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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식 전통 기제와 화장 문화
1)전통 기제의 의의 및 형식
가정에서 지내는 전통 기제(유교식 제사)의 의미는 먼저 가신 조상들을 추념하고 그 은공에 보은하는 효의 의미이다. 공자는 "제를 모실 때는 조상이 곁에 계신 듯이 하라"고 하였듯이 제의 내용이 현실에 살아있는 어른을 모시는 것과 동일 방법으로 정성을 하라는 뜻이다.
조상을 위해 지내는 제는 살아있는 후손인 제주와 조상신과의 관계이며 만남의 행위 양식이다. 조상신에게 정성과 제물을 바침으로써 신과 교류하는 종교적 의례라고 할 수 있으며, 조상신과 현세의 유족인 인간의 교류방법이라는 근본 성격과 상징적 의미가 있다. 유교에서의 제는 자기 조상의 신만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 삶의 근원이 되는 모든 신 존재에 드리워져 있다.
일반인들이 1년마다 기일에 지내는 제 풍습은, 중국의 오래된 전통이 아니고 후대에 생겨났다.
옛날에는 기일에 제사가 없었고 다만 종신의 상을 행했을 뿐이다. 송나라의 현인들이 제의 행의를 만들어 놓았다. 작금의 인간들은 오직 기제사가 크다는 부문만은 알고 있지만 기일의 중요함은 알지 못하고 있다. 미리 제사를 지내고 난 다음에는 찾아온 손님들을 안내하고 평상시와 다르지 않게 한다. 어떤 사람들은 미리 재가 끝났다고 보통 일상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올바른 행동은 아니다. 수응(酬應)을 줄이고 슬픔을 느끼며 괴로움을 표하면서 기일을 끝마쳐야 한다.
고대에 제가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고대 중국의 제가 함축하고 있는 축제의 성격 때문이라고 사료 된다. 그들은 상례를 흉례(凶禮)라고 하였으며 제는 길례(吉禮)라고 하였다. 제는 축제이면서 잔치였다. 축문의 흠향(歆饗)의 흠은 신 내려와 제 음식의 기를 마신다는 의미이며, 향은 '잔치하다.' '대접하다.' '제사 지내다.' '드시다.'는 뜻이다. 이웃을 초청하여 잔치를 벌이며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다.
현재의 전통 기제는 조선 시대 유교 문화와 더불어 조상숭배 의식으로 구체적인 틀이 형성되었는데, 그 유래는 제의 기본 지침서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주자가례(朱子家禮)』가 들어오면서이다.
제의 문제점들은 서론에서 개괄적으로 논술하였지만 보충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제례 의식이 지나치게 복잡하여 공경하는 마음보다는 형식에 치우쳐서 허례허식의 폐단이 되고 있다. 제사의 본질은 겸손함과 섬김의 정신인데 현재의 제는 복을 구하고 재앙을 피하고자 하는 후손의 이익 추구로 많이 변질되어 있다. 둘째, 재산 상속은 법적으로 형제간에 균등 배분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제는 대부분 장자 상속이 되어 비용문제 등 형제간에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세 번째, 예법의 기본자세 또한 갈등을 유발한다. 이는 정결하면서도 분수에 맞는 음식준비에서 가족 간의 생각 차이, 친척들의 제 동참 여부, 제에 조상신이 온다고 믿는 사고에 대한 형제간의 종교 차이, 조상 공경의 효에 대한 아버지와 손자 간의 세대 차이, 제계 및 제 집전방법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의견 충돌하는 경우 등이다. 네 번째, 유교 제와 필연적으로 연결하고 있는 명당과 묘지 문제는 좁은 국토를 많이 잠식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 시책으로 매장보다는 화장 문화를 장려하고 있다.
유교 예법에서 전통 기제의 기본적인 자세는, 죽은 조상을 산 사람과 똑같이 섬긴다. 제는 꼭 모실 사람이 해야 한다(즉 귀신도 각각의 주인이 있다). 제는 예법에 맞게 해야 한다.
혼백은 인간이 살아있을 때는 공존하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지만 죽으면 분열한다. 그러나 아주 가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관여할 수 있는 범위 내로 간다. 우리 가까운 곳에서 언제나 올 수 있는 곳, 이 세상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혼백을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통 기제의 경우 의례를 치르는 주체들이 종교적 체험이 빈약함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내세관이나 영혼관에 대한 인식이 없음이며, 제자나 초월적 존재의 개입이 전혀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제가 이렇게 복잡한 것은, 내세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망자를 다시 현세로 맞이하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교의 종교적 성격은 궁극적 존재의 초월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인간 속에서 궁극적 존재를 확인하는데 더 관심을 집중하였다. 즉,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보다는 섭리에 대한 믿음이고 상상적 공감을 통한 마음의 문제이다.
조상에 대한 제는 근본적으로 생명계승의 신비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첫째는 은혜에 보답하는 최소한의 성의 표시이다. 둘째는 작지만 거룩한 종교의식이다. 셋째는 오랫동안 지켜온 문화의식이다. 넷째는 우리 사회의 삶의 현실이다. 다섯째는 우리 전통이요 습속이다.
제의 종류는 지역과 집안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기제와 사시제, 묘제로 구분된다. 기제는 매년 제의 대상이 세상을 하직한 날의 저녁에 지내고, 사시제는 철마다 지내는 제이고, 묘제는 한식과 추석에 산소에 가서 음식을 차려 놓고 지내는 제를 말한다. 제와 차례의 상이점은 아래와 같다.
표 1. 전통 기제와 차례의 차이점
내용 / 종류 | 기 제 | 차 례 |
제삿날 | 돌아가신 날 | 명절(설, 추석) |
시간 | 밤 | 아침 |
장소 | 장 자손의 집 | 사당, 묘지(한식, 추석) |
술 | 세 번 | 한 번 |
적 | 술과 함께 올리고 내림 | 한 번에 올림 |
반갱 | 메와 갱 | 떡국, 화전, 송편 등 |
숭늉 | 올림 | 올리지 않음 |
촛불 | 켬 | 켜지 않음 |
합문, 계문, 축문 | 한다. | 하지 않는다. |
위와 같이 조상의 전통 기제와 명절 때 하는 차례는 예법과 형식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요즘은 가정이나 절에서 하는 기제를 할아버지 제삿날에 할머니와 같이 그리고 아버지 제삿날에 어머니와 같이 모시는 경우가 많아졌다. 차례는 설과 추석에 합동으로 지낸다.
모든 의례는 대상이 있으며, 그 대상에 따라 의례가 함축하고 있는 종교적 특징이 규정된다. 이들 대상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초월적 존재인데, 그들을 통칭하여 신이라고 한다. 이때 무형의 대상물보다는 유형의 상징물을 설정함으로써 의례효과를 배가시키고 있다. 또 확고한 종교적 기반 및 설득력 그리고 정당성을 담보 받게 된다.
이런 뜻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을 상징할 무엇인가를 원하게 되고, 그것이 유형의 종교적 상징물이 구축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불교의 불상과 기독교의 십자가이다. 유교는 조상이 신인데, 형상을 표현할 수 없으니 '신주'가 자리매김하였다. 유교에서 망자의 혼령을 상징하는 신주는 망자를 기리기 위한 추모 용품이 아니라 혼령이 깃들어 있는 생명의 존재로 간주 되고 있다. 이것은 망자를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며,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하여 우리 주위에 항시 있는 일상적 삶 속으로 편입시켰음을 뜻한다. 즉, 한쪽은 육신의 형태를 가진 살아있는 존재이고 한쪽은 현실에서 삶은 마감했으나 혼령의 형태로 차별화되어, 자손들과 삶을 공유하는 다른 의미의 생명체인 것이다.
그러나 이 상징물은 물적 상징물이기 때문에, 혼령을 불러들이는 의식을 행한 후 영적 상징물로 전환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의례의식이 끝나면 조상신의 혼령들이 신 안에 스며들어 있다는 확고한 믿음 아래 집에 두고 정성껏 받드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신주는 단순한 물적 존재로서가 아니며 조상신의 혼령들이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 상징물로 변모되는 것이다. 즉 신주는 후손들에게 조상과 동일시되는 주요 존재로 인식되어 진다는 점이다.
전통 기제의 형식은 복잡하고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도입단계의 식전의식(式前儀式), 본행사라고 할 수 있는 제사의 집전(執典), 정리 단계의 식후의식(式後儀式) 등이 모두 예법과 격식이 있기 때문이다. 제찬도(祭饌圖)는 가정의례준칙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 가장 간편하다.
먼저 제구(祭具)와 제기(祭器)를 마련해야 한다. 제사의 주관자는 입제일에 제사 장소 주변을 깨끗이 하고, 제구와 제기를 내어 와 깨끗이 닦는다. 제주(祭酒)와 제수(祭需)를 준비하고 축문은 미리 써 놓으며, 양초와 향 등도 미리 챙겨 놓는다. 준비가 완료되면 초저녁에 제소에 병풍을 치고 의자, 제상, 향안, 주가, 소 탁자 등을 설치한다.
준비과정: 진기(陳器, 제구와 제기의 설비) - 구찬(具饌, 제수의 준비) - 진설(陳設, 제상 차리기) - 변복취위(變服就位, 제복입고 정렬) - 출주(出主, 신주나 지방의 봉안) - 축문(祝文, 제사고함).
집전순서: 강신(降神, 신 내리기) - 참신(參神, 합동참배) - 진찬(進饌, 음식 올리기) - 초헌(初獻, 첫잔 드리기) - 독축(讀祝, 축문읽기) - 아헌(亞獻, 버금 잔드리기) - 종헌(終獻, 끝잔 드리기) - 첨잔(添盞, 술잔에 술을 가득 채움) - 진다(進茶, 숭늉 올림) - 유식(侑食, 식사권유) - 합문(閤門, 문닫고 기다림) - 개문진다(開門進茶, 문열고 차올리기) - 수조음복(受胙飮福, 복받기) - 사신(辭神, 신에 작별) - 납주(納主, 신주모심, 요즘은 지방과 축문을 소각) - 철(徹, 제사상 정리) - 준(餕, 제사 음식 나누기)
준비 및 집전순서는 지방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기존의 많은 연구가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일반적인 내용 위주로 간단히 언급하였다. 다만 잘못 알려진 부분을 지적한다면, 애초부터 예절이나 전통에 정형화된 것은 아니었다. 특정한 시점에 오래 반복하다 보니 풍속이 굳어져 정형화된 경우이다. 예를 들면, 제사상에 3종류 이상 전을 올리는데, 이것은 기름진 음식들을 상에 올리지 않는 유교 전통 기제에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柿) 같은 제 음식의 배치 규칙도 근거 없는 얘기이다.
제의 제물(祭物)은 귀신이나 초월적 존재 역시 음식을 섭취하여 살아간다는 인간중심적 사고와 삶의 기본인 먹을 것을 조상신에게 바친다는 상징성이 반영된 것이다. 이렇게 정성을 들임으로써 신과의 교류가 가능하다고 인식해 왔으며, 제물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관념적 대상을 향해 표출되는 정성으로써, 의례 주체들이 의도하는 소형 종교적 목적을 달성하는 구심체 역할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서양의 기독교와 동양의 불교 문화가 거의 대등한 위치에 있는 종교 다문화사회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우리 사회에 동서양의 이원적인 종교 문화 구조를 해소하는 좋은 계기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 한국사회의 개신교 신자 일부는 제 자체를 부정하고 있으므로 종교 인구가 확장될수록 반비례하여 전통 기제는 미약해지리라 사료된다.
불교의 재는 영혼의 영속성에 대한 추구가 의례의 기반이며, 이에 비해 사후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유교에서는 현실에서 연속되는 제를 통해 사후에도 소멸하지 않는 영적 존재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실현하고 있다. 즉 두 종교의 죽음 인식은 '사후 존재의 영속성 추구'라는 인간의 동일한 정신세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유교식 전통 기제는 혈연으로 연결된 생활 윤리에 기반하고 있으며, 불교의 재(齋)는 초월적 존재가 개입되는 종교윤리가 강조되고 있다.
2)사후 화장 문화와 효
본래 유교 사상의 근본은 효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부모의 머리털 하나도 손상하면 안 된다. 부모는 죽어서도 살아있는 것처럼 받들고 화장은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대는 매장이 주였으며, 매장은 당연한 이치이다. 매장은 우리나라처럼 좁은 국토에서 묘지가 점유하는 비율이 너무 넓다. 또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키고, 주변 나무를 없애고 묘지에 석물을 설치하는 등 인위적인 자연 훼손이 심각하다.
옛사람들은 명당 관념이 높다. 갤럽에서 오래전 조사 기록에 의하면, 묘를 잘 쓰면 자손이 잘된다는 물음에 '그렇다'는 응답이 55.7%,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44.2%였다. 여기에서 불교인의 긍정비율이 73.9%, 천주교인 55.2%, 개신교인은 32.9로 큰 차이를 보였다. 위 내용은 오래 전 조사이기는 하지만, 종교인들 중 화장을 기본으로 하는 불교인들이 조상의 묏자리 즉 명당을 선호하고 있는 비율이 타 종교와 비교하여 높다는 사실은 특이한 내용이다.
최길성은 효의 근본 사상이 유교에 의하여 제도화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유교에 있어서 효의 의미는, 자식들이 부모와 조상을 사랑하고 정성을 다하여 공경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 본성의 문제이다. 동양권의 효사상은 신과 사람을 단일 선상으로 이해하고, 어떤 조건이 없는 인간 본성으로 효를 보기 때문에, 지속성과 인격 수양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참다운 삶을 위한 실천의 도리인 것이다. 효는 옛날부터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이었으며, 사회를 지탱하게 하는 윤리 규범이고, 대대로 전승해야 할 중요한 가치이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천륜이라고 하였다.
효와 장법 문화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유교 사상은 세상의 만물이 기(氣)로 존재하여 있고 그 기(氣)의 실체가 음양오행이라고 본다면, 화장(火葬)하고 난 이후, 변화된 것도 기(氣)로써 존재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화장이 유교사상에 전면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죽음은 음양오행의 변화 이전 기(氣)의 형태로 환원되는 과정이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죽음 이후의 세계에 안착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와 같은 인식은 혼백이라는 실체 중에서, 망자 육신의 변화된 백(魄)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육신 또한 기(氣)로 환원된다고 보아야 한다, 즉 모든 변화의 과정을 거쳐서 마지막으로는 변화되기 이전 상태의 기(氣)라고 할 수 있는 음양오행의 기(氣)로 다시 환원되는 것이다.
오세종은 기독교인들이 화장을 싫어한 이유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불교 장법이니까, 둘째는 부활할 때 부활 체가 없으니, 셋째는 전통 기독교 방식이 매장이니까. 그러나 위와 같은 내용도 시대 흐름에 따라 변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까지는 매장이 주였으며, 간혹 다비식의 화장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국가와 종교가 서로 결합하면서 고려 시대에는 화장이 널리 유행하였다. 그러나 고려 말 도입된 성리학이 수용되고 정착되면서 『주자가례』에 의한 유교적 상ㆍ장례문화가 정착되고, 불교의 장법인 화장이 금지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화장법은 변화를 거듭하여, 현대에 이르러 아래와 같이 큰 혁신을 보인다. 2019년 1월 21일 보건복지부 발표에 의하면, 2017년 전국 화장률은 84.9%라고 발표하였다. 이것은 열 명 중 9명이 죽은 후 화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화장을 그렇게 싫어하던 유교 문화나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이 결국은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불교인들이 선호하는 화장 문화를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불교가 들어오면서부터 장의 문화가 변모하여 불교적인 죽음관에 따른 화장이 많이 보급되었다. 불교의 대표적인 장례방식이 화장으로 알려져 있으나, 본래 우리나라에는 없는 풍습이다. 불교가 유입되면서 같이 들어 왔다. 불교식 화장은 다비(茶毘)라고 하는데, 이것은 팔리어 jhapeta의 음역이다. 사바(사비), 야순(耶旬), 차유(遮遺) 등으로 번역되었다. 이 말은 시신을 불에 태우는 것을 의미하므로 소신(燒身)ㆍ분소(焚燒) 등으로 의역되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유입되면서 화장법도 바로 수용되었지만 승려, 왕, 귀족들의 전유물이었고 일반인들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것은 돈 없어도 땅에 묻으면 되었지만, 화장법은 경비가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후는 인도처럼 시신 부패가 심하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기후 환경 요인으로 인한 화장법은 불교의 심신관과 생사관 발달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추후 대승불교 사상에서 독특한 철학적 사유가 나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화장은 불에 태우는 장법이기 때문에 전염병 예방이나 비위생적인 문제에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매연, 다이옥신, 수은, 탄소 배출 등이 많아 주민들에게 혐오시설로 인식되고 있는 점이 난관이다. 금지하는 일임에도 화장 후 남은 재를 산이나 바다에 뿌리는 것을 당연시하는 현상이다. 일부 사람들은 수목장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인들은 화장 후 납골 형태를 선호하고 있는데, 그것은 기제 후 그리고 설이나 추석 명절 시 납골에 참배함으로써 스스로 마음속 부담을 내려놓고 효를 실천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상기와 같은 문화가 차츰 정착되어 가고 있다.
<사후 사찰 기재의 현대적 실천방안 연구/ 정기옥(무여) 한림대학교 대학원 생명교육융합 협동과정 생사학전공 철학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