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주의 음악 8
모차르트 말년의 삶...
그리고 살리에리에 대한 변명....
어떨 때 궁금한 것이...모차르트 음악은 시간이 지날 수록 더 깊어지는데...
왜 말년으로 갈 수록 생활이 어려워지는가...
1787년 오스트리아 황제자 마리 앙트와네트의 오빠인 요제프 2세는 모차르트에게
궁정실내악 악장이라는 좀 특이한 직위를 내립니다.
악장도 아니고 부악장도 아니고...좀....
약간의 의무와 약간의 보수를 가진 이 직위는 모차르트 음악을 아끼던 요제프 2세가
프라하 공연후 혹시...빈을 떠나지 않을까..걱정되어 내려준 자리이기도 하고...
그냥 유명 작곡가가 아닌..황실 음악가라는 사회적 지위를 주어 활동 영역을 넓힐 수 있게 배려한 것이지요.
이러한 배려 덕에 많은 문하생이 생기고..레슨도 많이 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호시절도 잠깐...
요제프 2세가 투르크(터키)와의 전쟁을 시작하며..음악사업 전반에 관한 지원이 줄어든 것입니다.
만약, 모차르트가 성실히 피아노와 작곡레슨을 하는 성격이었으면 상황이 좀 나았을 텐데...
프라하의 제안도 작곡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거절한 모차르트가...성실한 레슨은...좀...
그래서 그 많던 문하생들이 하나하나 떠나갔습니다.
이런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는 1788년 6월부터 8월까지 작곡한 곡들이
교향곡 39번 K.543, 40번 K.550, 41번 K.551<주피터>입니다.
음악학자인 알프레드 아인슈타인(1880- 1952)의 표현에 의하면...
(6촌 형이 물리학자인 알프레드 아인슈타인..동명이인...모차르트와 베토벤 연구의 권위자)
우뚝 솟은 세 개의 봉우리에 짙은 안개가 뒤덮여 함부로 다가서는 걸 허락하지 않는 산 같다고...
그리고 이곡을 주문한 기록도 없고 작곡의도를 밝힌 글도 없다. 있는 것은 영원을 위한 호소 뿐이다..라고..
교향곡 25번은 작은 G단조와 비교해, 교향곡 40번 K. 550을 큰 G단조 교향곡이라 부르는데...
교향곡 40번을 착수할 무렵 넷째 아이 테레지아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교향곡 40번 G단조는 모차르트가 죽던 해인 1791년...
아직 모차르트가 살아 있던 4월에 살리에리에 의해 빈에서 연주되었고..
모차르트가 지휘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1789년 9월 몇몇 성악곡들을 한데 모아 출간 했는데...
이중 <할레루야 Alleluia>와 <아베 마리아 Ave Maria>도 이었습니다.
대본작가 로렌초 다 폰테와의 세 번째 오페라 작품 <코지 판 투테 Cosi fan tutte> K. 588을 오페라 부파로 작곡하고
1790년 1월에 초연하는데, 로렌초 다 폰테는 <휘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여자는 다 그래>의 대본작가로 대본도 좋았지만..
작곡가를 잘 만난거지요. 후세엔 모차르트 작품의 대본작가로 이름을 얻었으니까요.

무명의 미국 화가가 그린 로렌초 다 폰테의 초상
1790년부터 1791년 모차르트 임종까지의 암울한 시기가 시작됩니다.
모차르트의 든든한 후원자 였던...요제프 2세가 돌아가신 것입니다.
요제프 2세는 왕위를 물려줄 후사가 없어 동생인 레오폴드 2세가 왕위에 올랐는데...
레오폴드는 모차르트 음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빈 황실과도 소원해졌지요.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1790년 8월부터 불면증에 시달리며..우울증이 시작되었는데...
모차르트의 말을 빌리면...
사람들이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면 나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할 것이다.
모든 것이 어름처럼 차갑고.....그들은 나에게 상냥하게 대해 주지만 모두가 공허롭기만 하구나!(9월 23일)
그러나 그 울함과 공허함 속에서도...현악 사중주 22번 K. 589, 23번 K. 590
현악 오중주 D장조 K.593, 현악 오중주 E-flat장조 K. 614 의 실내악곡들과
클라니넷 협주곡 A장조 K.622, 성악곡 그리고 두 편의 오페라....
예전에 비해 작품 수는 줄었어도..한결 같이 명작들을 작곡합니다.
1791년 오페라 <마술피리> 공연중 실신합니다.
이 즈음에 폰 발제그-스투파흐 백작으로부터 의뢰받음 곡이 레퀴엠인데...참..모차르트의 삶은 드라마틱합니다.
백작은 자신이 죽은 아내를 위해 작곡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해서...
집사가 얼굴이 알려지지 않게 검은 옷을 입고 나타나고...
모차르트는 병증으로 인해 환각을 보고 있던 시점이었고...
급속한 건강 악화로 결국엔 자신을 위한 레퀴엠이 되고...
결국 같은 해(1791) 12월 5일에 돌아가십니다.
레퀴엠과 임종시에 대한 얘기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라크리모사 부분을 제자인 쥐스마이어에게 받아 적게하고 뒷부분에 대한 구상을 지시했다 임종했다는 것과
모차르트 친구들이 그를 위해 임종시 간단한 초연을 했다는 것입니다.
책 마다 달라서 어느 것이 옳은 지 모르겠지만...모두 공통적으로
라크리모사 부분에서 눈물을 흘리며...잠시후 임종했다고 합니다.

르만 카울 바흐의 그림 임종하는 모차르트가 친구들이 불러주는 레퀴엠을 듣고 있는 그림

괴테가 그린 수채화 바이마르 공연을 관람후 <마술피리>를 보고 그린 것임
모차르트의 마지막 곡인 Requiem D단조 K.626는 결국 미완성으로 끝나고...지금 우리가 듣는 레퀴엠은
쥐스마이어(Franz Xaver Suessmayer 1766-1803)가 모차르트의 지시에 따라 악상을 더듬어 완성한...
쥐스마이어판입니다.
나폴레옹의 이관식에서도... 쇼팽의 유언에 따라 쇼팽의 장례식에도...이 곡을 연주했다고 합니다.
낭만주의 문학을 여는 대문호..괴테...
그림도 참 잘 그리지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징슈필 형식으로 작곡된 이 오페라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우수운 무대의상과 깔깔거리는 내용...
예전에...예술의 전당앞에 붙은 포스터에 보면 “아이들과 함께 보는 오페라”라고 써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러나 좀 심도있게 들어다 보면 엄청 철학적인 내용입니다.
대문호 괴테는 알아본 것이지요. 그래서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즈음에서 모차르트의 병 또는 사망원인에 대해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는데...
성 슈테판 교회에 남아있는 모차르트 사망 진단서에는 속립진열(僳粒疹熱)로 사망...
그러나 이 속립진열이 무엇이냐? 는 것이지요. 애매모호한 사망원인...
첫 번째 나온 것이 독살설이었습니다. 그건 모차르트가 반 년만에 증세가 급속히 악화되어 사망했고..
모차르트 역시 1790년쯤 부터 누군가 자신을 독살하려 한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독살용의자 후보에 오른 사람이..안토니오 살리에리
그 이유는 모차르트가 살리에리를 지나치게 의식한 것도 있고...
모차르트 자신이 “살리에리의 방해로 빈에서 성공을 못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다닌 것에도 기인한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심부전설...류마치스설...페스트설...휘라리아설...등등
그러나 베르다(1953)와 케너르(1969)에 의해 수은 중독설이 제기되고...
1920년 레빈에 의해 수은에 중독작용이 있다는 게 밝혀져..
지금은 수은 중독에 의한 사망으로 보는 견해가 정설입니다.
감흥중독, 즉 염화제일수은에 의한 중독은....
처음엔 불안, 초조, 우울증, 환각 증상이 나타나다 치사량에 이르면 오한, 발열과 팔다리에 부종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모차르트 말년에 보였던 회색 옷을 입은 저승사자는 수은중독에 의한 환각증상인 것이지요.
그러나 모차르트 사망후 독살설은 전 유럽에 퍼져나갔습니다.
드라마나 소설에서 보면..항상 대립구조와 갈등구조를 만듭니다....
그래서 소설 “칼의 노래”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장군님과 대립구조 관계인 원균을 균형을 맞추기 위해...
엄청 멋있게 표현했지만 사실은 원균은 절대 멋있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대립구조 관계를 바탕으로...대본이 만들어 지는데...
그 시작은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의 연극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이후 니콜라스 림스키코르샤코프의 오페라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피터 새퍼의 연극<아마데우스> 등...
요즈음은 뮤지컬 <살리에리>도 나오고 ...덩달아 살리에리 증후군이라는 것도 나오고...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 1750-1825)는 이탈이라 레가노 출생으로
1766년 당시 베네치아에서 만난 빈의 궁정작곡가 플로리안 가스만의 후원을 받아 빈 궁정으로 진출합니다.
1774년 궁정 작곡가가 되어 1824년 사망 1년전까지 궁정악장을 지낸...
당시로서의 음악계의 정점에 선 사람이었습니다.
살리에리는 종교음악과 오페라를 주로 작곡하였고..특히 오페라는 당시 최고의 작곡가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많은 제자를 키워냈는데...우리가 아는 대가들...
루트비히 반 베토벤,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 프란츠 리스트, 카를 체르니, 지아코모 마이어 베버 등..
그리고 모차르트의 아들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도 가르쳤습니다.
생활이 힘든 제자를 지원하는 자선활동도 하고...
실직한 음악가나 사망한 음악가를 위해 상조회도 만들고...
매년 자선 컨서트도 개최하는...대인배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살리에리를 대신해 항변을 좀...하자면...
1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빈 궁정에 진출하여 평생을 빈 궁정에 일한 음악가입니다.
그러니 관료적일 수도 있고..그가 앉은 자리에 비해 실력이 모자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살리에리는 자신의 권력을 교육과 생활이 어려운 음악가을 위해 썼는데...
누구나 천재는 될 수 없습니다..그저 자신의 능력내에서 길을 찾고..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지요.
연극적 대립구조로..평가절하 또는 왜곡되는게...좀 안타깝습니다.
Mozart - Clarinet Concerto K. 622
2악장 아다지오.. 유명하지요.
https://www.youtube.com/watch?v=o_gm0NCabPs
Ave Verum Corpus (Mozart) K.618
거룩한 성체여(Ave Verum Corpus) 1791년 6월에 작곡된 곡으로..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잘츠부르크 대주교로부터 벗어난 후 작곡하지 않던 종교음악을...
https://www.youtube.com/watch?v=HXjn6srhAlY
Leontyne Price "Alleluja" Mozart
흑인 특유의 거친 발성..그리고 파워..할렐루야 만큼은 제가 최고라고 여기는 가수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UO8S16VOQo
Mozart, Réquiem en re menor K626. Karl Böhm
https://www.youtube.com/watch?v=3qyXVgC_tCw
여기서 살리에리 곡도 하나
Antonio Salieri - Ouvertures
https://www.youtube.com/watch?v=VExHrtfvtm4
<다음주에 계속>
모차르트편을 좀 성실히 진행하지 못해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음악가이기도 하고 그래서 나름 가장 공부를 많이 한 음악가임에도..
그래서 그런지 도저히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이것 저것 얘기하자니...길고
간단히 하자니 그건..아니고...모차르트에 대한 잡생각도 들고.. 그래서 좀 도망 다녔습니다.
지금도 너무 많이 듬성듬성 넘어가서 좀..그렇습니다. 시간되시면...평전을 읽어보시길 추전드립니다.
다음 주부터는 낭만주의 음악을 들어가기 전에...
준비운동도 해야 하고 낭만주의 음악과 오페라는 불가분이므로..
오페라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