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문화 찾아가기> 3-3
6) 칠연폭포
무주군에는 칠연폭포가 있으며,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하다. 이 폭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아주 오랜 옛날에 세상이치를 깨달은 도사 한 사람이 있었다. 도사의 꿈은 신선이 되어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욱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천제님께 빌었다.
"천제님 세상의 학문은 다 익혔으나 하늘에는 오를 수가 없으니, 어찌 하면 되겠습니까?"
어느 날 도사는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았다. 지금의 안성면 봉산 밑에 가면 책바위라는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그 속에는 신선이 되는 보배로운 책이 있다는 것이다. 도사는 계시를 받은 후에 책바위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는 바위문을 열 수 없었다. 다시 책바위 밑에서 간절히 빌었다. 빌었더니 천제가 용마를 타고 내려와 바위의 문을 열어 주었다.
지금도 이 책바위 위에는 용마가 내렸던 발자국이 남아 있다. 도사는 책바위 속에서 고행을 했다. 하늘의 이치를 깨달은 날에 보배로운 책은 사라지고, 바위문도 닫혔다. 도사는 이제 하늘로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 도사가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서 지금의 용추폭포로 가게 되었다.
시장기를 느낀 도사는 근처에 사는 최부자 집으로 들어갔는데, 문전박대를 당했다. 격분한 도사는 최부자 집터를 물이 넘실거리는 소로 만들어버렸다. 이 소가 지금의 용추소이다. 이 소는 얼마나 깊은지 명주실 한 꾸리가 다 들어가도 바닥에 닿지 않는다고 한다.
도사는 도술이 생기자 마음이 오만해졌다. 거드름을 피면서 칠연폭포로 발길을 향했다. 그런데 천제가 칠연폭포로 내려오더니 도사를 꾸짖었다. 한 인간에 대한 분한 마음을 견디지 못하고 도술을 행한 것이 잘못이라고 했다.
도사는 경솔함을 깨닫고, 천제께 용서를 빌었다. 천제는 한 번 속죄의 기회를 주었다. 속죄의 길은 매일 차가운 물속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고, 칠년 동안 기도를 하라는 것이었다. 도사의 고행은 시작되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고행을 했다. 고행을 모두 마친 도사는 하늘로 올라 갈 수 있었다.
지금의 칠연폭포 명제소는 천제가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서 도사에게 다시 수행을 하라고 명령을 내렸던 곳이었다. 도사가 칠년 동안 수행할 때 마음을 시험하기 위해 선녀가 내렸던 소는 선녀탕이라고 한다. 도사가 모든 수행을 마치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바위는 하늘바위라고 한다.
=> 도사가 하늘에 올라가기까지 있었다는 일이 그리 대단하지 않아 수준이 낮은 전설이다. 오만을 경계하고 성실한 노력을 권장하는 뜻이 있다고 변명하면 결함이 더 커진다.
7) 아기장수
총명하고 힘이 센 소년이 홀어머니와 둘이 이곳에 살고 있었다. 소년이 장차 큰 장수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역적이 될까 염려한 조정에서 찾으려 하자, 소년은 좁쌀 한 말과 수수 한 말을 구해 달라 하며, 어머니에게 백 일 동안은 자신이 있는 곳을 알리지 말라 하고 마을에서 떨어진 바위 밑으로 가서 무예를 닦았다.
조정에서 내려온 군졸들은 어머니를 묶어놓고 아들이 있는 곳을 대라고 윽박질렀다. 군졸들이 끝내 입을 열지 않는 어머니를 죽여 버리기로 하자, 어머니는 약속 날짜를 하루 남겨놓고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들의 얼굴이라도 보기 위해 밤에 몰래 바위 밑 굴속으로 들어갔다. 좁쌀 한 말과 수수 한 말이 수만의 군사로 둔갑하려다가 그만 말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소년은 잡히는 신세가 된 것이 분하고 원통하여 잡혀가면서 머리로 바위를 들이받았다. 지금도 그 자국이 안성면 명천마을 장군바위에 남아 있다고 한다. 그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 아기장수를 죽인 탓에 이듬해 일어난 임진왜란에서 패배했다고 연결시켜 이해하면 할 말이 많다.
* 덕유산 길 단풍
8) 두꺼비의 보은
무주읍 북리에 전하는 이야기이다. 아주 먼 옛날에 가난한 총각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총각은 홀어머니를 극진하게 모시고 사는 효자였다. 그는 이웃마을에 사는 마음씨가 착하고, 효성이 지극한 처녀와 혼인을 하게 되었다.
새 색시가 시댁으로 선행을 하는 날, 가마꾼들이 길가에 가마를 내려놓고 잠깐 쉬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두꺼비 한 마리가 가마 안으로 뛰어들었다. 갑작스런 일에 깜짝 놀란 신부는 두꺼비의 징그러운 등을 보면서 어찌할까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두꺼비의 맑은 눈망울을 보고, 그냥 버릴 수 없어서 자신의 가마에 태워서 시댁으로 갔다. 시댁으로 데려온 두꺼비는 계속 시댁의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새색시는 자신을 따라다니는 두꺼비를 위해서 부엌 한쪽에 집을 마련해주었다.
새댁은 가난한 살림살이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식구들 뿐 아니라 작은 동물까지 음식을 나눠줘야 했기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었다. 할 수 없이 새댁은 자기가 먹는 밥을 절반씩 두꺼비에게 나눠 먹였다.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새댁은 점점 쇠약해지고, 두꺼비는 무럭무럭 자랐다. 식구들은 사람도 먹지 못하는 양식을 두꺼비에게 준다고 새댁을 꾸짖었다. 마을사람들은 흉물을 키운다고, 손가락질을 했다.
새댁이 들어오면서 신랑의 집안 살림살이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한 마을사람들은 새댁을 욕하기 시작했다. 새댁이 시집을 오면서 데려온 두꺼비가 집안에 재앙을 몰고 올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새댁은 아랑곳하지 않고, 두꺼비를 계속 키웠다. 그리고 시어머니 병간호도 힘을 다해서 했다. 그러나 시어머니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갔다. 새댁은 약 한 첩 쓸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한편 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이 다가오자 마을사람들은 서낭당에 제사를 지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낭당에 바칠 젊은 여인을 구하는 문제에 대해서 어른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새댁은 이와 같은 사정을 듣고는 제주를 찾아가 자신을 제물로 받아달라며 간청을 했다. 제물로 바쳐지는 사람은 천 냥의 돈을 받는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는 사람을 구하는 부담을 덜고 싶어서 승낙을 했다.
새댁은 천 냥을 받아들고 집으로 향했다. 새댁은 받은 돈으로 시어머니의 약과 논, 밭 등을 샀다. 새댁이 죽더라도 시댁은 잘 살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시어머니는 새댁이 달여 준 약을 먹고, 건강을 회복했다. 새댁은 받은 돈에 대해서 식구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정월대보름이 내일로 다가왔다. 마을사람들은 제물로 바쳐질 여인에 대해서 궁금해 했다. 새댁의 시어머니도 마찬가지로 궁금해 했다. 그런데 새댁이 옷을 깨끗이 갈아입고는 갑자기 하직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시어머니는 그제야 며느리가 한 일을 알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통곡을 하며 만류를 했다. 남편은 너무 놀라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새댁은 남편과도 하직인사를 하고는 가마에 올랐다.
그날 밤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서낭당 주위에 숨어서 지켜보는데, 서낭당 느티나무 위에서 빨간 불덩이가 쏜살같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밑에서 파란 불덩이가 느릿느릿 나무 위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얼마 동안 그렇게 진행이 되다가 파란 불빛만 남게 되었다. 마을사람들은 무서움에 질려서 집으로 돌아갔다. 이튿날이었다. 서낭당으로 마을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서낭당 주변에는 커다란 지네 한 마리와 두꺼비 한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 그 옆에는 새댁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가까스로 새댁을 엎고 집으로 돌아왔다.
새댁은 제물로 바쳐질 뻔 했으나 두꺼비의 보은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미물인 두꺼비였지만, 자기를 키워준 새댁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 지네와 싸우다가 함께 죽은 것이다. 새댁은 자기를 위해서 죽은 두꺼비의 시신을 잘 거두어서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그 후로도 새댁은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효도를 다했다고 전하고 있다.
=> 이 이야기 속의 두꺼비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작은 은혜를 크게 갚아, 두꺼비가 사람보다 더 훌륭하다고 할 것인가? 지나치다고 할 정도의 희생을 감수한 것은 두꺼비가 미련하기 때문인가? 자력으로 살아가지 않고 밥을 얻어먹을 때부터 두꺼비는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고 할 것인가?
<관련 사항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