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신과 대성교가 만나는곳에 능인사 절터에 샘이 있는데 달고 시원한 이 샘물을 마시고 세 사람이 장군이 됐다 하여 의신마을 주민들은 '장군수'(장군수 휴게소)라 불었다고 한다(출처:지리산 365일)
●1651년_오두인_두류산기(頭流山記)
다시 길을 틀어 10리 위로 올라가 능인사(能仁寺)에서 점심을 먹었다. 스님 수 십 명이 있었으며 그 중에 성천(性天)이라고 부르는 스님이 있었는데, 속된 중은 아니었다.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도 여러 문장가들이 산을 유람한 시를 두루 낭송하였다. 그리고 또 옛적 임신(壬申, 1632)에 선고께서 지리산을 유람하셨을 때 다행히도 모시고 다녔다고 말하였다. 정해(丁亥, 1647)에 계부인 오핵이 이 절에 당도하였을 때도 역시 길을 인도하였다고 한다. 성천 스님은 내가 한 집안 사람인 줄을 솔직히 모른다. 내가 말하기를 “계부의 유람은 1632년 임신년에 하신 아버지 유람과 16년 차이가 있다. 내가 여기 온 것은 1647년 정해년에 계부가 왔을 때하고 역시 5년 차이가 난다. 그대는 뜬구름 같은 행적을 하는 사람인데도 모두 주인의 역할을 하였다. 그 동안의 기간에 운명이 있었을 것이라고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그 역시 놀라서 감탄하고 자세히 대답을 해 주었는데 모두가 옛적의 일에 대해 느낀 회포이다.
저녁이 되어서 작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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