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나의 행보, 나의 노래/ 정경자
인생은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정이라는 관계 속에 운명으로 시작된다. 우리 친정 어머니는 일제 강점기 때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급하게 결혼한 뒤 하루 만에 남편이 일본 사람에게 죽임을 당했다. 어머니는 딸만 5명 있는 넷째로 효심이 지극한 효녀였다. 그 길로 친정에 돌아와 부모님을 모시고 아들의 역할을 하고 싶어서 비단 장사를 하면서 돈을 모아서 이자 놀이를 하셨는데 많이 떼이고 실패했다. 내 아버지도 어머니에게 돈을 빌려서 주지 않는 사람 중에 한명이다. 아버지는 돈을 갚지 않고 어머니에게 2남 2녀의 씨를 뿌렸다. 그때 아버지는 결혼하여 자식을 둔 가장이었다.
저는 ‘작은 사람의 자식’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아버지의 철저한 버림 속에서 성장했다. 사남매 중 첫째인 저는 일곱 살 때 밤이 되어도 어머니가 일터에서 돌아오지 않아 저녁밥을 지어놓고 기다린 기억이 생생하다. 어머니께서 어찌나 기뻐하시는지 그 이후 나는 학교 공부보다는 어머니 일손을 돕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남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진학을 포기했다. 고된 농사일을 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복수의 칼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남자에 대한 불신이 커서 저를 좋아하는 남자 친구도 있었지만 내 마음은 굳게 닫쳐있었다. 무식해서 죽고 싶었다. 혼자 영어 첫걸음과 한문 공부를 하면서 언젠가는 검정고시라도 공부하여 대학을 졸업하여 저와 같이 못 배운 사람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는 꿈을 꾸며 미련 속에 살았다.
어느 날 저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첫 선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중매쟁이 말이 “처녀는 괜찮은데 작은 사람 자식이라는 것이 걸린다.” 는 것이었다.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머니 가슴에 또 다른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그 길로 남편을 찾아가 청원했다. 그때는 결혼해서 3개월을 살다가 실패하더라도 어머니 가슴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세탁업을 하였고 바로 결혼하여 저는 구멍가게 문구, 완구. 식품 장사를 하는 중 빚 보중으로 인해 남편의 건강이 악화되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남편의 성격과 행동 주기적으로 불만, 불평, 폭언을 하고 보약과 한약을 사서 복용하며 한동안 잠잠하다가 또 다시 반복적으로 이어졋다. 괴로운 나날 속에 이혼과 죽음을 생각하면서 기회만 보았다.
절망 속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독교를 선택하고 『성경』을 상고하는데 첫 말씀부터 완전히 감동되었다. “태초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創造,Created)하시니라”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 역사를 다스리시는 조물주이시고 그 외에는 그분이 만드신 피조물이라는 진리의 말씀은 충격이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을 만드시고 아담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셔서 남자에게 돕는 배필로 주셨다는 말씀을 순종하면서 여자의 위치를 알았다. 아버지와 남편을 원망하며 아버지에게는 복수의 칼을 남편에게는 미움으로 무시하며 죄악에 매여 종노릇하면서 지옥으로 가고 있는 나의 운명을 발견하며 회개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 승천하셔서 구원자가 되셨구나! 나의 모든 죄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위대한 희생에 감사하며 예수님만 생각하며 울보가 되었다. 나의 남은 때 이 은혜의 보답하는 삶을 살기로 서원했다. 인류 역사(歷史,History)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주전(主前) B.C이고 그분이 오신 후에는 주후(主後) A.D이다. 우리 인간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에는 B.C이고 만난 후에는 A.D 새 역사가 시작된다. 나의 A.D 참 역사의 삶이 1983년 27세에 시작되었다.
그때 구멍가게에 구색으로 이홉짜리 소주를 진열해 있었다. 여기서 술을 마시겠다는 손님이 있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술을 판다는 것이 양심의 걸려서 곧 바로 양품점으로 전환했다. 남편은 빚보증으로 건강이 더욱 악화되어 1년 만에 양품점을 접어야했다. 단간 방으로 이사하고 남편을 모시고 병원과 기도원을 전전긍긍했다. 저는 가족의 식생활을 위해 일해야 했는데 삼성생명에 다니는 지인이 보험을 권유하여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속적인 일이라 거절했다. 그 지인은 생명보험이란 무엇인가? 책을 주면서 깊이 생각해 보라고했다. 그 책을 읽으면서 그리스도으로서 합당한 직업인지 한달을 기도하며 결정했다. 제 2금융으로 저축과 보장으로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주고 일인은 만인을 위하여 만인은 일인을 위하는 상부 상조(相扶相助)의 정신과 사회보장 제도 기능까지 겸비하고 있다고 이해하고 1985년 5월에 입사하여 팀장으로 11년간 근무하다가 1996년에 퇴사했다.
1998년 IMF로 국가 경제 위기에 처해 있어 많은 기업들이 부도를 맞아 회사를 정리하는 시점에 저는 평소에 남양 알로에 제품을 선호하는 고객으로서 영업소를 개업했다. 많은 사람들은 저에게 사업을 하는 것은 지혜가 없다고 염려했다. 그러나 제 생각은 위기(危機)는 기회(機會)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나라가 어려울수록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여 경제를 살려야 된다고 생각했다.
알로에 효능은 현대 사회에 환경오염과 각종 공해로 인해 질병(疾病)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고대로부터 인정하는 ‘신비의 물질’을 과학 발달로 인해 발견하고 추출하여 특허 낸 제품과 장영실 상을 수상한 화장품은 신뢰하고 인정하는 좋은 제품이다. 이 사업을 통하여 무안에 있는 여성들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주고 건강과 아름다움을 관리하고 리드하는 일은 의미 있는 사업이었다. 그리고 군민을 위하여 한글, 한문, 영어 선생님들을 초빙하여 화, 목 오전 시간에 배움에 장도 열기도 했다. 그런대로 영업이 자리 잡고 있는데 남편의 건강 악화로 4년만 폐업했다.
남편의 빚보증으로 우리 집에 차압 통보를 받고 괴로운 나날이었다. 남편은 그 사람을 죽이고 자기도 죽겠다고 날마다 나를 힘들게 했다. 빚보증은 당신이 서놓고 말이다. 그래서 그 은행 담당자에게 그분이 갚았다고 남편에게 말해달라고 부탁하고 제가 그 빚을 안았다. 그 빚을 갚기 위해 다시 삼성생명에 입사했다. 2005년에 남동생이 기아자동차 노조 지부장으로 입사비리 권력 남용 죄로 입건되어 법원과 교도소 면회를 다니면서 온 세상이 온갖 불법과 비리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실감했다. 그래서 교도소를 마음에 품고 저의 간증을 써서 책으로 인생의 해답인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 구원의 선물, 영생의 소망을 온 천하 만민에게 전하는 것이 나의 소망이 되었다. 그리고 2007년 3월에 제일정보중학 입학하고 2011년 제일정보교등학교 2월 9일 졸업하는 날 남편은 우울증으로 운명했다.
인간의 제일 큰 충격은 부부간의 사별(死別)이다. 그때 저는 목대 국문과에 합격하여 등록금까지 납입했었다. 3월부터 개강인데 갈 수도 없고 안 갈수도 없고 어떻게 4년을 보냈는지? 이 글쓰기를 통해 회상해보니 아파 던 기억만 생각난다. 그리고 저의 말의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하서 최선을 다했다. 저의 A.D 삶 27세부터 지금까지 가시밭길과 광야생활 가운데 여성으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앞만 보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 가운데 감사하며 살아왔다. 2015년 4월에 나의 행보, 나의 노래를 신앙 시집『옥합』과 신앙 간증 책『운명의 만남과 전도의 사명』을 졸작이만 출간했다. 간혹 독자들이 저의 책을 읽고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확실하개 알았다고 인사할 때 삶의 의미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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