간쯤에서 터뜨리더라고요.
그때 누군가 현관으로 들어왔다. 채원이다.
“채원이는 어디 갔다 오는 거야?”
“아마 비상계단 갔다 왔겠지.”
“비상 계단?”
순간 준영이 뭔가 말하고 싶은 듯 입을 달싹였다.
“아빠, 혹시 채원이가 그랬다고…… 아, 아니다. 아니다. 아니에요.”
준형이 말끝을 얼버무렸다. 엄마는 놀란 얼굴로 준형을 돌아봤다.
“채원이를 어떻게 한다고? 너 무슨 말 하려고 했어?”
“아니, 그게…… 다른 방법이 없잖아. 채원이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너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고 그러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
“그래서 아니라고 했잖아!”
“그러게 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엄마의 목소리에는 준형에 대한 원망이 담겨 있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빠가 입을 열었다. “아니야, 잘 생각해 봐. 채원이가 비상계단 들락거리는 건 아파트 사람들 다 아는 일이야. 더구나 채원이는 장애가 있잖아. 일이 잘못된다고 해도 준형이보다 처벌을 크게 받지는 않을 거야. 현실적으로 생각하자고. 이미 벌어진 일을 준형이 탓만 한다고 될 게 아니야. 더구나 채원이는 만으로 열네 살이 안 됐고, 준형인 촉법 나이를 넘었어. 채원이한테는 불리할 게 없어.”
“채원이한테 이런 짓까지 한다고? 정말?”
엄마는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 아이디어를 가장 먼저 낸 사람이 준형이에요. 그래서 제목이 ‘친밀한 가해자’ 같거든요. 한 인간이 코너에 몰릴 때 어떻게 가해자가 될 수 있는가? 가해자라는 게 뉴스에서 보듯이 아주 악한 괴물로 그려질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안 그렇다는 거예요. 실제로는 한 인간이 코너에 몰릴 때는 이렇게 친밀한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거지요.
가장 가해자의 자리에 선 게 바로 준형이였어요. 아빠가 아이디어를 낸 게 아니에요. 주인공이 아이디어를 내고 아빠가 거기에 동조를 하죠. 아빠는 동조자인 거예요. 나는 이 부분이 좀 서늘했어요. 대단한 묘사를 하면서 독자를 끌어들이는 게 아니라 너무나 평범하게 서술해 버리는데, 그래서 더 서늘했던 것 같아요.
청소년들한테 진짜 가해가 뭐냐, 악이 뭐냐, 선이 뭐냐 할 때, 되게 재미있는 토론 문제를 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봉봉: 저는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부분하고 좋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메모를 했는데요. 제가 현서한테 꽂혀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134쪽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가끔이지만 이 편의점이 너무 초라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준형이가 사는 고급 아파트가 부러워서 왜 우리 집은 준형이네처럼 잘살지 못할까, 왜 저런 부자 할머니가 없을까, 하는 불만을 가진 적도 있었다. 그런데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더니, 예상치 못한 일로 준형이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어쩌면 준형이는 지금 자신을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서만의 마음이 아니라 우리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 녹아들어 있는 구절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람들은 타인의 불행을 무조건 슬퍼만 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사회자: 그렇죠. 인생은 돌고 도는 거죠. 준형이가 자신을 부러워할지도 모른다는 거잖아요. 이런 부분을 건드려주면서 인물의 성격이 입체적이 되는 것 같아요. 성격이 하나하나 켜켜이 쌓여가는 느낌이 들거든요. 되게 섬세한 것 같아요.
그럼, 전체적인 소감이나 하고 싶은 말씀 편하게 하시면서 마무리를 해 보겠습니다.
민트: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한 줄로 표현한다면? 그런 생각을 해 보았거든요. 결국 찌질한 성인, 찌질한 부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한마디로 말한다면 기성세대를 비판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준형이 부모가 올바른 모습을 보인 대목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도 사회생활에서도 그렇고 일상생활에서도 관계가 아직도 어렵거든요. 지금 이 나이에도 여전히 어려운 부분인데, 인과관계로 보지 말고 상관관계로 보라는 말을 들었어요. 원인과 결과를 놓고 따지지 말고 상관관계로 보라는 건데요. 그렇게 보니까 조금씩은 풀려가고 있거든요.
내가 쟤보다는 조금 더 윤리적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쟤보다는 조금은 다르게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쟤와 나는 엮일 수밖에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더라고요.
선(善) 얘기를 하셨는데, 제 행동을 합리화시키고 있었던 거죠. 내가 이런 선택을 한 것은 쟤보다 내가 낫기 때문이라고 합리화시키고 정당화시키고 있었던 것 같아요.
햇살: 재미있게 읽은 책인데,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니까 깊이 있는 책 읽기가 된 것 같아서 좋고요. 스피노자 이야기도 좋았고, 한나 아렌트 이야기도 더불어서 해 주시니까 마음이 풍성해졌습니다.
사회자: 우리는 청소년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니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학교 현장에서 이 작품을 청소년들하고 함께 토론할 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재판을 기록한 한 권의 책인데요. 잠깐 말씀드리면, 아이히만이 나치에 복무하던 전범인데, 독일의 전범들이 그 당시에는 아르헨티나로 도망가서 숨어서 살았거든요. 이스라엘이 당시에 민족 국가로 독립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 숨어 살고 있는 아이히만을 납치해서 이스라엘 법정에 세워요. 민족 감정 같은 것을 고려해서 그렇게 했겠죠.
그런데 한나 아렌트는 학자고 연구자니까, 악함이라는 것에 대한 본인의 생각이 있었던 거예요. 한나 아렌트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던 거예요. 말하자면 악마주의 같은 건데요. 사람들은 외부에 악마주의적인 인물을 하나 설정해 놓고 악마 만들기를 한다는 거죠. 악마적인 광기나 사악한 의지나 아니면 대단한 어떤 가학증을 갖고 있는 분명한 괴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나치 전범을 악마로 만들어야 감정 해소도 할 수 있으니까요. 보통 평범한 사람들은 다 착한데 특별한 악마들이 있는 거라는 생각을 부추긴다는 거지요.
한나 아렌트 입장에서는 홀로코스트 같은 악마적인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사람들의 고정관념에 대해 문제의식을 던진 건데요. 한나 아렌트는 재판이 연극 무대가 돼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있어요. 이게 당시 이스라엘 유대인들에게는 상당히 냉정한 말로 들린 거지요. 악마에게 모든 악의 근원을 뒤집어 씌워놓고 감정 해소를 하는 연극 무대로 재판이 활용돼서는 안 된다는 거였는데, 이 말이 아마도 당시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에게는 자신들이 부정당하는 느낌도 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 한나 아렌트의 말이 너무 냉정하게 들려서 막 분개를 했는데요.
한나 아렌트는 사람이 악마가 되는 이유가 히틀러의 광기어린 사상에 세뇌 당해서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런 면도 있겠지만 그렇게만 생각하면 본질을 못 본다는 거죠. 이렇게 고정관념을 깨는 철학자들이 욕을 많이 먹잖아요. 시대와 다른 생각을 하니까요.
사람들은 히틀러 같은 광기어린 악마에게 세뇌 돼서 저런 악마가 나오는 거지. 혹은 독일인들이 갖고 있는 반유대주의적인 광기는 민족성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히틀러를 투사해서 독일 민족 전체를 그렇게 치부하기도 하고요.
그런 당시 분위기 속에서 한나 아렌트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요. 연구하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제일 많이 인용하는 부분이에요. 105쪽인데요.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쓰는 용어가 관청용어라는 거예요. 관청에서 쓰는 용어 있잖아요.
그는 사과하면서, “관청용어만이 나의 언어입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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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하는데 무능력함은 그의 생각하는데 무능력함,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와는 어떠한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한 인간이 관청 용어만 쓰는 사람이 돼버린 거예요. 아렌트가 보았을 때, 저 관청용어만 쓰는 전범 아이히만은, 말하는 데 무능력하고 자기 언어로 말할 줄 모르는 사람이에요. 또 그는 생각하는 데 무능력하고, 자기 생각이라는 걸 할 줄 몰라요. 말하는데 자기 언어를 쓸 줄 모르고 관청 용어만 쓰고요. 생각하는 데 무능력하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없어요. 분명히 이러한 무능력에 저 사람은 깊이 관련되어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저 사람하고는 어떠한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는 거죠.
이는 그가 거짓말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말과 다른 사람들의 현존을 막는, 따라서 현실 자체를 막는 튼튼한 벽으로 에워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히만은 생각하는 데 무능력하고, 말하는 데 무능력하고, 타자의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데 무능력하기 때문에 받아들인 것은 관청 용어밖에 없다는 거예요.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인용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우리한테 준 가장 두려운 교훈이, 말과 사고를 허용하는 않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문장인데요. 아렌트가 볼 때 악이라는 건 외부에 존재하는 어떤 악마적인 존재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언제든 저렇게 악한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는 거지요. 자기 언어도 갖지 못하고, 생각도 못하고, 타자의 관점에서 보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어느 순간 저런 악마의 모습으로 변해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악이라는 것이 무슨 대단한 깊이를 가지고 있는 인간들 속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의외로 되게 평범한 표면에서 시작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악의 동기하고 결과가 너무 큰 차이가 난다는 건데요. 아이히만을 보면 한 인간의 수준이 그저 평범할 뿐인데, 그런데 저 인간이 너무나 악한 결과를 만들어 놓은 거죠.
보통 사람들은 분노의 감정이 휘몰아치면 밖에다가 악마를 하나 그려놓고 거기다가 활쏘기를 해야 마음이 편하잖아요. 아렌트는 그러면 본질을 볼 수 없다는 거예요.
윤석열 정권에서도 권력 가진 사람들이 쉽게 악한 행동을 하고, 또 거기에 동조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잖아요. 생각해 보면 되게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극우로 변해가는 청소년들도 보면 관청용어 비슷한 남의 언어를 자기 언어처럼 쓰잖아요. 자기 감성과 느낌을 드러내는 언어가 없어요. 이런 저런 투사가 많이 되네요.
수박: 선생님이 준형이한테 왕거미 이야기를 하잖아요. 부서진 거미줄을 입에 넣고 있다가 뽑아내면 더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있다. 아마 작가님이 청소년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준형이가 부모님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준형이는 성찰을 하잖아요. 성찰하지 않는 아버지에게는 희망이 없잖아요.
청소년 소설이니까 이런 결말을 선택하셨겠지만, 작가님이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것도 좋았던 것 같아요. 재미있는 면으로, 작가님이 독하다고 느꼈던 점은, 할머니를 끝까지 계단에 방치하잖아요. 저는 마음이 약해서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고민이 많으셨을 텐데, 작가의 뚝심 같은 게 느껴졌어요.
사회자: 그렇죠. 할머니를 방치해 두면서 작가도 고민이 많았겠죠. 스토리를 이끌어가기 위해 드라마적인 기법을 활용한 것도 같아요.
햇살: 계단에 방치했을 때, 연극 무대를 보는 것 같았어요. 진짜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봉봉: 저는 너무 큰 사건이어서 그런지, 가해자 피해자 구도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선생님들 말씀 들으면서 생각해 보니까 왜 제목이 친밀한 가해자인지 느낌이 오는 거예요. 사건이 아니라 관계에서 보면, 누구 하나를 피해자로 생각하면 나머지 사람들을 다 가해자로 볼 수 있더라고요. 오늘 토론을 안했더라면 제목이 왜 친밀한 가해자인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렌지: 저는 할머니가 이쯤에서 등장할까, 조바심을 내면서 읽었는데 끝까지 보여주지 않더라고요.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고요. 엄마나 아빠도 마음의 흔들림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나올까, 생각하면서 읽었지만 그것도 역시 안 나오더라고요.
저는 오늘로 두 번째 참여를 하는데 청소년 소설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작품을 읽고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이해받고자 하는 마음, 이해를 해 주지 못하는 그런 마음도 어쩌면 가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저희 자녀들한테 했던 말이기도 한데요. 그래도 희망이라면, 인간은 자기 성찰과 자각이라는 걸 통해서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내용도 많이 와 닿았고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포도: 말씀하시는 거 들으면서 생각이 잘 정리가 되었고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우리는 “이 일이 나한테 일어났다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보잖아요. 그렇다면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써서 좀 더 치밀한 고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거리를 두는 시점을 택하셨더라고요. 작품 속에서 『데미안』 이야기도 하시고요. 그래서 작가분이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하고 싶었구나. 사유하지 않으면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구나,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회자: 두 달에 한 번 <비평공간>에서 여러분 만나 토론하고 있는데요. 토론 할 작품이 계속 생기는 것도 감사한 일인 것 같습니다. 작가들한테 감사하고요. 참여해주시는 여러분들도 작가의 자리에서 글을 쓰는 분들이어서 토론 내용을 정리해 놓고 보면 늘 깊이가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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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공부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