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풍랑과 믿음
마태 8:19-27절
신자는
자기 믿음의 현주소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신자의 거처는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늘에 있습니다.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신자는 이 세상에
머리 둘 곳이 없는 사람입니다.
시 90:1절의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는 말씀처럼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세상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세상에 든든한 거처를 만들지 못해
안달하며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임을
먼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에 놓인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자에게 있어야 하는
영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믿음의 형편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믿음이 적거나 게을러서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의 문제로
염려할 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신자의 모습은 아닙니다.
다만 세상에
든든한 거처를 만드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죽은 자들의 방식 그대로 살아가는
종교인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한 죽은 자는
육신이
죽은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단절된 그 영이
죽은 자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새로운 생명의 나라를 향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죽은 자의 일은
영혼이 죽은 자들에게만
해당이 된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죽은 자의 세상과는
단절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죽은 자의 세상에
자신의 거처를 든든히 세우기 위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길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세상의 거처에
마음에 두고 있기 때문에
염려와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자로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신자는 권세 있는
예수님의 나라의 백성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마련된
거처로 인한 안도감보다는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예수님으로 인해서
기쁨과 평강이 있는 것이
영적인 신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거처에
마음을 두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로 인해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이
우리에게 말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넙니다.
그런데 바다에 큰 풍랑이 일어나서
배가 물결에 뒤덮일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제자들은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께 달려가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주여 구원하소서 ”라고 외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책망하신 후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8장에서
문둥병자와 백부장의 하인,
그리고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셨으며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것을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병 고치심은
예수님이
우리의 연약함과 병을
짊어지기 위해 오신
생명이 되시는 분임을
드러내는 사건이었습니다.
즉 병 고치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저주에 갇혀서
영원한 죽음에 들어가야 할
우리의 모든 저주를
대신 담당하심으로
우리를 생명에 이르게 하시는
구세주이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생명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세상에
자신의 거처를 두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벗어나는 것임을
서기관의 부친의 장례를 치르고
예수를 따르고자 한 제자에게 하신
말씀을 통해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죽은 자들이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고 하심으로써,
예수님을 따르지 않은 자는
그 영이 죽은 자이며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비록 세상에 머리 둘 곳이 없는 길이지만
하늘에 거처를 두는
영원히 사는 것임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비록 육신이 살아있다고 해도
예수님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죽은 자라는 것이
예수님이 가르치신
삶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정의인 것입니다.
기존의 삶과 죽음은
육신의 생존 여부
또는 세상의 소유 등으로
평가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세상의 것이 없는 형편에서는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라고 여기고,
사람답게 사는 것도
세상의 것이
풍요로운 상태로 인식하는 것이
기존 세상입니다.
이것은
죽은 자의 방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라는 말씀과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 뒤에
본문의 내용이 등장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믿음은
세상에서는 언제든지
죽을 자세로 사는 것임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이든 내일이든
세상에서 데려가시겠다고 하신다면
‘이제 나는 나의 영원한 거처로
돌아갑니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이
진심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신자의 고백이며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임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위기의 순간에서는
항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게 됩니다.
이 사실을
풍랑을 보면서 죽을까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 작은 것
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믿음을 내세우면서
풍랑이 불어도
예수님을 믿고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본문의 의미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럼 신자에게 풍랑은
어떤 의미로 주어지는 것인가?
사람은 살면서
크고 작은 풍랑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풍랑의 정도에 따라
염려와 근심 걱정도 달라집니다.
작은 풍랑에는
잠깐 근심을 하겠지만
‘죽겠다’라는
하소연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큰 풍랑에는
‘내가 죽겠다’라며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을 것입니다.
즉 풍랑을 통해서
인간이 평소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가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자기 힘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작은 풍랑에 대해서는
크게 염려하지 않지만,
큰 풍랑에 대해서는
두려움에 빠지며
예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풍랑이 있음으로 인해서
평소 자신이 무엇을 믿고 있었는지가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풍랑을 주시지 않는다면
사람은 그러한 자신의 믿음의 현실을
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살면서
수없이 많은 위기 상황을 직면합니다.
본인이 그 상황을 인식할 수도 있고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본인이 알지 못한 가운데서도
수없는 위기 상황이
내 자신을 스쳐 간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은
그러한 위기 상황에서
자기 백성의 육신을
지켜주시기 위함이 아니라
그 순간
세상을 떠난다고 해도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인도해 가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에 대한
큰 믿음입니다.
27절을 보면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고 말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생각을 이끌어 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차가지로 신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으키시는 일들,
그리고 그 일들이 되어지는
결과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생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삶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영적 생활입니다.
신자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크고 작은 풍랑들은
모두가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풍랑을 만나면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풍랑을 잠재워서
자신이 사는 것에만 관심을 둡니다.
이런 우리의 마음을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관심으로 바꾸시기 위해서
끊임없이
수많은 풍랑이 불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란
세상에 거처를 두고 사는 사람이 아니고,
예수님은 생명의 주로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
함께 하심을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세상에 마련된 자신의 거처로
평안을 누리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세상의 거처도
죽음의 위기에서까지
평안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의 위기에서도 평안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생명의 주로 믿는 믿음이
곧 평안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에게 영원한 거처는
예수님입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의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진정한 제자의 길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서기관처럼 나의 유익을 구하며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머리 둘곳 없으신 주님의 삶을
온전히 배우게 하옵소서.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가다
큰 풍랑을 만났던 것처럼,
저희도 인생의 바다에서
거센 파도와 매서운 바람을
만날 때가 참 많습니다.
눈앞에 닥친 고난과 두려움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고
절망할 때가 있었습니다.
주님, 저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제 저희가 거친 파도를 바라보지 않고
저희와 함께 계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저희 삶의 막막한 문제와
두려움의 풍랑도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주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믿습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도
불안과 공포 대신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며
믿음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봉헌기도
주님의 인자하심과
놀라운 사랑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많음을 감사하기보다
부족함 없는 은혜로 인하여
드리는 감사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그 필요에 넉넉하신 분이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시오니,
감사를 드리는 이들이
진정으로 즐거워하게 하옵소서.
주님을 바라는 이들의 영혼이
만족을 얻게 하시고,
주리고 목마른 영혼들에게
좋은 포도주와 젖을 먹여 주옵소서.
우리의 곳간은
양식이 남아돌아
썩고 냄새나는 저장고가 아니라,
일용할 만나로
매일 새로이 채워지는
신비로운 항아리가 되게 하옵소서.
축도
이제는 풍랑 가운데
두려워하는 자들을 굳세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애굽의 고난조차도
선한 섭리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는
성령의 교통하심이,
예수님을 생명의 주로 믿는
모든 성도의 삶과 가정과 교회 위에
이제부터 영원토록
함께하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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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2
풍랑과 믿음 마태 8:19-27절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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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7.31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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