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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새겨라! 본부간부회와 함께②
상승세 속에서
‘본부간부회는 가장 중요한 총결산’
이케다(池田) 선생님은 도다(戶田) 선생님이 외친 이 말을 가슴에 품고 매번 본부간부회에 온 힘을 기울였다. ‘승리의 마디’를 새기는 본부간부회를 기축으로 하여 광선유포 일체를 지휘했다.
이번 호에서는 제3대 회장에 취임한 뒤 개최한 ‘제1회’ 본부간부회부터 상승세 속에 맞이한 ‘제100’회 본부간부회를 통해 광포를 위한 스승의 투쟁을 따라가 본다.
본부간부회는
은사의 혼백이 살아 숨쉬는 회합이다
서원하는 자리, 출발하는 의식
“학회는 공중분해 될 것이다” 도다 선생님이 서거한 뒤, 세간에서는 학회의 앞날에 야유를 퍼부었다. 그러나 학회에는 불이(不二)의 제자가 있었다. 음으로 양으로 학회를 지키면서 미래의 지표를 제시하고, 끊임없이 멤버를 격려하는 이케다 선생님이 있었다.
이체동심(異體同心)의 단결로 나아가는 학회는 악의에 찬 중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발전했다. 활동의 큰 기둥이 된 것은 매번 개최하는 본부간부회였다.
훗날, 이케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달마다 열리는 본부간부회는 도다 선생님이 혼백을 남기신 학회의 전진을 위한 리듬이다. 달마다 이 회합을 마디로 삼아 개인도, 지부와 방면을 포함한 조직도 확실하게 향상하는 궤적을 새겼다.”
이케다 선생님은 은사의 혼백이 살아 숨쉬는 본부간부회를 누구보다 소중하고 중요하게 여기며 혼신의 힘을 다해 개최했다. 이케다 선생님에게 본부간부회는 단순히 ‘의례적인 행사’가 아니었다. 은사에게 서원하는 자리이자 승리를 보고하는 숭고한 의식이었다.
‘제1회’ 본부간부회
1960년 5월 27일, 도쿄 다이토체육관에는 홍교, 확대를 위해 꿋꿋이 달린 동지 대표가 기쁜 마음으로 모였다.
이케다 선생님이 제3대 회장에 취임하고 처음 개최한 본부간부회다. 이 본부간부회를 ‘제1회’로 하여 광포의 발걸음을 거듭했다.
이케다 선생님이 직접 신임 지부장 대표에게 지부기를 수여했다. 엄숙한 장면을 지켜보던 참석자들에게도 청신한 결의가 넘쳤다.
인사에 나선 간부가 다시 한번 본부간부회가 지닌 의의를 말했다.
“오늘은 회장 취임과 더불어 출범하는 본부간부회입니다.
광선유포의 도상에는 온갖 어려움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이케다 선생님이 제시하신 지침을 성실히 실천하고 날마다 본부간부회를 이정표로 삼아 즐겁게 활기차게 환희 찬 모습으로 모여 나아간다면 광선유포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찬동하는 박수가 울려 퍼졌다. 간부인사에 이어 이케다 선생님이 지도했다. 선생님은 지난 한달 간 4만 5000세대의 절복을 달성한 데에 감사한 마음을 표하고 힘주어 말했다.
“은사 도다 조세이 선생님이 회장에 취임하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회원은 모두 어본존의 대공덕을 받아 행복해져아 합니다. 절복전에 여러가지 일이 생기리라 생각되지만, 모두 내가 짊어질 테니 안심하고, 올곧게 불도수행에 용약하며 나아가세요.’ 하고 지도하신 말씀이 지금도 뇌리에 새겨져 있습니다.
저도 모든 책임을 지고 일어서겠습니다. 여러분은 끝까지 안심하고 순수하게 신심 수행하고 절복에 힘쓰기를 거듭 부탁드립니다.”
선생님의 따뜻하고 힘찬 목소리에 참석자는 기쁨과 결의에 찬 박수를 보냈다. 이어서 선생님은 리더의 자각을 말했다.
“지구부장과 반장이 단결해 강성한 신심을 실천하여 공덕이 넘치고, 지도력을 발휘한다면 학회는 영원히 번영합니다. 그리고 회원님들에게 ‘안심하고 따라오세요.’라고 하면서 나아가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쪼록 리더부터 강성한 신심과 끝까지 대공덕을 받는 생활, 많은 사람을 유유하게 친절하게 이해시킬 수 있는 지도력을 기르기 바랍니다.”
모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끝으로 선생님은 “다음 달 간부회에는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만납시다.” 하고 이야기를 끝맺었다.
간담형식의 지도
그 뒤, 이케다 선생님은 달마다 열린 본부간부회에 참석했다. 선생님은 일본 각지를 뛰어다니고, 해외를 방문하는 속에도 반드시 본부간부회에 참석해 동지에게 ‘다음 한달’의 목표와 희망의 지침을 보냈다.
1968년 5월에 100회 본부간부회를 맞았다. 그동안 임시 본부간부회도 수차례 개최했다. 당시는 아직 영상중계는 물론 음성중계도 없던 시절이다.
각지에서 온 벗은 ‘내 사명의 무대에서 활약하는 동지에게 이케다 선생님의 지도와 학회의 숨결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불태우면서 기쁜 마음으로 광포의 스승 슬하에 모였다.
1회부터 100회까지 8년 동안 학회는 상승기류를 타고 크게 약진했다. 홍교, 확대를 크게 추진해 세대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그런 속에서 본부간부회는 학회의 약진을 지탱하는 ‘기둥’ 역할을 했다.
회합 내용을 살펴보면, 조직개편과 확충에 관한 발표, 인사임명, 절복성과 보고, 4부 간부의 경과보고와 인사, 앞으로의 전망 그리고 이케다 선생님 지도 등 중요한 연락이나 보고 등 참으로 학회의 핵심이 되는 정보를 발표하는 가장 중요한 자리이다.
이케다 선생님은 성대하게 개최한 회합에서 간결하고 명료하게 지도를 거듭했다. 각지에서 온 대표 간부가 참석하는 경우도 있어, 지도에서 다음 투쟁의 방향을 제시할 뿐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제안해 간담형식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예를 들어 제2회(1960년 6월) 본부간부회에서는 “8월까지는 절복을 추진하지만 9월은 체육대회와 지구총회도 있기에 회원의 신심지도를 근본으로 하고, 절복성과는 발표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하고 참석자에게 물었다.
<당시 이야기> 하키야마 에이코 씨
이케다 선생님이 회장에 취임하시고 선생님을 중심으로 본부간부회를 개최하게 되면서 더한층 리듬 있게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한 달을 마디로 꿋꿋이 절복하고 또 다음 한 달을 향해 출발한다. 모두 ‘본부간부회가 하나의 목표’라고 의식했습니다.
참석한 사람들이 조직의 제일선에 내용을 전하는 큰 흐름이 생겨 본부간부회는 학회의 단결을 낳는 구심력의 역할도 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선생님이 참석자에게 의견을 물으면서 이야기를 진행하시는 행동에 모두 깊이 이해했습니다. ‘나도 학회간부다’ 하고 자각해 크게 경애를 열고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선생님은 직접 자신의 모습으로 간부의 바람직한 자세를 제시하셨습니다.
세계광포를 위한 포석
제2회(1960년 6월) 본부간부회에서는 선생님이 7월에 오키나와를, 10월에 미국을 방문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이야기> 구로야나기 아키라 씨
선생님은 이때 이미 세계광포를 위한 포석을 놓으셨습니다. 일본에 있는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군인과 결혼한 여성이나 미국에 건너간 여성을 파악해 격려하도록 손을 쓰셨습니다.
7월 중순에는 본부에 ‘해외담당부’를 발족해 저는 해외에 거주하는 멤버와 연계하고 세계 각지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또 ‘학회를 해외에 소개하는 책을 만들자’고 하셔서 불법용어 번역에 머리를 싸매면서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그렇게 완성한 ‘더 소카각카이’를 10월 초, 해외지도를 나서실 때 가지고 가셨습니다.
귀국 직후에 개최한 제6회(1960년 11월) 본부간부회에서는 해외부 발족을 발표하셨고. 세계광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지금 가지 않으면 늦다. 내년에 가도 된다면 서두르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가지 않으면 세계광포는 늦는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것은 선생님이 도다 선생님에게서 세계광포를 의탁 받은 젊은 날부터 품으신 구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절복정신을 지니고
신뢰받고 존경 받는 사람으로!
리더의 바람직한 모습
선생님은 본부간부회에서 늘 리더가 지닌 일념의 중요성과 바람직한 모습 등 리더의 신심을 강조했다. 본부간부회에 참석한 ‘한 사람’에서 광포의 파동은 퍼진다. 이것이 선생님의 확신이자 기대였다.
연간목표인 150만 세대 돌파를 발표한 제3회(1960년 7월) 본부간부회에서는 성훈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했다.
“불법의 방정식으로 보면 당연히 앞으로도 삼장사마(三障四魔)는 일어나겠지만, ‘현자(賢者)는 기뻐하고 우자(愚者)는 물러남이 이것이니라’(어서 1091쪽)는 성훈대로 어본존을 믿고 행복해지고 끝까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 창가학회의 사명입니다.
간부인 여러분은 어떤 일이 있어도 어본존의 심부름꾼으로서 공덕을 받고, 회원도 공덕을 받게 해야 합니다. 이 점을 자각하기 바랍니다.”
제4회(1960년 8월) 본부간부회에서는 각지에서 성황리에 개최한 체육대회를 소개하고, 많은 사람이 상찬한다고 말하면서 “진정한 학회원의 모습은 우리가 절복정신을 지니고, 신뢰받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겼을 때 투구 끈을 단단히 매라’를 구호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하고 염원했다
1960년을 마무리하는 제8회(12월) 본부간부회에서는 개인지도와 회합에 대한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신심지도를 할 때는 어본존의 절대적인 공덕을 확신하고, 정열적으로 꿋꿋이 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또 그 사람의 고민과 그 사람에 관한 일을 생각하면서 친절하게 구체적으로 이해할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지도해야 합니다.”
“우리 간부가 참석하는 회합은 불도수행이므로 엄격하고 진지한 것이 근본이지만 모든 회합을 즐겁게 재미있게, 매우 유익하게 늘 웃음이 끊이지 않는 회합을 내년에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개최하기 바랍니다.”
핵심적인 지도
선생님은 본부간부회에서 신심의 ‘핵심’을 알기 쉽게 말했다. 그 지도를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1961년 6월 제14회 본부간부회에서는 회원 세대가 200만을 돌파했다는 발표에 이어 이렇게 지도했다.
“어디까지나 창가학회는 신심 근본으로 순수하게 대성인 정신을 이어받아 그 정신을 끝까지 관철했으면 합니다. 따라서 신심지도를 할 때는 의연한 태도로 당당하게 순수한 신심으로 꿋꿋이 활동하기 바랍니다.”
1961년 9월 제17회 본부간부회에서는 ‘절복’의 실천에 관해 확신을 담아 지도했다.
“창가학회는 절복단체입니다. 절복은 니치렌(日蓮) 대성인의 금언입니다. 또 말법에 성불할 수 있는 유일한 불도수행입니다. 불도수행은 실천입니다.”
“따라서 창가학회에서 ‘절복’이라는 두 글자를 빼면 그 다음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누가 뭐라고 비판하든 생애 대성인의 제자로서 절복을 실천해야 합니다. 창가학회가 영원히 절복행으로 나아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1962년 1월 26일에 개최한 제21회 본부간부회는 전날인 25일, 오사카사건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맞은 회합이었다. 간부회에서는 공명정치연맹을 결성한 의의와 오사카사건의 경과보고에 이어 선생님이 힘차게 말했다.
“광선유포를 달성하는 도상에서 창가학회나 저 개인, 또 여러분 개인에게도 삼장사마와 삼류강적(三類强敵)이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성훈대로입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앞으로 많이 일어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일희일우(一喜一憂)하지 말고 어디까지나 어본존을 근본으로 당당하게 일생성불을 목표로 광선유포를 향해 매진하기 바랍니다.”
제1회부터 정확히 2년이 지난 제24회(1962년 4월) 본부간부회에서는 기원하는 자세를 지도했다.
“광선유포를 위한 행동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본존을 근본으로 아침저녁 풍부하게 근행하는 곳, 드높은 목소리로 제목을 부르는 곳에 모든 원천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주 도다 선생님이 말씀하셨지만 ‘살아있는 그 자체가 즐겁다’는 경애, 물심양면으로 생활상에서도 정신적으로도 행복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자신의 경애를 구축하기 위한 신심입니다. 따라서 조석근행을 철저히 하고, 제목도 착실히 불러 하루하루 활동과 생활이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는, 환희에 불타는 활동이고 지휘이기 바랍니다.
늘 신심을 근본으로 진심을 담아 태양처럼 밝게 명랑하게 모든 회합을 운영하기를 거듭 부탁합니다.”
훌륭한 세웅으로
학회의 리더는 신심 근본으로 사회에서 신뢰받는 힘을 길러야 한다. 선생님은 본부간부회에서 거듭 지도했다.
1963년 1월 제33회 본부간부회에서는 “얕은 것을 버리고 깊은 것을 따름은 장부(丈夫)의 마음이니라”(어서 509쪽) 하는 성훈 한 구절을 인용해 말했다.
“이 성훈을 생활상에 적용하면, 많은 종교와 사상이 있지만 단연코 올바른 인생을 살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후회 없이 신념에 찬 행동을 관철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니치렌 대성인이 말씀하신 묘법(妙法)을 수지해 이 사회에서, 세계에서 사람들을 위해 유유히 살아가는 것이 ‘장부의 마음’이라는 말씀이라고 배견됩니다.
각자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어본존을 근본으로 첫째도 둘째도 순수한 신심을 원천으로 즐겁게 활기차게 마음껏 학회활동과 사회활동을 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다음달(제34회)에서는 300만 세대를 달성한 위업을 언급하면서 확신을 담아 말했다.
“도다 선생님은 ‘창가학회는 민중을 구하는 투쟁이다’ ‘민중을 사랑하는 투쟁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창가학회는 300만 세대의 큰 교단이 되었지만 우리는 결코 우쭐대거나, 방심하지 말고, 광선유포를 목표로 대중의 편이 되어 대중과 서민에게 존경받고 사랑받는 간부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자 하는데 어떻습니까.”
제40회(1963년 8월)에서는 -.
“석존을 ‘세웅(世雄)’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영웅’이라고 쓰는데 ‘세’는 사회, ‘웅’은 힘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일체법은 개시불법(皆是佛法)이라고’(어서 563쪽)입니다. 불법을 위한 불법, 사회와 동떨어진 신심과 불법은 없습니다.
학회활동은 학회정신을 근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학회정신은 대성인의 정신을 나의 정신으로 삼아 광선유포에 매진하는 행동입니다. 용기와 확신을 갖고 꿋꿋이 싸우기 바랍니다.
그와 더불어 사회에서는 신심즉생활로 위대하고 힘 있는 사회인으로서 꿋꿋이 투쟁하기 바랍니다. 이것이 절복을 실천하는 자세라고 확신하기 바랍니다.”
“공덕과 이익이 있다고 해도 구계(九界)의 중생 속에서 나옵니다. 구계의 생활 속에서 나옵니다. 사회와 생활상에서 실증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 한 달을 향해 더욱 전진하자고 외쳤다.
“아무쪼록 달마다 열리는 간부회 때마다 중견간부인 여러분은 한 사람도 퇴전하지 않고 모든 학회원이 공덕을 받고, 함께 사회의 승리자가 되어 자녀와 후배가 엄연한 학회정신을 계승하도록 해야 합니다.
어본존의 대공덕을 받을 수 있는 순수한 학회정신이 담긴 신심의 참모습을 끝까지 전하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자손만대까지 그렇게 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자각하고 앞으로 한 달간 사이좋게 즐겁게 전진하지 않겠습니까.”
제51회(1964년 7월) 본부간부회에서는 다음 세대의 간부상을 언급했다.
“앞으로 학회간부와 사회 지도자는 교양이 없으면 훌륭한 지도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서민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 곳에 지도를 하러 가도, 누구를 만나도 유유하게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하고 무엇이라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화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군. 기품 있군. 교양이 있군’이라는 말을 듣는 간부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하루하루 강성한 신심을 근본으로 사회에서 최고의 지도자로서 걸맞게 성장하고 배우지 않겠습니까.”
주체자가 깨달음으로 일어셨을 때
용기가 솟구친다
청년육성
선생님은 본부간부회를 통해 청년육성에도 힘을 쏟았다. 본부간부회에 대한 의견을 듣고, 청년의 순수한 마음을 받아들여 식순에 채택하는 일도 있었다.
일개 참석자라기보다 주체자로서 본부간부회에 참석하는 것이 청년부의 사명이라고 훈도를 거듭했다.
이케다 선생님은 소설 <신.인간혁명>에 이렇게 썼다.
“자신이 모든 것을 짊어지는 주체자이자 책임자라는 자각으로 일어설 때 용기가 솟구친다. 힘이 샘솟는다. 영지(英智)가 솟아난다. 집념이 불타오른다.
또 그렇듯 용맹스럽고 과감하게 실천하는 속에서 생명이 약동하고 충실해지고 행복해진다.”(제22권 ‘신세기’)
<당시 이야기> 하지야 유미코 씨
본부간부회 전날은 반드시 이케다 선생님을 중심으로 협의하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참석했습니다. 제가 여자부장으로서 연단에 설 때는 협의에서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당신답게 하세요. 모든 여자부의 마음을 끌어당기세요” 하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선생님의 격려를 받고 회합 직전까지 끝까지 제목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본부간부회 본무대에서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훌륭합니다. 잘 했어요” 하고 따뜻하게 격려해주셨습니다. 저뿐 아니라 많은 청년부 멤버가 이처럼 선생님에게 격려를 받고 ‘선생님과 함께 본부간부회를 만들었다!’고 깊이 자각하고 사명감을 불태웠습니다.
또 선생님은 청년부의 감각을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당시는 여자부도 가장 중요한 회합이라는 마음으로 검은색 정장을 입고 본부간부회에 참석했는데 어느 날, 선생님이 “왜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나요? 좀더 밝게 입어도 좋지 않을까요.” 하고 웃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확실히 당시 회합의 분위기는 엄숙하고 조금 무거운 느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저와 여자부 간부 몇 명이 솔선해 밝은 옷을 입고 참석했습니다. 색만 바뀌었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기분이 밝아졌습니다. 그 뒤로 여자부의 옷차림이 조금씩 밝아지고 본부간부회의 분위기도 밝아졌습니다.
<당시 이야기> 미야카와 긴야 씨
스물세 살 때 세이쿄신문사에 입사해 취재1부에 배치되어 본부간부회 보도를 담당했습니다. 커다란 녹음기를 들고 가서 마이크를 단상에 올려놓고 무대 옆에서 취재했습니다. 회합이 끝난 뒤에는 서둘러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선생님의 생명을 담은 한마디 한마디는 달마다 개최하는 본부간부회의 혼이었습니다.
어느 날, 감사하게도 본부간부회 사회를 맡았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본부간부회는 광선유포를 위한 가장 중요한 회합이고, 모두 선생님 슬하에서 서원을 세우고 각지로 돌아가는 학회의 기축인 회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늘 긴장을 해서 제목을 부른 뒤 굳게 결의하고 참석했습니다.
음악국장을 한 경험을 살려 선생님이 학회가를 지휘하려고 부채를 손에 쥐시면 음악대 지휘자에게 신호를 보내는 역할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선생님의 호흡에 맞춰 첫 음을 연주할 수 있도록 온몸으로 들으려 했습니다. 선생님이 늘 “수고하십니다!” 하고 말을 건네주셔서 더욱 용기가 솟았습니다. 순간마다, 스승에게 호흡을 맞추어 온 힘을 다하는 자세를 온 몸으로 배웠습니다.
본부간부회를
다음 투쟁의 원동력으로 삼자
세심한지도
1965년 5월, 제61회 본부간부회에서 선생님은 본부간부회에 참석하는 자세를 지도했다.
“앞으로 본부간부회 등 달마다 한번 모일 때는 자유롭게 명랑하게 모이자고 특별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한달간 투쟁하고 간부회에 참석할 때에는 절복을 했든, 못했든 상관없이 모두 안심하고 모이기 바랍니다.
그리고 간부회에서는 서로 격려하고 활기차게 다음 한 달을 향한 투쟁을 시작합니다.
‘현당이세(現當二世)’의 원리를 이 간부회에 적용해, 광선유포의 그날까지 ‘간부회에 가면 자신감을 갖고 다음 한 달간 투쟁하는 원동력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간부회, 앞으로도 그러한 간부회로 하지 않겠습니까.”
광포 스승의 외침에 모두 활기차게 대답했다. 또 선생님은 매우 세심하게 지도를 거듭했다. 끊임없이 발전하는 학회에서 지시만이 아닌 인간다운 행동과 주위에 대한 배려를 친절하고 정중하게 말했다.
제64회 (1965년 8월) 본부간부회에서는 -.
“아무리 훌륭한 내용을 지도해도 그것만으로는 후배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간부가 말만 앞세울 뿐이라면 헛돌고 맙니다. 훌륭한 지도뿐 아니라 좀 더 세심한 부분이 계기가 되어 상대가 신심으로 일어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회합에 참석하지 못한 후배에게 엽서를 보내거나 전화를 한통 걸어줍니다. 그것으로 평생 크게 신심을 일으킨 사람도 있습니다. 길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5, 6분 동안의 짧은 시간이지만 세상사는 이야기를 하고, 신심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그것으로 백 마디의 훌륭한 지도 이상으로 몸으로 느끼고 분기한 사람도 많습니다.
간부는 어디까지나 모든 사람의 행복과 성장을 생각하면서 공평하게 묘법과 사회의 훌륭한 지도자답게, 장군답게 나아가기 바랍니다.”
제71회(1966년 3월) 본부간부회에서는 나날의 건투를 칭찬하고, 웃음 띤 얼굴로 부인부는 늘 명랑하게 여유를 갖고, 상쾌하게 가슴을 펴고 나아가는 간부가 되기를 염원했다.
남성에게는 “제대로 몸가짐도 하지 않은 채 개인지도와 절복을 해도 상대는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일부러 허영을 부린다거나 겉치레를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학회의 간부는 여유를 갖고 신심하고 활동하기 바랍니다. 잠이 부족해 어딘가 여유가 없는 사람은 큰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대군을 아우를 수 없습니다. 밤에는 충분히 자는 것이 도리입니다. 그리고 일할 때와 지도할 때, 또 회합 때는 생기 넘쳐야 합니다. 아무쪼록 리듬 바르게 생활하기 바랍니다.” 하고 염원했다.
상식 풍부하게
또 스스로 상식 풍부하게 행동해 안팎으로 신뢰받는 지도지로 성장하기를 몇 번이고 염원했다.
“학회활동은 어디까지나 상식에 맞게 행동하기 바랍니다. 특히 후배에게는 공손한 말씨로 대해야 합니다. 권위주의나 역직주의가 되어 으스댄다면 민중의 편이 아닙니다.
간부는 세심한 부분까지 두루 마음을 써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정리요원인 청년이 서 있으면 ‘수고하십니다’ 하고 잠깐이라도 말을 건넸으면 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사람일수록 따뜻하게 보살피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민중은 따라오지 않습니다. 반드시 막히고 맙니다.
모두 같은 인간이고 대성인의 자식이라는 점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공손한 말씨를 사용하기 바랍니다.”(1966년 8월, 제76회)
600만 세대를 달성한 1966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12월(제80회) 본부간부회에서는 “대장군이 약하면 따르는 자도 보람이 없으며, 활이 약하면 활줄은 느슨하고, 바람이 약하면 파도가 작음은 자연의 도리니라”(어서 1135쪽)는 성훈을 인용해 지도했다.
“여러분은 몇천명, 몇만명을 지휘하고 지도해야 하는 장군이자 지도자입니다. 아무쪼록 후배가 안심하고 ‘저 사람을 따라가자’고 말하는 지도자가 되기 바랍니다.
나아가 일반 시민들에게도 ‘저 사람의 말이 옳다. 저 사람의 생활은 본받을 만하다. 저 사람은 인품이 좋다’ 또 ‘저 사람은 창가학회 지부장이었군’ ‘부인부장이 있군’ 하는 말을 듣기 바랍니다.”
제95회(1967년 12월) 본부간부회에서는 ‘신심즉생활’의 모범적인 실천을 강조했다.
“앞으로 불경기가 될 양상이 보입니다. 사회는 냉엄합니다. 현실은 냉엄합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지지 않고 훌륭하게 생활을 번영시킬 수 있는 신심즉생활을 실천하기 바랍니다.
세법을 제외하고 불법은 없습니다. 불법을 제외하고 세법은 없습니다. 신심즉세법입니다. 따라서 이 원리를 제대로 알고 실천하여 원만하게, 올바르게, 강인하게 인생을 보내고 생활하는 사람이 성불할 수 있습니다. ‘신심하고 있으니까 생활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가 아닙니다.
사회는 냉엄하고, 거친 파도가 있습니다. 단순한 마음으로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불법은 결국 승부입니다. 사회의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꿋꿋이 승리하는 것이 광선유포가 일보전진하고, 각자 인간혁명이 일보전진하는 실증이 됩니다.”
한층 더 성장하여
명랑한 모습으로 모이자
마디가 된 제100회 본부간부회
제1회부터 지도의 변천을 살펴보면, 선생님은 시대와 학회의 상황에 맞추어 매우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지도를 하고자 유념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선생님의 지도를 기대하며 전국 각 지역에서 리더가 모였다. ‘본부간부회를 목표로 투쟁하고, 본부간부회에서 새롭게 출발한다’ ‘선생님 슬하에 모여 선생님 슬하에서 제일선으로 뛰어나간다’는 학회 승리의 리듬이 생기고 정착했다.
1968년 5월 30일, 100회를 기념하는 본부간부회를 니치다이강당에서 성대하게 열었다.
지도에 나선 선생님은 미래를 제시하듯 이렇게 말했다.
“오늘 참석한 여러분은 다음에는 200회 간부회 때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오늘보다 한층 더 성장하여 복운을 쌓고 건강한 모습으로 명랑하게 모이기 바랍니다.”
다음 큰 지표에 참석자의 눈이 빛났다. 지도에 이어서 기념합창을 했다. 모두 마음을 합쳐 노래를 끝마치자 선생님이 부채를 들고 일어섰다. 음악대 지휘자가 팔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꽃의 미나모토노 요시쓰네’ ‘위풍당당의 노래’의 웅장한 울림에 맞춰 선생님이 지휘했다. 젊은 독수리와 같은 용장한 춤을 동지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지켜봤다.
다음 목표를 향해!
학회는 이케다 선생님과 함께 본부간부회에서 새롭게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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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