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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회 봄나들이 상주를 다녀오다. 2017.4.13 비교적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자부하는 필자지만 이번 오상회 봄나들이 장소인 상주는 처음 가보는 신천지이다. 특히나 필자가 태어난 출생지가 상주임에 남에게 말하기조차 부끄럽다. 그러나 한편 설레고 감개무량한 것도 사실이다. 이번 여행은 정종순동문이 지역모임에서 여러차례 임진왜란의 명장 정기룡장군에 관한 얘기와 그의 묘소와 사당이 상주에 있다는 데에서 비롯 되었다. 한마디로 정기룡 장군 유적지를 탐방하자는 것이었다. 필자도 소설 등(예,문용주의 선조대왕과 성웅 이순신3권)에서 "바다의 이순신,육지의 정기룡"이라는 별칭을 듣고 설마하는 기분으로 읽었는데 정말 놀라운 내용들이 많았다. 정기룡장군은 교과서에도 드라마나에서도 소개된바가 없어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숨겨진 국보급 인사이다. 자세한 얘기는 또 하기로 하고 -- 40명 버스에 만차를 이루고 7시30분 압구정을 떠난 버스는 동천역 정류장에서 분당,수지 동문들을 마저 태우고 일로 경북 상주를 향해 달린다. 행사를 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숨은 노력이 많다. 사전답사는 횡정길회장,이남수사무총장,조상희전회장,석풍장동문이 다녀오면서 시간체크와 답사할 목적지,식당예약 동영상자료화면 촬영등 빈틈없는 준비를 했다. 지역모임마다 피알하여 44명의 참가인원을 40명으로 자르는데 애(?)를 먹었다고 총장은 느스레를 떤다. 우재 석풍장동문은 한달반 미국에 다녀왔는데 미국서 동영상을 만들어 왔나보다 라고 그의 노고에 찬사 일색이다. 버스에서 미리 준비한 김밥(이장원 강상회장 스폰서)에 바나나,과자봉지 그리고 두 여학생 강춘구, 장윤자동문이 준비한 머리만한 오렌지를 한개씩 나누어 준다. 식사를 마치자. 황회장 인사에 이어 우재가 만든 동영상으로 오늘 가볼 여행지를 소개하고 또 정기룡장군에 관한 방송특집도 틀어주었다. 정기룡장군에 관해 신도비를 읽고 해설 팜프렛을 만든 정종순동문이 해박한 당시의 역사상황과 정기룡장군의 활약상과 공적에 관해 상세하게 설명이 이어졌다. 대부분 정기룡장군에 대해서 처음 듣는 회원도 많아 신기하기만 하다는 표정들이다.필자기 읽은 어느 책자보다도 임란의 상황을 잘 요약 설명한 명문의 글이었다. 그의 대단한 노력과 실력에 감탄의 념을 금치 못하겠다. 우리 동문의 자랑이다. 여주휴게소에서 30분간 휴식시간을 가졌다. 커피를 한잔씩 나누고- 모처럼 친구들과 편한 버스를 타고 야외나들이를 나온 노 신사들은 즐겁기만 하다. 옹기종기 모여 화제가 무엇인지 웃고 떠든다. 버스를 타니 이번엔 서영교동문이 조용헌 동문의 선조 할머니 조대비와 풍양조씨, 조용헌 할아버지의 상주 집과 가문에 관해서 조용헌을 대신해 친구집안 자랑을 하니 조용헌은 쑥스럽다고 그만 하란다. 조용헌동문이 상주출신으로 상주얘기를 추가했다. 상주에 관해 가볼만한 곳(경천대,낙동보,도남서원--)도 소개했다. 유명한 삼백(쌀,누에고치와 명주,곶감)에 대한 이야기도-그리고 낙동강이라는 이름에 대한 설명이 머리에 각인되었다. 상주의 옛 이름은 낙양이라는데 낙양의 동쪽에 흐르는 강이 낙동강이니 곧 상주의 동쪽강이 낙동강이라며 낙동강700리라는 것도 상주를 기점으로 한다는 것. 상주는 사벌국이던 것이 신라시대는 사벌주 고려에서는 12목의 하나인 상주목으로 그리고 조선조 태종 때는 경상도 감영을 상주목에 두기도 했다고. 늘 그러하듯 서영교동문은 사회도 하고 준비한 앙드레류의 남미 브라질 상파울로편을 틀어 여행을 즐겁게 하였다. 상경할 때는 프로야구로 대신하겠다고- 상주 정기룡장군 묘소와 비각 그리고 사당 충의사(忠毅祠) 중부고속도로에서 상주로 들면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정기룡장군이 묻혀 있는 묘소와 신도비이다. 가는 길에 버스에서 내다보이는 전사벌왕릉과 상산박씨 사당이 보인다. 먼저 정기룡장군에 참배를 하기로 하고 전원이 묘소 앞에서 술과 포를 진설하고 해설자의 구호로 국궁배례를 하였다. 이어 정종순 동문이 대표로 준비해온 축문을 읽었다. 정기룡장군묘 위쪽에는 모친묘 그리고 아래쪽에는 아들내외의 묘소가 있었다. 신도비 앞에서 정기룡장군의 임진란때의 활약과 공훈에 대해 해설사가 열심히 설명한다. 공훈록에 오르지 못한 것은 당시 당파사움으로 무당파인 정장군에게 불리했던 이유란다. 씁쓸하기 그지없다. 여기서 상주의 개요와 정기룡장군에 관해 요약해 본다.
신도비는 1700년(숙종26) 송시열 선생이 비문을 지어 비 높이 3.7m크기로 건립하였다. 해설사에게 여러가지 질문도 하고 유족들의 근황도 물어보았다. 좀더 적극적으로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진입로도 넓히고 했으면 좋겠다 생각했으나 잘 진척되지 않는 이유가 있단다. 차로 근처에 있는 사당인 충의사를 구경하였다. 정면에 정기룡장군의 위패외 영정이 모셔져 있었다. 유물전시관에는 충의공 시호 교지(보물 제669호)를 비롯 조복에 사용하던 허리띠인 옥대와 홀도 전시되어 있었다. 관직 제수받을 때의 교지가 전시되어 있고 역시 보물인 신패도 볼 수 있었다. 입구쪽에는 그림 한점이 눈길을 끌었다. 정기룡 장군이 조경방어사를 구출해 말에 태워 달리는 모습니다. 충의사 관람을 마치고 다음 목표지인 경천대쪽으로 갔다. 청석골식당의 버섯전골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 않는가! 우선 예약된 식당에서 식사를 한 다음 경천대를 구경하는 순서이다. 경천대 입구의 청석골식당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표메뉴인 버섯전골로 주문한 상태다. 대형식당인데 주인아주머니가 서비스가 좋다. 전골외에 나물류 반찬이 신선하고 맛있다. 특히 곶감으로 만든 장아찌,세발나물,냉이무침,쑥튀김,파김치 등 무한공급이다. 사무총장이 엄선하여 준비한 칠레산 와인 모리나의 맛도 좋아 인기다. 오늘 점심은 상주출신 조용헌,서영교,박희소,그리고 필자도 영광스럽게 스폰서 대열에 끼였다. 식사후 맛있었다는 평들에 기분이 좋다. 옆자리 조병훈동문이 식당주인께 뭐라고 하니 매실원액을 얻어 마실 수 있었다. 배가 부르니 자연 밖으로 나온다. 주변은 어린이 놀이장으로 귀신의 집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고 바이킹 등 놀이기구에 소풍온 초등학생들이 많다. 경천대(擎天臺) 한시간 예정으로 경천대 구경에 나섰다. 경천대는 수려한 경관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의 명장 정기룡 장군이 젊었을 때 이곳에서 용마(龍馬)를 타고 수련을 하였다는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낙동강 1,300여리 물길중 경관이 가장 아름답다는 “낙동강 제1경”의 칭송을 받아 온 곳으로 하늘이 만들었다 하여 일명 자천대(自天臺)로 불리는 경천대는 상주에서 절경으로 꼽히는 관광지이다. 가는 입구에 시원한 폭포수가 있고 그 앞에 정기룡장군동상과 장군의 신마가 관광객이 타 보기를 유혹한다. 신마 앞에서 단체사진을 남긴다. 길따라 오르막 길을 오르니 낙동강쪽 계단길로 유인된다. 무우정(無雩亭)으로 오른다.절벽 위 조그마한 정자가 무우정이다. 병자호란 후 소현세자‧ 봉림대군‧ 인평대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갈 때 호종 한 우담 채득기(雩潭 蔡得沂)가 훗날 모든 관직을 마다하고 은거하던 곳이란다. 무우정에서 강을 내다보는 경치가 절경이다. 강가에서 보이는 기암들이 시선을 고정시킨다. 경천대 앞 벌판을 휘감는 물길은 안동의 하회마을과 예천의 회룡포와 함께 낙동강의 3회(三回)라 불린다. 무우정 반대편 길건너 경천전망대 표지판이 유혹한다. 이윤달,김천기,이윤우,김남중 등 몇몇이 올라가 보고 싶단다. 필자도 동행했다. 사무총장에게 30분 시간을 얻어 나무계단길을 숨을 헐떡이며 오른다. 159m높이의 무지산 전망대는 3층 건물로 세워져 있다. 주변은 많은 돌탑이 아름답게 서 있고- 전망대 계단을 올라 경천전망대에서 바라다 보이는 경치는 말로 표현키 어려운 가경이 펼쳐진다. 시간 절약을 위해 지름길로 내려온다. 하산 길에는 맨발로 걷도록 만든 걷기길도 있고 먹는 수도물도 비치되어 목마른 입술을 적시게 한다. 상주보 걷기 당초 상주박물관과 자전거박물관을 관람할 예정이었으나 마침 이날 상주박물관은 휴관이라 하고 자전거박물관 보다는 상주보를 가보자는 상주출신동문들의 의견을 따라 상주보로 향했다. 이명박 정부때 말도 많았던 4대강 사업의 하나인 낙동강 상주보에 도착했다. 웅장한 건축물이 세동 서 있고 긴 다리가 멀리까지 뻗어 있다. 총 1845억원이 투입된 낙동강33공구의 상주보는 연장 335m, 높이 11m, 저수용량 2870만톤으로 전도식가동보를 설치해 홍수위 저감효과와 더불어 관리 수위조절이 쉽고 홍수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한다. 시원하게 뚤린 다리위를 모두 걷기 시작한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 모자를 잡고 열심히 걷는다. 끝까지 걷기에는 무리라 도중에 돌아섰다. 다리 아래에는 엄청난 수량의 물이 소리를 내며 흘러가고 있다. 자전거 매니아들은 전국 자전거여행을 즐긴다. 그 중에서도 낙동강따라 달리는 자전거여행은 큰 인기를 얻고 있단다. 상주 인근은 낙정나루,경천경,삼강주막과 노목,상주보 등 명소가 있다. 삼강주막과 노목 올라오는 길에 예천 삼강주막을 들리기로 했다. 어차피 점심후 상경전에 막걸리와 먹거리는 여행의 스케쥴에 늘 포함되었기에 황정길회장의 아이디어를 살려 이왕이면 이름난 관광지가 된 삼강주막을 택했단다. 시간이 많다면 예천 회룡포,장안사도 구경할만한 곳이나 오늘은 삼강주막만-- 삼강주막으로 대형버스가 진입로 공사로 들어갈수가 없어 한참을 지체했다. 진입로 공사와 인근에 대규모의 예천삼강문화단지를 조성하고 있었다. 삼강주막까지 5분정도 걸어서 들어갔다. 먼저온 일행들이 큰 평상을 먼저 점유하고 있었다. 대부분 일행들은 큰 방으로 들어가고 일부는 평상에 앉아서 막걸리와 안주를 즐긴다. 필자는 여행으로 여러차례 이곳을 왔는데 전과는 달리 주모가 없고 메뉴별로 주문하여 셀프로 오봉을 나르고 자리잡아 먹어야 한다고 한다. 주모한상의 메뉴를 보니 주모1은 막걸리에 부추전과 배추전 안주이다.주모2는 막걸리 한 주전자와 부추전,도토리묵,두부-주모3 메뉴는 부추전 대신 배추전이다. 경상도 음식이라 서울사람들은 배추전을 처음 먹어본단다. 삼강주막은 경상북도 민속자료로 등록된 것인데 삼강나루를 드나드는 나들이객들에게 허기를 면하게 해주고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때로는 시인묵객들이 이용했던 건물이다. 1900년 경 지은 이 주막건물은 규모가 작지만 기능을 충실히 하도록 평면구성을 잘 이루어 건축역사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삼강나루터는 낙동강,내성천,금천이 합류하는 수륙교통의 요충지로 예로부터 문경새재를 넘어 한양으로 가려는 선비나 보부상들이 낙동강을 건너야 하기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통수단이었다. 1980년 큰 교량이 설치되면서 나룻터 역할은 없어졌고 따라서 주막의 기능도 없어졌다. 그러나 나룻배는 청소년체험학습장으로 2013년부터 활용하고 있고 삼강주막도 예천군에서 인수하여 직접 주모를 공모하여 운영해 왔다. 주모공모에는 지원자가 많아 엄청난 경쟁률이었다고 한다. 주방에 들어가 요리사 아주머니와 대화를 해보니 지금은 주모 제도가 없어지고 삼강주막 운영모임(부녀회)을 구성하여 그들이 운영하는데 홍보와 식당운영을 맡아 한단다. 이날도 주방안에는 남자1명과 여성분 4명이 일을 하고 있었다. 막걸리와 파전,부추전,배추전과 도토리묵,두부를 안주로 약간 시장기를 느끼던 회원들에게 취기가 높아져 방안에서는 젓가락 두드리는 소리와 정말 오랫만에 들어보는 명가수들의 유행가소리가 바깥까지 들린다. 마음 터놓고 옛날 학창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삼강주막 건물들을 돌아본다. 사공숙소,보부상숙소,삼강주막 그리고 1900년에 문화재로 지정,보존하는 옛모습의 주막도 안내설명판과 함께 단정한 모습으로 서 있다. 강쪽으로 가니 450년된 노 거목이 역사을 나이테에 담고 묵묵히 서 있다. 회화나무이다. 그 옆에는 엄청 큰 가시가 달린 두그루 나무가 있었는데 물어보니 시무나무란다. 또 회화나무 아래 큰 돌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이름하여 들돌이란고. 이는 무게가 제각기 다른 둥근 돌들인데 무게를 들수 있는 실력을 가늠하는 수단으로 일하는 품값을 정했다고 한다. 황회장이 꼭 봐야할 곳이 있다고 회원들을 안내한다. 주막 안 부엌안에 예전 주모가 한글도 모르고 숫자도 모르니 외상값을 작대기 금으로 그어 표시한 기록을 유리판으로 보호하고 있었다. 제비가 오랫만에 보여 주막 처마안을 들여다 보았더니 정겨운 제비집과 새끼가 어미의 모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동문이 기둥에 걸린 酒 자 간판을 보면서 우스개 소리를 한다. 아이가 엄마보고 저 자가 무슨자인지 물었다. 엄마가 너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자지-- 그러니 그럼 s인가? 하더라고--배꼽을 잡는다. 예정시간보다 한시간이 늦어졌다고 출발하잔다. 어느때보다 얼큰한 술기운인지 모두들 상기된 얼굴로 기분이 고조되어 있다. 이제 상경길에 이천에서 저녁을 먹고 귀가하는 순서만 남았다. 이천쌀밥집 청목은 이제 나들이 때마다 단골집이 되었다. 방3개를 차지하며 저녁상을 받았다. 배가 불러 아예 들어갈 배가 없다더니 한그릇 뚝딱한 친구들이 많다. 모처럼 먹어보는 쌀밥이 맛있기 마련이다. 기막히게 좋은 봄날씨에 곳곳에 꽃들이 만개하여 여행객들을 들뜨게 하는 봄나들이- 특히 다정했던 대학 동기 친구들과의 여행이니 하루종일 엔돌핀이 마구 솟아 올랐을 거라 생각된다. 상경하면서는 프로야구 삼성과 한화의 경기를 보면서 졸기도 하고 옆친구들과 조용히 얘기를 나누기도 하면서 귀경길에 올랐다. 죽전역에서 경기남도 회원들은 서울 양반들과 하루간의 아쉬운 작별을 악수로 나누고 하차하였다. 교대역에서 맥주한잔 할사람 나를 따르라고 사무총장이 꼬신다. 종군기자는 끝까지 취재를 해야하지만 교대까진 따라가진 못했다. 오랫만에 보는 친구들 특히 태국에서 온 이상익,두 여학생 장윤자,강춘구 동문-박희소,늘 짝을 이루는 신광근과 최광현 동문도 반가웠다. 참가한 모든 회원들 수고 많았고 회장단 특히 노고가 많았습니다. 준비에,진행에 온 신경을 쏟으며 모두가 만족하는 여행을 만들어 주었으니--또 정종순동문께 감사를 드립니다. 점심을 제공한 상주출신 동문들도- 요즘 사진 전문가가 된 이인희 문화부장이 스냅사진 올릴 준비를 하고 있고, 우재 석풍장 동문은 우리일행의 움직임과 아름다운 경치 문화자료를 찍어 동영상을 제작 할 것이기에, 필자는 글과 일부 필요한 사진으로 여행후기를 게재합니다. 참가한 동문들은 회고 차원에서, 사정으로 참가치 못한 동문들도 기록글과 사진으로 여행에 동참한 기분을 느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주휴게소에서 정기룡장군 유적탐방 상주 도착 해설사를 만나다. 정기룡장군 신도비각 목례로 국궁배례 정종순 동문의 축문 낭독 정기룡장군 묘소에 많이 피어있던 "큰구슬봉이"
묘소로 가는 길에 배꽃이 한창이다/충의사 입간판 충의문을 지나 충열문-우측문으로 들고 좌측문으로 나온다. 충의사에는 정기룡장군의 위패와 영정이 모셔져 있다. 충의사 앞에서 사당안에는 정기룡장군의 위패와 영정이- 예를 갖추다 황회장이 방명록에 참배함을 기록하고 유물전시관 영정과 교지(경상우도수군절도사 삼도통제사)
상주목사/상주목판관 교지 보물 제669호 신패 금산전투에서 포로가 된 조경 경상방어사의 구출장면 정종순 동문의 편저 신도비명으로 본 정기룡장군 책자 용포다락논단지가 남해보다 좋다고 관광유치- 전사벌왕릉을 관리하는 상산박씨의 사당 경천대(擎天臺) 경천대 관광지 점심식사 황회장의 건배/상주! 정기룡! 사무총장의 와인봉사-칠레산 와인 맛 좋은 평판 이장원 강상회장의 열창-상주아리랑 경천대 입구 정기룡장군 기마상과 신마 신마를 타고 기마상 앞에서
경천대의 무우정
경천대 우담송 389세 경천전망대를 오르면서 159m의 무지산 정상에 있는 경천전망대 전시관 내부 무지산 경천전망대에세 본 절경 낙동강물이 상주벌판을 휘감고 있다. 전망대 앞에서 멘발로 걷기 상주보 상주보 상주보에서 걷기 상주보에서 낙동강종주 자전거길 상주보 수력발전소 안내 삼강주막 삼강문화단지 조성공사 상강주막 차림표
마당/사공숙소/삼강주막/부엌 갈대로 둘러친 통시(화장실) 삼강나루터 유래 평상에서 안방에서도 삼강주막 다리 강둑에서 본 삼강주막 수령450년 보호수 회화나무 들돌
부억과 부억 한쪽에 외상을 금으로 표시한 장부를 유리를 덮어 보존 주막 안내등 버스에서 본 일몰 풍경 청목에서 석식 감사합니다. |
첫댓글 미전이 없으면,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두고두고 남을 명 여행기 .감사합니다.
컨디션 완전 회복되었다니 안심이고.역시 우당의 격려 있으시니 힘이 납니다.
참말로 멋 있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운상 사무총장님의 헌신적인 봉사정신이 빛을 발휘하였습니다.큰수고 하셨어요.
역시 종군기자 미전입니다. 감사합니다.
강초로 시작된 상주나들이 보람 컸습니다. 수고 많았구요-감사합니다.
미전형의 여행후기 감탄을 금할수없습니다. 늦게 읽어서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황회장님 그야말로 제가 답신 늦어 죄송합니다.수고 너무 많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