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호샤나 라바 — “구원하소서”의 긴 호흡
호샤나 라바(הוֹשַׁעְנָא רַבָּה, Hoshana Rabbah, “큰 구원”)은 초막절 일곱째 날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호샤나는 시편 118편 25절의 “구원하소서”라는 간구에서 왔습니다. 레위기는 초막절을 일곱 날 지키라고 명하지만, 절기의 마지막 이 날을 별도의 성회로 제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미슈나 『수카』 4장 5절은 성전에서 제단을 평소에는 하루 한 바퀴,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 돌며 도움을 청한 전승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성경의 절기 규정, 성전의 기억, 오늘의 회당 예식이 서로 다른 시간의 층위임을 기억해야 그 기도의 역사가 또렷해집니다.26 36
왜? 추수를 마친 날에 다시 “구원하소서”를 반복할까요? 창고에는 올해의 곡식이 있어도, 내년에 내릴 비를 저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미슈나 『로쉬 하샤나』 1장 2절은 초막절을 물에 관한 심판의 때로 말합니다. 후대의 『조하르』-광명의 책-는 호샤나 라바를 한 해의 심판이 마지막으로 확정되는 날로 상징화했습니다. 이는 토라에 별도로 적힌 명령이 아니라, 새해와 속죄일을 지나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해 온 유대 전승들의 해석을 따르는 것입니다. 밭에는 비가, 상처 입은 관계에는 진실한 자백과 용서가 필요합니다. 이 날의 간구는 스스로 완성할 수 없는 내일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겨 드리는 간절한 숨결과 같습니다.27 37
◈ 오늘의 유대 공동체에서 이어지는 관습들
1. 밤에 배우고 기도하기
여러 공동체는 호샤나 라바 전날 밤에 잠을 줄이고 신명기와 시편을 읽으며 기도합니다. 이를 '티쿤 레일 호샤나 라바'(תִּקּוּן לֵיל הוֹשַׁעְנָא רַבָּה, Tikkun Leil Hoshana Rabbah,"큰 구원을 위한 밤을 새는 공부")라고 부르는 전승도 있습니다. 밤샘 공부의 순서와 범위는 공동체마다 다르며, 모든 유대인이 같은 방식으로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긴 밤의 독서는 절기의 끝을 서둘러 닫지 않고, 다음 해의 삶을 말씀 앞에 정돈해 놓는 시간이라는 심오한 의미를 가집니다.38
2. 아침의 호샤노트와 일곱 바퀴
회당의 아침 예배에서는 “구원하소서”를 되풀이하는 호샤노트(הוֹשַׁעְנוֹת, Hoshanot) 기도를 드립니다. 토라 두루마리를 꺼내 비마(בִּימָה, Bimah, “강단, 단상”), 곧 낭독대 곁에 놓거나 사람이 들고 서면, 회중은 룰라브와 에트로그를 들고 그 주위를 일곱 바퀴 돕니다. 성전 제단의 일곱 바퀴를 기억하지만, 지금 돌고 있는 곳은 성전이 아니라 회당입니다. 기도와 행렬을 예배 중 어느 순서에 두는지는 공동체에 따라 다릅니다.39
3. 룰라브 흔들기와 별도의 버들가지
가을의 문턱, 광야의 건조한 바람이 장막의 틈새를 스칠 때면 두 손에는 대지가 빚어낸 서로 다른 네 가지 숨결, 아르바트 하미님(אַרְבַּעַת הַמִּינִים, Arba’at HaMinim, “네 종류의 식물”)이 들립니다. 황금빛으로 깊은 향기를 품은 에트로그(אֶתְרוֹג, Etrog, “시트론 열매”)는 왼손에 머물고,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룰라브(לוּלָב, Lulav, “종려나무 가지”)와 그 곁을 받치는 세 줄기의 하다심(הֲדַסִּים, Hadassim, “도금양나무 가지들”), 두 줄기의 아라보트(עֲרָבוֹת, Aravot, “버들가지들”)는 오른손에 한데 묶입니다.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면 따로 자란 식물들이 하나의 품 안에 놓입니다.
토라(תּוֹרָה, Torah, “가르침·율법”)의 배움과 선행을 함께 지닌 이와, 배움은 깊으나 타인을 향한 향기가 메마른 이 혹은, 배움은 적어도 삶의 궤적이 그윽한 향기로 가득한 이와, 맛도 향도 내세울 것 없이 시냇가에 뿌리내린 이까지 미드라시(מִדְרָשׁ, Midrash, “성경 풀이 전승”)『레위기 라바』의 비유는 이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열매와 가지가 서로 다른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함께 들리듯, 공동체도 저마다 다른 사람들을 품을 때 하나가 됩니다.
네 종류의 식물을 가슴 깊이 품었다가 허공을 향해 조심스레 밀어냅니다. 바스락거리는 종려 잎의 마찰음은 침묵을 깨우는 영혼의 파문과도 같습니다. 먼저 해가 솟아오르는 동쪽으로 뻗어 나갑니다. 태초의 빛을 허락하신 분을 기억하며 식물들을 내밀었다가 다시 심장 곁으로 거두어들입니다. 이어 따스한 온기가 감도는 남쪽으로, 황혼의 고요가 깃드는 서쪽으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북쪽으로 같은 궤적을 그립니다. 마침내 푸른 창공을 향해 두 팔을 높이 들고, 대지의 낮은 곳을 향해 손을 내립니다.
여섯 방향을 더듬어 가는 이 고요한 춤은 사방 어디에도 하나님의 돌보심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음을 고백하는 무언의 선언입니다. 동서남북과 위아래를 향해 손을 내밀고 다시 가슴으로 거두는 동안, 삶의 사각지대에서 불어닥치던 거친 풍랑과 메마른 두려움도 기도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온 세상이 그분의 돌보심 아래 있음을 온몸으로 기억하는 순간입니다.
식물들을 다시 가슴에 모을 때, 룰라브의 꼿꼿한 줄기는 나의 굽은 척추를 세우고, 에트로그의 은은한 온기는 식어 버린 심장을 따스한 온기로 덥힙니다. 하다심의 잎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동자를 돌아보게 하고, 아라보트의 여린 잎은 침묵 속에 잠긴 입술을 겸손하게 열어젖힙니다. 후대의 또 다른 미드라시가 네 식물을 몸의 부분에 견준 까닭을, 비로소 내 몸으로 헤아리게 됩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부족함을 끌어안은 채 함께 서듯, 우리는 세상의 모든 방향을 향해 조용히 손을 내밉니다. 그 잎새들의 떨림 속에, 가을빛보다 깊은 화해와 구원의 서곡이 번져 갑니다.
일곱 바퀴의 기도가 끝나면, 네 식물에 묶었던 아라바와 별개의 버들가지 묶음을 듭니다. 여러 공동체에서는 버들가지 다섯 줄기를 묶어 땅에 다섯 번 치며, 이때 별도의 축복문은 낭송하지 않습니다. 다섯이라는 수와 동작의 상징은 후대의 관습과 신비주의적 풀이에 속합니다. 버들가지를 친다고 비를 만들어 낸다는 뜻이 아닙니다. 물을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의 간구를 단지 몸으로 기억하는 행위입니다.40
4. 마지막 초막 식사와 여덟째 날
호샤나 라바에 수카에서 절기의 마지막 식사를 나누는 가정도 있습니다. 일곱째 날이 저물면 쉐미니 아쩨렛이라는 여덟째 날의 성회가 이어집니다. 모인 회중들은 비를 위한 특별한 전례 기도인 ‘테필라트 게쉠(תְּפִלַּת גֶּשֶׁם, Tefillat Geshem, "큰 비를 위한 기도")로 하늘에 단비를 간구합니다. 손에서 흔들리던 초록의 다발은 내려놓아도, 생명을 주시는 분을 향한 간구는 회당 안에 오래 머뭅니다. 여기서 게쉠(גֶּשֶׁם, Geshem, "단비, 큰 비")은 일반적으로 이슬비나 보통의 비를 뜻하는 마타르(מָטָר, Mataar)와 달리 새롭게 파종하는 가을 농사를 위해 겨울철 우기에 대지를 흠뻑 적셔주는 풍성하고 강한 비를 말합니다. 디아스포라에서는 여덟째 날 수카에서 식사하는 관습도 있으므로 “마지막 식사”의 모습 역시 지역과 공동체에 따라 다릅니다.41
◈ 시편의 노래와 메시아 소망을 읽으며
시편 118편의 바룩 하바 베쉠 아도나이(בָּרוּךְ הַבָּא בְּשֵׁם יְהוָה, Baruch haba b'shem Adonai,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는 먼저 유대인의 찬양 안에서 울립니다. 순례의 길에서 받은 구원에 감사하고, 아직 필요한 도움을 간청하는 노래입니다. 그 소리를 충분히 들은 다음에야 복음서가 같은 시편의 언어를 예수아의 예루살렘 입성에 어떻게 사용했는지 제대로 읽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12–16절에서 군중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아를 맞습니다. 그때는 초막절이 아니라 유월절을 앞둔 때입니다. 초막절의 제단 행렬이 그대로 그 거리에서 되풀이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계절에 불린 한 시편의 간구가 메시야 예수아를 향한 복음서의 고백 속에서 동일한 울림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은 알 수 있습니다. 공통된 노래를 듣되, 두 장면의 시간을 결코 뒤섞어 놓을 수는 없다는 사실 안에서 말입니다.42
스가랴 14장의 열방, 시편 118편의 “오는 이”, 호샤나의 간구는 각각의 문맥에서 구원을 기다립니다. 유대 공동체는 이를 자기 예배와 메시아 소망 안에서 읽고, 그리스도인은 메시야 예수아를 고백하며 읽습니다. 서로 다른 고백을 지우지 않는 존중이 대화를 진실하게 합니다. 이제 그 기다림을 말로만 남기지 않고, 눈앞의 사람과 먼 이웃의 이름을 불러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 초막에서 시작하는 도고
초막의 지붕은 하늘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아래의 감사도 식탁의 울타리에서 멈출 수 없습니다. 거둔 열매를 헤아리며 오늘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을 기억하고, 비를 기다리며 물을 구하기 위해 집을 나서던 많은 사람들의 밤을 생각합니다. 절기의 마지막 날에 길게 이어지는 “구원하소서”로 시작되는 기도는 한 사람의 안녕을 넘어 이스라엘과 유대 공동체, 교회와 온 세계 이웃의 삶을 하나님 앞에 데려갑니다.
이 기도문은 가정과 소그룹이 함께 읽도록 썼습니다. 모든 항목을 서둘러 읽기보다, 오늘 마음에 떠오르는 사람과 관련된 지역의 이름을 한두 곳 넣어 천천히 기도해 보십시오. 그들의 이야기를 확인하고, 필요한 것을 묻고, 다음 주에도 다시 이름을 부르십시오. 기도의 깊이는 한 번의 감동보다, 오래 지키는 약속에서 드러납니다.
☞ 이스라엘과 유대 공동체를 위한 기도
1. 절기의 말씀을 새롭게 듣게 하소서.
이스라엘과 세계 곳곳의 유대인들이 성경과 여호와의 절기 안에서 당신의 신실하심을 깊이 만나게 하소서. 예수아를 이스라엘의 메시아요 구원자로 고백하는 우리의 기도가 유대인의 역사와 양심을 존중하는 사랑 안에서 드려지게 하시고, 진리를 구하는 모든 이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2. 두려움 가운데 있는 공동체를 지켜 주소서.
전쟁과 테러와 반유대주의의 위협 앞에 선 이들에게 안전한 밤을 허락하소서. 회당과 학교와 가정과 모든 거리에서 두려움 없이 살아갈 권리를 지켜 주시고, 상실한 가족에게는 충분히 울 수 있는 시간과 함께 곁을 지킬 사람들을 보내 주소서. 지도자들이 보복의 언어보다 생명을 살리는 지혜를 택하게 하소서.
3. 메시아닉 유대인들을 붙들어 주소서.
유대인으로 살아온 역사와 예수아를 향한 믿음을 함께 품고 걸어가는 이들에게 지혜와 담대함을 주소서. 그들의 가정과 자녀와 사역자를 돌보시고, 공동체 사이에서 오해와 고립을 겪을 때, 진실을 말하되 겸손히 듣는 동역자들을 붙여 주소서. 이들이 어느 쪽의 상징으로 소비되지 않고, 귀한 이름-예수아를 메시야로 믿는 유대인-을 가진 사람으로 존중받게 하소서.
4. 유대인과 교회의 만남을 치유하소서.
기독교 역사 속에서 유대인에게 가해진 수 많은 박해와 강제 개종과 격멸과 멸시의 대상으로 여겼던 사실을 교회가 흐릿한 과거로 밀어 두지 않게 하소서. 잘못을 배우고 인정하는 용기를 주시며, 회개의 말이 경청과 관계의 회복, 가능한 책임의 이행으로 이어지게 하소서. 오늘의 유대 공동체가 요청하는 안전과 존엄에도 귀 기울이게 하소서.43
☞ 교회를 위한 기도
1. 교회가 임재 안에 머물게 하소서.
성과를 세는 손보다 사람의 얼굴을 보는 눈을 주소서. 초막의 가벼운 지붕 아래서 배운 의존을 강단의 말뿐 아니라, 예산과 지도력에도 새기게 하소서. 재정을 정직하게 공개하고, 식사와 주거와 돌봄이 필요한 이의 몫을 계획의 뒷자리가 아니라 앞에 놓게 하소서. 섬기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충분한 쉼의 자리를 허락하소서.
2. 유대인의 뿌리를 잊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읽는 성경을 지켜 온 유대인의 역사와 지금 살아 있는 공동체를 존중하게 하소서. 유대인을 대신했다고 자랑하는 말과 반유대주의의 암시를 강단과 교재에서 알아보고 바로잡게 하소서. 이스라엘을 이상화하거나 정치의 도구로 삼지 않으며, 실제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혐오와 차별 앞에는 분명히 맛서게 하소서.44
3. 모든 민족을 향한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하게 하소서.
복음의 증언을 숫자의 경쟁으로 줄이지 않게 하시고, 우리가 찾아가는 이웃의 언어와 생각과 의도를 먼저 듣게 하소서. 현지 교회와 현지인 조력자와 구호 종사자들을 계획의 조연이 아니라, 동등한 동역자로 존중하며 대하게 하소서. 한 번의 행사보다, 오래 남는 관계를 위해 지속적으로 배우고 충분히 기다려 줄 시간을 내게 하소서.
4. 고난받는 이웃 곁에 서게 하소서.
집을 잃은 사람에게 “평안히 가라”는 말만 남기지 않게 하소서. 물과 식량, 의료와 임시 거처가 필요한 곳에 실제 도움이 닿게 하시고, 교회가 믿을 만한 지역 기관과 함께 통역과 이동, 상담과 법률 지원의 길을 찾게 하소서. 첫 구호가 끝난 뒤에도 학교와 일터와 집을 다시 세우는 재건과 재활을 이루어가는 긴 시간을 잊지 않게 하소서.
5. 평화를 만드는 사람을 일으켜 주소서.
민간인의 생명을 모든 계산 앞에 두는 지도자들에게 지혜를 주소서. 인질과 실종자, 난민과 부상자, 유가족의 이름이 숫자 속에 사라지지 않게 하시고, 의료진과 구조대원과 기자와 자원봉사자를 지켜 주소서. 우리에게는 확인하지 않은 소식을 멈추는 절제와 혐오의 말에 맞서는 용기를 주소서.
☞ 재난과 고통 가운데 있는 지구촌을 위한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가 화면으로 다 볼 수 없는 무너진 집과 잠긴 골목, 갈라진 땅과 피난의 길을 기억해 주소서. 홍수로 돌아갈 곳을 잃은 가족에게 안전한 잠자리를, 폭염 속의 노인과 어린이와 야외 노동자에게 쉴 수 있는 그늘과 생수를, 지진과 태풍 뒤에는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먼저 닿는 구조의 손길을 허락하소서. 굶주림과 전염병 앞에서 국경을 넘는 협력이 이념과 정치적 계산보다 귀한 사람의 생명을 먼저 보게 하소서.
상실한 이에게 서둘러 회복하라 재촉하지 않고, 함께 울어 줄 사람을 보내 주소서. 살아남은 이에게는 죄책감을 덜고 다시 살 용기를, 생업을 잃은 이에게는 재건의 시간과 기회를 허락하소서. 우리 교회와 가정이 재난 소식을 잠깐 소비한 뒤 잊지 않게 하시고, 현지의 요청을 확인한 기관을 통해 꾸준히 돕게 하소서. 구호의 첫날보다 더 긴 회복의 계절에도 계속 곁에 머물게 하소서.
☞ 개인과 가정을 위한 기도
1. 주님 안에 거하게 하소서.
초막에서 집으로 돌아와도 당신의 임재를 지나간 절기의 감정으로만 남기지 않게 하소서. 분주한 하루에 말씀과 기도를 위한 작은 시간을 정하고, 그날 만난 한 사람의 이름을 마음에 품게 하소서.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을 듣는 귀가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순종의 손이 되게 하소서.45
2. 가정을 화목하게 하소서.
우리 집이 나약함을 숨겨야 하는 곳이 아니라, 안심하고 말할 수 있는 장막이 되게 하소서. 부부가 해명하기 전에 먼저 듣고, 부모가 자녀의 문장을 끝까지 기다리며, 형제자매가 오래된 상처를 가볍게 넘기지 않게 하소서. 한 주에 한 끼라도 화면을 내려놓고 함께 앉아 감사와 어려움을 나누며, 잘못에는 구체적인 사과로 답하게 하소서.
3. 일터와 사역에 지혜를 주소서.
성과를 재촉하는 자리에서도 정직한 말과 공정한 선택을 지키게 하소서. 약속한 대가를 제때 지급하고, 다른 사람의 수고를 자기 공으로 돌리지 않게 하소서. 지친 목회자와 선교사와 봉사자에게 쉼을 주시며, 공동체가 일을 나누고 휴식의 날짜를 달력에 실제로 지키게 하소서.
4. 약한 이들의 이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아픈 이의 이름이 기도 제목에만 머물지 않게 하소서. 병원에 갈 차편을 마련하고, 우울과 불안 가운데 있는 사람을 적절한 전문 지원에 연결하며, 경제적 어려움에는 당사자가 원하는 도움을 함께 찾게 하소서. 홀로 사는 이, 장애인, 이주민, 학대 피해자와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의 안전과 선택권을 존중하게 하소서.
5. 영원한 장막을 바라보게 하소서.
눈물이 닦일 날을 기다리는 소망이 오늘 울고 있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게 하소서. 장례가 끝난 뒤에도 슬픔 속에 있는 이들에게 안부를 묻고, 부당한 일을 만날 때 침묵 뒤에 숨지 않게 하소서. 영원한 거처를 바라는 우리의 시간표에 오늘의 사랑과 정의와 섬김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남게 하소서. 아멘. 46
◈ 맺음말 — 초막은 걷혀도 노래는 남는다
절기가 끝나면 가지를 묶은 끈을 풀고 식탁을 집 안으로 옮깁니다. 그러나 초막 아래 들었던 물음은 해체되지 않습니다. 광야를 기억하며 먹은 한 끼, 네 식물을 든 손, 비를 구하던 노래, 손님에게 내어준 의자는 모두 같은 곳을 가리킵니다. “받은 것을 누구와 나눌 것인가?” 기쁨은 소유의 울타리에 갇힐 때보다, 다른 사람의 삶에 닿을 때 오래 남습니다.
단단한 천장 아래로 돌아온 뒤의 일상이 그 물음에 답할 차례입니다. 한 사람을 식탁에 초대하고, 재난을 겪은 이에게 필요한 것을 직접 묻고, 이웃의 회복에 필요한 시간과 몫을 마련하십시오. 우리가 날마다 읽으며 은혜를 받는 성경을 지켜 온 유대인의 역사와 오늘의 삶을 존중하는 말도 배움에서 끝내지 마십시오. 다음 주의 일정과 공동체의 예산에 새긴 약속들이 절기의 노래를 잊지 않고 이어 갑니다.
5787년의 초막절에 이스라엘과 교회, 세계 곳곳의 이웃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굶주린 곳에는 함께 차릴 식탁이, 두려운 곳에는 안전한 밤이, 서로 등을 돌린 집에는 다시 말을 건넬 화해의 길이 열리기를 구합니다. 기도가 남의 고통을 대신 설명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귀와 곁을 지킬 시간을 내어주는 결단이 되기를 바랍니다.
수카의 문을 닫고 평소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머리 위로 별은 보이지 않아도, 별을 올려다보던 마음은 남습니다. 오늘의 선물을 내일의 두려움 때문에 모두 잠그지 않고, 문턱에서 한 걸음 물러나 다른 사람이 머물 자리를 생각해 냅니다. 초막은 걷혀도 그 자리를 내어주는 삶 속에서 감사와 간구의 노래는 끊임없이 흐르기를 기대해 봅니다.
◈ 그리스도인을 향한 메시지
☞ 개인의 자리에서
중보의 지도 위에 너무 많은 이름을 한 번에 적고 지우기보다, 한 사람이나 한 지역을 정해 한 달 동안 동행해 보십시오. 현지의 목소리와 신뢰할 수 있는 소식으로 필요를 배우고, 매주 같은 시간에 기도하며, 가능한 도움의 규모와 방법을 묻고 정하십시오. 한 달 뒤 다시 안부를 확인할 때, 그 이름은 잠깐의 감동을 넘어 오래 지키는 약속이 됩니다.
☞ 교회 공동체의 자리에서
절기가 끝난 다음 달에도 이어질 한 가지 약속을 회의록과 예산에 적어 보십시오. 월별 중보 모임에서 현지 동역자나 신뢰할 수 있는 구호 기관의 요청을 듣고, 지원의 목적과 사용 결과를 투명하게 나누십시오. 식사와 방문, 통역과 쉼의 책임을 여러 사람에게 맡기면, 환대는 한 사람의 열심을 넘어 공동체의 습관이 됩니다. 초막은 걷혀도 다시 찾아가는 발걸음이 그 노래를 이어 갑니다.
초막의 가지를 걷어도 그 아래서 배운 감사와 “구원하소서”의 기도가 여러분의 날마다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 목마른 이에게 물을, 두려운 이에게 안전한 곁을, 낯선 이에게 이름을 부르는 환대를 건네는 손길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동역자 여러분의 삶과 가정과 일터와 섬기시는 모든 사역 위에 이레의 돌보심, 닛시의 담대함, 샬롬의 평화가 충만하기를 바라며, 예수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그 수콧 싸메아(חַג סֻכּוֹת שָׂמֵחַ, Chag Sukkot Sameach)!!! 샬롬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