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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통의 복
(신 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신 28: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신 28:4)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신 28:5)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이 세상에 태어나 생명을 연장하며 산다는 것이 그리 만만치는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지출되어야 할 돈은 많아지고 모아 놓은 돈은 점점 줄어들고 그래서 저의 연령대의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는 노후대책입니다. 적금은 얼마나 들어 놓았는지 부동산은 확보했는지 그리고 여러 가지 보험은 어떤 식으로 가입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나누게 됩니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 중에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주 드뭅니다.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보험의 종류는 불안한 현대인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믿음의 성도들이 꼭 기억하셔야 될 것은 전능자 하나님께 나의 길과 장래를 맡기고 하늘의 보험을 들어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주부터 함께 나누는 말씀은 하늘의 보화를 누리는 영원한 축복의 보험을 어떻게 들고 그 결과는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를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에서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말씀’을 ‘콜’(l/q)이란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성대를 울리며 나타나는 소리입니다. 소리에는 아무런 의미 없이 나는 것도 있습니다. 바람소리 악기 소리 같은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콜’이란 단어는 의미가 담겨 있고 목적이 담겨있는 Voice. 음성 또는 목소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시편 19:2~4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구약의 ‘콜’이란 단어를 ‘포네’(fwnhv)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마태복음 3:17에서“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하실 때 ‘소리가 있어’ 할 때 소리가 ‘포네’입니다. 요한복음12: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할 때도 ‘포네’란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이 하나님의 음성은 자신만 들려집니다. 옆에 있는 사람도 그 소리를 헤아려 알 수가 없습니다. 요한2:29에서는 “곁에 서서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원래 아버지의 소원대로 법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법학도에서 구도자의 길을 걷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그의 나이 23세 되던 해에 자신이 다니던 에르푸르트의 대학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무서운 번개가 옆에 떨어지자 그것을 신의 음성으로 여기고 성 안(Saint Anne)수도사에게 수도승이 되겠다고 맹세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흔들거리는 꽃잎소리 또는 노도와 같이 몰아치는 풍우에도 잔잔한 햇빛에서도 은은한 달과 별빛 속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는 방법이 있습니다.
구약시대를 사는 일반백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나 예언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듣고 순종하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주의 종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代言)할 때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말씀으로 듣고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요? 구약시대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사실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주의 종을 통하여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하는 것입니다. 저 자신도 제게 놀랄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정확하게 깨달아지고 그 말씀에 빠져드는 것을 매번 설교할 때마다 느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인을 향하여 감사하는 내용을 적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사도들이 전하는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말하면 지금 이 자리에서 생생한 음성으로 들었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6에서는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주의 종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고 따르면 그 말에 대한 권위를 주시고 그 말한 대로 나타나게 하십니다. 창세기 22장에서는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시험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것은 100세에 낳은 독자 이삭을 모리아땅에 있는 산에 올라 산채로 묶어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불태워 드리는 번제를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 말씀에 그대로 순종합니다. 주저 없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더불어 이삭을 데리고 번제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사흘길을 떠납니다. 이 사흘의 시간은 말로 표현 못할 만감(萬感)이 교차(交叉)되는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거부하고 도망치고 차라리 자신의 생명으로 교체해달라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물리치고 묵묵히 길을 걸어갑니다. 그 때에 아들 이삭으로부터 비수 같은 소리를 듣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창세기 22:5~7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차마 아들에게 네가 번제물이다라는 말을 못합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말합니다. 어린 양을 준비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없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정신없는 믿음의 소리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의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이삭대신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 숫양을 준비하셨던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주의 종이 선포하는 믿음의 언어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는 것이 복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또 하나는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려오는 것입니다. 미세하게 내 마음 판을 두드리며 다가오는 주님의 음성은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린바와 같이 기록되어진 말씀을 통하여 내게 떠오르게 하고 그 말씀이 나를 권면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내게 말씀하시므로 나로 하여금 순종하게 하시고 그 순종을 통하여 복 있는 사람으로 나를 만들어 가십니다. 오늘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할 때의 청종하다’는 ‘샤마’([m'v) 인데 이는 ‘귀를 기우려 열심히 경청하여 순종하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아담이 그의 아내의 말을 듣고 따를 때에 이 단어를 사용하였고 또한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을 듣고 그 말의 의도를 파악하기도 하실 때 이 ‘샤마’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셨고 열두 정탐을 보냈을 때도 그들의 악평을 들으셨습니다. 이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민수기 14:28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우리의 신음소리 아니 우리의 생각까지도 아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행하면 하나님도 내게 귀를 기우리시고 그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응답하여 주십니다. 마태복음 7:12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고 그 말씀을 귀하게 여기면 하나님도 나를 존귀하게 여기시고 그 기도에 귀를 기우리시고 응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나는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하나님의 복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밭에 씨를 뿌리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가을 추수하는 밭에 가서 남들의 추수의 기쁨을 누리는데 자기 밭에서는 아무런 소출이 없는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는 어리석은 사람과 똑 같은 모습입니다.
지난번 <국제시장>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정주영 회장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구두를 닦으면서 구두닦이 소년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고자 자기의 꿈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넓은 땅을 산 뒤에 그 사진을 외국인에게 보여주고 그 다음에 당신이 필요한 큰 배를 여기서 만들어 주겠다라고 한 다음에 배를 만들어 파는 거지” 참 허황된 이야기 같습니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위에 무슨 자본과 기술력으로 그 일을 해낼 수 있느냐는 반문입니다. 구두를 닦던 아이도 혀를 차면서 “차라리 자동차를 만들어서 판다고 하지”라고 할 만치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허황된 꿈은 이뤄졌습니다. 세계의 역사는 꿈꾸고 그 꿈을 향하여 전진해가는 사람들로 이뤄졌습니다.
수십여 년 간 중소기업과 경제 분야에서 공직생활을 해왔던 분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살펴 본 결과 사업을 잘 해서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의 방법 5가지를 열거하였는데 그 중 처음이 허풍을 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의욕적이고 미래지향적이기 때문에 얘기를 하다보면 허풍을 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직 현실로 나타나지 않은 꿈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다보면 허풍을 치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세상 사람들도 말의 힘을 믿고 있습니다. 단지 말만 내어 놓고 그에 대한 뒷받침이 없다는 것이 결정적 단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전능자 엘로힘 여화와 하나님이 나의 편이 되시고 나의 말을 보장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내게만 하시는 말씀이 오늘 주어진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이란 말씀입니다. 나의 하나님! 그래서 내게만 속삭이듯 다가와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우리시고 그 말씀을 믿음이란 받침에 단단히 올려놓고 이제는 고백하십시오! 선언하십시오! 그렇게 될 것을 믿고 환상을 품으십시오! 하나님이 보장이 되셔서 그 믿음대로 이루실 것입니다.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라는 말씀에서 복은 ‘베라카’(hk;r;B)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이 단어는 ‘바라크’에서 유래된 단어로 축복을 빌어 준 것을 받는 것임을 말합니다. 결국 복이란 약속에 의하여 얻어지는 것이지 내 임의로 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서 내게 선언하신 ‘바라크’의 축복을 내가 선언하고 믿으면 모든 복을 모두 네게 이뤄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라크의 축복은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선언하고 고백해야합니다. 그렇 때 ‘베레카’의 복으로 내게 다가옵니다.
여기서 ‘임하리니’라는 말씀은 ‘나사그’(gc'n)인데 이는 ‘도달하다’ ‘~에 이르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하늘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오늘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나타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복이’이란 표현은 ‘이’는 ‘이것들’이라는 복수를 표현하는 ‘엘레’(hL,a)를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예비하신 다양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모든’은 ‘칼랄’(ll'K)인데 이것은 ‘완전한’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것은 아낌없이 흠 없고 점 없는 완벽한 것으로 베풀어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복을 주실 것인지를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복을 받는 장소입니다.
3절을 읽어 봅시다.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라는 말씀에서 복을 ‘바라크’(&r'B)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 드렸습니다만 ‘바라크’란 “무릎을 꿇고 축복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복 있는 그 사람이 선포하는 바라크의 축복 때문에 그가 머물러 있는 성읍이 복을 받습니다. 들이 의미하는 것은 일터입니다. 내가 일하는 일터에 모든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도시이든 농촌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사무적인 일을 하든 노동일을 하든 어떤 상황속에서도 믿음의 사람에게 하나님이 베푸신 축복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여 축복하셨다면 이를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삭이 두 아들에게 축복하고 또한 야곱이 그의 열 두 아들에게 축복한 것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거기 계시고 거기서 하나님이 축복을 베푸십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당하는 것은 의인 열 명이 없어서였습니다. 복 있는 사람 열 명만 있었더라도 그 성은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 하나 잘되자고 복 있는 사람 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가족 그리고 후손들 이 나라와 민족 온 세계의 열방이 복을 누릴 수 있도록 나는 복있는 사람으로 변화되도록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
신명기 5:29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은 장소와 시간을 초월하여 임합니다.
두 번째는 복을 받는 시점입니다.
4절에서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네 몸”은 ‘베텐’(@f,B) 곧 ‘배’ ‘자궁’ ‘태(胎)’를 말하고 있습니다. 복 받는 사람으로 바뀌는 시점부터 이미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은 시작되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작이 중요합니다. 처음의 싹이 좋아야 결실도 좋은 것으로 맺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모든 조건은 태중에서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태아 때부터 산모는 신경을 많이 써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태중에서 아이의 지능과 건강과 외모가 결정됩니다.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라는 말씀을 통하여 토지가 변할 것임을 말씀합니다. 처음 사람 아담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므로 땅이 저주를 받아 창세기 3:17~18에서는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 우선주위로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려 순종하면 땅의 저주가 풀려 소산이 차고 넘치게 됩니다. 애급에서는 나일강의 풍부한 수량으로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들은 땅에 속한 강의 혜택으로 번영을 누렸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거처하는 가나안 땅은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적절히 내려야 땅의 소산이 열매를 맺고 초원에 풀이 돋아 가축들이 먹이를 얻어 번식하게 됩니다. 가나안은 하나님의 절대적 은택을 힘입어야 살 수 있는 곳입니다. 가나안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될 것을 하나님은 약속하셨고 이 약속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백성에게 하늘에서 적절할 때에 은혜의 비를 내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늘이 열려야 이 땅에서 잘됩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내 하는 일 모든 것들이 형통하게 됩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번제로 드리겠다고 그를 밧줄로 묶어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죽이려고 할 때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었더니 하나님께서는 그가 농사할 때 백배의 수확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십시오! 끝까지 믿고 의심치 마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셋째는 복을 받는 범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8:5에서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이 집 밖에서 소유하는 모든 것들이 곡식과 가축들, 소나 양이었다면 집안에 소유하고 있는 모든 물건들 곧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있습니다. 광주리는 소산물을 담아 보관할 때 쓰는 도구입니다. 떡 반죽 그릇은 ‘미쉬에레트’(tr,a,v]m)인데 여인네들이 가정에서 쓰는 다양한 그릇들을 의미합니다. 광주리도 그렇고 그릇도 거기에 무언가 담겨 있어야 가치가 있습니다. 담겨 있어야 할 것에 채움을 안겨주는 것이 복이라고 하십니다. 결혼한 여인의 태는 아이의 생명이 담겨 있어야 복 있는 여인입니다. 결혼했는데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구약에서는 그 여인이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시편 127:3에서는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고 선언하였습니다. 통장에는 돈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텅 빈 냉장고는 복이 아닙니다. 그 안에 풍성한 식품이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쌀독에는 쌀이 차 있어야 합니다. 필요한 요소 마다 하나님께서 채우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빌립보서 4:19에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하셨습니다.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이 나의 쓸 것을 채우시는 것이 복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분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의 복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됩니다. 여기서 주의하여야 될 것은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선물로 주어진 믿음으로 얻습니다. 그러나 축복은 조건이 맞아야 합니다. 고등학교 졸업을 하면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갖습니다. 자격을 갖췄다고 누구나 다 입학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대학이 요구하는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바라크’의 축복이 내게 임하여‘베레카’의 복으로 이뤄지려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조건을 갖춰야 하는데 그 조건은 내게 향하신 음성을 듣고 그 말씀에 전력을 기우려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 맘 다해 사랑하는 사람만이 그 음성에 귀를 기우립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인상 깊게 남아 있는 한 장면은 11월 하순 경 상당히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공중전화 부스에서 한 젊은 청년이 츄리닝의 바지 주머니에 10원짜리 동전을 잔뜩 넣고 꽤 오랜 시간 뭐가 그리 좋은지 히히덕거리며 전화를 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얼핏 들으니 자기 애인과 통화를 하는 모양입니다. 그 내용도 별 중요하지 않은 시시한 것들이었습니다. “영순아! 점심에 뭐 먹었는데? 으~응 자장면 먹었어? 내 것도 남겨 주지 흐흐”뭐 이런 내용입니다. 그런데 참 즐거운 모양입니다. 추운 날씨에 콧물이 흐르면 옷소매로 쓰윽 닦아내며 통화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누구를 사랑하면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이면 무엇이든지 믿고 따라주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분의 아주 미세한 음성이라도 놓치려 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을 경청하고 마음속에 깊이 담아둡니다. 오늘의 말씀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개인적으로 하시는 말씀을 귀담아 듣는 사람에게 주시는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