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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개봉되어 성공을 거둔 이와이 순지의 일본영화 <러브레터>(1996)와 한국영화 <동감>(2000)을 통해 영화의 한 현상으로까지 확대된 현실이탈형의 '몽상연애' 흐름 속에 공존하는 또 다른 한 편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초월적인 사랑의 애절함을 단지 풍경화에만 실어 전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전례를 보더라도 인간 심연의 감성을 자극하는데 선율적 음악이 절대적 역할을 하는 법.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현함에 있어서 사운드가 지닌 힘이 지대하다는 상투적 식견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바다. 하지만 그 상투성이 캔버스 위에 곱게 예쁘게 그려진 <시월애>라는 전경을 더욱 밝고 감동적 색채로 물들인다.
음악을 지휘한 인물은 가수 겸 작곡가인 김현철. 그간 음반 프로듀서, 라디오 DJ 등 다방면의 활동과 함께 꾸준한 인기를 누려왔던 그가 다소간의 공백을 깨고 복귀하면서 만든 사실상의 컴백앨범과도 같다.
대학 선배인 감독 이현승과 함께 <그대 안의 블루>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의 음악을 담당하면서 보여주었던 음악감독으로서 그의 다재다능한 역량이 이번 작품에서 또 다시 빛을 발한다. 사실 영화 <그대 안의 블루>의 주제곡에서 이미 그는 한국영화음악 히트목록에 손꼽힐 만큼 괄목할 성과를 끌어냈다.
이전의 영화음악에서 그가 도회적 영상이 어울리는 냉정하고 우울한 색채의 음악을 들려주었다면, 이번에는 포근하고 감미로운 온기로 잿빛 가을을 따뜻하고 포근하게 감싸주고 있다. 청회색 바닷가, 올 수 없는 남자를 기다리던 여자의 설렘이 외로움으로 변해갈 무렵 애잔하게 들려오는 발라드 곡 'Must say goodbye'(이별을 말해야만 해), 우울할 땐 요리를 하라며 스파게티를 벽에 던지는 요리장면위로 사뿐사뿐 흐르는 느린 보사노바 'Bossa ghetti'(보사게티) 등 수채화와도 같은 화면에 생기가 도는 건 김현철의 음악적 터치 덕분이다.
전체적으로 세련되고 깔끔한 퓨전 재즈와 스탠더드 팝 발라드의 분위기를 간직한 김현철의 음악 안에 아름다운 풍경과 애닮은 사랑이야기가 담겨있다. 마치 예정된 약속과도 같이 다시 힘을 합친 영화감독 이현승의 시각적 감각과 음악감독 김현철의 재즈적 음악감성이 빚어낸 영화인 셈이다.
영화 구성상 인물의 디테일과 이야기의 개연성이 빠져있는 것 같은 허전함이 아쉽지만 그 부족분이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바로 빼어난 영상미가, 무엇보다 영상의 매혹을 주도하는 섬세하고 감미로운 음악의 손길이 공간을 채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