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평아동센터 공부방 풍경
"야! 내 지우개?"
"저기 있잖아!"
"너가 주워서 줘"
"아니, 네 것을 내가 왜 주워"
효림이와 혜진이 사이에 늘상 있는 작은 다툼이다.
효림이는 초등 2학년, 혜진이는 초등 3학년 이지만 효림이가 덩치가 더 크고 왈패 기질이
있어서 한 살 더 많은 혜진이를 누른다.
하지만, 다투는 것도 한 순간이고 둘은 항상 친구처럼 붙어서 뭐가 그리 좋은지, 요즘 유행하는
개그맨 흉내를 주고 받기도 하고 때론 콧노래를 합창하기도 한다.
한 순간도 떨어져 있지도 않고 조용하지도 않은 두 녀석이 있는 바로 이 곳 미평아동센터의
공부방 풍경이다.
우리집 애들로 비슷하지만 이곳에서 집중력이라는 단어는 다른 나라에서나 쓰는 단어인 듯하다.
뛰어 다니는 놈을 잡아 앉혀서 다섯 문제만 풀고 놀자고 하면 대답은 청산유수로 "네",
두 문제 풀고선 몸이 꼬이면서 발이 책상위로 올라가고 몸은 뒤로 젖혀지는게….
이럴땐 어쩔 수 없이 약간의 기강 확립이 필요한 때다.
"네 이놈 발 내려, 자세 바로!
나도 같이 정신이 없어 진다. 두 명도 이렇게 버거운데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교사들은 ….
아동센터에 다니는 초중등생들은 결손가정 아이들로 주의가 좀 산만하고 작은 것에도
마음의 상처를 쉽게 입는다는 아동센터 주무담당 박영희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내가 괜스레 애들 군기를 잡았나?
하지만 이것저것 생각하고 배려하려는 것이 더 편견을 가지고 애들을 대할 것 같아 편하게
애들을 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한 번 더 군기를 잡고나서야 계획된 단원까지 겨우 마무리를 지었다.
막 일어 서려는데 2학년 개구쟁이 곽승현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무등 태워달라고 난리다.
무등을 태워서 공부방을 한 바퀴 도는데 저쪽 구석진 책상 뒤에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성용건이라는 아이가 보인다.
수학 문제가 잘 안 풀린다고 벌써 30분째 저러고 있단다.
매우 정상적인 미평아동센터 공부방 풍경이다.
우리 팀이 본격적으로 미평아동센터 공부방에 나가기 시작한 것은 한 달 밖에 되지 않았다.
최용제과장은 한문, 최과장 부인은 일어, 김도훈씨는 영어, 난 수학을 맡고 있다.
물론 우리 팀원이 미평아동센터의 모든 아이들을 맡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생, 주부들로 이루어진 선생님들이 많이들 도와 주시고 있다.
아동센터 박영희선생님으로부터 애들이 학원에 다닐 형편이 못되니 시간을 좀 내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학습지도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걱정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 정해진 시간에 빠지지 않고 할 수 있을까?
둘째, 중간에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면 얘들의 실망은?
셋째, 실제로 아이들 학습향상에 도움이 되어야 할텐데…. 등
처음엔 중학생 수학을 봐달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개인의 지도능력(미리 공부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서)을 핑계로 초등수학 지도로 바꾸고 한 달이 지났다.
조금 지나서 생각해 보니 학습향상에 큰 도움이 되는 지는 모르겠지만 정해진 시간을
지킬 수 있고 중도하차 않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다.
지난 금요일에는 애들 공부가 끝나고 시간이 좀 나서 공부방 다른 선생님이 지도하시는
중학교반에서 2학년 수학 참고서를 슬쩍 들쳐 보았다.
유리수, 방정식, 부등식, 일차함수 등이 나와 있었다.
어라! 유리수의 정의가 생각나지 않았다. 유리수와 무리수가 어떻게 다르더라?
또 허수라는 것도 있었는데….
뒤로 슬쩍슬쩍 넘기면서 무슨 내용들이 있는지, 과연 예습 않고도 가르칠 수 있을까?
등을 고민하며 책장을 계속 넘겨 보았다.
책을 덮고 나서 내 얼굴엔 얇은 미소가 돌았다.
"예습은 좀 해야 겠구나, 용어 및 개념 정리만 미리 해두면 가능할 것 같아" 라고 결론 짓고
박영희선생님께 중학수학도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선생님이 환한 얼굴로 고맙다며 중학교 2년생이 두명 있는데 애들이 의욕은 있는데 지도
해 줄 선생님이 없었다며 곧바로 두명을 불렀다.
순간 움찔, 오늘은 준비가 안됐는데 큰일났다.
"선생님,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담주에 하면 안될까요?"
"네, 오늘은 소개만 시키려고요"
애들 이름은 김도균, 이승만이라고 했다. 악수하고 잘해보자고 했다.
똘똘하고 성실해 보인다. 문제는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지난 일요일에는 서점에 들러서 애들이 보고 있던 체크체크수학 이라는 참고서를 한 권 샀다.
책이라도 사두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 지는 것 같다.
애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어색해 했던 기억은 모두 옛날(?)이다.
이젠 나도 어엿한 선생님이다.
그래, 선생님이 나가신다.
이제 선생님은 금요일 저녁엔 약속이 없다.
너희 초중딩 네명과 선약이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