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인구(65세 이상)는 2015년 인구센서스 결과 13.2%(657만 명)으로, 2010년 11.0%(536만명)에서 5년 만에 121만 명 증가하였다. 노령화지수(0~14세 인구에 대한 65세 이상 인구 비율)는 2010년 68.0%에서 5년 만에 95.1%로 증가, 저출산 현상과 고령화가 겹친 결과다.”
고령화 사회를 맞아 스님과 재가불자도 고령화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는 노스님들의 복지다. 나름대로 수많은 대중들에게 훌륭하게 포교하고 수행에서도 명성을 날린 스님조차 늙고 병들면 말 그대로 한 몸을 뉘울 집도, 절도 없다. 소임을 맡고 있거나 탄탄한 문중의 뒷배를 받지 못하거나, 힘 있는 제자를 두지 못한 스님은 의지할 곳이 없다. 찾다, 찾다 끝내 찾지 못한 스님은 개인적으로 사암을 짓거나, 토굴을 얻기도 한다. 사암도, 토굴도 얻지 못한 스님은 이리 저리 유랑하며 걸식이 아닌 걸식을 한다. 스님들이 중생구제와 종단개혁에 나서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노후복지가 보장되지 않아 주지나 문중 어른 스님의 눈치를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삶이 곤고해도 바라볼 별이 있고 기댈 언덕이 있으면 그나마 생을 영위할 수 있는 법인데, 한국불교는 힘도 연고도 없는 스님들에게서 별도, 기댈 언덕도 빼앗았다. 노후가 걱정이 되니 수행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노후를 대비하여 나름대로 준비를 한 스님은 괜찮지만, 그렇지 못한 스님은 속가를 기웃거리거나 삼보정재에 손을 뻗치기도 한다. 늙지 않는 스님은 없다. 희망이 없는 미래는 현재를 구속한다. 노스님들을 책임지지 못하는 한, 종단의 미래는 물론 현재 또한 어두울 수밖에 없다. 복지는 승려의 미래다. 복지를 간과하는 것은 불교의 미래를 무시하는 것이다. 노스님일수록 더욱 존경받고 위의가 빛나야 한다.
병도 마찬가지다. 몸이 병들면 수행이나 포교뿐만 아니라 도반이나 대중들에게 자비심을 내는 데도 제한을 받는다. 그런데 적지 않은 스님들이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노스님 가운데 기댈 언덕조차 없어서 유랑을 하다가 병을 얻으면 제주도 밤배를 타기도 한단다. 제주도를 향한 배가 아니라 물고기에 육보시를 하는 배란다.
이것은 정녕 구조적 폭력이다. ‘구조적 폭력’이란 “(인간이) 지금 처해 있는 상태와 지금과 다른 상태로 될 수 있는 것, 잠재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 사이의 차이를 형성하는 요인”이다(Johan Galtung, “Violence, Peace, and Peace Research,”) 위암으로 병원에 가서 수술 실패로 죽는 것은 자연사이지만, 제때 수술하면 살릴 수 있는데 수술비가 없다는 이유로 치료를 받지 못하여 죽는다면 이것은 구조적 폭력이다. 인간답게 존엄하게 살려 하고 모든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인간에게 ‘피할 수 있는 모독’을 가하는 것이다. 종단은 언제까지 올곧게 수행과 포교를 한 스님들에게 구조적 폭력을 가할 것인가.
『장아함경』에서 “그 중생은 빈궁으로 인해서 절도를 한다. 절도를 하기 때문에 즉 무기가 있고 그 무기가 있기 때문에 살해가 있다. 살해가 있기 때문에 탐취사음이 있고, 탐취사음이 있기 때문에 망어가 있다.”라고 말한다. 가난 때문에 절도, 살해, 사음이 일어난다. 가난이라는 사회구조적 문제가 개인의 악업을 짓는 원인이이라는 것이다. “개인의 마음과 사회구조, 개인의 업[別業]과 공동의 업[共業], 개인 윤리와 공동체 윤리는 서로 의존하며 작용한다.”(불교사회연구원, 『생명을 보는 불교의 관점과 윤리적 기준』) 이처럼 별업에 따른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스님 가운데 가난하고 부유한 차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적 요인과 공업에 의한 것이다. 설혹 별업에 따른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 차이를 상호부조로 메우는 것이 승가의 문화다. 불교에서 볼 때, “승가의 상호부조는 일정한 공양물을 함께 나누는 발우공양 사례에서 보듯이 그 실천이 수행의 방편이기 보다는 수행 그 자체다.”(이혜숙, 「대한불교조계종 승려노후복지연구보고서」)
최근 한국 사회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적극적 복지와 구조적 폭력을 제거하는 적극적 평화 개념을 불교에 맞게 전환하여 종단의 복지이념을 정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빈곤, 질병 등 좋지 않은 것을 해소하는 것에 대처하는 소극적 복지는 이를 야기하는 구조를 존속시킨다. 요한 갈퉁이 말한 대로, 소극적 평화가 폭력과 전쟁이 없는 상태라면 적극적 평화란 구조적 폭력을 제거한 상태를 의미한다.
2011년 4월에 ‘승가복지법’이 제정되고서 10월부터 65세 이상 노스님들에게 요양비와 입원치료비의 일부를 지원하고 있지만, 이는 말 그대로 새발의 모기 피다. 교구별로 다양한 복지가 행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천차만별이다. 전국선원수좌회에서는 수좌 스님들의 열악한 수행 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앞으로 불교계 의료기관과 의료지원체계를 구축하고 불교노인요양원과 연계해 입소를 지원하는 등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지만, 종단 산하에 복지원을 설립하고 종단 차원에서 복지책을 강구해야 한다.
승가의 복지는 스님들의 위상에 관계없이 출가에서 입적까지 모든 스님들에게 의료, 교육, 주택 등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를 행하여야 한다. 이제 종단 안에 복지원을 설립하고 그 산하에 정책기획 및 재정부, 주택, 의료, 연금 지원부 등을 두어야 한다. 종단 차원에서 마스터플랜을 짜고, 요양비, 치료비, 연금 등 수요를 추산하고 이에 맞게 안정적 재정을 확보한다.
복지를 반대할 스님은 없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재정이다. 종단에서 파악한 승려복지예산은 요양에 10억 원, 치료에 50억 원, 건강보험료에 150억 원, 연금보험료에 25억 원 등 235억 원이다. 그 정도의 재정 확보는 마음만 내고 합의만 하면 현재 실정으로도 가능하다. 일단 총무원에서 전체 예산 중 일정 정도 비율(30%)을 복지예산으로 배정하고 종회는 이를 제도화한다. 특히, 문화재사찰 관람료는 53%는 문화재관리를 위한 사찰의 경상운영비로, 17%는 중앙분담금(이중 5%는 교육분담금)으로, 30%는 사찰 목적사업비로 사용되게 되어 있다. 이중 53%의 경상운영비 중의 일부를 소속 교구의 승려복지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현재 사찰 관람료의 3%를 복지 비용으로 배정하고 있는데 이는 너무 적다. 관람료의 51%를 해당 사찰에, 49%를 종단에 배정하여, 그 중 12%는 현행대로 교육예산으로 삼고 나머지 37%는 과감하게 복지비용으로 삼는다(40억 원). 여기에 귀속 사유재산으로 행하는 수익사업의 수익금(50억 원∼80억원), 교구 특별납부금(10억), 재적승 자기분담금(14,122*3만원*12월=50억 원), 재가자의 희사금(10억 원), 중앙종단 일반회계(50억), 귀속 사유재산의 이자를 더하면, 210∼240억 원 정도의 재정 확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번 기회에 ‘사유재산의 종단귀속’을 단행하여 이를 종자돈으로 삼아 종단 차원의 요양원과 병원을 짓고 수익사업을 하여야 한다.
노스님들이 대부분 교구 본사에서 머물며 수행하기를 원하는 만큼, 교구 본사와 협력하여 교구 본사 안에 공동주거 및 수행처를 짓는다. 남는 돈은 적립하여 이자를 복지비용으로 전용한다.
재정을 확보한 후 이에 맞게 복지 마스터플랜을 짠다. 스웨덴의 복지 구호가 “요람에서 무덤까지”였다. 이를 차용하면, “출가에서 입적”까지 스님들에 대한 복지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종단의 복지원에서 이를 추진하되, 복지 전문가와 스님이 공동으로 기획한다.
기존의 연구 및 조사를 보면, 강원과 선방 수좌 수님들의 70% 이상이 주거할 공간이 없다. 65.4%의 스님들이 노후문제를 염려하고, 생활거처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스님들이 68%다. 32.1%가 사설암자에 거주한다. 노스님들 가운데 만성질환과 퇴행성질환은 22.5%, 위장질환은 20.0%, 치과질환은 17.5%, 심혈관질환은 7.5%가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복지의 방향은 분명하다. 우선 질병 치료비는 무조건 전액 지원하는 체계를 확립한다. 거주문제의 경우 스님들이 거처할 주거 및 수행공간을 마련한다. 여기엔 간단한 진료와 요양을 겸할 수 있도록 시설과 인력을 확보한다. 기존에 이미 설립된 곳은 증축 및 시설의 현대화를 지원한다. 덕숭문중은 수덕사, 범어문중은 해인사, 백파문중은 백양사, 탄허문중은 월정사 식으로 배정하면 문중과 교구, 지역별 안배가 가능할 것이다.
이미 복지를 잘 시행하고 있는 곳도 많다. 용주사의 경우 전강문도회를 중심으로 승가노후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승랍, 20년, 25년, 30년 이상의 스님들에게 매달 30만 원, 40만 원, 50만 원의 수행연금을 지급한다. 병이 들면 입원비 전액을 지원한다. 20명의 문중 스님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재정은 말사에서 소임을 맡은 스님들이 갹출하여 충당하는 데 약 3억 원의 기금을 조성한다. 월정사도 2억 4천만 원의 수행연금과 8억 원의 장학금을 지급한다.(이용권, 「승가노후복지운영의 사례 검토」) 종단에서 각 문중과 사찰별로 자구적인 복지책을 조사하고, 이를 통합하되, 상호협력시스템을 확보하여 중앙의 복지와 각 문중 및 지역 사찰의 복지를 원활하게 결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볼 때, 기능주의 복지 이념보다는 협동주의 이념에 부합하는 ‘공제조합 방식’의 제도로 발전시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계종 전체 스님들을 회원(조합원)으로 하는 사단법인 형식의 공제회로 발전시켜서 장기적으로는 직능별 공제회와 같이 안정적인 운영을 통해 승가복지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용권, 「승가노후복지운영의 사례 검토」)
한 달에 3만 내외의 조합비를 내면 누구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승려복지 및 보험체계를 정립하면 된다. 아울러 개인의 노력도 수반되어야 한다. 큰스님이 입적하면 30년 먹을 것 지고 간다는 말이 회자된다. 호화장례를 치르느라 엄청난 재정이 소요된다는 말이다. 그런 장례문화를 일소하고 그 비용을 생전에 스님들이 위의를 갖추고 수행할 수 있도록 복지비용으로 충당하는 것이 옳다. 공양은 평등하게 하는 것이 승단의 정신과 부합한다. 모든 스님들에 대하여 일정 금액의 기본 소득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제도 바람직한 대안이다.(이상 <법보신문>, ‘이도흠의 신불교유신론-58, 59, 60합치며 약간 수정함)
첫댓글 조계종 스님이라면 개인주머니를 찰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공찰은 본사 주지의 손에 운영이 좌지우지되고 개인절은 소유자의 돈벌이에 급급하니 개인절을 가지지 못한 스님들의 노후나 일상이 피폐할 수밖에 없지요
재정과 수행을 분리하여 사찰운영위에서 재가 불자들이 재정을 담당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