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보내는 메시지
유회숙
안녕! 나에게 편지를 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더군다나 컴퓨터 앞이 아닌 이렇게 누워서 핸드폰 노트에 말이야.
방금 한국편지가족 경인지회 공지방에서 『사람과♡세상사이에』 실릴 편지를 올리라는 글을 읽고 팔다리와 몸을 통틀어 이르는 말, 지체에 대하여 생각했어.
그런데 허리 아픈 건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꾀병처럼 보일 수 있겠다 싶네. 아픈 건 자랑해야 한다는데 꼭꼭 싸매고 있었던 건 아닌지. 바닥에 누워서야 심각성을 깨닫게 되는 것 같아. 저절로 허리에 손이 가고 자세를 똑바로 펴지 못하니까 고개가 숙어지고 어깨는 구부정하고 걷는 것도 불편하고 내가 나를 봐도 낯설고 이상해.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에서 아픈 기색을 찾을 수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야. 내가 아프다고 하면, 본인은 이전부터 아팠다는 친구의 우스개 소리도 그리워지네. 한편 허리디스크니까 조심하라는 말이 귓가에서 맴도네.
회숙 씨, 아픈 이야기만 쓰다 보니 마음조차 멍들겠다 싶어. 여느 때 같으면 아프다가도 푹 쉬고 나면 괜찮았는데 이젠 그렇지 않네. 몇 번이나 신호를 보냈는데 이러다 말겠지 모른 척했으니, 탈이 난 거야.
지난날이 생각났어. 첫애를 낳을 때야. 양수가 터져서 22일 분만실에 들어가서 24일인 크리스마스이브에 딸아이를 낳았어. 배가 아파야 하는데 배 아픈 건 전혀 모르겠고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팠어. 마치 허리가 내 몸에서 없어진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어. 허리를 틀어서 낳는 사람은 허리가 약하다는, 세간에 전해 내려오는 속설이야 어찌 됐든 내 몸에서 가장 약한 곳은 분명해. 몸의 중심인 허리가 고장 나니까 일상의 움직임을 구속당하는 느낌이야. 손끝에서 발끝까지 모든 신경이 연결되어 있어서 그런지 구부리거나 힘을 주면 깜짝 놀랄 만큼 통증이 오네. 별수 없이 꼬박 이틀을 누워 있네. 추석 연휴라 병원도 못 가고 내일은 꼭 가야겠지. 파스를 바르고 뜨끈하게 찜질하니까 처음보다는 좋아진 것 같아. 나을 수 있을 거야.
돌아보면 나에게 편지를 쓰는 게 처음이 아니네. 결혼과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싶었어. 하지만 육아와 남편의 발령 등 복합적인 이유로 결국 둘째를 낳기 전 경제활동이 중단된 경단녀가 되었을 때 마음의 병이 왔었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것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까 좋고 아이들과 종일 지낼 수 있으니 더없이 좋지만 결혼 전부터 꿈인 경제활동을 계속할 수 없음에 내 삶의 한 부분이 흐릿하게 지워지는 것 같았어.
밤늦게 식탁에 앉아 수없이 나에게 썼던 편지. 가족들이 깰까 염려가 되어 어둠 속에서 적었어. 그리고 나를 포함한 누군가 다음 날 읽으면 안 되기에 주방 수납장에 넣어두곤 했어. 처음에는 다시 읽기 민망했던 푸념 섞인 우울과 불안이 차츰 글 속에서 나를 객관화할 수 있었어.
회숙 씨, 몸과 마음은 따로가 아닌 하나라는 건 알고 있지. 인생은 육십부터라는데 칠십은 노인 축에 들어가지 않는 어정쩡한 나이야.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지금부터 십 년 동안 나랑 놀아주기" 마음의 소리가 밖으로 나왔어. 그래 나랑 놀아주기 꼭 필요한 시간인 거야. 몸과 마음을 돌보는 것은 결국 나이 듦의 과정이고 현실이지. 나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고 싶어. 시선집과 산문집 출간도 건강해야 가능한 거니까.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고마움을 알았어.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마음에 방점을 찍었다면 나는 지체에게 편지를 쓰면서 몸에 더 집중했다고 할 수 있어. '아프니까 기적이다'라고, 오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보니까 어제의 평범한 일상생활은 물론 일거수일투족이 기적인 거야.
십 년 후. 팔십이네. 기적을 살았다고 웃고 있는 나를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때 또 나는 나와 어떤 약속을 할지 궁금해지네. 오늘은 여기까지 쓸게. 안녕!
2024년 9월 18일
회숙에게 회숙 씀